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게이들의 '놀이터' 이태원을 가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1.27 10: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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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가 어때서요?" '이태원 프리덤'

[일요시사=한종해기자] “자기~ 남친 있어?” “어 나 파트너 있어.” 이태원에 위치한 게이클럽 안에서 나눠지는 대화 중 일부다. 게이(남성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는 주점이 밀집한 이태원은 게이들을 위한 해방구다. 이태원역을 가로지르는 길에 위치한 소방서를 지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게이 업소가 모여 있는 ‘게이힐’이 나온다. 종로와 신당동을 이어 이태원이 게이들을 위한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게이뿐만 아니라 이성애자와 여성들도 자주 찾는다는 이태원의 게이힐을 <일요시사>가 직접 찾아 취재했다. 

이태원 '게이힐', 편견 벗어난 '소수민족' 해방구
18년 된 게이클럽 역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난 14일 오후 11시께. 게이들의 모임이 열린다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소방서 근처 한 클럽. 클럽을 주변으로 펼쳐진 미로 같은 골목길에는 곳곳에 게이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날리고 있었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인근 도로까지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짧은 머리에 가죽바지를 입은 20대 초반의 남성, 면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30대 중반 남성 등 대부분이 남자였다.

여성 입장료,
남성의 두 배

입장료는 남성 1만원, 여성은 2만원이었다. 보통 클럽의 경우 여자는 돈을 덜 받거나 공짜인 것과는 정반대의 경우. 게이들이 주가 되는 클럽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종이티켓을 받아 손목에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음악에 맞춰 수백 명의 남자들이 서로 뒤엉켜 춤을 추고 있었다. 외국 남성들과 한국 남성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여성들의 모습도 보였다. 남성들이 많아 우중충할 것 같았던 생각과는 다르게 생기가 넘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40여 평의 무대를 가득 메운 수백 명의 남성들은 음악에 온몸을 맡긴 채 자신의 끼를 내뿜고 있었다. 윗옷을 벗어던지고 춤을 추는 이도 있었고, 서로를 끌어안거나 상대의 몸을 쓰다듬으며 춤을 즐기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한편에 마련된 바에는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이 맥주와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는지 살피거나 작업을 거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동성이 있으면 둘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칸막이가 쳐져있는 공간도 있었다. 클럽 내부가 수많은 무지개 빛깔의 깃발들로 치장되어 있고 남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90% 이상이라는 것 말고는 여타의 클럽과 같아 보인다. 이곳이 바로 이태원 '소수민족'의 놀이터다.

바에서 홀로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외국 남성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 남성은 이태원과 인접해 있는 용산미군기지의 군인이란다.

이 남성은 "가끔 미국의 자유분방함을 느끼고 싶을 때 이곳을 찾는다. 여기서는 대부분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별다른 거리낌이나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클럽을 찾은 외국 남성 중 상당수가 주한미군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건장한 체격의 외국 남성들이 간혹 보이는 여성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며 '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 남성은 또 "솔직히 누가 게이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마음껏 즐기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누가 알겠는가"라며 자리를 피했다.

기자가 미군과 대화를 나두던 도중 입구를 통해 8명의 여성들이 클럽으로 입장했다. 전체적인 성비로 봤을 때 극히 일부분이었지만 여성들의 입장도 꾸준했다. 두 배 이상 차이나는 입장료도 이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게이클럽을 즐겨 찾는다는 이수연(24)씨는 "집적대는 남자들이 없어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다"며 "여자들에겐 어떤 유흥가보다 안전 한데다 귀찮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함께 온 신국화(24)씨도 "게이들 중에는 젊고 잘생긴 '훈남'들이 많아 '눈요기' 하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이클럽도 역시 클럽인 걸까? 이런 여성들을 노리는 남성들도 있었다. 호기심에 게이클럽을 찾았다는 조영일(29·남)씨가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씨에게 다가왔다. "옆에 남성분과 일행이냐?"라고 물었고 기자가 아니라고 하자 이씨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곳엔 반드시 남자들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과 게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게이클럽을 찾는 게이들은 이들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한 게이커플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 커플은 "게이들을 위한 공간에서 게이들이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데 불쾌하다"며 "안 그래도 많은 사람들 때문에 공간도 부족한데 인구밀도를 쓸데없이 높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자가 있는 곳엔
반드시 남자도 있어

이어 "이 클럽을 찾는 이유가 동성애자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주기 때문인데 우리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게이들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특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와 대화를 마치고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클럽을 나간 이 게이커플을 보다가 문득 게이커플의 남녀역할이 궁금해졌다. 클럽의 종업원을 만나 게이에 대한 '모든 것'을 들어봤다.

