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6주년특집>프로파일러 이수정 교수가 본 ‘범죄의 진화’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5.23 12: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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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막가파’에서 요즈음 ‘묻지마’까지…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연일 뉴스에서 흉흉한 소식이 들려온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범죄수법은 더 다양하고 잔인해지며 복잡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 범죄의 실타래를 풀기 위하여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범죄심리요원(프로파일러). 범죄자들의 심리를 꿰뚫는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를 만나 ‘범죄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요시사>가 탄생한 16년 전 발생한 ‘막가파 살인사건’에서 최근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까지…. 범죄는 어떻게 발전하고 진화했을까?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6년 10월 말경,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사업가 부부를 납치 살해하고 배신한 조직원 1명 등 총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사체를 암매장 하거나 불에 태운 지존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존파를 모방한 ‘막가파’가 등장한 이유에서다.

20세 젊은 피로 구성된 막가파 조직원 5명은 40대 여성을 승용차로 납치, 금품을 빼앗고 구덩이에 산채로 넣어 살해했다.

산채로 생매장?

믿기 어려운 참극. 이들은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연히 사람들은 배후를 찾기 시작했고, ‘조직폭력배인 조양은을 미화한 소설 등을 읽고 결성된 폭력단’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을 본 모방범죄’라는 수식어들은 미디어의 폭력성에 의한 범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들의 집단행동에 주목했다. 복수의 가해자들이 몰려다니면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책임소재가 불분명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행동의 결과 즉 피해의 수위가 좀 더 드라마틱해졌다는 것. 이 교수는 90년대 빈번히 발생했던 ‘집단행동’이라는 공통분모가 당시 참극의 시작점이라 진단했다. 

이 교수는 “혼자 있을 때는 크게 잔혹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다보면 범죄의 수위가 높아진다”며 “또 비행력이 상당히 진전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아마도 거의 끝장을 보는 태도가 된다”고 말했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반사회적인 ‘룰’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돈 많은 사람은 다 죽인다”는 특정 타깃을 설정하고 ‘배신하는 자는 죽인다’ ‘화끈하게 살다가 멋있게 죽는다’는 등의 행동강령을 내세워 활동했다.

이 교수는 “사회의 지배적인 기준, 즉 법이 중심이 되는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에서 오래전부터 이탈된 구성원들은 자신들만의 자체적인 어떤 기준, 반사회적인 집단의 룰을 마련한다”며 “그중 일부가 기성사회의 가진 자들과 인정을 받는 자들에 대한 반감을 키움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 속에서는 움츠릴 수밖에 없었지만 집단공간에서는 일종의 해방감을 맛봤던 이들. 그 속에서 여럿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겁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심리학에선 이를 ‘리스키 시프트(risky shift)’라고 한다.

이 교수는 “산 사람을 산채로 매장한 것도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행동인데, 집단행동의 경우 개인은 머릿수분의 1만큼 책임만 느끼기 쉽고 책임감이 가벼워져 더 용감해진다”며 “더 위험한 방식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일종의 집단적인 시프트가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집단 의존도가 높은 과거 우리사회 조직폭력배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90년대 범죄는 최근 어떤 식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96년 ‘막가파’ 살인사건, “집단행동의 결과는 드라마틱해져”
최근 ‘사회적 외톨이’ 크게 증가, “공동네트워크 마련돼야…” 

이 교수는 “90년대에 일어난 범죄들은 사실 대부분이 잡범들의 범죄였다”면서 “범죄력이 어렸을 적부터 진전되고 나중에는 결국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은 자들의 범죄가 많았었다면 최근에 일어나는 범죄는 사실 좀 특이하다”라고 분석했다.


90년대 발생한 지존파, 막가파, 영웅파 등의 사건들처럼 과거엔 돈을 노리는 전통적인 방식의 범행동기에 의해서 혼자든 여럿이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엔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범죄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인 셈이다.

이 교수는 “최근엔 살인이 목적인 범죄도 일어나기 시작했고 성적인 만족이 목표가 아닌 성적인 유희정도를 위해서 일어나는 범죄 또는 성기 삽입을 하지 않고도 성범죄가 일어나기도 하는 등 전통적이지 않은 동기에 기인한 범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 원인을 단독가구의 증가와 사회적 보상체계의 부재 등 정신과적인 문제에서 찾았다. 90년대 후반에 발생한 IMF이후 단독가구 증가, 가정의 해체 등으로 인해 청소년 범죄, 무동기 범죄, 또 다른 사회적인 범죄나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것.

이 교수는 “사회에 대한 불만, 빈부격차가 심해진 것뿐만 아니라 정당한 보상체계가 사회적으로 부재하면서 ‘자신은 열심히 노력하는데 문제는 사회가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며 “또 현대사회에 단독가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격리된 채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전통을 깬 범죄

그만큼 소통에 굶주려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예를 들면 사회 부적응자들에 대한 상담가능성을 높이거나 전문가들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렇게 사회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면, 돌발행위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필요성, 저지력을 갖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혼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하기보단, 그중 일부 돌발적인 행위를 하는 소수가 관리가 안 된 채로 그냥 생활하게 되는 것이 위험하다. 최근 벌어지는 묻지마 범죄, 무동기 범죄들이 바로 그런 것”이라며 “그런 잠재적 불안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친사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밀접한 공동체 활동에 끌어넣어야 하고, 일종의 소셜이 그들을 컨트롤하는 시스템을 많이 가지면 돌발행위를 쉽게 하기가 어렵고 자연스레 범죄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일회성으로 호들갑만 떨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가난, 소외, 애정의 결핍 등 열악한 환경이 사회적 외톨이를 기른다는 사실을, 그들이 또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 불특정 다수의 희생양을 나을 수 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화된 범죄의 근본부터 고쳐나가는 대책 방향이 시급하다. 어쩌면 이들은 중심을 잡아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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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