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스캔들’ 김건모 미스터리

결혼 앞두고 청천벽력 ‘이게 뭔 일?’

[일요시사 연예팀] 함상범 기자 = 국내 최고의 히트 메이커로 불리는 가수 김건모가 데뷔 27년 만에 최악의 스캔들에 휘말렸다. 술을 좋아하기는 하나 천진난만한 50대의 이미지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김건모는 유흥업소 여성 A씨에 의해 ‘성폭력 피소’를 당한 것. 데뷔 후 뚜렷한 스캔들 없이 발매하는 음반마다 성공한 김건모. 최근 SBS <미운우리새끼>(이하 <미우새>)를 통해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얻을 뿐 아니라 염원하던 결혼을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일요시사>는 김건모 사건을 쟁점별로 분석했다.
 

▲ 사진제공=미디어라인

결혼식을 5개월여 후 앞두고 있는 새신랑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은 지난 6일 방송된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 연구소’(이하 가세연)의 폭로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는 강용석 변호사에 따르면 피해자 A씨는 유흥업소서 강제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를 직접 만난 강 변호사는 A씨가 사건 당시 시간과 장소를 비롯해 김건모의 패션과 행동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가세연의 주장에 따르면 김건모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유흥주점에 새벽 1시경 홀로 와 8명의 여성들을 앉혀두고 소주를 마셨다. 김건모는 술을 마시고 있던 자리에 피해자가 들어오자, 그를 제외한 모든 인물을 밖으로 내보냈다. 김건모는 피해 여성을 룸 내 화장실로 데려간 후 음란행위를 요구했다.

피해 여성이 이를 거부하자 머리를 잡고 욕설하며 재차 음란행위를 강요했다. 피해 여성은 계속되는 김건모의 요구에 마지못해 1~2분가량 음란행위를 했다. 흥분한 김건모는 피해 여성 속옷을 강제로 벗긴 뒤 성폭행을 저질렀다.

안면 폭행
추가 폭로

이후 강 변호사가 직접 검찰에 공소장을 제출한 지난 9일, 피해 여성이라고 밝힌 A씨는 가세연과 직접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알렸다. 그는 “최대한 잊어보려고 했지만, 김건모는 계속 <미우새>에 출연하고 결혼 소식까지 전했다. 가족은 <미우새>를 보면서 자꾸 즐거워하고 좋아한다. 김건모는 날 강간할 때 입은 배트맨 티셔츠를 입고 자꾸 TV에 나오더라. 그런 장면을 계속 보면 괴로웠다. TV를 돌려도 재방송이 반복됐고. 그 시간이 내게 너무 고문이었다. 가족에게도 말도 못 하고 너무나 큰 정신적인 고통이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대중은 들끓었다. 불과 결혼식을 얼마 남기지 않은 것은 물론 최근 13세 연하 장지연씨와 혼인신고까지 마친 김건모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 구체적으로 진술한 A씨의 주장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새다. 김건모 측은 지난 13일 “사실 무근”이라며 맞고소했다.

가세연과 피해자 A씨의 김건모를 향한 폭로가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은 ‘강제성 여부’의 증명이다. 상호 간의 합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증명하는 증거가 있느냐가 가장 큰 핵심이다.

피해자는 김건모가 욕설과 함께 힘으로 제압했다고 밝혔으나 폭력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강 변호사는 “A씨가 룸살롱의 접대부였다고 하더라도 룸살롱서 처음 만난 A씨가 계속 거부하는데도 A씨 의사에 반해 강제로 성행위한 것은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 김건모는 강간 후 A씨에게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강간죄를 인정할 수 있는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룸살롱 여종업원 “성폭행 당했다” 주장
욕설 및 음란행위 요구 의혹도 불거져

하지만 일반적으로 유흥주점의 경우 해당 여성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닌 업소에 금액을 지급한다는 측면서 강 변호사의 주장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3년 전 사건이라는 점에서 진술 외에는 강간이라는 혐의를 증명할 방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백기종 전 수서경찰서 강력계 팀장은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당시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는지, 강압에 의한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성관계였는지, 아니면 술을 먹이고 심신미약의 상태서 성관계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YTN 뉴스서 “변호인 측이 말하는 강요를 입증할만한 무슨 증거가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언급했으며, 김태현 변호사는 팟캐스트 <이재익의 정치쇼>서 “이번 사건은 밀실서 일어난 데다 CCTV도 없이 피해자의 주장만 있어서 합의 여부 및 강제성을 증명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6년 발생한 방송인 박유천 사건과 유사한 형태다. 당시 박유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 여성은 네 명이었다. 대부분이 유흥주점 화장실서 박유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박유천은 B씨와 C씨를 상대로 무고와 공갈로 맞고소했다.

