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신종?합성?변태업소 잠입취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3.10 12: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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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 없는 그들만의 '엿보기방'을 아십니까?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아무리 '방'이 많은 나라라고 하지만 이런 방까지 등장할 줄은 몰랐다. 최근 새롭게 등장한 이른바 '엿보기방'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직접적인 성관계나 유사성행위가 이뤄지지는 않지만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변태업소인 것은 확실하다. 3시간을 넘게 뒤져도 한 곳밖에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아직까지는 그 영역이 미비하지만 기자가 직접 다녀온 이 변태업소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요시사>가 소수취향의 사람들이 다닌다는 이 업소를 잠입취재했다.

3시간 뒤져 발견한 관음증·노출증 환자들의 아지트
남자는 여자를 볼 수 있지만 여자는 남자를 볼 수 없다

지난달 27일 기자에게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영등포 인근에 새로운 변태업소가 등장했다는 내용이었다. "불법성매매가 이뤄지는 곳이냐"고 묻자 "2차는 절대 나가지 않는 업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별반 호기심이 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말은 기자를 이튿날 영등포로 향하게 했다. 남자는 여자를 볼 수 있지만 여자는 남자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2차는 나가지 않아
뭐하는 곳이기에?

대략적인 위치를 전해 듣고 지난달 27일 오후 5시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기자와 통화를 한 지인을 역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시간인 6시를 훌쩍 넘었는데도 지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기도 꺼져있었다. 기자에게 있는 단서는 그 변태업소가 영등포역 근처에 있다는 점, 대로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 간판이 없다는 점, 업소가 있는 건물 주변에 각종 유니폼을 입을 여자들이 돌아다닌다는 점뿐이었다.

결국 기자는 저녁 7시경부터 영등포역 일대를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주 공략 대상은 간판은 없지만 외부 창문이 시트지 등으로 가려져 있거나 유니폼을 입은 여자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경칩을 불과 일주일 남겨둔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녁 날씨는 쌀쌀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찾을 수가 없겠다'라는 불길한 생각이 기자의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3시간여를 돌아다녔을까.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기자는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후미진 골목에 들어와 있었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 '내일 다시 오자'는 생각으로 영등포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세일러복 스타일의 옷을 입은 한 여인과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기자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지인이 말한 "각종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돌아 다닌다"는 말이 생각났고 휴대폰을 확인하는 척, 그들이 기자를 지나치기를 기다렸다. 한눈에 봐도 연인사이는 아닌 듯했다. 그들은 기자가 있던 곳 인근의 한 건물로 나란히 들어갔다. 여자가 남자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에는 어떠한 간판도 붙어있지 않았으며 단순 주택으로 보였다.

건물주변을 돌면서 조금 더 신중하게 살펴보기로 했다. 간혹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지나다닐 뿐 술 취한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이 건물 쪽으로 오기에는 무리가 있을 법한 외진 곳이었다.

10여 분을 기웃거렸을까? 건물 입구에서 한 남성이 나와 기자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기자는 즉시 "소문 듣고 왔다"고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지인의 말을 듣고 왔으니까….

남성의 얼굴이 밝아졌다.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그럼 들어오시지 뭐하고 계세요. 따라오세요. 이런데 처음이시죠? 제가 올라가서 설명해드릴게요."


남성의 뒤를 따라 건물 3층으로 올라갔다. 시트지가 붙어있어 외부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유리문이 잠겨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카메라가 보였다. 남성이 벨을 눌렀고 '철컥'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노래방에 온 것만 같았다. 카운터를 중심으로 일자로 뻗은 복도 양쪽에는 다닥다닥 방들이 붙어 있었고 카운터 옆에는 건물 외부와 복도가 보이는 컴퓨터 화면이 돌아가고 있었다. 남성이 기자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게 하더니 이용방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비용은 30분에 2만5000원이에요. 방에 들어가면 유리를 통해 애들이 보여요. 방안에서는 뭘 하든지 자유지만 애들은 손님을 볼 수가 없어요. 손님도 애들한테 따로 뭘 요구할 수 없고…. 매직미러라고 아시죠? 한쪽은 투명한 유리고 한쪽은 거울이고. 손님이 방에 입장하면 애들 방에 불이 들어오고 애들이 알아서 포즈를 취해줄 거예요."

설명을 들어도 도대체 뭘 하는 곳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직접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2만5000원을 카운터에 지불했다. 방 열쇠와 '러브젤'을 받았다. 방에 들어가려는 순간 이용방법을 설명했던 남성이 기자에게 뛰어왔다. 낌새를 눈치챘을까봐 가슴이 철렁했다. 이내 들려온 말은 그런 기자의 마음을 안정시켰지만 다시 실망하게 했다.

"깜빡하고 말씀 못 드린 게 있어요. 카운터에 가방이랑 휴대폰 맡기셔야 해요. 간혹 애들을 촬영해 가시는 분이 있어서요. 방에 '몰카 탐지기'도 설치돼 있으니까 혹시라도 찍으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하하."

