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국감 결산] 논란과 화제 ‘결정적 장면 10’

소문난 잔치 볼 것만 많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정감사였다. 올해 국감 역시 논란과 성과, 그리고 여러 가지 볼거리를 남겼다. 국감 본연의 의미와 부합한 의원들이 있는 반면 오히려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된 경우도 있었다. <일요시사>는 10월 한 달 간 펼쳐진 ‘국감 주요 장면’을 모아봤다.
 

2018 국회 국정감사는 지난 10일부터 29일까지 20일간 진행됐다. 국회는 이 기간 동안 국정 전반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며 행정부를 견제·감시하게 된다. 조사 대상이 국정 전반에 해당되다 보니 그 범위가 워낙 광범위하다. 

국감 성적표
A부터 F까지

국회는 그 연유로 분야별 상임위원회를 구성한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각 분야를 맡게 된다. 법제사법위원회에 법조계 출신 의원들이 상당수 포진된 것과 같다. 현재 20대 국회에 18개의 상임위가 있다. 국회의원은 국감에 필요한 서류, 증언, 의견 등을 요구할 권리가 주어진다. 국감의 하이라이트라 볼 수 있는 증인 출석 요구도 마찬가지다.

국감 시즌에 국회를 향한 이목은 여느 때보다 집중된다. 국회의원들은 그간 준비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질의를 이어간다. 여론 형성의 적기인 만큼 행정부 견제에 효과적이고, 본인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그 까닭에 무리수를 두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톡톡한 성과를 내놓기도 한다. 이번 국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해 국감은 첫날부터 때 아닌 고양이 논란으로 떠들썩했다. 사건의 주인공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김진태 의원. 김 의원은 국정감사장에 ‘벵갈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김 의원은 지난 1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서 열린 국무조정실·총리비서실 국감서 우리에 갇혀 있는 벵갈 고양이를 소개했다. 

김 의원은 “지난 9월18일 대전동물원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날 눈치도 없는 퓨마가 탈출해 인터넷 실시간검색 1위를 계속 차지했다. 그랬더니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소집된 게 맞느냐”고 물었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내가 회의 멤버이기 때문에 안다”고 답변했다. 

같은 상임위 소속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이날 오후 국정감사서 “고양이의 눈빛이 상당히 불안에 떨면서 사방을 주시했다”며 “국감장, 상임위장에 동물을 데려오는 것을 금지해달라. 꼭 필요하면 여야 합의 하에 회의장에 데려오기로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국정감사도 화제가 됐다. 선동열 야구 대표팀 감독은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 야구대표팀 선발 논란’과 관련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해당 상임위 소속 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선 감독에게 날선 비판을 이어갔지만 되레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20일간 진행 18개 상임위원회 총출동
대장정 마무리…피감기관에 송곳질의 


선 감독이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일부 선수에게 병역 특혜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대표로  선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 의원은 선 감독의 연봉과 근무 형태 등을 캐물으며 본질서 벗어났다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손 의원은 ‘판공비를 포함해 연봉 2억을 받는다’는 선 감독의 대답에 “KBO 관계자한테 연봉 2억에 판공비는 무제한으로 처리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선 감독이 “전혀 아니다”라고 하자 손 의원은 “더 알아보겠다”며 질의를 이어갔다. 손 의원이 제기한 판공비 의혹은 여기까지였다.

이어 손 의원은 “선수를 관찰하러 현장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선 감독은 “TV로 5경기를 동시에 시청하는 게 더 낫다”고 대답했다. 

프로야구는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경기가 3∼4시간씩 열린다. 게다가 경기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5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현장 관찰보다 TV로 동시에 관찰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손 의원은 “그 우승(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그렇게 어렵다고 다들 생각하지 않는다”며 언성을 높였다. 이 발언이 바로 여론의 역풍이 거세진 결정적 이유였다. 오히려 선 감독에 대한 동정론이 일 정도였다.

이와 달리 이슈를 주도한 의원들도 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한국당 유민봉 의원은 각각 ‘사립유치원 비리 의혹’과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의혹’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번 국감을 통해 사회를 강타한 최대 이슈로 꼽힌다.