경찰은 한 달여 수사 끝에 ‘혐의없음’으로 판단하고 성매매와 사기 혐의만 적용했다. 박유천을 협박한 B씨는 징역 2년, C씨는 무고서 무혐의를 받았지만 이후 손해배상청구서 일정 금액을 박유천으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 박유천을 고소한 여성들은 강제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3년 전
왜 이제야?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는 왜 3년 만에 폭로하느냐다. 당시 고소를 했어도 되는데 왜 이제 와서 김건모가 대중의 관심을 가장 뜨겁게 받는 시점에 폭로하느냐도 쟁점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A씨는 “당시 경황이 없고 잊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아직 창창한 나이고 미래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신고하거나 고소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방송에 나오는 김건모의 모습을 계속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고 설명했다.

강용석 변호사는 “성폭력을 연구하는 연구소서 나오는 통계를 보면, 성폭력 피해자의 20%가 채 안 되는 사람들만이 형사 고소를 한다. 5명 중에 4명의 피해자는 피해를 입어도 고소하거나 신고하지 않고 넘어간다. 형사 고소를 하면 2차 피해 또한 너무 크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업소에 다니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볼 가능성이 있다”고 힘을 보탰다.
 

▲ 사진제공=건음기획

3년 만에 폭로를 한 것에 대해 일각에선 거액의 합의금이 목적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해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당시의 정황 등을 살펴봤을 때 충분히 두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심리상담 전문가 이호선씨는 한 방송서 “사람들은 왜 굳이 지금 제보를 했을까에 관심을 갖는데, 대부분 피해보상을 받으려는 의도를 의심하는 듯 보인다. 우리가 가진 생각의 한계이자 동시에 오랫동안 여성의 성피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아주 전형적인 형태다. 유흥업소 종사자에 대한 편견이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들에게 이 같은 주장을 할 만한 권리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 이 여성들은 권리 영역서 배제됐다. 당연히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절대 입을 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A씨는 돈을 바라지는 않으며, 진정성 있는 공개 사과와 다시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을 것을 약속받는 조건을 달았다.

데뷔 후
최대 위기 

대중은 왜 경찰에 고소하지 않고 가세연에 제보를 했는가에도 의문부호를 단다. 가세연의 경우 진영논리를 앞세운 보수적인 성향의 콘텐츠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강하다. 또 강 변호사 역시 2015년 불륜 스캔들로 피소를 당하고 사문서위조를 하다 발각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신뢰성에 흠집이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가세연을 선택한 것 자체가 고소가 목적이 아닌 이슈몰이를 통해 김건모에게 치명상을 입힐 계획이 아니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또 김건모에게 소속사를 통하는 방식으로 사과를 요구한 적이 있었느냐도 궁금증도 제기된다.

이 사건을 처음에 제보받은 김용호 기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서 “이 사건 이후에도 A씨는 김건모를 만난 적 있다. 그 자리서도 김건모는 모르는 척을 했고, 사과도 받지 못했다. 김건모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A씨에게 알려줬다”고 밝혔다. 이어 “A씨가 꽃뱀 아니냐, 돈을 노린 거 아니냐. 지금 시점에 폭로한 게 이상하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다. 이 분은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어한다. A씨는 ‘김건모가 좀 자중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남의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려 놓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가세연은 2007년 김건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피해 여성 B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B씨는 공소시효가 만료됐음에도 불구, A씨의 주장에 힘을 보태기 위해 묻어뒀던 과거의 사연을 꺼냈다고 밝혔다.

