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중 회장과 귀금속 회사의 인연과 악연

어렵게 돌아온 ‘중통령’ 발목 잡힐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김 회장의 회사인 제이에스티나와 관련, 일가의 불공정 주식거래 혐의를 조사 중이다. 중기중앙회장을 맡고 있는 김 회장과 제이에스티나의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기중앙회) 회장은 중기중앙회 최초로 3선 고지를 밟았다. 김 회장은 지난 2007∼2015년까지 23, 24대 회장을 지내면서 중기중앙회를 이끌었다. 이후 중기중앙회 명예회장을 역임하다 지난 2월, 26대 회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난 3월 취임사를 통해 “4년을 쉬고 다시 이 자리에 여러분과 일하러 왔다”며 운을 뗐다.

3선 고지
“함께 가자”

김 회장은 “선거운동 중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어느 때보다 어렵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며 “이 같은 시대에 중기중앙회장을 맡았다는 것은 소상공인들이 잘사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중앙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행사하는 영향력이 상당해 ‘중통령’으로 불린다. 실제로 중기중앙회장은 360여만명의 중소기업인들을 대표하며 주무르는 예산 또한 만만치 않다. 지난해 중기중앙회의 예산은 3조7822억원이었다. 중기중앙회장이 행사하는 인사권도 압도적인데 25명의 부회장 임명권, 산하 회원단체 613개의 감사권을 갖고 있다.

중기중앙회장은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각종 경제 관련 회의에 자리한다. 의전도 부총리급이다. 문재인정부가 중소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5개 경제단체 가운데 중기중앙회를 가장 먼저 찾아 비공식 간담회를 나눈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부 부처 합동 신년인사회도 중기중앙회의 위상을 대변한다. 문 대통령은 신년인사회 장소를 중기중앙회 회관으로 낙점했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중소기업을 ‘대한민국 경제의 주역’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중기중앙회장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중기중앙회장 선거는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라는 게 중론이다. 올해 중기중앙회 선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보자 등록 마감을 시작으로 선거전의 막이 오르자 약속이나 한 듯 고소·고발이 난무했다. 각 후보를 지지하는 진영 간 다툼은 가시적이었다. 허위사실 공표와 사전선거운동 혐의, 금품과 선물 의혹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선거가 간선제인 점도 한몫했다. 중기중앙회는 경제단체 중 유일하게 간선제를 채택했다.

중앙회 최초 3연임 김기문 
다시 막강한 영향력 과시

김 회장은 취임사서 “이번 선거는 너무 치열한 부분도, 오해가 발생된 부분도 많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누가 누구의 편을 들었네 말았네 하는 사항들은 당선된 순간에 모두 잊겠다”며 “(직원들이) 이런 부분을 빨리 자각하고 주어진 자리서 열심히 일을 해야만 일부 잘못된 행동에 대한 용납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최근 드러난 김 회장 일가의 주식 불공정거래 의혹은 결정적이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이들의 불공정 거래 혐의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심리 결과를 전달받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골자는 김 회장 일가가 악재 공시 전 미공개 정보를 이용, 보유 주식을 처분했다는 것이다.
 

▲ 중소기업중앙회 본사

김 회장은 제이에스티나(옛 로만손)의 대표이사이자 최대주주다. 김 회장은 중기중앙회장 취임 이후 해당 직책을 겸직 중이다. 제이에스티나의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김 회장은 20.69%로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김 회장의 동생인 김기석 제이에스티나 대표(9.13%)가 두 번째로 많은 주식을 갖고 있다.

김 회장의 장녀 김유미씨(1.02%)와 차녀 김선미씨(0.88%), 부인인 최영랑씨(0.62%)에게도 지분이 있다. 김 회장의 장·차녀는 각각 2013, 2009년 제이에스티나에 입사했다. 김 회장의 지분(20.69%)과 일가 및 특수관계자의 지분(32.34%)의 합은 절반을 넘는다.

미심쩍은 정황은 다음과 같다. 제이에스티나는 지난 2월11일 장마감 후 자사주 80만주(70억3200만원)를 처분했다고 공시했다.

미공개 정보
불공정거래

이튿날인 2월12일 김 회장의 동생과 두 딸을 비롯해 특수관계인 5명은 지난 1월25일부터 2월12일까지 장내매도와 시간외매매를 통해 총 54만9633만주(49억원 상당)를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세부적으로 김 대표는 2월1, 8, 11, 12일 등 총 6차례에 걸쳐 장내매도와 시간외매매를 통해 34만6653주를 팔아치웠다. 장녀와 차녀는 1월29일 각각 4만주와 5만주를 장내매도했다. 이들은 2월1일에도 각각 2만2000주와 3만5000주를 장내매도, 총 6만2000주와 8만5000주를 내다 팔았다.

