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공무원 성추행 고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2.03 11:06:06
  • 호수 12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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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과 팔뚝에 침을 묻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경기도의 한 공무원이 계약직 여직원에게 수년간 성추행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피해자는 재계약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가 해당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아봤다.
 

국내 공공기관 및 민간사업체 직원 100명 중 8명은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피해자들은 10명 중 8명이 성희롱을 당하고도 특별한 대처 없이 참고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8년 4월6일부터 12월27일까지 전국 공공기관 400곳과 민간 업체 1200곳의 직원 9304명, 성희롱 방지 업무 담당자 1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를 지난해 발표했다. 일반 직원 가운데 지난 3년간 직장에 다니는 동안 한 번이라도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8.1%였다.

편지 주고
선물 공세

고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A씨는 2014년 경기도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동물보호센터 용역직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매년 동물보호소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직원들은 1년씩 계약을 하는 셈이다. 

지난 2016년 6월, 유부남인 6급 공무원 B 팀장이 동물보호팀으로 오면서부터 A씨의 악연은 시작됐다. 작업반장이었던 A씨는 B 팀장과 업무적으로 소통할 기회가 많았는데 B 팀장은 A씨에게 선물공세를 했다고 한다.

2017년 2월, B 팀장은 A씨에게 생일이라며 현금 20만원과 자필로 쓴 편지를 전달했다. B 팀장이 준 편지에는 ‘A를 볼 때 가슴이 설렜다. 식사 약속 때문에 하루하루가 그냥 좋다’ 등의 내용이 쓰여져 있었다.


A씨는 “편지를 받고 느낌이 이상했지만 특별히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며칠 뒤에도 아들의 졸업과 입학 선물이라며 30만원 상당의 상품권도 받았다. 그때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아 혼란스러웠고 무섭다는 느낌까지 받았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약 한 달 뒤 B 팀장은 A씨에게 “내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돈도 주고 애정공세를 하는데 넌 반응도 없고 나 혼자만 이러고 있으니, 더는 하지 않을 테니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A씨는 B 팀장으로부터 받았던 돈을 돌려줬다. 

이후 B 팀장은 잔업을 마치고 난 뒤 A씨를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A씨는 “차 안에서 강제로 손을 잡으려고 한다거나, 손에 입맞춤하고 손등과 팔뚝에 침을 묻히기도 했다. 강하게 화를 내고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B팀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람 없는 틈타 신체접촉 시도
재계약 앞두고 있어 고발 못해

이어 “이 상황이 너무 불쾌해 달리는 차 안에서 내리겠다고 문을 여는 시늉을 하면 그제야 안 한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처음 식사 때는 손만 잡는다고 하더니 지키지 않았으며, 거절의 의사를 밝혀도 무시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B 팀장의의 성추행이 점점 심해졌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차 안에서 B 팀장은 저를 안고 볼에 강제 입맞춤해 달라고 했었다. 싫다고 밀쳐내도 저를 안고 볼에 입을 맞추려 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여 완강히 거부하는 데도 머리카락에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7월 A씨는 작업반장서 구조팀 동물구조원으로 보직이 바뀌면서 야간 근무를 하게 됐다. 야간근무는 시간상 오후 10시나 돼야 퇴근이 가능했다. A씨가 관용차 열쇠를 1층 당직실에 반납할 때에도 B 팀장 당직일 때는 그가 손을 잡고 입맞춤하는 등 성추행이 지속됐다. A씨는 힘들고 괴로운 시기였지만 전업주부 13년 만에 얻은 직장이기에 참았다고 한다.


A씨는 “사랑하는 제 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참는 방법밖에 없었다”며 “공공기관 용역사업의 특성상 동물보호소 팀장의 직위는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용역업체 사장 용역직원들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런 상황서 수년에 걸쳐 강제추행과 강간미수 등 수치스러운 성적 범죄를 당했음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가슴 설렜다
그냥 좋다”

수치스러웠던 A씨였지만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는 처지였다. 시 보호소 직원으로 아무리 일을 잘하더라도 B 팀장의 눈밖에 날 경우 불이익당할까 봐 이렇다할 대응도 하지 못했다.

A씨는 섬뜩한 경험을 했다고도 털어놨다. 경기도 내 유기견 거리 캠페인 회의를 마치고 나서 B 팀장이 A씨의 주소를 말했다는 것이다.

A씨는 “등본상 주소와 다른 개인적인 주소를 알고 있다는 데 소름이 끼쳤다. 개인정보인 집주소까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으며, 인사기록부에 등록된 등본 주소와 다른 실제 거주지 주소까지 어떻게 알아냈는지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어 “B 팀장이 강제추행하려고 시도하면 누가 온다고 말한 뒤 재빨리 자리를 피하며 대처했다”고 덧붙였다. 

