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대표 앞에 놓인 세 가지 암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1.06 10:37:09
  • 호수 1252호
  • 댓글 0개

순풍에 돛 다나 했더니…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신년을 맞아 각 정당들은 총선 승리를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해찬 대표는 신년인사회서 이를 강조했다. 총선 승리를 토대로 재집권에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러나 이 대표 앞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있다. <일요시사>가 다각도로 이를 살펴봤다.
 

▲ 21대 총선을 앞둔 상황서 최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앞엔 세 가지 암초가 놓여있다.

희망가가 울려 퍼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신년인사회를 열고 총선 승리를 약속했다. 4·15총선이 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선거라는 점을 강조한 이 대표는 문재인정부의 성공과 나아가 2년 후 열릴 대선 때 재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지지율은
높은데…

민주당의 최근 분위기는 희망가를 부를 만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문정부의 숙원사업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화답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대한상공회의소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서 권력기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공수처법의 통과로 본 궤도에 오른 검찰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수처법 등으로 여야가 국회서 극한 대립을 보였음에도, 민주당과 문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지난달 30일부터 31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9.0%로 나타났다. 비록 전주 대비 0.7%포인트 하락한 수치지만, 50%대에 가까운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상승했다. 동 조사서 민주당은 41.9%를 기록, 전주 대비 0.5%포인트 올랐다. 2주째 상승세다. 비록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전주 대비 1.5%포인트 오른 32.9%를 기록하며 두 정당 간 격차가 좁혀졌지만, 민주당이 1위 자리를 위협받을 만큼의 상승세는 아니다(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선거법 통과…결국 부메랑으로?
금태섭-유승민 닮은 균열 예고?

그렇다고 방심하기에는 이르다. 총선 승리까지 가는 길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 위험요소로 부딪힐 경우 자칫 좌초될 수도 있다. 민주당의 선장인 이 대표 입장에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암초는 ‘비례정당’이다. 앞서 한국당을 제외한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은 공조를 통해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주요 골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정당 득표율이 높지만, 지역구 당선자가 적은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다.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등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사진 왼쪽부터)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으로 발탁된 최혜영 교수, 원종건씨, 김병주 전 육군 대장

그런데 이들 정당뿐 아니라 한국당도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은 4·15총선에 쓸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의 이름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결정했다. 한국당은 지역구 국회의원 배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반면, 비례자유한국당은 정당에 대한 득표에 올인, 최대한 많은 의석을 확보한 뒤 총선이 끝난 후 합당해 민주당에 대항하겠다는 전략이다.

한 한국당 보좌진은 선거법이 통과된 후 <일요시사>와 만나 “한국당서 비례대표 전용 정당(비례자유한국당)을 만들면 된다”며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일부 사람들은 비례대표 전용 정당이 한국당을 배신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한국당의 당헌·당규만 조금 바꾸면 그것도 문제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선거법 통과
자충수 되나

정치권 일각에선 거대 양당(민주당·한국당)이 비례대표 전용 정당을 만들면 유권자들로부터 꼼수를 쓴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한국당의 상황은 민주당과 차이가 있다. 한국당이 끝까지 선거법 통과를 반대해서다. 지난 12월 국회 앞에서 한국당 지지자들은 선거법 통과를 반대하며, 당에 힘을 실어줬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최근 기자단 오찬서 “꼼수에는 묘수밖에 답이 없다”며 “비례정당을 이야기한 것은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꼼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청년민주당’ 등 비례대표 전용 정당을 만든다면, 자칫 꼼수를 쓰기 위해 선거법을 통과시켰다는 오명을 쓸 수 있다.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등 함께 공조한 군소정당들의 반발도 감수해야 한다. 

민주당 입장에선 딜레마다. 앞서 한국당이 민주당 내부 자료라며 공개한 ‘비례위성정당 관련 검토 자료’를 보면, 한국당이 비례자유한국당을 창당할 시 예상되는 의석수는 135석이다. 이는 민주당의 120석 보다 많다. 즉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해 원내 1당 지위를 한국당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두 번째 암초는 ‘당의 균열’이다. 공수처 설치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민주당 소속 금태섭 의원은 해당 법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기권·반대표를 던진 국회의원 중 유일한 여당 소속이었다. 

