‘한 지붕 두 가족’ 부광약품 이상한 지배구조

그래서 주인이 누구야?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과거 부광약품은 두 창업주가 공동으로 운영했지만, 현재 경영권은 한쪽으로 치우친 모양새다. 창업주 2세들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그렇다. 이들은 한 차례 충돌한 사례도 있다. 왜일까.
 

▲ 김동연 부광약품 회장 ⓒ한국기원

부광약품은 지난해 별도 기준 1659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국내 제약업계 가운데 60위권이다. 실적은 적자로 전환됐다. 직전년도 순이익 1510억원은 지난해 -34억원으로 주저앉았다. 창업주는 2명이다. 고 김성률 회장과 김동연 회장은 지난 1973년 부광약품공업을 인수, 사명을 현재의 부광약품으로 변경해 공동 경영했다.

2인 창업주
공동 경영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서 확인할 수 있는 최초 부광약품 사업보고서는 1998년부터다. 당시 임원을 살펴보면 두 공동 창업주는 상근이사로 재직 중이었다. 고 김성률 회장은 회장직을, 김동연 회장은 부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전문경영인이었다.

지분율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고 김성률 회장 일가는 26.94%를, 김동연 회장 일가는 27.51%를 보유하고 있었다.

고 김성률 회장은 지난 2001년 임원 명단에서 제외됐다. 대신 김동연 회장이 회장직에 올랐다. 고 김성률 회장의 동서인 정창수 상근이사가 부회장직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06년 고 김성률 회장이 타계하면서 회사 전체에 변화가 있었다. 우선 김동연 회장의 장남 김상훈씨는 기획조정실장으로 신규 선임됐다. 직급은 상무였다.

고 김성률 회장은 슬하에 3남3녀를 두고 있었다. 모든 자녀들이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차남 기환씨와 삼남 재환씨가 5%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별다른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았다. 사실상 김동연 회장 일가 쪽으로 경영 승계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이듬해인 2007년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우선 지분구조에 변동이 있었다. 최대주주가 ‘김기환 외 11인’서 ‘김동연 외 8인’으로 변경된 것. 김동연 회장 일가는 부광약품 지분 27.92%를 보유하면서 확고한 위치에 올라섰다.

두 손 잡고 설립한 전통 제약사
창업주 타계 이후 뒤바뀐 판도

또 김동현 회장의 장남 김상훈 상무는 전무이사로 승진했다. 그는 그해부터 지분도 늘리기 시작했다. 방법은 주식배당이었다. 2007년에만 5만3811주가 늘었다. 이듬해인 2008년에도 2만3502주를 확보했다.

한동안 김상훈 전무는 지분이 그대로였다. 그러다 2012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면서 지분도 함께 늘어나기 시작했다. 김상훈 사장은 대표이사에 오른 그해 2만4677주를 늘렸다.

김상훈 사장은 이후 ▲2013년 2만5911주 ▲2014년 42만4606주 ▲2015년 43만1263주 ▲2016년 14만주 ▲2017년 30만8000주 ▲2018년 218만4800주 ▲2019년 70만9840주 등 매년 주식배당을 통해 몸집을 키웠다. 올해에도 23만7132주를 확보했다.


현재 김상훈 사장은 고 김성률 회장의 동서 정창수 부회장과 김동연 회장에 이어 부광약품 3대주주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41만6230주는 497만9772주로 크게 늘었다. 주식이 대량으로 늘어난 2014년, 2015년, 2018년은 김동연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았다.
 

▲ 부광약품 아락실 TV 광고

부광약품은 지난 2014년부터 공동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김상훈 사장은 유희원 부사장과 함께 공동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김상훈·유희원 공동대표이사 체제는 2017년 깨졌다. 김상훈 사장이 대표이사직서 물러나고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직책이 변동됐기 때문이다. 김상훈 사장의 담당 업무 역시 기존 경영총괄서 전략기획으로 변경됐다.

부광약품은 다시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섰다. 현재 유희원 단독대표이사가 부광약품 경영총괄을 맡고 있다.

