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生현장 르포>Senior 그들만의 아지트를 가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2.22 11: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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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노년 신(新)문화 "늙었다고 다 서글프다는 편견은 버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만 갈 곳은 없다. 풀릴 듯 말 듯한 날씨 덕에 공원 나들이도 쉽지 않다. "요즘 뭐하세요?"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 "늙어서 주책이다"는 말도 듣기 싫다. 누구일까? 적극적인 소비와 문화 활동을 한다는 데서 기존의 '실버' 세대와는 구별되는 '시니어' 세대들이다. 이들은 경로당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탑골공원을 떠도는 백발의 노인들과는 다르다. 본격적인 은퇴시기와 맞물려 여유를 갖게 되면서 그들이 젊은 시절 누렸던 감성과 과거의 문화적 향수를 찾아 나서면서 서울시 종로구에 '시니어 특수'가 형성되고 있다. 노인전용영화관과 식당이 생겼고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됐던 카페에도 노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일요시사>가 서울 종로구 낙원동을 찾았다.

영화도 보고 국화빵도 먹고…단돈 2000원에?
노년들만을 위한 식당, 라이브공연과 DJ까지

"이번 역은 종로3가역, 종로3가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12시께 두 번의 환승을 거쳐 기자가 도착한 곳은 1호선 종로3가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1번 출구로 나가는 기자 앞을 멋들어진 중절모와 반짝이는 머리핀으로 한껏 멋을 낸 중년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지나갔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종로구에 날아든
'시니어 특수'

스마트폰을 꺼내 탑골공원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잠깐 고개를 숙인 사이에 중년부부는 H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발걸음을 재촉해 기자도 커피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메뉴판을 보다가 이내 능숙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 두 잔하고 ○○머핀 한 개 줘요"

주문을 마친 노신사는 진동벨과 영수증을 들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갔다. 기자도 얼떨결에 커피 한잔을 주문해 그들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뒤 할아버지가 쟁반에 담긴 커피와 빵을 받아와 할머니 앞에 놓아줬다. 커피를 마시며 나긋나긋하게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30여 분 뒤 쟁반을 말끔하게 정리한 노부부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꼭 잡고 커피숍을 떠났다. 기자도 밖으로 나와 낙원상가로 향했다.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탑골공원 오른편 종로17길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담배꽁초와 종이컵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3000원짜리 이발소와 2000원짜리 밥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방금 만난 노부부와는 다른 분위기의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100원짜리 커피를 마시거나 대낮부터 벌건 얼굴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활기는 느낄 수 없었다.

200여m를 지났을까? 국내 최대의 악기매장인 낙원상가가 보였다. 장기판을 펼쳐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노인들을 지나 2층으로 통하는 외부계단을 올랐다. 세상의 모든 악기들을 다 모아 놓은 것 같은 악기 매장 사이를 한참 해맨 끝에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리는 순간 달콤한 국화빵 냄새와 함께 밝은 표정의 노인들이 기자를 반겼다. 국내 1호 노인전용영화관 '허리우드클래식'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족히 200여 명은 넘어 뵈는 노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에게 꽂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김은주 허리우드클래식 대표를 만나 취재요청을 하고 본격적으로 극장 탐방에 나섰다.

가장 먼저 기자의 발길이 닿은 곳은 매표소. 멀티플랙스급 영화관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상영됐던 영화의 포스터나 눈이 흐릿한 노인들을 배려해 큰 글씨체로 적혀있는 안내문들이 어딘지 모르게 정겹다.

영화 관람료를 확인해봤다. 55세 이상은 2000원, 대학생을 포함한 일반인은 7000원, 학생은 5000원. 1000원 짜리 지폐 2장을 내고 영화표를 받아들고 가려는 노인 한명을 매표소 직원이 붙잡는다.

"할아버지~ 쿠폰 받아가셔야죠~ 국화빵 안 드실 거예요?"

영화관 입구로 이동하던 노인이 급하게 매표소로 다시 돌아와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한 장을 받아갔다. 노인을 따라 영화관 한쪽의 휴게실로 들어섰다. LP판이 가득한 DJ박스에서는 추억의 팝송과 가요가 흘러나왔고 60대로 보이는 노인 두 분이 연신 국화빵을 구워내고 있었다. 옆에서는 자원봉사 명찰을 단 할머니 한 분이 손님들의 쿠폰을 받고 고깔모양의 종이에 국화빵을 두 개씩 담아 건네고 있었다.

달달한 국화빵 향기
극장 안에 가득

어느덧 오후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출출해진 기자가 '1000원어치만 싸 달라'고 하자 국화빵 뒤집기에 여념이 없던 할아버지 한 분이 안 판단다. 이유를 물었다.

"여기 국화빵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거든 젊은 양반 말고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들 팔라고 해. 그런데 그러면 여기가 너무 복잡해지더라고. 돈 때문에 이런 것 하는 게 아니야. 여기 취재 왔다니까 내가 특별히 공짜로 줄게."

갓 구워낸 따끈한 국화빵 두 개를 받았다. 쿠폰 개수를 파악하던 자원봉사 할머니는 "오늘만 벌써 500명이 넘게 왔어"라며 커피 한 잔도 건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에 들고 있는 국화빵 두 개가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지금 막 신청곡 쪽지를 받아 LP판을 바꿔 트는 DJ 장민욱씨와 얘기를 나눴다. 장씨는 지난해 6월부터 이곳에서 노인들을 위한 DJ로 활동하고 있다. 장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카페나 다방, 방송국에서 DJ를 할 때보다 행복해요. 아직 조금이라도 어린 내가 이 자리에서 인생의 선배들에게 아날로그의 추억을 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트는 노래로 인해 노인들이 인생의 황금기를 되돌아 볼 수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이 일을 할 생각이에요."