업소녀 사건 쟁점별 분석
강제성 입증 여부가 핵심

B씨는 가세연과 인터뷰서 “빈 룸에서 김건모 파트너랑 언쟁을 벌였다. 김건모가 문을 열고 나와서 ‘시끄럽다. 시끄럽다고 했지’라며 머리채를 잡고 주먹으로 눈과 코를 수 차례 때리고 배도 때렸다. 안 맞으려고 피했지만 남자 힘이 세기 때문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맞는 순간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고 밝혔다. 이어 “시끄럽다는 이유로 그렇게 사람을 때릴 수는 없지 않나. 눈이 부어오르고 코피가 흘렀다. 눈뼈가 아프다는 생각을 했고, 누군가 문을 여는 사이 급하게 빠져나와서 소지품을 챙겨 택시를 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일단 아프니까 병원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 사진제공=MBC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여성 C씨는 B씨가 당시 얼굴이 피떡이 돼 나타났다며 목격담을 증언했다. C씨는 “카운터에 있었는데, B씨가 복부를 맞고 얼굴은 피로 뒤덮힌 채 내게 다가와 ‘김건모에게 맞았다’고 했다. 당시에 너무 놀라서 ‘119, 119’ 그랬던 것 같다. 정신이 없었다. 당시 김건모는 방에 그대로 있었다. 술을 많이 마셨다. 그 이후로 기자들이 취재하러 왔는데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고 했다. 당시는 김건모의 11집 앨범이 나올 때였고, 업소 사장이 기자들에게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C씨는 고백했다.

12년 전 김건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B씨의 의무기록에는 여자 환자가 남자에게 우안 부위를 구타당했다는 설명과 안와상 골절과 두통 등이 적혀 있었다. B씨는 왜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피가 나니까 무섭더라. 일단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진단서를 끊었다. 김건모씨와 가게 업주가 신고를 못하게 했다.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고 변호사를 구해준다는 사람도 없었다. 제가 일하는 업소와 김건모 측이 무서웠다. 발설하면 안 된다는 협박도 있었다. 소문이 나 다른 데서 일을 할 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양쪽 향한
싸늘한 시선


연이어 신빙성 있는 주장이 나온 가운데 여론은 현재 김건모에게 싸늘하다. 반백 살의 나이에도 해맑고 유쾌한 실력파 가수의 이미지는 완전히 무너졌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배신감을 안기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성폭행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유흥업소에 단골처럼 드나드는 것이 알려진 것이 거짓이 아닌 이상 부정적인 여론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세연의 강용석 변호사나 김세의 전 MBC 기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김건모에게 매서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추가 피해자의 증언이 이어지는 것과 더불어 김건모의 개인적인 상황에도 악재가 겹겹이 쌓이는 모양새다. 사건이 터진 뒤 김건모는 집중력을 잃은 듯 콘서트 무대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며 도마에 올랐다.

지난 7일 인천서 진행된 콘서트서 김건모는 150분 공연임에도 120분 만에 콘서트를 마쳤다. 보통 가수들이 두 곡 정도 부르는 앵콜곡도 선사하지 않았다. 수십만원대의 콘서트 관람 비용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한편 성폭행 피소로 부담감을 가진 그는 지난 13일 예정됐던 콘서트를 취소하기도 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업소녀’ 성폭력 인정되나?

가수 김건모가 유흥업소서 일하는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이와 별도로 피해 여성을 둘러싼 편견이 논란이 되고 있다. 대다수가 유흥업소서 일하는 여성의 경우 성매매 등에 나설 수 있다는 이유로 피해 여성의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유흥업소라는 점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수많은 커뮤니티서 이 주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피해 여성이 아무리 성매매를 한다고 하더라도 강제성이 발휘되면 보호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심리상담 전문가 이호선씨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유명인과 연결된 사건이기도 하지만 유흥업소 종사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가능한지에 대한 갑론을박 때문이다. 성폭행이 발생했다는 전제하에 대상자가 누구이고 공간이 어디냐에 따라서 성폭력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를 관심 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유흥업소는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소 중 하나로 알려졌다. 대검찰청 ‘2017범죄분석’에 따르면 2016년 수사기관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 중 8%는 유흥접객업소서 발생했다.

이씨는 “보통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 같은 경우에는 성폭력 여부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 판단한다. 성폭력의 정의를 보면 상대방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신체·언어·정신적 폭력이다. 제일 중요한 건 ‘동의 없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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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