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장수마을의 꿈’

달동네 골목골목에 꽃이 피니 무지개가 뜨더라!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한국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먹고 살 길을 찾아 서울로 찾아 들었다. 가난한 이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조금 더 싼 집을 찾아 달동네로, 변두리에 터를 잡았다. 산비탈의 빈터였던 서울 성북구 삼선동 서울성곽 아래에도 집들이 하나 둘 돋아났다. 그로부터 40여 년. 낡아버린 추억을 털어내듯 많은 달동네들이 재개발에 떠밀려 자취를 감췄다. 으리으리한 아파트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성곽아래 위치한 ‘장수마을’은 세월의 흔적을 품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장수마을의 골목골목 사이로 주민들의 꿈이 익어가고 있었다.

7년째 진척 없는 재개발 ‘주민들 스스로’ 가꿔나가
골목정원 만들기, 벽화그리기, 빈집 고치기 등 활동

장수마을은 낙산자락의 서울성곽을 등지고 미아리 방향의 가파른 비탈에 자리 잡은 작은 달동네다. 주택 대부분이 40~50년이 지난 노후주택이며, 3평 미만의 쪽방 가옥들이 매우 많다.

산언덕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탓에 도로는 좁고 가파르며, 보행환경 역시 매우 열악하다. 천과 돌로 엉성하게 얹힌 지붕, 갈라진 외벽, 도시가스는 인입되지 못하는 등의 기반시설이 미비하여 한눈에 봐도 주거지 정비 사업이 절실한 곳이다.

현재 장수마을엔 150채 314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마지막 달동네
그리고 재개발의 그늘

장수마을은 지난 2004년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계획에 따라 재개발예정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숨을 고르며 올라야 할 만큼 고지대에 있는데다가 마을 양쪽에 자리한 서울성곽, 삼군부총무당 등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일반적인 재개발 예정구역과 비교해볼 때 용적률과 층수의 제약조건이 많다.

산비탈의 높은 경사도와 층수 제한으로 인해 충분한 건축면적을 확보하기 어렵다. 때문에 일반 분양분이 거의 나올 수 없어 분담금을 낮출 수 없고,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토목공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52년째 장수마을에 살고 있는 김용주(59·남)씨는 “2004년에 일부 주민들끼리 모여 추진위 구성을 시도하고, 조합원 분담금 경감을 위해 7층 이하의 층고제한을 12층까지 요구했으나 실패했다”면서 “2006년 이후로는 포기상태로 주민들의 재개발 관련 활동이 없었다”고 말했다.

민간투자자들 역시 손을 놨다. 고층아파트를 지어 개발이익이 남아야 시공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조합설립추진위원회도 구성하고 구역지정을 위한 노력도 가능하지만 장수마을은 일부만 7층 정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 때문에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가능성이 낮다.

장수마을의 또 하나의 난제는 바로 체납된 국공유지 변상금(토지점용료)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60~70년대에 빈땅, 싼집을 찾아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정착한 사람들이다.

빈터를 찾아 지은 집들이니 구역 내 64.3%가 국공유지에 대한 불법점유상태이고, 92년도부터 사용료 부과정책에 따라 변상금이 부과되고 있다. 최근에는 공시지가가 많이 올라서 1년에 300만원~600만원 정도의 변상금이 부과되고 있고, 주민의 대부분이 체납하고 있는 상태다. 

자기 땅을 갖지 못하고 국공유지 무단점유자로서의 고단한 삶이 50여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마을 주민 김성녀(59·여)씨는 “좁은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며 둘이 살고 있는데 1년에 변상금이 몇 백만 원씩 나온다. 그마저도 안내면 집으로 딱지가 날아오는데 미칠 지경이다”라며 “50년간 살아온 땅인데 갑자기 불법거주라며 변상금을 물리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건축물은 등기가 돼 있어 불법 상태는 아니지만 토지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주택의 신축, 증축, 개축은 불가하며, 개보수에도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어떠한 정비방식을 선택하더라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공유지를 불하받아야 하지만, 노인가구가 많고 소득 100만 원 이하인 가구가 40%에 달하는 장수마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이홍분(76) 할머니는 말은 가슴에 와 닿았다.

“나 살아있을 동안만이라도 그냥 이대로 놔뒀으면 좋겠어. 혼자 사는 노인이 돈도 없고 갈 곳 도 없는데 쫓겨날 바에야 재개발이고 뭐고 난 안 되는 게 나아. 사람 사는 게 이렇게 힘들어…. 나이가 들어도 방 한 칸 가지고 산다는 게 이렇게 복잡해.”

