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의문의 변사사건을 접할 때 마다 사람들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재수사 논란이 뜨거웠던 정경아 사건이 그랬고, 강남경찰서 이용준 형사의 죽음이 그랬다. 그런데 사람들의 뇌리에 잊혔던 이 사건들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기까지 유족들 외 한 사람의 노력이 더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억울한 유족들을 돕겠다’며 나선 한 남자. 그냥 도와주는 것도 아닌 자신의 사비를 털어 가면서 조금은 ‘오버스럽다’ 싶을 정도로 사건에 몰입하는 그를 만나봤다.
변사사건 분석·언론 제보…재수사 이끌어내기도
피해자와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삶 “만족해”
“유족들이 슬픔을 극복하고 억울함을 풀어 안정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모 법무법인 사무장 유규진(33)씨는 의문의 변사사건을 분석하고 경찰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온라인 카페 ‘아름다운생명 재수사 추진단’ 운영자다.
본업은 법무법인 사무장으로 있으면서 부수적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사건을 취합해 홍보활동이나 수사기관들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앞으로 유족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설정을 해 주는 것이 유씨의 주된 역할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
사실 그가 ‘자살과 타살’의 기로에 놓여있는 변사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09년 5월 큰누나의 자살을 겪으면서 부터다. 이후 우연히 ‘정경아 사건’을 접하게 됐다.
일명 정경아 사건은 2006년 정경아(당시 25세)라는 여성이 지인이 사는 아파트에 놀러갔다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조사를 맡은 파주경찰서는 자살이라는 결론으로 수사를 종결했고, 어머니 김모씨는 재수사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5년간 딸의 죽음을 붙들고 살았다.
유씨는 “사건을 보는데 타살이 의심스러워 어머님이 다음 아고라에 올린 청원과 뉴스검색, TV방송 등을 꼼꼼히 살펴봤다”며 “그리곤 적혀있던 어머니 휴대폰으로 ‘힘내세요’라는 격려 문자를 보내드렸는데 그게 인연이 된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 후 유씨는 어머니 김씨와 함께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재수사에 힘썼다. 평소 알고 지내던 형사를 만나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각종 서류들을 검토하면서 사건을 분석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유씨는 자신이 사는 방 보증금 500만원까지 빼가며 김씨를 도왔고,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기도 했다.
유씨는 “한 사건을 돕게 되면 집착성이 강한 편인데 회사도 그만두고 한두 달에서 세 달 정도 몰입하기도 한다”며 “술을 마시다가도 생각이 나면 택시를 타고 사건현장을 찾기도 한다. 경아가 사망한 장소도 술을 마신 뒤 두 번이나 찾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건에만 매달린 끝에 유씨는 의문점들을 정리한 책을 만들어 각 언론사, 청와대, 각 지방경찰청 등에 보냈다. 이런 노력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등 사건은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결국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유씨는 현재 정경아 사건 외에도 ‘강남경찰서 이 형사의 죽음’에 대해서도 관여하고 있다. 이 사건은 2010년 7월 충북 영동의 한 저수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이용준 형사의 의문의 죽음이다.
유씨는 이 형사의 아버지 이모씨와 함께 사건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다음아고라에 “이용준 형사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이슈 청원페이지를 개설하고 자살사건의 의혹을 담은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또 이 형사 추모사이트(www.20100727.com)를 오픈하는 등 이 형사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씨는 추모 사이트에 △변사자의 처리결과 △강남경찰서의 허술한 조사 △주위 사람들의 타살확신 등 이 형사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규명하기 위한 자세한 정보를 공개했다.
유씨는 “두 사건 모두 재수사에 들어갔고, 한 달 이내에 종결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서에 가서 브리핑도 잘 했으니 유족들이 원하는 대로 잘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며 “좋게 해결된다면 보람이 남다르고 앞으로 또 다른 사건을 도울 때 의미가 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씨의 이런 도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유씨는 이미 10년 전 한 시민단체의 간사로 일하면서부터 범죄피해자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음란전화 피해자들의 수호천사’, ‘청소년들의 사이버 수호천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유씨는 “20살 초반부터 법률 쪽과 연관되는 피해자들을 위한 카페를 많이 만들고, 인터넷 유해매체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라며 “틈틈이 네이버 지식인을 드나들며 안타까운 호소를 하는 피해자들을 확인하고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서류를 만들어서 보내준다든지 법원 검찰 쪽에 알아봐서 도움을 주는 등의 일들을 꾸준히 해왔다”고 전했다.
한 사건에 몰입하면 끝을 보는 성격 때문인지 그는 참으로 특이한 삶을 사는 듯 했다. 자신과 직접 관련되지도 않은 미제사건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가면서까지 추적에 열의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꿈속에도 나타나…
그러나 그에겐 “네가 잘돼야 남들도 도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변 충고보다는 억울한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이 더 중요해 보였다. 앞으로도 그는 의문의 미제사건들을 위한 분석과 의문점 제시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건을 다루고 분석하는 중에 꼭 꿈에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더군요. 꿈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제 손을 잡으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당시 사건현장을 보여주는 등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억울하게 죽었으니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것이죠. 제 꿈에서까지 이렇게 나타나는데 남은 가족들의 심정이야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의문점이 있는 사건들이 이런 노력 없이도 당연히 재수사 되는 나라가 온다면 제가 할 일도 없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