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그룹 ‘허씨 4세 지분 전쟁’ 막전막후

‘때는 이때다’ 슬금슬금 총알 장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GS그룹 4세들 간 지분 경쟁이 가시적이다. 저가 매수를 노렸다는 분석과 함께 후계 구도에 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다만 지분만으로 승계 우위를 곧바로 점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일까.
 

▲ (사진 왼쪽부터)허준홍 전 GS칼텍스 부사장, 허세홍 GS칼텍스 대표, 허윤홍 GS건설 사장

GS그룹은 허창수 전 회장의 용퇴로 전격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지난해 12월 허 전 회장은 “지금은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리더와 함께 빠르게 변하는 사업 환경에 대응해 세계적 기업을 향해 도전하는 데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시기”라며 15년 만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용퇴 결정
세대교체

바통은 허 전 회장의 동생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에게로 넘어갔다. 허 회장은 올해 1월 취임 후 첫 신년 메시지를 통해 “고객과 시장,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불확실성 시대에는 밖으로 눈과 귀를 열어 고객의 니즈에 초점을 맞추고 안으로 우리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빠른 대응을 주문했다.

허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쥐게 되면서 GS일가 4세들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허 회장은 오너 일가 3세다.

GS 4세는 그룹 지주사 ㈜GS 지분 소유 순으로 허준홍 전 GS칼텍스 부사장(2.24%),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2.21%), 허서홍 GS에너지 전무(1.76%), 허철홍 GS칼텍스 상무(1.37%), 허윤홍 GS건설 사장(0.53%) 등이다.


허준홍 전 GS칼텍스 부사장은 삼양통상 등기이사로 삼양통상은 피혁 산업을 영위하는 회사다. 허 전 부사장 아버지는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이다. 삼양통상 2대주주(20.00%)로 GS그룹서 벗어나 독자 사업을 하고 있다.

허 전 부사장의 사퇴는 관심을 샀다. 그는 GS그룹 창업주 고 허만정 선생의 장손이다. 허만정 선생의 장남은 고 허정구 삼양통상 창업 회장이다. 애초 GS그룹 계열사에 몸담았지만 지난해 12월3일 사의를 표명했다.

허 전 부사장은 GS그룹서 스스로 벗어났지만 지난 19일 기준 4세 가운데 가장 많은 ㈜GS 지분을 쥐고 있다.

주가 하락 국면 4세 매입 눈길
올해 초부터 3월까지 사들여 

눈길이 가는 건 허 전 부사장이 ㈜GS 지분 매입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허 전 부사장은 사의를 표한 날 198만327주를 보유 중이었다. 올해 들어 허 전 부사장은 지난달 25일과 26일 각각 4만1311주, 5만8689주 등 모두 10만주를 추가로 장내 매수했다.

허 전 부사장은 기존 198만여주서 208만327주를 보유하게 됐다. 허 전 부사장은 지난해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양통상을 통해서도 ㈜GS 20만주를 매입한 바 있다.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은 4세 중 지분 매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특히 허 사장은 GS 4세 가운데 가장 먼저 그룹 계열사를 독자 경영하고 있는데 4세들 중 유력한 승계자로 꼽힌다.


허 사장은 지난달 5일 4만6157주, 6일 3만5743주, 11일 1234주, 17일 3498주, 18일 1만주, 19일 9268주, 24일 4만6000주, 25일 7만9300주, 26일 2만3800주, 28일 2만4000주 등을 확보했다. 2월에만 모두 27만9000주였다.

이번 달에도 지분 매입은 계속됐다. 지난 2일 6만5000주를 시작으로 3일 7만주, 4일 2만7110주, 5일 2만주, 9일 1만4133주, 10일 3867주, 11일 4만8000주, 12일 5만340주, 13일 150주, 18일 1만9000주, 19일 2만5000주 등이다. 허 사장은 지난 19일 기준 34만 2600주를 매수했다. 허 사장이 보유한 ㈜GS 지분은 2.21%다.

허 사장은 GS칼텍스 수장으로 오른 지 2년차다. 그는 ‘미스터 오일’로 불리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장남이다. 현재 허동수 회장은 GS칼텍스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대외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너도 나도
긁어모아

허서홍 GS에너지 전무는 허정구 명예회장 3남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장남이다. 허 전무 역시 올해 ㈜GS 지분을 사들였다. 허 전무는 지난달 13일, 7100주를 시작으로 14일 2만주, 17일 2만주, 18일 1만2600주 등 2월에만 모두 6만주를 사들였다. 이어 지난 9일 3만2000주, 10일 4만2000주 등 이번 달에는 모두 7만4000주를 매입했다.

허 전무 지분은 기존 156만2600주서 163만6600주로 상승했다. 허 전무는 지난 19일 기준 ㈜GS서 1.76% 지분을 가지고 있다.