균열 보인
단일대오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민주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금 의원에게 출당 등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앞서 금 의원이 공수처 설치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을 때도 당원들은 그를 비판했지만, 현재 여론은 그때보다 훨씬 부정적이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금 의원이 ‘해당 행위’를 했다고 비판하는 글이 수백 개가 올라와 있다. “한국당으로 가라” “공천을 주면 안 된다” “이념이 맞는 당으로 떠나라” “출당시켜야 한다” “제명해야 한다” 등 그 수위가 상당하다.

사태는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금 의원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추세다. 홍 대변인은 “(금 의원이)당론으로 결정된 사안에 기권해 유감”이라며 “당 지도부서 검토 후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에 새로운보수당 하태경 창당준비위원장은 “당 지도부서 검토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며 “소신 투표한 의원에게 공개적 겁박을 자행하고 있다. 이참에 당 간판도 더불어독재당으로 바꾸기 바란다”고 금 의원을 지원 사격했다.

만약 이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실제 금 의원에 대한 징계를 논의한다면 이는 당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미 유사한 선례가 있었다.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인재영입위원장은 과거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비판했다. 

‘스토리 > 스타’ 딜레마
‘20년 집권론’ 어쩌나

위태롭던 당청 관계는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폭발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라며 유 위원장을 몰아세웠다. 정치권은 박근혜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와 문재인정부의 ‘공수처 설치’가 두 정권의 핵심 공약이라는 점에서 기시감이 든다고 말한다.


세 번째 암초는 ‘스타의 부재’다. 최근 민주당은 잇따라 영입인재를 발표하고 있다. 최혜영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사장, 원종건씨, 김병주 전 육군 대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각각 돋보이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영입인재 1호인 최 이사장은 ‘여성’ ‘장애인’, 2호인 원씨는 ‘20대’ ‘인간승리’, 3호인 김 전 대장은 ‘안보 전문가’라는 상징성이다.

한 민주당 보좌진은 지난 2일 “한정된 인재풀서 완벽한 인재를 찾기란 힘들다. 결국 메시지가 중요한데, 현재 우리 당의 기조는 ‘평범하지만, 스토리가 있는 인재’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타성 면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영입된 인재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은 당시 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아 스타성과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필두로 김병관 웹젠 의장,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박주민 민변 사무차장, 손혜원 한국나전칠기박물관 관장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의 인재영입이 시작 단계임에도 20대 총선만큼의 ‘바람’을 일으키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260석 약속
절반의 성공?

