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노심초사 기업들

나비효과일까, 찻잔 속 태풍일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대법원의 엄격한 신의칙 적용으로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법원은 통상임금 관련 소송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이 포함된다고 해서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최근 한진중공업 역시 같은 맥락의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서 판결이 잇따라 뒤집히면서 통상임금 소송을 관통하고 있는 기업들도 덩달아 긴장하는 모양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와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형국이다. 단초는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봤다. 정기상여금이 정기성과 일률성 그리고 고정성의 3가지 조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통상임금은 시급·일급·월급 등 그 명칭과 무관하게 근로자들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노동의 대가로 받는 금액이다.

통상임금
신의성실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된다. 퇴직금과 해고예고수당, 휴업수당, 연장수당, 야간 및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등이 해당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기준금액의 범위가 확대, 각종 수당이 오르게 됐다. 사용자 측에선 임금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을 강조한다. 인건비가 증가하면서 고용과 수출이 감소하고,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이 골자다. 반대로 노동자 측은 노동자의 권리자 정당한 임금을 확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대법원 판결을 이구동성으로 환영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연맹(이하 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회사의 경영 상황’과 ‘노사 간의 합의’ 등을 언급하며 신의칙도 덧붙였다. 신의칙은 권리의무의 양 당사자가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 ‘신의’와 ‘성실’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민법 제2조 1항의 원칙이다.
 

즉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더라도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면 추가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회사의 경영 상황), 기존 노사합의에 반해 통상임금의 증대를 이유로 추가수당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노사 간의 합의).

최근 대법원은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 신의칙을 기업의 경영 상태와 비교해 사실상 배제하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이후 판결들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쉽게 간과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대법원, 신의칙 배제…재계 당혹
1·2심 판결, 대법원서 파기 환송

대법원은 지난 2월14일 인천 시영운수 노동자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서 원고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시영운수 노동자들은 지난 2013년 3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기상여금까지 포함한 임금 차액 지급을 요구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강행규정보다 신의칙을 우선해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해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기업 사정의 변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자 측 청구액은 회사의 연간 매출액의 2∼4%로 2013년 총 인건비의 5∼10%에 불과하다는 점 ▲회사가 2009년부터 5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꾸준한 당기순이익이 발생하고 있으며, 매출액도 증가하고 있는 점 ▲버스준공영제의 적용을 받고 있는 점 등을 들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지난 3일 대법원은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상대로 제기된 통상임금 소송서도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이날 한진중공업 소속 노동자 36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서 ‘미지급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반한다’는 원심 판결을 깨고 파기환송했다.

회사 안정성
경영상 어려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지난 2012년 8월 단체협약서 정한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되기 때문에 법정수당을 다시 계산, 차액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있었던 시영운수 상황과 맞닿아 있다.

대법원은 이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추가로 법정수당을 지급하더라도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회사 추가 부담 법정수당은 연 매출액의 0.1%에 불과한 점 ▲매년 회사가 지출하는 인건비의 0.3% 정도인 점을 들었다.

앞서 1심과 2심에선 한진중공업이 법정수당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당시 1·2심은 “장기적 경영난 상태에 있는 회사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지출을 하게 돼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서울경제>에 따르면 대법원의 판결문에는 오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한진중공업의 연 매출액을 5조∼6조원이라고 설명했지만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매출 4조원을 넘긴 적이 없다. 또 5조∼6조원의 0.1%를 회사의 추가 부담 법정수당으로 봤지만 수치상 0.1%가 아닌 0.01%다. 이에 대법원은 “대법관 직권으로 판결 결정을 할 것”이라며 “숫자가 달라져도 결론은 같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같은 날 예산교통 소속 노동자가 제기한 소송서도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예산교통의 통상임금소송 상고심서 원고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경영 상황
추가 수당

예산교통의 경우 단체협약으로 퇴직금 산정기준을 통상임금이 아닌 평균임금으로 정했다. 보통 평균임금은 통상임금보다 낮게 책정된다. 1·2심은 예산교통 노동자들이 적법한 기준보다 낮은 수준의 퇴직금을 받은 점을 인정, 바로 잡으라고 판시했다. 다만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퇴직금을 올리는 것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다르게 봤다. 대법원은 이전 판결과 비슷하게 통상임금 범위의 확대로 인한 추가 법정수당이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지 않았다. 대법원은 ▲노동자 측의 추가 퇴직금 청구액이 회사의 연 매출액의 0.9%, 자본금의 6.7%에 불과하다는 점 ▲수년간 영업 손실과 당기순손실 상태였지만 손실액 상당의 보조금을 받아온 점 ▲회사가 추가 부담 퇴직금 규모를 증명하지 못하고, 노동자의 주장이 신의칙 위반이라고만 주장하는 점 등을 들었다.
 

대법원의 판결이 신의칙을 배제하면서 비슷한 소송을 치르고 있는 기업들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두산(모트롤) ▲금호타이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1심서 패소(신의칙 부정)했지만 2심서 승소(신의칙 인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시아나항공 등은 1·2심을 거쳐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시영운수와 한진중공업의 경우 1·2심서 모두 신의칙을 인정받은 뒤 대법원 판결로 상황이 역전됐다.


한진중공업 외 다수 기업 대기 중
사용·노동자 측, 판결 입장 극명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017년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 중 25개 기업이 모두 패소하면, 8조3673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또 통상임금 소송으로 예상되는 피해로 대부분 ‘예측하지 못한 과도한 인건비 발생’을 꼽았다고 전했다.

경총은 지난 3월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서 ‘최근 통상임금 신의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시영운수의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였다. 경총은 이날 “기업 경영은 법률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성격의 문제”라며 “최근 재판부가 근로자에 대한 보호만을 강조해 노사합의 파기를 용인하고, 약속에 대한 신뢰 훼손을 방치하는 것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통상임금 문제는 과거 정부 지침과 관행에 의거한 노사 간의 자율적인 합의가 존재했다면, 그 자체로 약속에 대한 신뢰를 인정하고 기존 노사 합의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신뢰 훼손? 
권익 보호?

한노총은 시영운수 대법원 판결 직후 성명서를 통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신의칙을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보다 우선시한다면 최저근로기준을 정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가 무력화돼 사회·경제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송으로 노사 간 분쟁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연장수당, 휴일근로수당 등 변동적 성격의 임금을 제외한 고정적 성격의 모든 임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도록 정부와 국회가 법제도를 정비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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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