옆에 앉아 장씨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할머니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1월에도 왔고 12월에도 왔어. 저번 달에는 여기서 여고동창 모임도 했지. 인터넷에서도 들을 수 없는 노래 들으려고 여기 오는 사람들 많아. 영화를 안 봐도 여긴 올 수 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영화관, 365일 전석 매진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인 '맞춤형' 문화 절실

노인들과 정겨운 수다를 나누던 도중 상영관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영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니 한바탕 축제분위기다. 기자를 발견한 김 대표가 다가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타박이다. 매주 월요일 오후 2시30분에 노인들을 위한 자선공연이 펼쳐진 다는 것. 기자가 도착했을 때는 전통가락에 맞춘 풍물패 공연이 한창이었다. 브라운관 앞 무대에서 북과 꽹과리, 징 등을 치며 공연을 하는 사람들, 공연을 보며 박수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모두 50대를 넘긴 노인들이었다. 풍물패가 연주하는 가락의 박자가 바뀔 때마다 흘러나오는 환호는 <전국노래자랑>을 방불케 했다. 비록 노인들과의 시간가는 줄 모르는 대화 덕에 앞부분 '복고 통기타' 공연은 놓쳤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20여 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브라운관에 김은주 대표가 나타나 화재 시 대피로를 설명했다. 영화 시작 전 화면에는 요실금, 임플란트, 관절파스 등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 광고가 비춰졌고 이내 이번 주 상영작인 <율리시스>(1954년작)가 시작됐다. 상영관은 장애인석 5석을 제외한 295석 모두 만석이었다.

허리우드클래식에서 현재까지 상영된 작품은 140편이 넘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 <해저2만리>(1954년) <하녀>(1960년)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별들의 고향>(1974년) <지옥의 묵시록>(1979년) <영웅본색>(1986)년 등의 고전영화는 물론 <러브 액츄얼리>(2003년) <맘마미아>(2008년) <시>(2010년) 등 비교적 최신영화도 상영했다.

매달 적자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상영관을 빠져나와 김 대표를 만나 영화관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취재를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점은 '영업을 어떻게 할까?'였다. 김 대표는 개인 돈으로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녀는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지난 2009년 1월 낙원상가 4층에 허리우드클래식을 개관했다. 반응은 한마디로 폭발적이었다. 지난해에만 관객 15만6000여 명이 이 극장을 찾았고 전국 곳곳에서 영화관을 찾았던 노인들이 영화관으로 감사의 선물을 보내온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적자가 나도 사업을 접을 수 없다고 했다.

"집도 팔고 차도 팔았어요. 가끔 들어오는 광고수익과 기부금으로는 연간 5억 가까이 되는 운영자금을 충당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어르신들 스스로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시며 전단지를 돌려주시기도 하고 떡이나 제사음식, 과일 같은 선물도 자주 보내주시니까 '보람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젊은 시절 (시사회 전용관을 운영하며) 돈 많이 벌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뉘엿뉘엿 서산에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 5시30분께 영화를 보고 나오는 노인들 틈에 껴 낙원상가를 빠져나왔다. 가만히 노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대부분 식사를 하러 가는 듯 했다. 노인전용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노인들은 어디서 식사를 할지 궁금해졌다. 뒤를 따라 걸었다. 노인들은 기자가 낙원상가를 가기위해 지나왔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탑골공원 돌담을 따라 2000~3000원짜리 메뉴로 가득한 허름한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노인들이 그 중 한곳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던 기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골목을 빠져나간 그들은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건물을 올려다보니 '파고다타운'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식당 내부는 라이브공연이 한창이었으며 골목에서 봤던 식당과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아버지 대신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상준 사장의 안내에 따라 가게 전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박 사장의 말에 따르면 이 식당은 노인전용식당이다. 지난해 3월 오픈한 이 식당은 초기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영업을 해왔다. 종업원들도 50대 이상이며 정기적으로 무료급식도 진행한다. 식당 내부는 노인들을 배려해 모두 금연구역이고 영업시간도 노인들의 생활패턴에 맞췄다. 종업원 모두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가게를 빠져나와 60세 이상의 어르신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타고 서빙도 한다는 실버카페로 향했다. 안국역 5번 출구를 나와 50여m를 걸었을까? '삼가연정'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실버 북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과 포근한 느낌이 드는 인테리어는 여느 북카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근무하는 직원들이 조금 달랐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노인들이 카운터를 지키고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커피류는 2000~3000원으로 서울 시내의 커피전문점에 비해 저렴하고 직접 만든 케이크, 양갱, 쿠키는 1000원에 제공됐다. 

운현궁이 잘 보이는 창가 쪽 자리에는 노인들이 자리했고 군데군데 직장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자주 이곳을 찾냐"는 기자의 질문에 칭찬일색이었다.

"카페는 젊은층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쉽게 찾아지지 않았는데 이곳은 마음 편히 책도 볼 수 있고 저렴한 가격에 차도 마실 수 있어 자주 찾아요."

노인전용공간
아직 부족하다

이밖에도 시니어 문화 발전을 향한 다양한 모색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7일 포항시시설관리공단 문화사업팀이 주최한 실버영화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유료상영에도 인기를 끌었던 실버영화제는 <겨울나그네> 상영을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매월 두 번째 주 목요일 오후 2시 무료입장으로 진행된다.

그런가 하면 각 지역마다 60세 이상 노인들이 참여하는 악단 창설도 붐이다. 각자 방법은 다르지만 이 모두가 시니어세대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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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