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트랜스젠더를 아시나요?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3.29 08: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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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이고 싶은 반쪽 여자, 그녀들은 아름다웠다

[일요시사 = 한종해 기자]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최근 방송에 출연해 "자궁이식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하리수 임신'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일에는 하리수가 운영하는 트랜스젠더클럽에서 '네오젠더쇼' 콘서트를 열고 트랜스젠더들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마음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항상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준다" "아름답다"는 등 호평을 늘어놨다. 트랜스젠더가 우리 사회의 양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비난부터 하는 사람들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음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트랜스젠더들이 대다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사회적인 차별도 받고 있다. <일요시사>가 트랜스젠더들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기자는 먼저 트랜스젠더를 만나기 위해 성적소수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한 사이트를 찾았다. 지난달 게이문화 탐방을 위해 가입해 놓은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고 이번에는 트랜스젠더 게시판을 클릭했다. 게시판에는 호르몬제를 구한다는 내용의 글과 만남을 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만남을 원하는 글 대부분에는 그들의, 아니 그녀들의 얼굴과 몸매 사진이 함께 게시되어 있었으며, 휴대폰 번호도 서슴없이 공개하고 있었다.

남자가 되고픈 여자
여자가 되고픈 남자

그런데 게시판에는 기자가 알 수 없는 생소한 단어들도 가득했다. '대전 씨디, 쉬멜 찾아요' '전 바이이고 여친있어요. 쉬멜분들과 친해지고 싶어요 등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수두룩했다. 이에 기자는 1:1대화 게시판을 통해 한 트랜스젠더에게 대화를 신청해보기로 했다.

대화를 신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창이 열렸다. 기자는 먼저 이성애자임을 밝히고 취재 중임을 알렸다. 그러자 이 트랜스젠더는 '알고 있다'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회원정보를 보면 접속지역과 나이 성별, 이성애자, 동성애자 유무를 알 수 있어요. 대화 수락을 한 이유는 일반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알려진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장을 한 모든 남자' 혹은 '남자인데 여자로 수술을 한 남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달랐다.

트랜스젠더는 '남자 혹은 여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의 신체와 반대되는 성을 정체성으로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들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는 것.

이 여성은 이어 여러 가지 용어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여기서라도 여자(?)이고 싶어" 허락되지 않은 그들
"예쁘다는 말 가장 좋아해…남자 아닌 여자로 봐달라"

"CD는 Cross Dresser의 줄임말로 이성복장을 함으로 인해 만족감을 얻는 사람을 지칭해요. 비슷한 말로 TV가 있는데요. 이는 이성의 복장을 함으로 인해 성적인 만족감을 얻는 사람을 말해요. CD는 순수한 만족감, TV는 성적인 만족감이죠. 그리고 바이는 Bi-sexual의 줄임말이에요. 말 그대로 이성과 동성 모두에게 성지향성이 있는 사람을 말하죠. 쉽게 말하면 바이는 자신의 성 지향성을 발견하기 전에 거치는 과정이라고 보면 돼요."

기자는 쉬멜에 대해서도 물었다.

"쉬멜(shemale)은 원래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이 되기 위해 가슴수술을 해 양성을 가지고 있는 수술이 덜 된 트랜스젠더를 칭하는 말이에요. 추가로 설명하자면 게이는 남자가 남자를, 레즈비언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트랜스젠더에도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가 있을 수도 있어요."


대화를 나누는 내내 이 여성은 기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더 많은 정보를 알리고 싶다는 것. 기자는 그녀와 약속날짜와 시간, 장소를 잡고 대화창을 빠져나왔다. 용어도 알았고 인터뷰도 잡았으니 이제 현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기자는 소수민족들의 놀이터인 이태원을 찾기로 했다.

