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유경선 유진그룹 회장 꺼지지 않은 갈등의 불씨

한손은 맞잡고 한손은 칼잡고 ‘위태~위태’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선종구 회장 개임안을 놓고 대립해온 하이마트와 유진그룹이 극적으로 합의했다. 주총이 시작되기 불과 10분 전에 이뤄진 일이다. 양사는 기존 ‘공동대표제’에서 유경선·선종구 ‘각자대표제’로 바꿔 하이마트를 운영하기로 했다. 표면상으론 훈훈하게 갈등이 봉합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실상 ‘종전’보다 ‘휴전’에 가깝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에 선 회장과 유 회장은 결단을 내렸다. 최초 ‘합의’에서 지분 전량 매각으로 방향을 튼 것. 그러나 재계는 갈등의 불씨가 여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으리란 이유에서다.

공동대표제서 각자대표제로 바꾸는 데 전격 합의
선 회장 영업·기타 업무 총괄…유 회장 재무 전반

유진그룹과 하이마트는 지난달 30일 유경선 회장과 선종구 회장이 기존 공동대표제에서 각자대표제로 체제를 바꾸는 데 합의했다. 유 회장이 하이마트의 재무 전반을, 선 회장이 영업과 기타 업무를 총괄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오후 6시에 유진그룹 본사에서 열린 이사회에서는 각자대표제에 따른 업무 분장을 논의하고 최종 확정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열린 주총 안건에는 선 회장의 개임안이 예정돼 있었다. 유진그룹은 주총에서 임기만료를 앞둔 유 회장을 하이마트 이사로 재선임한 뒤 선종구 대표 개임안을 통과시켜 유경선 회장 단독대표 체제를 계획했었다. 그러나 주총 시작 10분을 앞두고 유경선·선종구 각자대표제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최대주주와 설립자 간 경영권 다툼은 일단 봉합됐다.

주총 시작 10분전
각자대표제 합의

하이마트 비상대책위원회는 공동대표제 유지 합의에 대해 “하이마트 발전과 주주 이익을 위한 현명한 결단을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유진그룹 측은 “하이마트 최대주주로서 현상황을 원만히 수습하고 정상화할 수 있도록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를 도출했다”고 말했다.

이번 갈등은 그간 선 회장 단독경영 체제를 유지해 오던 중 유진그룹이 돌연 지난 10월6일 이사회에선 유 회장을 하이마트 공동대표에 선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유진그룹 측은 “국내외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하이마트가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으로 확장하는 ‘글로벌 하이마트’ 전략을 추진하는 시점에서 하이마트에 그룹 차원의 힘을 보태고 최대주주로서 책임경영에 앞장서겠다”고 공동대표제 선임에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 유진그룹이 계약 당시의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은 본격화 됐다. 콜옵션 대상은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의 4분의1인 6.9% 규모. 유진기업이 현재 보유한 31.34%를 더하면 지분은 38.24%까지 늘어나 2대 주주인 선 회장과의 지분율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현재 선 회장이 갖고 있는 하이마트 지분은 17.37%이고, 아들 선현석씨 등 우호지분을 모두 합쳐 27.6%인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최근 유진그룹이 하이마트 측에 선 회장을 해임하고 유 회장을 자리에 앉힌다고 통보하면서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이를 위해 임시이사회 장소도 당초 서울 대치동의 하이마트 본사에서 공덕동 유진기업 사옥으로 바꿨다. 홈그라운드에서 일전을 치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후 양측은 기관투자가들의 중재로 대화에 나섰다. 그러나 선 회장이 “유진그룹이 경영권을 보장했다”는 내용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표 대결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제기됐다.

선 회장은 유 회장과의 표 대결에서 승산이 크지 않았다. 기존에 확보하고 있던 지분 차는 물론 주총 표 대결을 앞두고 벌인 우호지분 확보 경쟁에서도 유 회장이 크게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일단 표 대결이 진행되면 유진그룹이 하이마트를 집어삼키리란 게 업계의 견해였다.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뻔했던 이번 사태가 가까스로 수습될 수 있었던 건 하이마트 임직원들의 강한 반발이었다. 하이마트 임직원들은 비대위를 구성, 유진그룹이 일방적인 경영권 장악을 위한 대표이사 개임 안건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하며 수차례 농성을 벌였다.

