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연일 뉴스에서 흉흉한 소식이 들려온다.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범죄수법은 더 다양하고 잔인해지며 복잡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 범죄의 실타래를 풀기 위하여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범죄심리요원(프로파일러). 범죄자들의 심리를 꿰뚫는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를 만나 ‘범죄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요시사>가 탄생한 16년 전 발생한 ‘막가파 살인사건’에서 최근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까지…. 범죄는 어떻게 발전하고 진화했을까?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6년 10월 말경,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사업가 부부를 납치 살해하고 배신한 조직원 1명 등 총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사체를 암매장 하거나 불에 태운 지존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존파를 모방한 ‘막가파’가 등장한 이유에서다.
20세 젊은 피로 구성된 막가파 조직원 5명은 40대 여성을 승용차로 납치, 금품을 빼앗고 구덩이에 산채로 넣어 살해했다.
산채로 생매장?
믿기 어려운 참극. 이들은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연히 사람들은 배후를 찾기 시작했고, ‘조직폭력배인 조양은을 미화한 소설 등을 읽고 결성된 폭력단’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을 본 모방범죄’라는 수식어들은 미디어의 폭력성에 의한 범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들의 집단행동에 주목했다. 복수의 가해자들이 몰려다니면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책임소재가 불분명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행동의 결과 즉 피해의 수위가 좀 더 드라마틱해졌다는 것. 이 교수는 90년대 빈번히 발생했던 ‘집단행동’이라는 공통분모가 당시 참극의 시작점이라 진단했다.
이 교수는 “혼자 있을 때는 크게 잔혹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다보면 범죄의 수위가 높아진다”며 “또 비행력이 상당히 진전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아마도 거의 끝장을 보는 태도가 된다”고 말했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반사회적인 ‘룰’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돈 많은 사람은 다 죽인다”는 특정 타깃을 설정하고 ‘배신하는 자는 죽인다’ ‘화끈하게 살다가 멋있게 죽는다’는 등의 행동강령을 내세워 활동했다.
이 교수는 “사회의 지배적인 기준, 즉 법이 중심이 되는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에서 오래전부터 이탈된 구성원들은 자신들만의 자체적인 어떤 기준, 반사회적인 집단의 룰을 마련한다”며 “그중 일부가 기성사회의 가진 자들과 인정을 받는 자들에 대한 반감을 키움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 속에서는 움츠릴 수밖에 없었지만 집단공간에서는 일종의 해방감을 맛봤던 이들. 그 속에서 여럿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겁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심리학에선 이를 ‘리스키 시프트(risky shift)’라고 한다.
이 교수는 “산 사람을 산채로 매장한 것도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행동인데, 집단행동의 경우 개인은 머릿수분의 1만큼 책임만 느끼기 쉽고 책임감이 가벼워져 더 용감해진다”며 “더 위험한 방식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일종의 집단적인 시프트가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집단 의존도가 높은 과거 우리사회 조직폭력배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90년대 범죄는 최근 어떤 식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96년 ‘막가파’ 살인사건, “집단행동의 결과는 드라마틱해져”
최근 ‘사회적 외톨이’ 크게 증가, “공동네트워크 마련돼야…”
이 교수는 “90년대에 일어난 범죄들은 사실 대부분이 잡범들의 범죄였다”면서 “범죄력이 어렸을 적부터 진전되고 나중에는 결국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은 자들의 범죄가 많았었다면 최근에 일어나는 범죄는 사실 좀 특이하다”라고 분석했다.
90년대 발생한 지존파, 막가파, 영웅파 등의 사건들처럼 과거엔 돈을 노리는 전통적인 방식의 범행동기에 의해서 혼자든 여럿이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엔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범죄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인 셈이다.
이 교수는 “최근엔 살인이 목적인 범죄도 일어나기 시작했고 성적인 만족이 목표가 아닌 성적인 유희정도를 위해서 일어나는 범죄 또는 성기 삽입을 하지 않고도 성범죄가 일어나기도 하는 등 전통적이지 않은 동기에 기인한 범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 원인을 단독가구의 증가와 사회적 보상체계의 부재 등 정신과적인 문제에서 찾았다. 90년대 후반에 발생한 IMF이후 단독가구 증가, 가정의 해체 등으로 인해 청소년 범죄, 무동기 범죄, 또 다른 사회적인 범죄나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것.
이 교수는 “사회에 대한 불만, 빈부격차가 심해진 것뿐만 아니라 정당한 보상체계가 사회적으로 부재하면서 ‘자신은 열심히 노력하는데 문제는 사회가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며 “또 현대사회에 단독가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격리된 채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전통을 깬 범죄
그만큼 소통에 굶주려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예를 들면 사회 부적응자들에 대한 상담가능성을 높이거나 전문가들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렇게 사회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면, 돌발행위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필요성, 저지력을 갖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혼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하기보단, 그중 일부 돌발적인 행위를 하는 소수가 관리가 안 된 채로 그냥 생활하게 되는 것이 위험하다. 최근 벌어지는 묻지마 범죄, 무동기 범죄들이 바로 그런 것”이라며 “그런 잠재적 불안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친사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밀접한 공동체 활동에 끌어넣어야 하고, 일종의 소셜이 그들을 컨트롤하는 시스템을 많이 가지면 돌발행위를 쉽게 하기가 어렵고 자연스레 범죄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일회성으로 호들갑만 떨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가난, 소외, 애정의 결핍 등 열악한 환경이 사회적 외톨이를 기른다는 사실을, 그들이 또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 불특정 다수의 희생양을 나을 수 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화된 범죄의 근본부터 고쳐나가는 대책 방향이 시급하다. 어쩌면 이들은 중심을 잡아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