김상훈 사장은 2012년부터 단독대표이사, 공동대표이사를 거치다가 2017년 최고전략책임자 자리로 내려왔다. 사실상 김동연 회장 일가의 2세 경영 체제가 미완된 셈이다. 공교롭게도 김상훈 사장이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시기 부광약품 실적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경영승계
한쪽으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부광약품 실적은 상승세였다. 별도 기준 매출액은 1475억원, 1307억원, 1413억원으로 변동이 있었지만 영업이익은 214억원, 229억원, 278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순이익 역시 165억원, 183억원, 235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문제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였다. 매출액은 1415억원, 1420억원, 1500억원으로 지속 증가했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영업이익은 241억원, 164억원, 151억원으로 매년 하락했다. 순이익 감소폭은 더 컸다. 341억원, 204억원, 147억원으로 매년 앞자리가 바뀌었다.

이후 김상훈 사장은 2018년 3월 공동대표이사 자리서 내려오게 된다. 공교롭게도 유희원 단독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된 부광약품 실적은 1년 만에 회복됐다.

2018년 부광약품 매출액은 1925억원으로 직전년도에 비해 28.3% 상승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넘게 증가한 345억원이 됐다. 순이익 역시 151억원으로 증가했다.

대표이사 자리서 물러난 김상훈 사장은 현재 사내이사로 활동 중이다. 직급은 최고전략책임자 사장이다.

김동연 회장 일가는 2세 경영을 완전히 안착시키지 못한 채 다시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승계 자체가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김상훈 사장은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3세까지 부광약품 지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훈 사장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이들은 올해로 만 20세인 동환씨와 만 19세인 민정씨다. 동환씨는 장손이기도 하다. 이들은 각각 30만9654주(0.48%), 6만4655주(0.1%)를 보유하고 있다.

주주명부에 동환씨 이름이 오른 때는 지난 2007년이다. 동환씨는 그해 9월 김동연 회장으로부터 3000주를 증여받았다. 이후 주식배당과 매수, 증여를 번갈아가면서 오늘날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민정씨 역시 동환씨와 같은 날 김동연 회장으로부터 3000주를 증여받은 뒤 꾸준히 지분을 확보했다. 동환씨와 민정씨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대략 따져보면 74억원, 1억5000만원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김동연 회장의 동업자였던 고 김성률 회장의 자녀들은 어떻게 됐을까. 김성률 회장의 차남 기환씨와 삼남 재환씨는 부광약품 내에서 주주로만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부광약품의 법인 등기부등본서도 기환씨와 재환씨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서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의 최초 지분은 70만9150주다. 각각 같은 수량을 가지고 있었고, 지분율은 3.64%였다.

우선 기환씨는 꾸준히 지분을 확보했다. 2000년에는 23만5918만주를, 2004년에는 9만4514주를 추가로 얻어냈다. 부친이 타계한 이듬해인 2007년에는 상속을 통해 31만8823주를 추가로 확보했고, 같은 해 6만7920주는 주식 배당을 통해 취득했다. 2008년에도 같은 방법으로 7만1316주를 늘렸다.


한동안 별다른 지분 소식은 없었다. 기환씨는 2012년부터 매년 지분을 확보했다. 세부적으로 ▲2012년 7만4882주 ▲2013년 7만8625주 ▲2014년 8만2556주 ▲2015년 17만3371주 ▲2016년 19만707주 ▲2017년 41만9556주 ▲2018년 25만1733주 ▲2019년 83만721주 등이다.

기환씨는 올해도 지분 확보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올해 17만9989주를 취득했지만 89만4883주를 매도했다. 지난달 18일 기준 기환씨는 288만4898주를 보유하고 있다. 단일 지분으로만 봤을 때 고 김성률 회장의 동서 정창수 회장에 이어 김동연 회장과 김상훈 사장 다음으로 가장 많다.

양쪽 모두
지분 매입

재환씨 역시 기환씨와 비슷한 시기에 지분을 확보했다. 다소 다른 점은 기환씨보다 더 많은 주식을 처분했다는 사실이다.

