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 '승부조작' 파문 끊이지 않는 이유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2.15 17: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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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손' 불법 스포츠토토가 '페어플레이' 좀먹는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작년 한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으로 홍역을 앓았던 국내 스포츠계에 지난 7일 배구선수 승부조작 가담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스포츠를 즐겨온 팬들에게 배신감을 더하고 있다. 주요 외신들도 이번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을 앞 다퉈 보도하며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게다가 최근엔 프로야구까지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폭로가 더해지면 국내 프로스포츠업계는 침몰 일보직전에 놓였다. 승부조작 사건의 이면에는 항상 ‘불법 스포츠토토’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돈 받고 패배’ 프로축구 이어서 프로배구·야구까지
"당혹스럽고 죄송하다"…가담 선수 영구제명 방침

스포츠계에 암암리에 퍼져있던 '악성종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10년 4월. 당시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몇몇 프로게이머 선수들이 일부 불법 배팅 사이트에서 돈을 받고 승부조작에 관여를 하지 않았을지 의심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e스포츠에서 시작된
'검은 거래' 유혹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조사결과 불법 배팅 사이트 관계자인 박모(25)씨가 조직폭력배인 김모씨와 함께 전?현직 코치나 감독, 은퇴한 프로게이머, 2군 선수들, 연습생에게까지 접근한 것으로 밝혀졌다. 코치진들에겐 엔트리 사전유출, 프로게이머에겐 고의로 경기를 질 것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2군 선수들이나 연습생에겐 출전하는 선수의 리플레이 파일을 빼돌릴 것을 요구했다.

승부조작에 매수된 프로게이머는 경기 전 전술을 미리 상대방에게 알려주거나, 경기 초반 우세를 유지하다 후반에 방어를 허술하게 해 역전되는 등의 방법을 주로 이용했다.

박씨와 김씨는 이러한 수법을 통해 11차례 승부를 조작하고 e스포츠 전문 불법 도박사이트에서 거액을 배팅해 총 1억4000만원의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브로커 박씨에게 징역 2년, 프로게이머 마재윤과 원종서에게 각각 징역 1년6월과 징역 2년형 및 추징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지난해 5월에는 K리그가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같은 달 창원지검 특수부는 프로축구 선수들을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게 한 뒤 스포츠복권에 거액의 돈을 걸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브로커 2명과 선수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이 검찰에 소환되자 K리그 비리가 속속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 중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김동현의 승부조작 개입은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결국 같은 달 30일 프로축구연맹은 승부조작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승부조작 연루 의혹을 받던 정종관이 자살하고 6월 연맹이 내놓은 자진신고제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했다.

승부조작 죄책감에
선수 · 감독 자살

그때까지 승부조작 혐의를 부인하던 공격수 최성국이 자진신고를 했고, 그 외에도 국가대표 출신 염동균과 이상덕 등 각 팀의 간판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지난해 10월에는 이수철 전 상무 감독의 자살까지 불러일으켰다.

창원지검이 K리그 승부조작과 관련해 기소한 전·현직 프로축구 선수는 59명. 지난해 7월 기준으로 K리그에 등록한 내국인 선수 603명의 10%에 이르는 광범위한 규모다.


연맹은 승부조작 관련자를 엄벌하며 후속조치에 나섰고 체육진흥투표권 발행사업자인 국민체육공단도 EWS(Early Warning System·조기경보시스템)을 통해 프로스포츠의 승부조작을 사전에 감지하고 예방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했다.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자진 신고한 최성국은 지난 9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200시간이 선고됐으며 나머지 실형을 받은 선수의 부모들은 ‘축구와 등불’이라는 봉사 모임을 만들어 자식 대신 속죄하고 있다.

불법 토토 사이트
신발 쇼핑몰로 위장

하지만 악성종양은 이들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전혀 제거되지 못했다. 프로축구 승부조작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프로배구에서 사건이 터졌다. 대구지검은 지난달 26일과 31일에 전직 선수 1명, 브로커 1명, 현직 선수 2명 등 총 4명을 구속한 데 이어 지난 8일 현역선수 2명을 추가로 체포했다.