이 종업원의 말에 따르면 게이커플 사이에도 분명히 남녀가 존재한다. 게이커플의 성관계에서 남성 역할을 하는 사람을 '때짜', 여성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마짜'라고 한다. 성관계에서 마짜는 때자보다 비교적 편하고 쾌감이 크기 때문에 게이 중 상당수는 마짜다. 한마디로 여성의 역할을 하는 게이들이 많다는 것.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서 성관계를 할까? 이 종업원은 "모텔을 이용한다. 하지만 게이들은 대부분은 재력가가 많다"며 "결혼 생각이 없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보다는 팍팍 쓰는 경향이 있어 호텔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편하게 놀려는 ‘여자’, 그를 노리는 ‘남자’
보디빌더 고용한 게이전용 남성마사지

이어 그는 "게이들 사이에서도 외모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한다"며 "잘생기고 젊은 게이들은 우대받고 못생기고 뚱뚱한 게이들은 상대적으로 천대 받는다"고 덧붙였다.

취재를 마치고 클럽을 빠져나온 시간은 새벽 1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반짝이는 네온사인 덕에 대낮을 방불케 했다. 거리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으며 술에 취해 길바닥에 앉아 있는 남성을 꾀려는 게이들도 있었다. 지나가는 남자들을 붙잡고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는 게이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이 업소가 위치한 골목은 통상 '게이힐'로 불리고 있다. 이태원역 3번 출구를 통해 나와 소방서가 있는 곳으로 걷다가 소방서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아스팔트 바닥에 '진입금지'라고 적혀있는 곳부터 '게이힐'이 시작된다.

이곳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P클럽, Q클럽 등 게이클럽이 있고 게이들만 출입 할 수 있는 게이바가 있다. 바로 옆 골목에는 트렌스젠더들을 위한 바가 있으며 아랫골목에는 예전 미군들을 대상으로 영업했던 집창촌 후커힐이 있다.


남성역할은 ‘때짜’
여성역할은 ‘마짜’

골목을 따라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게이들을 위한 남성전용마사지 업소도 있다. 이 업소는 보디빌더들을 마사지사로 고용해 인기가 높다 특히 모 업소의 남성 '고고쇼'는 게이들 사이에서 인기폭발이다.

이태원의 게이골목은 금·토·일에만 화려하게 빛나며 새벽 2~4시 사이가 성황이다. 불이 켜지는 3일 동안 이태원 게이골목을 찾는 게이들은 업계 추산 주당 약 1000명에 이른다.

클럽에 출입하기 위해 정해진 입장료를 내고 티켓을 구매해야 하며 티켓이 찢어지거나 분실하지 않는 이상 하루 동안은 계속 출입이 가능하다. 일반 클럽과 마찬가지로 티켓을 이용해 술이나 음료 한 잔을 구매할 수 있으며 더 원할 시 추가비용을 내고 사야한다.

게이클럽의 사장과 종업원들은 모두 게이다. 남성 이성애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클럽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고용된 사설경비업체 요원들뿐이다. 이곳에서는 '소수민족'이 이성애자인 것이다.

이태원의 또 다른 게이문화는 게이바다. 게이바는 클럽과는 다르게 조용함으로 승부한다. 이곳을 찾는 게이들은 상대와 대화를 나눌 뿐이며 이성애자나 여성들은 출입하지 않는다.


이태원에 있는 일반 바도 술집으로 영업하다가 새벽시간이 되면 게이클럽 분위기로 바뀌는 곳도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태원 뒷골목이 게이들의 '놀이터'가 됐을까? 이태원 게이클럽의 역사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경 이태원에 첫 게이클럽 '파슈'가 오픈했다. 이때까지 모든 게이업소는 종로와 신당동에 모여 있었으며 대개 단란주점형식이었던 것에 반해 파슈는 춤을 추며 보다 분방한 섹슈얼리티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파슈는 같은 해 가을 경 '사장이 돈을 갖고 튀었다'는 풍문만을 남긴 채 문을 닫았다.

이듬해 '트랜스'라는 이름의 게이바가 입성했으며 6월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으로 클럽이 오픈했다. 스파르타쿠스는 근대 클럽의 형태로 20대 초반의 게이들이 급증하면서 이태원은 삽시간에 새로운 게이의 메카로 떠올랐다. 2012년 현재 이태원에는 30여 곳의 게이업소들이 성업 중이다.

18년 전부터 시작된
이태원 게이클럽

이태원은 용산미군기지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었다. 그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성소수자들에게 관대하다 보니 게이들이 자연스럽게 이태원을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에서 오랜 기간 장사를 해왔다는 한 노점상 주인은 "트렌스젠더든 게이든 누가 지나가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며 "그럴 수도 있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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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