재환씨는 2000년 23만3818주를 취득한 뒤 2004년 6만7830주를 매도했다. 같은 해 재환씨는 8만7520주를 추가 취득하기도 했다. 재환씨 역시 부친이 타계한 이듬해 상속을 통해 31만8823주를 확보하고, 주식배당을 통해 6만4074주를 추가로 늘렸다.

눈길이 가는 시점은 2007년이다. 재환씨는 해당 연도에만 37만4308주를 팔았다. 2008년에는 3600주를 추가 매도한 뒤 4만8382주를 확보했다. 이후 재환씨도 한동안 매입, 매도 소식이 들려오지 않다가 기환씨와 같은 시점부터 주식을 사고팔았다.
 

세부적으로 ▲2012년 9만8696주 매입, 10만8930주 매도 ▲2013년 5만289주 매입 ▲2015년 10만5608주 매입, 73만2103주 매도 ▲2016년 4만2958매입, 9만주 매도 ▲2017년 7만6509주 매입, 4만5905주 매도 ▲2018년 4만5905주 매입, 12만5905주 매도 ▲2019년 9만9945주 매입, 10만주 매도 등이다.

재환씨는 기환씨에 비해 매도량이 더 많았다. 재환씨는 올해에는 1만6654주를 추가 획득해 현재 34만9750주를 보유 중이다. 지분율은 미미하다. 김상훈 사장의 2000년생 아들과 비슷하다.

기환씨는 지난 2018년 3월 부광약품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5개 안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기환씨는 공시를 통해 ‘현재 경영진이 수익성이 불확실한 신약개발에만 과도한 비용을 사용하면서 균형 잡힌 경영을 못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당시 기환씨는 부광약품 3대주주로 김동연 회장 일가와 고 김성률 회장 일가가 크게 충돌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상수로 남은 ‘후계 변수’
두 후손 경영 두고 다툴까

이때 부광약품은 김상훈 사장 단독대표이사 체제로 운영 중이었다. 김상훈 사장은 당시 주총이후 대표이사직서 물러났지만, 기환씨가 언급한 경영진서 김상훈 사장은 빠질 수 없었다.

기환씨는 권유문을 통해 “회사는 현재 기존 사업 성장, 신사업 진출 등이 정체돼 브랜드, 역사 등에 비해 경쟁사나 유사업체에 비하면 매출이나 수익이 정체돼있고 주가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전통 제약사의 장점인 병원과 약국에 대한 채널 영업을 등한시하면서 신약 개발에만 치중해 수년째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급감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정관 일부 변경 ▲사외이사 후보자 2인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임원 퇴직금 지급규정 승인 ▲주식매수선택권 부여 등에 대해 조목조목 입장을 밝히며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기환씨는 끝으로 ‘주주 여러분들께서도 동참하여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환씨는 주주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기환씨가 반대 의사를 밝혔던 안건을 포함해 상정된 모든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후 부광약품 주총서 기환씨는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기환씨가 올해에도 지분을 매입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주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언제든 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또 기환씨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면서 경영 실적을 그 배경으로 꼽은 바 있다.

지난해 보광약품은 별도 기준 34억원 순손실을 봤다. 직전년도에 1510억원 순이익을 기록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수치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부친인 고 김성률 회장의 동서 정창수 부회장이 단일 최대주주인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같은 오너 일가인 정창수 부회장의 역할에 따라 지배구조에 변동이 발생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점쳐진다. 기환씨는 올해 89만주를 모두 4차례에 걸쳐 매도했다. 지금까지 지분을 확보한 적은 있었어도 처분한 적은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다시
충돌?

또 김상훈 사장과 지분이 역전됐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기환씨는 지난 2018년 주총에 앞서 입장을 피력했을 당시, 3대주주였다. 김상훈 사장보다 더 많은 부광약품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김상훈 사장이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면서 3대주주 자리를 꿰찼다. 현재로서는 다소 힘이 빠진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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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