검찰이 지난달부터 수사 중인 승부조작 경기는 지난 2010년 2월23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KEPCO와 현대캐피탈의 경기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8일 체포된 이들은 지난 시즌 경기에서 승부조작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KEPCO와 한국배구연맹은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사과하고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을 규정에 의해 엄격하게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KEPCO 이외의 팀 선수들도 가담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선수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불과 2년 사이에 승부조작 사건이 3차례나 터지며 종양은 간단한 수술로 제거되지 않을 만큼 커져버렸다. 그렇다면 왜 이런 승부조작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걸까? 항상 승부조작 사건의 이면에서는 불법 스포츠 토토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합법적인 스포츠토토(www.sportstoto.co.kr)는 국내 스포츠 6개 종목(축구·야구·배구·농구·골프·씨름)을 대상경기로 하며 이번 승부조작사건이 발생한 배구종목에서는 2경기 또는 3경기의 경기별 최종 세트스코어와 1세트 점수차를 맞히는 '스페셜게임', 1경기의 1~3세트 세트별 승리팀과 점수차를 맞히는 '매치게임'을 배팅 상품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방문한 모 불법 토토 사이트에서는 e스포츠 리그를 포함한 국내 스포츠 종목과 해외 경기를 대상경기로 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경기결과 조차 알기 힘든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스라엘 내부 리그나 2부·3부 리그까지 대상경기로 삼고 있다.

불법 토토 사이트, 2~3일 한 번꼴 도메인 변경
프로배구 승부조작, 전·현역선수 브로커와 손잡아

배팅 상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농구에서는 '첫 3점슛' '첫 리바운드', 축구에서는 '첫 득점 및 실점', 배구에서는 '첫 블로킹' '첫 서브에이스'를 하는 선수를 맞히는 상품이 존재했다. 합법 토토 사이트에 비해 손쉽게 승부조작이 가능해 보였다. 적중 결과도 경기가 끝난 뒤 30분 내에 나와 중독성이 강하고 첫 금액 충전에 보너스 포인트를 얹어 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 스마트폰 전용 사이트까지 개설해 사람들의 접근성도 높였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2~3일에 한 번꼴로 도메인주소와 입금계좌 변경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사이트의 개설과 폐쇄를 반복하며 교묘하게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 있다.

또 다른 불법 토토 사이트는 첫 접속 페이지를 여성 신발 온라인 쇼핑몰로 위장하고 추천인이 없으면 가입조차 할 수 없도록 했으며 전력차가 확실한 게임에서는 강팀에게 핸디캡을 주는 방식으로 배팅이 몰리지 않게 해 금액이 분산되도록 유도하는 상품도 존재했다.

국내에 서버를 두고 있는 불법 배팅 사이트의 경우 배팅금액은 100만원, 배당금액은 300만원을 넘지 못하지만 문제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사이트다. 이런 해외 사이트의 경우는 금액 제한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경찰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적발도 쉽지 않다.


지난 1월에는 유치원 홈페이지로 위장한 불법 배팅 사이트를 운영해온 부산 지역 폭력조직이 검찰에 적발됐으며, 이 사이트에서만 125억원 규모의 불법 배팅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지난해 6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불법 도박시장의 전체 규모는 50~70조원으로 파악됐다. 손쉬운 접근성을 앞세운 불법 온라인 배팅 사이트는 10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 배팅 사이트의 시장 규모는 체육진흥투표권의 연간 시장 규모 1조8000억원을 훌쩍 넘는 12조7400억원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일확천금의 유혹에 불법과 탈법, 매수와 조작이 녹아든 '한탕주의'의 여파로 보인다. 또한 경기장 안에서는 페어플레이를 외치면서 밖에서는 더티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일부 선수들도 이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인 프로야구는 오는 4월 개막전을 앞두고 있다. 최근 프로야구에서는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플레이를 보일 경우 가차 없이 교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승부조작이 비교적 아려워 보이지만 여러 명의 선수가 가담하면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2008년 대만 프로야구에선 감독과 선수들이 연루된 승부조작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있으며 메이저리그에서도 1919년 월드시리즈 경기에서 이른바 '블랙삭스 스캔들' 사건이 발생했다. 1980년대에는 메이저리그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 피트 레즈가 자신의 팀에 불법 배팅을 하다 적발돼 영구퇴출이라는 직격타를 맞았다.

야구·농구 승부조작
자유롭지 않다

내달 시즌을 마감하는 프로농구도 승부조작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농구의 경우 비교적 작은 코트에서 이뤄지는 경기이다 보니 승부조작 기미가 금방 눈에 띄지만 지난 2006년 동부 양경민이 자신의 경기 스포츠토토를 불법으로 대리구매 해 36경기 출장정지와 300만원의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불법 스포츠 배팅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제는 불법 스포츠 사이트를 통해 배팅만 해도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문다.

또 불법 배팅 사이트 운영자와 승부조작 가담자의 경우는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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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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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