비대위는 이사회에서 선 회장이 해임되고 유진이 경영권을 장악하면 하이마트 경영진과 우리사주 조합직원 모두 주식을 전량 매각 처분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심지어는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농성·주식 매각 엄포
사표·법적 대응 까지

이처럼 강경한 반발에도 유진그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하이마트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정당하게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견을 확인한 하이마트는 지난 11월25일 전국 304개 지점 임직원 5000여명이 전원 연차휴가를 내고 하루 동안 사실상 동맹휴업에 돌입하리란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주주와 고객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 휴업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사표제출이라는 강수를 뒀다. 지점장 304명 전원과 임직원 등 총 358명은 비대위에 사표를 전달했다. 비대위는 “유진그룹이 30일 이사회에서 선 회장을 경질하겠다는 안건을 철회하지 않으면 추가로 많은 직원이 사표를 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진그룹은 표결로 갈 경우 선 회장을 대표이사에서 몰아내고 유 회장 단독경영 체제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하이마트 임직원들의 반발과 동맹휴업 현실화 등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유통업체의 경우 대리점과 주요 거래처 관리 등에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해 임직원들이 대거 유출될 경우 회사 경쟁력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유진그룹은 유통업을 운영했던 경험이 없어 직원 유출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이마트가 유진그룹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기업에 돌아올 부메랑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결국 유 회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올해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는 등 성장일로를 걷고 있는 하이마트의 기업가치 훼손을 우려, 한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이번 사태를 수습한 것이다.

갈등 일단 봉합됐지만 경영권 욕심 여전 “불씨 남아”
합의 이후에 대한 우려 끊이지 않자 지분 매각 결정


억지로 악수를 하긴 했지만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갈등을 임시로 봉합했을 뿐 경영권 욕구는 아직 그대로여서 ‘종전’이라기보다 ‘휴전’이라는 것이었다. 그간 유지했던 ‘공동대표’ 체제에서 유 회장과 선 회장이 각자대표로 영역을 나누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는 분석도 나왔다.

복수 대표이사가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는 각자대표체제는 단독경영체제보다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한쪽이 제동을 걸면, 다른 쪽도 돌아가지 않는다. 양쪽이 물밑 경영권 싸움을 계속하며 협조하지 않을 경우, 하이마트의 경영상황이 악화되는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배가 산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단 얘기다. 이 경우 의사결정 지연, 임직원 분열 등의 후유증도 우려된다.

한 재계관계자는 “재무와 영업을 분리해 담당을 정해도 결국 그 둘을 아우르며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는 최고 경영자가 필요한데, 두 회장이 어떻게 이견을 조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 회장과 선 회장은 상호비방으로까지 비화된 이번 분쟁을 통해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다. 하이마트 기업가치 안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은 잡았지만, 상호불신과 감정적 앙금까지 치유된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재계관계자는 “재무와 영업으로 역할분담은 했더라도 각자대표체제 하에서 권한은 서로 중복되고 충돌될 수밖에 없다”며 “주도권 다툼과 나아가 경영권 분쟁은 언제든 재연될 소지가 있어 양측은 사실상 불안한 동거를 시작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합의 이후’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자 유 회장과 선 회장은 결단을 내렸다. 재매각으로 방향을 튼 것. 매각대상은 유진기업과 유진투자증권이 보유한 지분 32.4%, 선종구 회장과 아이에비홀딩스 및 선현석 상무 등 지분 20.76%, 그리고 HI컨소시엄 등이 보유한 지분 등이다. 이는 하이마트 지분의 80%에 육박할 전망이다.

유진그룹 측은 “하이마트의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을 가진 주인을 찾고자 매각을 결심하게 됐다”며 “이것이 하이마트의 가치훼손을 막고 직원을 보호하며, 서로 좋은 감정으로 기억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하이마트 측도 “하이마트의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을 가진 주인을 찾고자 매각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분쟁
언제든 재연”

그러나 업계는 인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시장에 나올 지분은 현재 시가(주당 7만3000원)으로 약 1조3000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여기에 경영권 프미리엄까지 더해져 매각가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여기에 2007년말~2008년 하이마트 매각당시 발생, 나중에 별도로 하이마트가 떠맡았던 부채 8000억원 가량도 고려해야한다.

따라서 언제가 될지 모를 매각시점까진 선 회장과 유 회장이 경영을 맡아야 한다. 여전히 경영권 관련 리스크가 남아있단 얘기다. 업계가 두 회장이 남은 기간 동안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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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