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잘 팔리는 ‘대리부’ 요지경 실태

‘봉사’한다는 대리부들~ 실상은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대리모’와 유사한 형태인 ‘대리부’가 극성이다. 그간 대리모의 실체는 드라마 소재로까지 다뤄지며 심심찮게 들어왔지만 대리부라니 어쩐지 낯설기만 하다. 아마 남성에게 불임의 원인이 있는 경우는 더 쉬쉬했던 사회적 풍토 탓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불임부부 인터넷카페에 대리부 지원 글이 빈번하게 올라오는 등 불법 정자거래가 성행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카페를 통해 불임부부들에게 돈을 받고 정자 공여는 물론 한 단계 더 진화하여 ‘자신의 성적쾌락과 금전해결’이라는 두 마리토끼를 잡기위해 직접적인 성관계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저는 85년생 27살입니다. 사는 곳은 부산이나 출장이 잦은 관계로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각지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재 중소기업에서 인턴 중이며 4년제 대학 졸업반입니다. (대리부)2번째 경험이며 앞전 지원에선 2번 만에 자연수정 되었습니다. 신체적 스펙은 키는 176(cm)이고, 넓은 어깨, 흰 피부를 자랑합니다. 성격은 좋고 공부는 중간 정도…."

불임 부부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카페의 게시판에 지난 3일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의 작성자는 불임남성 대신 그의 아내에게 정자를 직접적인 성관계로 제공하겠다는 대리부 지원자다.

그는 자신의 신체와 성격, 학력, 직업은 물론 과거경험까지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일 말고도 연애시절 전 여자친구들에게 몹쓸 시술을 받게 할 정도로 임신이 무지하게 잘된다”고 강조하며 “이일을 봉사적인 마인드로 행하고 있다. (자연임신) 될 때까지 해드리고 힘이 되고 싶다”며 자신을 어필했다.

직접 성관계(자연수정)로
“내 정자 드려요~”


이처럼 대리부들은 불임 관련 인터넷카페 등지에서 은밀히 활동하고 있었다. 카페 게시판에는 대리부 지원자들의 글로 넘쳐났다. 지원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게시물 제목과 내용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원자가 밝힌 학력은 고졸부터 대학원 재학생까지 폭넓으면서 명문대 재학 및 졸업자, 해외 유학파 등 고학력이 적지 않았다. 직업은 학생, 인턴사원, 영어강사, 대기업 직원, 연구원 등으로 다양했다. 심지어 공무원과 고등학생도 끼어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신체건강하고 임신이잘 된다는 점을 강조했고, 일부는 근육질인 상반신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이들 대리부의 가격은 스펙과 외모·신체적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취재를 위해 불임부부를 가장, 카페에 대리부를 구한다는 글을 남기고 답변을 기다렸다. 다음 날 확인해 보니 대리부 지원자로부터 수십통의 메일과 쪽지가 도착해 있었다.

“임신확률 높인다”며 불임부부 아내와 대리부 직접 ‘성관계’
스펙 앞세운 대리부들 “일주일에 2~3회 관계 가능, 비밀 보장”

서울 소재 공대를 졸업해 전자회로 디자인을 한다는 지원자 A(35)씨는 자기 홍보에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우선 그는 과거 대리부로서의 ‘임무’를 성공으로 이끈 점을 내세웠다.

그는 “지금까지 5번의 자연수정 경험이 있으며 3번은 출산, 1번은 유산, 다른 1번은 도덕적 수치심을 감당하지 못한 예비산모의 포기가 있었다”며 “첫 번째 분은 아들을 낳아 현재 3살이고, 두 번째 분은 6개월 때 안타깝게 유산됐으며 세 번째 분은 작년 11월 딸을 출산하셨고, 네 번째 분은 8개월 전 득남했다”고 말했다.

A씨가 말하는 ‘자연수정 방법’은 꽤 구체적이었다. 그는 심리치료를 병행한 섹스요법과 생리주기를 이용한 섹스요법이 있으며 불임부부가 두 가지 방법 중 선택할 수 있고, 비용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의 방법은 대화를 통해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대리부 기간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처음 당분간은 주 1~2회 정도의 만남을 갖되 관계를 갖진 않으나 대화를 통해 충분한 준비가 됐다고 판단될 때, 생리주기를 파악해 총 5~10회 정도의 관계를 갖는다”며 “이 방법의 비용은 6개월 이내 기준 3000만원이며 계약금 2000만원, 중도금 600만원, 임신진단 확인 시 40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자는 과거 6개월 동안의 정확한 월경날짜를 알고 난 이후 만남 일정을 잡고 관계를 갖는 방법으로 예비산모의 도덕적 수치심과 스트레스 지수에 따라 실패 확률이 있다”며 “비용은 6개월 이내 기준 1500만원이며 계약금 1000만원 중도금 300만원 임신진단 확인 시 200만원”이라고 했다.

끝으로 A씨는 “유산은 자신이 책임져 줄 수 없다”면서도 “확실한 결과를 얻게 되면, 지불 비용이 큰돈이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원자 B(27)씨도 자신이 잘 나가는 대리부임을 강조했다. B씨는 과거 불임부부 가정에 직접 찾아가서 관계를 맺었고 총 6번 시도 끝에 자연수정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입이 부인의 몸 어디에도 닿지 않고 다른 프로세스 없이 단순한 삽입과 사정으로 관계가 이뤄졌다”며 “한 달 후 임신이 안됐다고 다시 부탁이 와서 흔쾌히 시도했고 관계 시 남편분이 새벽에 통닭을 사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고 봉사하는 느낌이었다”고 당시 소감을 전했다. 비용은 2회 관계에 100만원이었다고 했다. 