사람·동네·골목·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그렇게 7년이 지났다. 언제 헐릴지 모를 ‘죽은 동네’로 불리던 장수마을엔 어두운 그림자 대신 새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장수마을 주민들이 쫓겨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활여건을 개선해 나가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 나가고자 한 것이다.

그 첫 번째가 ‘텃밭 가꾸기’이다. 마을 주민들은 집집마다 옥상이나 담벼락, 길모퉁이를 가리지 않고 자투리 공간마다 화단을 만들거나 화분을 놓아 화초를 가꿨다.

쓰레기로 방치됐던 공터를 치우고 장미덩굴을 심었다. 주민들은 땅 한 뼘도 그냥 놀리지 않고, 비닐하우스까지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재개발예정지가 되면서 급속도로 황폐해진 마을에 ‘다시 이곳을 가꾸고 살자’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이외에도 장수마을 주민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 골목 디자인에 대해 논하고, 직접 집수리를 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장수마을 골목 곳곳을 어떻게 가꿔나가면 좋을지, 주민쉼터는 어떻게 가꿀지 등에 대해 토론하는 한편, 계절이 바뀔 때면 이를 대비해 집수리 교실에서 그 대비법을 배우고 실습하는 시간도 가졌다.

외부의 도움으로 ‘희망의 벽화 그리기’도 진행됐다. 한성대 예술대학 소속 학생 100여명이 장수마을의 담벼락과 계단에 그림을 그리는 봉사활동을 한 것이다. 학생들은 주민의 의견을 묻고서 ‘꿈을 그리는 나무’ ‘동심’ ‘포도 넝쿨’ 등을 주제로 20여 가구 담벼락 등에 벽화를 그렸다.

낡고 위태로운 환경 개선하여 사람 사는 동네로~
“낡았다고 엎어버리는 행태에 경종 울리는 장소되길”


이러한 노력으로 최근에는 장수마을의 경사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다양한 집의 생김새, 벽화를 찾아 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올해 초에는 성북구로부터 장수마을이 ‘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장수마을 대안개발연구회의 박학룡씨가 ‘동네목수’라는 마을기업을 만들어, 건설업 일용직을 하던 주민들을 고용해 마을 보수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장수마을의 ‘동네목수’는 방치된 빈집을 고쳐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만들고, 수리가 필요한 집을 고치는 등 동네 곳곳을 가꿔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 성북구 관계자는 “난관에 봉착해 있던 장수마을의 재개발에 대한 대안으로 주민 주도의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배경을 밝히며 “주거환경이 열악한 장수마을의 독거노인, 저소득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우선 대상으로 집수리사업을 전개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기로 했으며 나아가 벽화사업, 상자텃밭 운영 등을 통해 주민주도의 지역공동체를 형성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북구 장수마을은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등 개발위주의 사업이 아닌 주민주도의 사업 시행을 통해, 원주민이 안착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마을기업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 된다”고 전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꿈꾸다

옥탑으로 올라가는 좁디좁은 계단, 주황빛 빨랫줄에 나란히 걸어놓은 옷가지들,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

장수마을은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직도 시골의 정취와 인정이 남아 있는 곳이다.

휴일이면 골목골목 집집마다 문을 열어 놓고 한 집처럼 서로 왕래하고, 길가 나지막한 옥상에는 이 집 저 집 빨래를 같이 널기도 한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환갑이 넘은 할머니가 이 마을로 시집올 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할머니가 시집올 당시 중학생이던 옆집 아이는 지금 어느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누님 동생하며 식구처럼 지낸다.

골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누구 집 자식이든 친손자처럼 너나없이 보살펴주고 떠돌이 개와 고양이에게도 모두가 주인이 되 주는 곳. 이것이 장수마을의 풍경이다.

분명 장수마을이 사람이 살기에 낡고 불편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엔 따뜻하고 투박한 손길이 있고, 켜켜이 쌓아온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다. 연출로는 결코 모방할 수 없기에 그냥 이대로 장수마을을 남겨두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수익성 문제로 재개발이 지연되는 틈을 타, 장수마을엔 주민들의 꿈과 함께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다.

장수마을의 이런 변화가 마을을 갈아엎고 살던 사람을 ?아내는 개발의 시대에 경종을 울려 낡고 허름한 동네도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 천천히 고쳐나가면 더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도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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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