지난 19일 저녁 10시께 기자는 이태원 유흥문화에 통달한 지인과 함께 외국인과 젊은이들의 거리 이태원을 찾았다. 이태원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트랜스젠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바는 골목 곳곳에 한글로 '트랜스' 혹은 영어로 'trans'라고 적힌 간판과 함께 퍼져있었다. 바 입구에서는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트랜스젠더들이 버젓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 중 가장 잘 놀기로 유명한 A트랜스젠더 바를 찾았다. 30대 초반인 지인은 이곳을 들어가는 기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트랜스젠더들이 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이상한 기분이 들 거예요.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자신의 성정체성에 의심을 가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녀들은 '예쁘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해요."

알고 있었지만
어색한 분위기

기자는 지인이 건넨 말 중 '예쁘다'라는 단어만 머릿속에 기억한 채 A트랜스젠더 바의 문을 열었다. 기자는 순간 "일반 바를 찾아 들어온 게 아닐까?" 의심도 했다. 하지만 간판에는 분명 '트랜스'라는 단어가 크게 적혀있었다.

들어가는 순간의 느낌은 일반 룸살롱과 다를 게 없었다. 무대 중앙에는 몇몇 트랜스젠더들이 춤과 무용 등의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이른 시간인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자는 지인과 함께 일반적인 바와 같이 둥글고 긴 테이블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지인이 손을 들어 한 접대부를 불렀다. 접대부는 속이 훤히 비치는 짧은 드레스를 입고 테이블로 다가와 주문을 받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벌어진 치마사이로 여성의 중요부위가 보였다. 

"오빠, 오랜만이네, 뭘 주문하시겠어요?"

조각해 놓은 것 같은 가슴과 긴 머리, 겉모습은 영락없는 여자였지만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약간의 걸걸함은 남아있었다. 기자가 이 바에 입장하기 전 지인이 건넨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물론 이들이 성전환수술을 한 여자, 즉 남자였던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이 같은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자보다 예쁘다는 이유로
어린시절 당한 성폭행

어색해하는 기자를 알아챈 걸까? 테이블 옆의 그녀는 기자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처음 오셨나보네. 그냥 편하게 놀다가요. 분위기가 좀 그러면 룸으로 옮길까요?"

손님들 중 이들과 좀 더 사적인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룸이 제공됐다. 기자도 지인과 눈빛을 주고받은 뒤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단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펼쳤다. 가격은 약간 비싼 편이었다. 35만원짜리 양주 500ml 세트를 시켰고 접대부가 나가자 본격적으로 룸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룸 중앙에는 노래방기기가 설치돼 있었으며 타원형의 테이블 주변으로 푹신한 쇼파가 위치해 있었다. 일반 룸살롱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어느새 의상을 갈아입은 트랜스젠더들이 다가왔다. 자신을 '마담'이라고 소개한 은희(40)는 얼굴과 몸을 모두 성형한 완전한 여성이었다. 또 다른 여성은 아롱(28)이라고 했다. 아주 깡마른 몸매의 아롱 역시 전신성형으로 여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온 여성은 아주 앳된 모습의 유미(23)였다. 그녀는 아직 수술을 다 마치지 못해 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팀이 오늘의 첫 룸 개시 손님이었다. 기자가 "트랜스젠더 바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 찾아왔다"고 말하자 마담 은희씨가 화제를 이끌었다.

"오늘 놀아보면 알거에요. 그쪽은 맨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 술부터 마셔요."

쉬멜, CD, 바이…뭔지 아세요? 트랜스젠더 24시
얼굴·몸매 모두 여자, 숨길 수 없는 걸걸한 목소리


부담감이 생기긴 했지만 곧 술잔이 오고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옆에 앉아 있던 트랜스젠더들이 한 명씩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노출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가슴은 거의 노출돼 유두가 보였고 등과 엉덩이 노출은 기본이었다.