친인척인 최희진씨는 1월30, 31일과 2월1일에 4만8750주를 처분했고, 김명종씨는 1월30일 7230주를 정리했다. 제이에스티나는 변동 사유를 “증여세 세금납부와 대출상환을 위한 지분 일부 처분”이라고 밝혔다.

이날 제이에스티나는 공시를 통해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이 8억6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677% 증가했다고 밝혔다. 당일 주가는 10% 이상 하락하면서 9000원대에서 5000원대(6월20일 기준)를 맴돌았다. 결국 김 회장 일가가 내부정보를 이용해 부당이익을 본 것이라는 해석이다.

김 회장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서 열린 최저임금 관련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만나 해당 의혹에 대해 “그런 사항은 없다”며 “나는 주식을 팔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 제이에스티나

김 회장은 지난 14일 <경향신문>을 통해 “브랜드 리뉴얼을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자사주를 매각했고, 동생과 자녀들은 양도세와 상속세 납부 때문에 주식을 매각했다”며 본인은 한 주도 매각하지 않아 문제될 게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조사 등에서 김 회장의 혐의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회장직은 법원의 최종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유지된다. 김 회장은 중기중앙회장 당선 이후 제이에스티나 회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자주 노출
특혜 의혹


김 회장과 제이에스티나서 불거진 잡음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 회장은 과거에도 제이에스티나와 관련,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 전용홈쇼핑 ‘홈앤쇼핑’의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게 된다. 홈앤쇼핑의 최대주주는 중기중앙회(32.83%)다. 김 회장은 24대 중기중앙회장을 지내던 때 ‘홈앤쇼핑 방송편성 특혜 의혹’을 받았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제품을 자주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제이에스티나는 당시 로만손이란 이름이었다.

당시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홈앤쇼핑을 제외한 5개 TV홈쇼핑(GS홈쇼핑·CJ오쇼핑·현대홈쇼핑·롯데홈쇼핑·NS홈쇼핑)은 로만손 시계를 방송 편성한 전례가 없었다. 또 홈앤쇼핑서 로만손 시계는 2012년 12월, 2013년 10월과 12월에 모두 2번씩 방송됐다. 총 24회 이뤄진 방송 중 21회가 오후 11시 50분으로 편성됐다. 이 가운데 4회는 금요일이었다.

당시 한 쇼핑 관계자는 “시계, 주얼리 카테고리는 TV홈쇼핑서 다루는 주요 품목이 아니다”라며 “1회 방송 시간이 2시간이라고 가정하면 연 10회가 최대”라고 전했다. 관계자는 “월 2회 방송을 했다면 과도하게 편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TV홈쇼핑 특성상 금요일 오후 11시50분은 시청자가 많아 프라임타임”이라고 덧붙였다. 프라임타임은 시청률이 가장 높은 때를 일컫는다.

계속되는 ‘제이에스티나’ 논란
툭하면 잡음 ‘바람 잘 날 없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백재현 의원은 이를 지적했다. 지난 2014년 국정감사서 백 의원이 중소기업청(중소벤처기업부의 전신)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홈앤쇼핑의 로만손 시계 방송은 2012년 9회, 2013년 10회, 2014년 상반기 5회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홈앤쇼핑 중소기업 1개 제품의 평균 방송 횟수를 모두 상회한 수치다.

백 의원은 “(로만손 시계 방송은)많은 업체들이 원하는 커다란 기회를 직위를 이용해 사적으로 취한 것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품 편성이 적절했다고 하더라고 예상되는 구설수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올바른 처신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김 회장의 결정이 아닌 홈앤쇼핑 직원들의 권유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후속 방송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었다는 점, 로만손도 중소기업인 상황서 홈앤쇼핑의 대표라는 이유로 방송을 못한다면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들며 해명했다.

로만손과 관련된 이야기는 지난해 8월 법무법인 대륙아주서 발간한 ‘주식회사 홈앤쇼핑 경영진단 보고서’에도 언급된다. 홈앤쇼핑은 ‘2015년 중소기업청 감사’ ‘2017년 방만 경영 등에 따른 국정감사서의 지적’ ‘수사기관의 수사’ 등을 경영진단 컨설팅 배경으로 언급했다.

보고서는 ‘로만손 시계 구매 관련’ 내용서 “홈앤쇼핑이 지난 2012년 5월3일 창사 1주년 기념시계 구매를 경쟁계약 형식으로 결정했지만 로만손과 수의계약 형식으로 체결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정감사
수사기관

공급계약 체결 당시 김 회장은 홈앤쇼핑 의장이자 대표이사였다. 보고서는 김 회장이 로만손 대표이사라는 점을 들어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수의계약 체결로 보일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대륙아주는 “중소기업 판로지원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는 계약 체결과 관련, 공정성 및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계약 체결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고 계약 전담 부서 및 담당자를 지정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