허 전무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지분을 매입해 업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허 전무는 그 해 8개 계열사 등기임원에 오른 바 있다. 당시 기준으로 GS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가장 많은 겸직을 하고 있었다. 세부적으로 ‘삼양인터내셔날’ ‘켐텍인터내셔날’ ‘GS파크24’ ‘GS파워’ ‘보령엘엔지터미널’ ‘서라벌도시가스’ ‘해양도시가스’ 등이었다.

허철홍 GS칼텍스 상무는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 둘째 아들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 아들이다. 허 상무는 지난 2018년 허 상무는 GS네오텍 주주명부에 등장하면서 경영권을 인수 받는 것 아니냐는 주목을 받은 바 있다.
 

▲ 허창수 전령련 회장

허 상무는 올해 ㈜GS주식을 확보하지 않았다. 그는 ㈜GS지분 127만325주(1.37%)를 보유 중인데 오너 4세 중 4번째다. 허 상무는 지난해 등기이사 겸직 수가 늘어나 이목을 끌었다. 지난 2018년 허 상무는 GS네오텍서만 등기이사로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4곳에 이름이 올랐다. ‘상지해운’ ‘GS바이오’ ‘이노폴리텍’ ‘GS에코메탈’ 등이다.

허윤홍 GS건설 사장은 지난해 용퇴를 결심한 허창수 전 회장의 장남이다. 허 사장은 지난해 GS건설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승계 경쟁력서 한 발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 사장은 이후 아버지 허 전 회장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게 됐다.

허 사장은 올해 ㈜GS지분을 매입하지 않았다. 지난 19일 기준 허 사장은 ㈜GS서 49만4888주(0.53%)를 보유 중이다.

허 사장은 지난해 승진 이후  곧바로 신사업 주도에 나섰다. 지난 1월 허 사장은 폴란드 목조 모듈러 주택 전문회사 단우드와 영국 철골 모듈러 전문회사 엘리먼츠 등을 인수했다. 허 사장은 미국 철골 모듈러 전문회사에 대한 인수 계약 체결 계획도 세웠다. 일각에선 승계 구도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했다.


오너 4세뿐만 아니라 GS오너 일가는 이번 달에만(19일 기준) 지난 6일부터 17일까지 모두 69만1120주를 사들였다. 그 결과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오너 일가 지분율은 48.19%서 48.92%로 상승했다.

그룹 오너 일가의 지주사 주식 매입은 경영권 확보와 책임경영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가가 급락세를 보이자 방어 차원으로 지분을 매입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올해 초 5만원이던 ㈜GS 주가는 지난 19일 3만5600원까지 떨어졌다.

GS그룹은 대표적인 형제 경영 그룹이다. 능력을 입증한 이는 가족회의를 통해 회장을 선출된다. 오너 일가가 나이 구분 없이 ㈜GS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GS 일가 최연소 주주는 허용수 GS에너지 대표이사 아들 허석홍씨다. 허씨는 2001년생으로 100만5341주(1.08%)를 쥐고 있다.

현재 GS최대주주는 허용수 GS에너지 대표이사 사장으로 총 488만9718주(5.26%)를 갖고 있다. 허 전 회장은 441만7695주(4.75%), 허태수 회장은 192만3210주(2.03%)를 소유하고 있다.

저가 매수
매입 지속

GS 일가 4세는 그룹 핵심 계열사서 저마다 자리를 꿰찼지만 이사회 진입까지는 요원한 모양새다. ㈜GS는 오는 27일 정기 주주총회를 실시할 계획이다. 주총에선 사내이사 선임안이 다뤄진다. 이 중 4세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는 3세들이 계속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시 자료에 따르면 허태수 회장과 홍순기 GS 사장은 사내이사 선임안에 등장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물러난 허 전 회장과 정택근 전 부회장의 빈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기타 비상무이사로는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이 선임될 전망이다.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의 후임이다.

GS 일가 4세 중 허세홍 사장이 유일하게 등기 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그는 GS칼텍스를 비롯한 GS에너지 등기임원이다. 다만 허 사장이 단독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허진수 회장과 허용수 회장이 모두 GS칼텍스와 GS에너지에 등기돼있다.

GS건설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는 27일 계획된 주총에서는 등기임원으로 허 전 회장과 허진수 회장이 선임될 전망이다. 허 전 회장은 사내이사로, 허진수 회장은 기타 비상무이사로 신규 선임될 예정이다. 재선임이다.

여타 계열사서도 GS 4세들은 등기임원 선임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룹은 3세 경영에 우선 방점을 두면서 4세 승계를 천천히 밟아갈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인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한 가운데 이들의 실적 개선 여부가 여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전문가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는 지난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이미 (1998년 IMF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게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룹 전반 4세보단 아직 3세가…
업황 악화 성과 입증 누가 먼저?