이들 외에도 현재 국내 최고 명문대학에 재학 중이며 멘사 회원으로 IQ가 155에 달한다고 강조하는 지원자, 저렴한 금액과 철저한 비밀보장을 약속한다는 지원자, 건강한 체질과 준수한 외모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지원자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들이 원하는 가격은 제각각이었다. 최소 30만원부터 ‘자신의 스펙이 대단해 최고의 유전자를 자랑한다’며 최대 3000만원까지 요구해 온 사람도 있었다.

대리부 고스펙 이력?
확인할 방법은 없어…

하지만 대리부 지원자들의 이 같은 이력은 대부분 그들의 ‘말’에만 의존해야 하는 만큼 그 진위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대리부 지원자가 불임부부를 속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거나 성적욕구만 채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단 얘기다.

실제로 취재기자에게 연락이 온 지원자 중 10명 중 3명꼴은 ‘아무 대가 없이 돕고 싶다’고 말해왔다. 서울에 거주하며 자신을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라 소개한 C(38)씨는 “저는 대리부 경험이 없지만 도움이 되고 싶네요. 원하는 바는 없습니다. 비용도 필요 없고요. 저도 가정이 있고, 딸아이가 있기에… 훗날을 위해 남편분이 모르셔도 되고요. 원하는 바를 알려주시면 따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원자 D(21)씨 역시 자신을 “술담배를 하지 않는 건강한 몸”이라 어필하며 “돈 10원짜리 하나 바라지 않는다. 맹세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게 불임부부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나섰다’고 설명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한 대리부 지원자에 따르면 과거 모 인터넷 카페에서 이와 관련해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고 한다. 카페를 통해 자신의 ‘빼어난 스펙’을 자랑하는 한 남성이 무료로 정자를 공여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는 각종 시도에도 임신실패로 심신이 지쳐있는 불임부부들에게 접근, ‘봉사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드리고 싶다’며 몇몇 불임부부의 아내와 성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그 후 그가 말한 이력의 대부분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성관계를 위해 거짓 이력을 꾸며냈던 것이다. 사건이 확대되자 피해자를 비롯한 카페 회원들은 공분, 이 발칙한 대리부 지원자를 혼내줄 법적 대응을 준비했지만 모두 헛수고에 불과했다. 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학력, 직업 등 신분을 속인 대리부 지원자가 불임남성의 아내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을 때 적용할 만한 혐의는 강간, 사기, 간통, 혼인빙자간음, 성매매 정돈데 형법상 강간은 피해자가 폭행이나 협박으로 맺은 성관계여야만 성립된다.

여성이 남편 강요로 제3자와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었다면 교사에 의한 강간으로 볼 수 있지만 이는 대리부 빙자 성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또 대리부가 불임부부에게 정자를 내주고 금품을 받지 않았다면 사기나 성매매 혐의도 적용되지 않는다.

간통은 남편이 사전에 동의하거나 사후에 용서하면 적용할 수 없다. 다만 동의한 이유가 대리부의 거짓 이력 때문이었다면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에 해당돼 간통죄를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간통은 남녀를 함께 처벌하는 쌍벌죄여서 대리부와 성관계를 맺은 아내도 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사실상 처벌할 방도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리부 빙자 성관계범죄 늘고 있지만 “형사처벌은 못 해”
부부갈등 원인 및 제2의 범죄 양산 위험, 제도 마련 ‘시급’


결국 사태는 문제의 지원자를 카페에서 영구추방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제2, 제3의 피해자가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이 사건 외에 관계 시 자신의 쾌락을 위해 터무니없는 행위를 요구하거나, 무료로 정자를 제공하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말을 바꿔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럼에도 대리부를 찾는 불임부부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또 자연수정을 통해 정자를 받으려는 부부들 역시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불임부부들이 꼽은 가장 큰 이유는 정자은행의 정자를 사용할 경우 정자 기증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어,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게 불임부부의 공통된 생각이다. 또 인공수정보다 자연수정이 ‘임신확률’이 높고 병원에서 시술 시 돈은 돈대로 들고 몸만 축난다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3번의 시험관 실패로 몸과 마음이 지쳐 대리부를 구하게 되었다는 주부 A(32)씨는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기증받을 경우 남에게 알려지기 쉽고, 이름도 모를 정자를 받아서 키운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었다”며 “또 평생 키울 아이와 관련된 일인 만큼 좋은 유전자를 가진 정자 주인을 직접 만나본 뒤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고, 가능하면 남편과 닮은 이미지 인 사람을 선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도적 미흡함에 불임부부들의 바램이 더해져 현재 대리부의 양산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를 갖고싶다’는 불임부부의 간절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를 막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향후 부부관계의 문제 및 대리부가 폭로를 빌미로 협박을 하거나 계속적인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임부부였고, 결국 아이를 입양했다는 E씨는 “불임부부들이 제발 정신 차리고 가정파탄 날 행동을 자제했으면 좋겠다”며 “여성분들도 급한 마음에 남편 몰래 하려고 하지 말고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 역시 대리부 문제에 대해 이젠 정부가 직접 나서 문제점파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석용 의원은 지난 9월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현재 정자 매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불임부부들이 좀 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을 갖기 원하는 만큼 음성적인 정자 거래는 지속될 것”이라며 “정자 거래를 양성화하고 보상비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한편 정자 기증 횟수제한으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희귀 유전성 질환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정파탄 원인, 범죄양산
가능성 있어 “신중해야”

이렇듯 적잖은 남성들이 ‘직업적 대리부’로 나서면서 병리학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리부 지원자가 하는 말의 진위를 검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임 부부를 속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거나 자신의 성적욕구를 채우려는 대리부들 역시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은밀히 이뤄지는 정자 공여가 더 큰 범죄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확립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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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