"휴대폰 등 촬영기기
카운터에 맡기세요"

물론 기자는 방에서 유리를 통해 보인다는 여성들을 찍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단지 방 안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기자의 가방과 휴대폰은 남성의 손에 넘겨졌고 주머니에 있는 동전 몇 푼과 지갑, 신분증, 방 열쇠, 러브젤 만이 소지품의 전부였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일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면치마와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민소매티를 입은 여성이 반대편에 누워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남성의 말대로 여자는 기자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방을 둘러봤다. 푹신해 보이지만 싸구려로 보이는 소파와 사각티슈, 음료수 몇 개, 세면대와 변기, 여자가 있는 방과는 다르게 어두운 조명,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방문이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소파에 앉았다. 누워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던 여자가 몸을 일으켜 기자와 정면으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다리 위에는 노트북을 올려놨다. 여자가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속옷이 보였다. 5분 정도를 조금씩 신체부위를 보여주던 그녀는 노트북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더니 손부채로 덥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내 상의를 벗었다.

대화 불가, 터치 불가
2차 위한 작업도 불가

남성의 설명대로 방에 손님이 들어오면 여성의 방에 신호가 간다고 했으니 자신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알 것이다. 문득 '정말 이쪽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사각티슈를 집어 들고 유리 앞으로 가 섰다. 여자가 기자 쪽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유리를 내리치려는 포즈를 취했다. 여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진짜 '매직미러'였다.

지인의 설명대로 2차는 나가지 않는 듯했다. 아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의사소통 자체가 안되니 2차를 나가기 위한 작업(?)을 걸 수도 없었다.

단지 여성들의 자연스럽고도 은밀한 노출을 보면서 카운터에서 지급받은 러브젤로 자위행위를 하는 방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유사성행위업소도 아니고 변종성매매업소도 아닌 단지 변태업소일 뿐이라는 것. 기자가 들어온 방의 콘셉트는 '젊은 여자가 혼자 사는 자취방'인 듯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사이 여성은 5분여 간격으로 옷을 하나씩 벗었고 약속시간 30분이 다 됐을 무렵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상태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이 다됐다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자는 뚜껑도 열지 않은 러브젤을 보면 의심을 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 변기에 러브젤 일부를 짜버리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열쇠를 뽑아 들고 밖으로 나와 카운터에서 기자의 소지품을 모두 돌려받았다.

그 사이 손님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카운터에 5만원을 계산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간판도 없고 호객행위도 없어 입소문만으로 영업 중
직접 성관계도 유사성행위도 안해…단속 근거 없어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던 기자는 건물 밖에서 기자를 데려온 남성에게 "길이 너무 복잡하니 큰 길까지만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성은 흔쾌히 수락했다. 건물을 빠져나와 골목을 걸어가면서 "손님이 많이 오느냐"고 운을 띄웠다. 남성은 큰길이 보일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안와요. 아니 못 오죠. 이런 데를 아예 모르니까. 보통 관음증이 있는 남성들이 많이 오고…. 손님도 좀 그런 게 있죠? 직접 하는 것보다 몰래 지켜보는 게 더 좋은…. 여자들도 많이 와요. 저희가 데리고 있는 애들은 대학생이나 뭐 그런 애들이고 가끔 소문 듣고 노출증 있는 여자들도 와요. 변태들 참 많죠? 그런데 저희는 변태들이 고맙죠. 먹고 살게 도와주니까…."

남성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기자를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사지도 정신도 멀쩡한 기자가 순식간에 관음증 환자에 변태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어느덧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대로변이 보였고 "이런 곳이 다른데도 있냐"고 물었다.

"있겠죠. 많지는 않겠지만 저희처럼 숨어서 하는 데가 있을 거에요. 이제 다 왔네요. 다음에 또 찾아주시고 조심히 가세요."


지난달 24일 일본에서 매직미러로 속옷을 보여주는 속칭 '엿보기방'을 운영한 일당이 경시청에 적발된 적이 있었다. 엿보기방은 개인룸에 들어간 남자 고객이 유리 맞은편에 있는 여고생과 대화를 하거나 치마 속 팬티를 훔쳐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기자가 찾은 이 변태업소도 간판은 없었지만 일본의 엿보기방을 연상케 했다. 일하는 여성이 미성년자가 아니고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점은 다르지만 일본의 엿보기방이 한국에 들어와 변화한 것인지, 한국의 이런 업태가 일본으로 건너가 엿보기방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다하다 이젠
'엿보기방'까지

성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대딸방'이나 '포옹방' '키스방'처럼 유사성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법망을 피하는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일부 특별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확산되어져 나갈 가능성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방이 많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남을 엿보는 엿보기방이라니 그 기발함에 기가 찰 지경이다. 우리나라의 변종·신종·합성 성매매가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지 그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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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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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