이 대표는 총선 승리를 넘어 압승을 약속한 바 있다. 당 대표 경선 당시에는 ‘20년 집권론’을 펼쳤으며, 지난해 4월에는 총선서 ‘260석(지역구 240석, 비례대표 20석)’을 차지하겠다고 밝혔다. 정권재창출을 위한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과연 이 대표는 암초를 뚫고 오는 4월에 열리는 21대 총선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도 ‘전권 부여’ 가능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송 비대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부를 집단지도체제로 구성할 것”이란 예상엔 여전히 힘을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임기가 지난달 30일 끝났다. 이후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송언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새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송 비대위원장은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끈다. 비대위원으로는 ▲4선 박덕흠 의원 ▲재선 조은희 의원 ▲초선 김대식 의원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 ▲홍형선 경기 화성갑 당협위원장이 내정됐다. 이들은 모두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로 구분된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반대했고, 공조수사본부의 윤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저지 집회에 참석했다. 친윤 일색 새 비대위 지난 2일엔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4선 중진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송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안 의원의 임명 사실을 밝혔다. 안 의원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일컬어 “악성 종양이 이미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여서 집도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자연 치유를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스를 들어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며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원회 구성은 송 비대위원장의 원내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3년 인요한 의원이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혁신위원회를 가동했던 적이 있다. 당시 혁신위는 다양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 취소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보좌관 신설 권고 등 혁신안 2개만이 실행됐다. 혁신위엔 의결권이 없다. 인요한 혁신위도 당 내외에서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 끌기용일 뿐”이란 말을 들은 위원 3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렀다. 안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꼭 필요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비대위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 국민의힘이 김 전 비대위원장의 5대 개혁안을 무위로 돌린 게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사람이 안 의원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친윤(친 윤석열)계도 아니고, 친한(친 한동훈)계도 아니다. 대선주자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당내 세력이 부실하다. 지난해 12월7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1차 시도 당시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이후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독자적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찬성 견해를 꾸준히 유지했고, 지난 1월엔 국민의힘에서 유일하게 내란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됐던 지난 4월엔 국민의힘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도 오랫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준석 의원과 화해하고, AI와 미래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친윤계로선 안 의원의 혁신적이면서도 당내 충돌을 자제하는 성향과 이미지를 당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혁신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안 의원에게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점도 매력적이었던 대목으로 해석된다. 어떤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전 혁신위원장이었던 인 의원은 친윤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혁신위원장 임명하고 권한 부여에 말끝 흐려 안 의원이 2회에 걸쳐 홀로 본회의장에 남아 국민의힘에 불리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실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은 ‘의결권이 없는’ 혁신위원장이어야 한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계보를 거느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만 해도 친윤계로선 상대하기 까다롭다. 세가 없는 안 의원이 당시와 같은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당내 세력이 없어서 ‘제2의 한동훈’이 되긴 어렵다. 지난달 27일부터 김민석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6일 동안 숙식 농성을 잇던 국민의힘 5선 나경원 의원은 묘한 견제구를 던졌다. 나 의원은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는 것”이라며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라”는 말은 당내 다수인 친윤계의 요구 수렴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송 비대위원장조차도 안 의원과 혁신위에 권한을 부여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당이 특위 형식 기구를 만들면, 당의 의사 결정 체계 내서 운영한 사례가 있다”며 “이를 고려해 혁신위를 운용할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혁신 방안이 잘 마련되도록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의 의사결정 체계 내’라는 것이다. “안 의원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강하다. 이를 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께서 바라고 계신 혁신은 인적 청산”이라며, “당을 잘못 이끈 사람들에 대한 조치 등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걸 못하면, 혁신위는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등 혁신위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5대 개혁안 발표 당시에도 같은 당 조정훈 의원으로부터 “혁신위원장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결국 안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면서 전당대회 출마로 급선회했다. 그는 “당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위원장 제의를 수락했지만, 혁신의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며 “최소한의 인적 청산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비대위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을 놓고 갈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함만… 권한 없다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 설치 외에도 많은 구상을 밝혔다. 비대위 활동 방향으론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혁신안 추진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도약 ▲유능한 정책 전문 정당으로 발돋움 등을 제시했다. 또 정책 정당화를 위해 ▲반도체·AI 등 미래 첨단 산업 육성 ▲청년 자산 형성과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등 국민의힘이 추진할 3대 중점 정책도 밝혔다. 문제는 불과 한 달여 남짓 활동할 비대위임에도 너무 많은 구상을 밝혔단 것에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민의힘의 정책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 전담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비대위가 소화하기엔 너무 거시적이고 분야도 넓다. 