장 교수는 안팎서 불거지는 경제 위기가 코로나19만으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봤다. 장 교수는 “2008년 국제 금융 위기를 잘못 처리해 문제가 더 커졌다”며 “코로나는 뇌관이고 밑에 쌓여 있는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제도 같은 개혁은 제대로 안 하고 돈을 풀어 문제를 봉합했다”며 “자본주의 역사상 없는 저금리에다가 양적 팽창 등으로 돈을 풀었지만 (돈이)금융기관에만 가고 실물 경제는 잘 돌아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금융 시장에 거품이 확 끼어 있는 상황서 코로나가 뇌관을 터뜨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옛날처럼 돈을 풀어도 해결이 안 된다”며 “돈을 풀어도 사람들이 돈을 쓸 수도 없는 등 유례없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봤다. GS 4세들은 현시점부터 경영 능력을 입증할 만한 성과를 올릴 경우 차기 후계 구도서 강력한 경쟁력을 쥐게 된다.

허세홍 사장이 이끌고 있는 GS칼텍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 33조2614억원을 기록했다. 직전년도에 비해 8.5%가량 하락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8796억원으로 같은 기간에 비해 28.7% 떨어졌다. 당기순이익 역시 35.6% 하락한 4526억원으로 나타났다.
 

▲ GS그룹 사옥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GS칼텍스 수익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장기 신용등급을 기존 ‘BBB+’서 ‘BBB’로 하향 조정했다. 다만 등급 전망은 ‘안정적’을 유지했다. 국제 원유 가격 급락과 수요 둔화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GS에너지는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1조7609억원을 기록했다. 직전년도 2조2110억원에 비해 4500억원가량 감소한 수치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9878억원, 2773억원이었다.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각각 20.3%, 40.4% 정도 하락했다. 그룹 주력 분야인 정유와 에너지서 부진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GS건설은 지난해 연결 기준 10조4165억원 매출을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직전년도에 비해 20.7% 내려갔다. 영업이익은 2972억원 줄어든 7672억원이었고, 당기순이익은 1399억원 감소한 4474억원을 봤다. 주로 국내 주택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GS건설은 코로나19 여파로 분양 등에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적 부진
개선 여부

GS그룹서 벗어난 삼양통상에도 눈길이 간다. 삼양통상은 주총을 통해 후임 대표이사는 허준홍 전 GS칼텍스 부사장이 맡을 예정이다.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부친인 허남각 회장은 44년 만에 대표이사직서 물러나게 됐다. 삼양통상은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이 모두 증가했다. 회사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을 4.9% 오른 1921억원이라고 공시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494억원과 441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53.9%, 74.7% 치솟은 값이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LS그룹 일가도 지분 경쟁?

GS그룹과 함께 ‘범 LG가’로 분류되는 LS그룹에서도 지분 매입이 한창이다.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 장남인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은 올해에만 그룹 지주사 ㈜LS 지분을 상당량 확보했다.

구 회장은 지난 1월30일 2000주, 31일 3500주를 시작으로 2월에는 3일 4500주, 4일 3000주, 5일 1700주, 21일 1000주, 24일 1000주, 25일 4400주, 26일 4020주, 28일 3000주 등을 끌어 모았다. 1월부터 2월까지 모두 2만8120주다.

이번 달에도 지분을 꾸준히 매입 중이다. 구 회장은 지난 3일 4000주, 4일 825주, 5일 1000주, 10일 2500주, 11일 880주, 17일 8400주 등을 사들였다. 모두 1만7605주다. 현재 구 회장에겐 4.13% 지분이 있다. 구 회장은 오너 2세다.

3세 가운데 구동휘 LS 전무 행보가 눈에 띈다. 구 전무는 구자열 회장 아들이다. 그는 지난 1월30일과 31일 각각 3000주씩 6000주를 시작으로 지난 2월 3일 6500주, 4일 4476주, 5일 2000주, 7일 4279주, 12일 1000주, 14일 5000주, 17일 1000주, 18일 1500주, 19일 771주, 20일 1175주, 24일 1000주, 25일 1500주, 26일 1000주, 27일 300주, 28일 700주 등을 매수했다. 1월과 2월에 사들인 주식 수는 모두 3만8201주다.

구 전무는 지난 3일 1000주, 4일 600주, 5일 1400주, 6일 3600주, 10일 1000주, 11일 4400주, 12일 4000주, 13일 4000주, 16일 8000주, 17일 3000주 등도 추가로 사들였다. 모두 3만1000주다. 구 전무는 올해만 6만9201주를 끌어 모았다. 구 전무는 ㈜LS에서 지분 2.43%를 보유 중이다.

고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아들 구본혁 예스코홀딩스 부사장도 ㈜LS 지분을 매입했다. 구 부사장은 지난 2월11일 946주, 12일 3386주, 17일 5000주, 18일 5000주, 24일 3614주, 26일 3000주, 27일 5000주 등을 사들였다. 지난 2일에는 2000주를 시작으로 3일 1000주, 6일 4000주, 10일 5000주, 11일 2000주, 12일 3000주, 16일 5000주, 17일 5000주 등을 매수했다. 2월부터 지난 17일까지 모두 5만2946주다. 구 부사장은 ㈜LS 지분 1.58%를 소유 중이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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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