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10)

“적을 어르고 달래서 안심시켜라”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안심시키며 시간 번 뒤 소멸시효 원군 기다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보증 책임 면하게 돼

“자아, 그럼 이렇게 해봐요. 첫째, 지금부터 어떠한 경우라도 돈 한 푼도 지급해서는 안 되고, 둘째, 각서나 어떠한 증서를 작성해 주어서는 더욱 안 돼요. 셋째, 상대방이 녹음을 할 경우를 대비해서 보증금액에 대해 인정한다거나 채무를 승낙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돼. 넷째, 그 남자들에게 전화가 오거나 찾아 올 경우 모든 요구를 들어 주는 체하며 안심을 시켜야 해요. 다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채무를 인정하는 어떠한 말이나 증거를 남기는 서류를 작성해서는 안돼요. 다섯째, 그 남자들에게 전화가 와서 독촉을 하면 ‘예예’ 하며 내일 모레쯤 한번 만나서 얘기 하죠, 하는 등 적당히 시일을 끌다가 최종적으로 안 되겠다 싶으면, 지금 만나봐야 돈이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서로 감정만 상하지, 어차피 돈이 있어야 해결될 것이 아니냐? 조금만 시일을 주면 돈 나올 곳이 있는데 그때 가서 한번 얘기를 나눠보자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방 남자들은 약이 오르다가도 딱히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잘만하면 돈을 받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살살 구슬리며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할 거야. 그러면 설득을 당하는 체 하는 등 그렇게 시일을 끌다가 더 이상 지연술이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마치 코너에 몰려 어쩔 수 없이 고백 하는 것인 양 말하는 거야. 정기예금을 탈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고, 얼마 동안만 기다려 줄 수 없냐는 식으로 말하는 거지. 그러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만약에 채무를 인정할 경우 일정금액을 감액해 줄 수 있냐고 반문 하는 거야. 상대방이 믿을 수 있게 안심시킨다, 이거야. 그렇게 하여 최종 34일을 넘겨야 해요.”
그녀는 필요한 말들을 메모하면서 이해되는 부분에 가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다가 그래도 여전히 뭔가 불안하듯 물었다.

눈치 채도 본전

“아니, 내가 서툴게 하다가 상대방이 눈치를 채면 어떡하지?”
“뭐, 눈치 챌 것이 있겠어? 그리고 설령 눈치 챈다 해도 지금보다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우리 차 사장이 손해 볼 것은 없잖아? 채무를 인정치 않고 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조만간 돈이 생기면 그때 가서 대화를 해보자고 하는데, 기다리지 않고 굳이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며 골치 아프게 법으로 조치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모든 게 심리전이라고 보면 되지. 상대방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처럼 하다가 시간을 벌어 소멸시효라는 원군을 기다려 보증 채무를 면책 받으면 된다 이 말이야. 어설프게 하는 연기가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진실로 비쳐질 수가 있지 않겠어?”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마치 이번 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하달받기라도 하듯 말했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 시효가 완성되고 난 다음부터는 마음대로 하라고 나자빠지는 거지. 그래도 곤란하면 상황을 봐서 차 사장이 채무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채무부존재소송을 거는 거야. 아니면 그 사람들이 약속어음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면 소멸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돈을 지급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거야.” 
“내가 이길 수 있는 거야?”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문제는 이 방법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거지. 아니면 보증 채무금을 갚아주든지?”
“내가 돈 갚을 능력이 있다면 왜 찾아와서 귀찮게 하겠어? 사실 나 이혼 직전이야. 지난번 하던 의류사업이 부도가 나서 이미 신용불량이 되어 죽을 입장이야. 그 여파로 남편도 매일 빚쟁이들한테 시달리고 있는데, 이번 보증 채무까지 알게 되면 내가 온전하겠어?”


“나 역시 차 사장이 친구에게 당해 억울한 보증을 섰고, 지금 처한 상황이 그렇게 어렵다고 하고, 무엇보다 그 남자들은 내가 보기엔 선의의 정당한 채권자들이 아닌 악의적인 진상꾼들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이런 방책이라도 조언을 해주는 거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그 남자들이 집으로 찾아와 남편을 만난다거니 뭐니 하기에, 마음대로 하라고 하며 만약 찾아오면 경찰에 신고한다면서 화를 내니까, 그때부터는 말들이 부드러워지던데. 아마 뭔가 켕기는 게 있긴 있나봐?”  
“사실 원칙적으로 한다면 남의 돈을 빌렸거나 책임지기로 했으면 갚는 게 도리 아니겠어?” 하고 나는 그녀의 채무불감증을 지적하듯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정색을 하며 도리어 역정을 내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돈을 빌렸거나 그 돈을 단 한 푼이라도 받아썼다면 당연히 갚아야지. 아무런 책임과 문제가 없다고 하며, 괜히 나를 끌어넣어가지고 보증을 세워 덮어씌운 거야.  뭐 그 사람들은 잘한 건가? 아무 상관도 없는 남자들이 내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인 최 뭔가 하는 여인의 사주를 받아 나를 협박하며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하고 억울해 죽겠다는 몸짓을 했다.

보증에 운명이 달라져

“그래 알았어요. 어쨌든 한판 승부를 건다는 각오로 잘해보시고, 나머진 그때 가서 돌아가는 사정을 잘 살펴 대처하도록 해. 그리고 상황변동이 있으면 연락을 주고.”
“알았어, 오케이! 그래도 동지가 최고네. 아무런 대책 없이 밤잠을 설쳤는데 오늘부터는 편히 잘 수 있겠어. 임 이사, 바쁜데 좋은 얘기 정말 고마워. 많은 고민을 하다 찾아왔는데 역시 찾아오길 잘 했네.”
그 말을 끝으로 밝게 웃는 모습을 보이며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 후 그녀가 전하는 말로는 그 남자들이 아마추어인지 모르지만, 별 수 없이 그녀의 지연술에 말려 약속어음 소멸시효인 3년을 넘기고 말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 남자들은 사실을 모른 채 말로만 협박이 아닌 뭔가 보여주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들에게 돈 갚을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자 그제야 ‘아뿔싸’ 하고 화를 내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편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고 하며 안심을 시켰다.
찾아온 남자들은 화를 내며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 다음 날 약속어음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답변서를 제출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보증 책임을 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게 연신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가끔 차 사장을 생각할 때면 ‘사람이 한 번 인정에 이끌려 보증을 잘 못 서게 될 경우 자신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보증을 서준 그녀보다 친구의 우정을 믿고 자신을 위해 보증을 선 친구를 배신하고 책임을 넘기는 사람과 더불어 무책임한 사회로 변모해가는 현 세태가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 컨설팅 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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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