이렇게 되면 구상의 진정성조차 의심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차기 당권 구도와 관련해 “차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송 비대위원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누가 집단지도체제를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저는 얘기한 적 없고,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 많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힘을 모아 강한 정부·여당과 싸워야 하는 상황서 힘의 결집을 방해하는 이야기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는 친윤계 입장에선 매력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집단지도체제는 대표로 선출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최고위원을 맡아 함께 지도부에 입성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탈락한 후보들이 지도부서 배제되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안 의원 ▲나 의원이다. 이들 중 나 의원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윤 전 대통령 및 친윤계와 치열하게 다투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 나 의원도 친윤계로 분류되지만, 전당대회 출마 및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장직 사퇴 여부를 놓고 윤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과 지지층도 다르다. 따라서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이들 모두가 지도부에 모이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서로 싸우다가 죽으라”는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변종 히드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집단지도체제에서는 계파 간 밥그릇 싸움·진영 간 내홍·주도권 다툼을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협의와 조율이란 핑계로 시간만 허비하고 혁신은 실종되면서, 당이 다시 분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지난달 27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친윤 중심 체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쉼 없을 내부 투쟁 집단지도체제는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채택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덩샤오핑·김일성 등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자가 없는 상황에선 파벌별로 당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정치국원들을 추천하고, 그들 중에서 당과 국가를 통치할 수장을 배출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 정치투쟁이 매우 극심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모호해서 개혁도 지지부진해진다. 김일성은 파벌을 모두 숙청한 후 1인 지배체제와 세습체제를 확고히 굳혔다. 중국에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다른 파벌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휘하인 시자쥔으로만 정치국을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도 게오르기 말렌코프·라브렌티 베리야 등 경쟁 상대를 몰아내 권력 독점을 완수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정당사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에서 지난 2016년 발생한 ‘옥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전당대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무성 전 대표가 대표직을 차지했고, 2위에 머물렀던 서청원 전 의원 등은 최고위원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비박(비 박근혜)계였지만, 최고위원 중 상당수는 친박(친박근혜)계였다. 당시의 집단지도체제는 지난 2004년 총선 패배 후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로 인해 계파 갈등은 외부에도 격렬하게 표출될 정도로 극심해졌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엔 대부분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곧 극심한 공천 갈등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했고, 친박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전 의원 등 비박계 핵심에 대한 공천을 거부했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전 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김 전 대표를 공천 과정에서 배제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천을 의논했다. 현 수석도 직속상관인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건너뛴 채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이 위원장과 공천을 논의했다. ‘옥새 들고 나르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 위원장은 유 전 의원 등 비박계 인사 5명의 공천을 취소하고, 친박계 후보를 공천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천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에 직인을 찍어야 할 김 전 대표는 날인을 거부하고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취재기자들을 대거 몰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대형 선거 홍보 현수막을 배경 삼아 영도대교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제목을 따서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패러디를 갖다 붙이기도 했다. 당 대표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서로 비슷한 위상을 가진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으면 이 같은 내부투쟁은 쉼 없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옥새 들고 나르샤’는 불과 9년 전 일이었고, 국민의힘 구성원 대부분은 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 패배 후 지도 체제를 현재와 같은 단일지도체제로 바꿨다. 아픈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단지도체제라는 구상이 외부에 거론된 것에 대해선 “구 친윤계의 셈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후보 ▲한 전 대표 ▲안 의원 등 친윤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당권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어 서로 싸우게 하다 자멸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친윤계는 대선주자를 외부에서 데려와 옹립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당내 후보 경선이 완료된 상황에서도 외부의 한덕수 전 총리를 데려와 새벽에 기습적으로 대선후보를 교체하려고 했을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당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대충 대선을 치르고, 대구·경북과 서울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구 공천을 보장할 당만 유지하면 된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텃밭 지역구와 특정 이익집단의 지원만 있으면 계속 여의도서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식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여당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정치인 중 상당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역구 ▲후원회 ▲특정 이익집단과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반영구적인 정치생명을 누린다. 현재 일본에서 이어지는 쌀값 상승 파동과 관련해, 농협·쌀 도매상 등과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형성한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이 “쌀을 사본 적 없다. 지지자들이 많이 주신다. 팔아도 될 만큼 있다”는 망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엔 특정 집단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의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친윤계가 집단지도체제를 배경 삼아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숙청하려고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민당의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안 좋은 방식의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 겉핥기 자민당 내부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총리를 배출하는 파벌만 달라져도 정권교체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것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은 비결이었다. 집단지도체제 구상엔 당의 혁신엔 무관심하고 자리 다툼에만 집착하는 일부 계파의 뻔한 속내가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하는 안 의원과 “혁신위와 안 의원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끝을 흐린 송 비대위원장이 크게 대비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