이후에도 A씨는 B 팀장과 업무상 부딪혀야 했다. 업무상 대화, 업무 회의 등 B 팀장을 피하는 건 쉽지 않았다. B 팀장은 지속적으로 A씨에게 성적인 이야기를 건넸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A씨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2019년 초 A씨는 동료 C씨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C씨의 업무태도로 인해 A씨가 과도한 업무를 떠맡게 됐고 해당 사실을 B 팀장에게 알렸다. 

A씨는 “C씨는 예전부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다. 10개의 일을 갖고 있으면 서너개씩 동료에게 넘기면서 자기는 여섯, 일곱 개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받아줘도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B 팀장에게 해당 사실을 전했지만, C씨는 징계를 받지 않았고 서로 화해하는 방향으로 처리됐다. A씨는 “이 과정서 B 팀장은 내게 거짓말하면서 징계를 주겠다는 액션만 취했다”고 토로했다. 

머리카락에 
강제 입맞춤

같은 해 A씨는 B 팀장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화가 나 성추행을 당했다는 문서를 B 팀장에게 전달했다. B 팀장은 퇴근 후 A씨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사과했으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B 팀장은 A씨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해당 문자메시지에는 과거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도 함께 담겨있었다. 사건은 이대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4월 A씨 앞으로 한 장의 촉구서가 전달됐다. 해당 촉구서에는 ‘귀하는 고양시서 사양관리에 관한 모기업의 관리원으로 재직하던 중 고양시 동물보호 팀장인 B팀장에게 업무관계로 교류하던 중 먼저 포옹하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B 팀장은 당황했으나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여 A씨를 업무적으로 도와주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쓰여 있었다.
 

이어 ‘그러던 중 수신인 A씨는 다른 직원을 해고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B 팀장에게 공갈행위를 하고 있다. 수신인이 먼저 다가와 포옹했고 유지했기 때문에 식사를 하는 와중에 B 팀장이 A씨의 손을 잡았던 사실이 있다. A씨는 먼저 포옹을 해왔기 때문에 손을 잡았던 행위는 스스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강제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A씨가 B 팀장에게 먼저 다가와 포옹을 한 사실은 목격자도 있다. (중략) 권한에 해당하지 않는 요구를 하면서 이를 들어주지 아니하자 존재하지도 않는 성추행을 주장하며, 3년치 연봉 1억원을 요구하는 행위는 형법상 공갈행위에 해당한다. 더 이상의 공갈행위를 멈춰달라’고 적혀 있었다.

“3년 연봉…직장에 대한 보상”
성추행 인정 징계위원회 회부


이에 대해 A씨는 “B 팀장이 어떻게 해야 신고하지 않겠냐고 묻자, 1억원을 말했다. 1억원을 요구한 건 피해 보상금으로 요구한 게 아니라, 직장에 대한 보상이다. 내 연봉을 책정해보니 3년을 계산하면 1억원이 나왔다”며 “그것도 내가 다 갖겠다는 게 아니라 1년 재계약을 할 때마다 3분의 1을 다시 되돌려주겠다는 것인데 매년 재계약을 통해 일하는 것만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했지만 B 팀장은 빚도 많고 돈도 없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고 지난해 10월 말 용역회사로부터 계약이 만료됐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부당해고를 주장했고, 성관련 범죄 역시 수사기관에 의뢰했다.

결국 12월6일 여성가족부와 감사과로부터 성추행이 성립된다는 안내를 받았으며, 고양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계에 고소장이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 관계자는 ”예전에 성범죄 관련 사안이 있다고만 들었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개인정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기도 징계위원회에 징계 요청을 한 상태다. 성희롱으로 성립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경기도 징계위원회가 징계 수위를 조절하는 데 감사나 징계에 관한 것은 말씀드리기 어렵다. 우리는 불법이나 위법 사항에 대해 전달만 할 뿐”이라며 “성범죄는 굉장히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용역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에 부당 근로계약 종료라고 해서 노동부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서 성추행 신고를 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장서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이후에 성추행 관련한 내용을 알게 됐고, 이전부터 현장서 신고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돈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징계에 관해서는 “보통 공무원들이 (성 관련)범죄가 일어날 경우 해고되지 않을까 싶다. 상식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해고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불이익 
당할까 봐…


이어 “중징계위원회서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가벼운 중징계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B 팀장은 현재 다른 부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며 A씨에 부당해고 건에 대해서는 인정이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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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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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