자리가 술자리인 만큼 솔직한 대화도 주고받았다. 유미씨는 2년 전 일본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고아라는 그녀는 연거푸 술을 들이키더니 어려서부터 매우 힘들게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고아원에 갔다가 일본으로 입양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여자보다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왔고 저도 제가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제 오빠가 저를 성폭행했고 '부모님께 알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어요. 그래서 집을 뛰쳐나왔고 부모님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와서 지금 돈을 벌고 있네요. 완전한 여성이 되면 부모님을 찾을 거예요."

하소연을 하며 눈물을 보이자 순간 술자리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기자는 축 처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그래도 정말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말을 건넸다. 말을 꺼낼 때는 어색했지만 그녀들이 예쁜 것은 사실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롱씨가 밝은 얼굴로 얘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저희는 나은 편이에요. 워낙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트랜스젠더들이 많기 때문에 그나마 바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죠. 제가 아는 트랜스젠더들 중 일부는 성매매에 종사하기도 해요. 물론 생계는 어느 정도 해결되겠지만 수치심, 열등감에 매일 밤 몸서리치고 일반 성매매 여성들이 느끼는 자괴감과 거의 동일한 기분을 느껴요."

기자는 슬쩍 "그들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유사성매매 업소에도 있고 프리랜서식 성매매도 있어요. 인터넷 사이트 같은 데서 즉석만남을 하는 식이죠.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남산타워 인근이에요. 그런데 대부분 남산타워에 있는 언니들은 나이가 들어서 일선에서 밀려난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남산 근처에 트랜스젠더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찾아와주는 남성들 덕에 먹고사는 거죠. 그마저도 없다면 그들은 더욱 힘들었을 거예요."

취재 내내 씁쓸
현실과의 괴리

한창 대화를 나누던 중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단골손님인 듯 기자 테이블에서 술을 먹던 은희씨가 달려 나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 무렵. 슬슬 일어나야 했다.

르포 취재를 하면서 이번처럼 씁쓸했던 기분은 처음이었다. 성적 소수자들도 분명 하나의 인간인데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고 변변한 직업조차 가지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이 완화됐다곤 하지만 아직도 음지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보니 아직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졌다.


<미니인터뷰> 트랜스젠더 미미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기자는 전날 성적소수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만난 트랜스젠더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의 한 커피숍을 찾았다.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질문내용을 정리하는 사이 기자의 휴대폰이 10초 가량 울리다가 끊어졌다. 수신 내역을 확인하는 동안 피곤해 보이는 한 남성이 아니, 여성이 기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짙은 화장을 했고 한껏 멋을 냈지만 남성의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지난 19일 저녁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에서 만났던 여성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가슴은 나와 있었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다리 근육은 굳이 말하자면 여자보다는 남자였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그녀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올해 30세의 김모씨였으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2로 시작됐다. 김씨는 자신을 미미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기자는 미미씨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많이 피곤해 보인다. 밤새 일 했나?

-새벽 5시까지 남산 소월길에서 일했다. 한때는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하기 위해 무척 애쓴 적도 있지만 나 같은 얼굴은 받아주지 않았다. 내가 너무 여자답지 않게 생겼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통 여자보다 더 여자다워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못생긴 주제에 성전환수술을 했냐고 질타하기도 한다. 컴퓨터를 전공해 관련 자격증만 7개지만 내가 일할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현재 어디에 살고 있나? 가족들은 없나?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산다. 운이 좋을 때는 손님이 여관방을 밤새 끊어주기도 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성전환수술을 하고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더 이상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가끔 어머니만 내가 있는 고시원을 찾는다.

▲자신이 여자라고 느껴졌을 때가 언제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고 집에 얘기조차 할 수 없었다.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1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성전환수술을 받았고 수술 직후 호적도 여자로 바꾸고 개명 변경도 법적으로 다 마쳤다. 비로소 완전한 여자가 됐다. 

▲트랜스젠더가 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는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자로 살 수 있다는 행복감에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여자로만 살 수 있다면 힘든 것은 우리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꿈이 무엇인가?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이다. 좋은 남자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다. 정말 좋은 남자 만나 좋은 가정을 꾸린 친구들이 많이 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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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