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노심초사 기업들

나비효과일까, 찻잔 속 태풍일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대법원의 엄격한 신의칙 적용으로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법원은 통상임금 관련 소송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이 포함된다고 해서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최근 한진중공업 역시 같은 맥락의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서 판결이 잇따라 뒤집히면서 통상임금 소송을 관통하고 있는 기업들도 덩달아 긴장하는 모양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와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형국이다. 단초는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봤다. 정기상여금이 정기성과 일률성 그리고 고정성의 3가지 조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통상임금은 시급·일급·월급 등 그 명칭과 무관하게 근로자들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노동의 대가로 받는 금액이다.

통상임금
신의성실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된다. 퇴직금과 해고예고수당, 휴업수당, 연장수당, 야간 및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등이 해당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기준금액의 범위가 확대, 각종 수당이 오르게 됐다. 사용자 측에선 임금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을 강조한다. 인건비가 증가하면서 고용과 수출이 감소하고,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이 골자다. 반대로 노동자 측은 노동자의 권리자 정당한 임금을 확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대법원 판결을 이구동성으로 환영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연맹(이하 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회사의 경영 상황’과 ‘노사 간의 합의’ 등을 언급하며 신의칙도 덧붙였다. 신의칙은 권리의무의 양 당사자가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 ‘신의’와 ‘성실’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민법 제2조 1항의 원칙이다.
 

즉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더라도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면 추가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회사의 경영 상황), 기존 노사합의에 반해 통상임금의 증대를 이유로 추가수당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노사 간의 합의).

최근 대법원은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 신의칙을 기업의 경영 상태와 비교해 사실상 배제하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이후 판결들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쉽게 간과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대법원, 신의칙 배제…재계 당혹
1·2심 판결, 대법원서 파기 환송

대법원은 지난 2월14일 인천 시영운수 노동자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서 원고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시영운수 노동자들은 지난 2013년 3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기상여금까지 포함한 임금 차액 지급을 요구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강행규정보다 신의칙을 우선해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해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기업 사정의 변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자 측 청구액은 회사의 연간 매출액의 2∼4%로 2013년 총 인건비의 5∼10%에 불과하다는 점 ▲회사가 2009년부터 5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꾸준한 당기순이익이 발생하고 있으며, 매출액도 증가하고 있는 점 ▲버스준공영제의 적용을 받고 있는 점 등을 들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지난 3일 대법원은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상대로 제기된 통상임금 소송서도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이날 한진중공업 소속 노동자 36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서 ‘미지급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반한다’는 원심 판결을 깨고 파기환송했다.

회사 안정성
경영상 어려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지난 2012년 8월 단체협약서 정한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되기 때문에 법정수당을 다시 계산, 차액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있었던 시영운수 상황과 맞닿아 있다.

대법원은 이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추가로 법정수당을 지급하더라도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회사 추가 부담 법정수당은 연 매출액의 0.1%에 불과한 점 ▲매년 회사가 지출하는 인건비의 0.3% 정도인 점을 들었다.

앞서 1심과 2심에선 한진중공업이 법정수당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당시 1·2심은 “장기적 경영난 상태에 있는 회사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지출을 하게 돼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서울경제>에 따르면 대법원의 판결문에는 오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한진중공업의 연 매출액을 5조∼6조원이라고 설명했지만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매출 4조원을 넘긴 적이 없다. 또 5조∼6조원의 0.1%를 회사의 추가 부담 법정수당으로 봤지만 수치상 0.1%가 아닌 0.01%다. 이에 대법원은 “대법관 직권으로 판결 결정을 할 것”이라며 “숫자가 달라져도 결론은 같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같은 날 예산교통 소속 노동자가 제기한 소송서도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예산교통의 통상임금소송 상고심서 원고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경영 상황
추가 수당

예산교통의 경우 단체협약으로 퇴직금 산정기준을 통상임금이 아닌 평균임금으로 정했다. 보통 평균임금은 통상임금보다 낮게 책정된다. 1·2심은 예산교통 노동자들이 적법한 기준보다 낮은 수준의 퇴직금을 받은 점을 인정, 바로 잡으라고 판시했다. 다만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퇴직금을 올리는 것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다르게 봤다. 대법원은 이전 판결과 비슷하게 통상임금 범위의 확대로 인한 추가 법정수당이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지 않았다. 대법원은 ▲노동자 측의 추가 퇴직금 청구액이 회사의 연 매출액의 0.9%, 자본금의 6.7%에 불과하다는 점 ▲수년간 영업 손실과 당기순손실 상태였지만 손실액 상당의 보조금을 받아온 점 ▲회사가 추가 부담 퇴직금 규모를 증명하지 못하고, 노동자의 주장이 신의칙 위반이라고만 주장하는 점 등을 들었다.
 

대법원의 판결이 신의칙을 배제하면서 비슷한 소송을 치르고 있는 기업들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두산(모트롤) ▲금호타이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1심서 패소(신의칙 부정)했지만 2심서 승소(신의칙 인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시아나항공 등은 1·2심을 거쳐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시영운수와 한진중공업의 경우 1·2심서 모두 신의칙을 인정받은 뒤 대법원 판결로 상황이 역전됐다.


한진중공업 외 다수 기업 대기 중
사용·노동자 측, 판결 입장 극명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017년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 중 25개 기업이 모두 패소하면, 8조3673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또 통상임금 소송으로 예상되는 피해로 대부분 ‘예측하지 못한 과도한 인건비 발생’을 꼽았다고 전했다.

경총은 지난 3월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서 ‘최근 통상임금 신의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시영운수의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였다. 경총은 이날 “기업 경영은 법률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성격의 문제”라며 “최근 재판부가 근로자에 대한 보호만을 강조해 노사합의 파기를 용인하고, 약속에 대한 신뢰 훼손을 방치하는 것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통상임금 문제는 과거 정부 지침과 관행에 의거한 노사 간의 자율적인 합의가 존재했다면, 그 자체로 약속에 대한 신뢰를 인정하고 기존 노사 합의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신뢰 훼손? 
권익 보호?

한노총은 시영운수 대법원 판결 직후 성명서를 통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신의칙을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보다 우선시한다면 최저근로기준을 정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가 무력화돼 사회·경제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송으로 노사 간 분쟁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연장수당, 휴일근로수당 등 변동적 성격의 임금을 제외한 고정적 성격의 모든 임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도록 정부와 국회가 법제도를 정비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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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