한쪽은 역풍
한쪽은 주도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박 의원은 지난 11일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했다. 박 의원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지난 2013∼2017년 동안 감사를 벌인 결과 전국 1878개 사립유치원서 5951건의 비리가 적발됐다고 밝혔다. 

유치원 교비로 원장이 핸드백을 사고, 노래방과 숙박업소 이용비로 쓰이기도 했다. 심지어 성인용품 구입에도 교비가 쓰였다. 사회적 공분이 일었고, 학부모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대응은 강경했다. 한유총은 사태가 발발하자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 사과를 했지만 곧바로 MBC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MBC가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한 것에 대해 ‘시도교육청 감사 결과 공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박 의원에 대한 소송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를 결심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막상 닥쳐오니 걱정도 되고,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면서도 “소송 위협에 굴하지 않고 유치원 비리 해결의 끝을 보겠다”고 정면 대응을 예고했다. 

한유총의 소송 소식에 박 의원을 향한 응원과 후원금이 급증했다.


박 의원은 최근 ‘박용진 3법’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지난 23일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민주당 의원 129명이 전원 이름을 올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 소속 유 의원은 지난 18일 서울시 국정감사서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의혹을 언급하며 포문을 열었다.

지난 2016년 5월 ‘구의역 김 군 사고’ 이후 서울시가 대책으로 내놓은 ‘정부 산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서 재직자의 친인척 상당수가 정규직으로 채용됐다는 것이 골자다. 

유 의원은 해당 의혹을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도 꺼내든 바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해 의혹 제기에 머물렀다. 유 의원은 이후 1년 동안 관련 자료를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 의원이 제기한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의혹 논란은 일파만파로 퍼지는 형국이다. 한국당은 지난 3월1일자로 무기계약직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서울교통공사 직원 1285명 중 108명이 재직자의 친인척이라는 점에 대해 고용세습이라며 비판했다. 

한국당은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민주평화당 그리고 정의당 등과 함께 이번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맷돌부터 
로봇까지

서울시는 감사원 감사가 우선이란 입장이다. 정치공세에 대한 경고도 덧붙였다. 윤준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지난 24일 서울시청 신청사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한 점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판단 아래 의혹들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확실한 검증을 위해 지난 23일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윤 부시장은 “일부 정치권서 가짜뉴스 등을 확대 양산해 진실을 거짓으로 호도하고 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부분에 대해선 분명한 책임을 묻겠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한편 이번 국감에선 눈길을 사로잡는 다양한 소품들이 등장했다. 소총과 로봇부터 한복과 맷돌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절한 ‘퍼포먼스’였다는 평가와 함께 ‘쇼’라는 비판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기정통부) 소속 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과기정통부 국감에 맷돌을 가지고 왔다. 크기가 작은 맷돌이었다. 

박 의원은 맷돌을 보이며 유영민 과기정통부장관에게 “맷돌 손잡이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라며 “어처구니라고 한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당연한 말을 대통령이 하는데 이게 기사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에 이어 같은 당 박성중 의원은 가정용서비스 로봇을 꺼내들었다. LG전자가 올 연말 출시할 제품 ‘클로이’였다. 박 의원은 로봇을 향해 “의원님들께도 인사 한 번 드리자, 헤이 클로이!”라고 말했지만 생각만큼 로봇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로봇이 재차 응답하지 않자 박 의원은 “내가 사투리를 쓰니까 서울 로봇은 못 알아듣는가 보네”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클로이는 인사말을 전했고, 박 의원은 “아주 잘했어”라며 로봇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박 의원은 “국내 산업용 로봇은 근로자 1만명당 531대 수준으로 세계최고 수준이지만 서비스용 로봇은 그렇지 않다”며 질의를 이어갔다.

국감장에 소총이 등장하기도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K-11 복합형소총을 가져왔다. 

김 의원은 “K-11은 내구도와 명중률이 현저히 떨어져 총기로서 기능을 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이제라도 개발을 중단하고 현대전에 필수적인 개인용 무전기와 야간투시경, 주·야간 조준경 등을 보병전투원 전원에게 지급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촉구했다. 김 의원 관계자는 해당 소총을 견착해 조준 자세를 선보이기도 했다. 

문체위 국감에는 한복과 태권도복이 등장했다. 바미당 김수민·이동섭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두 의원은 한복과 태권도복을 직접 입고 국감장에 출석했다.

주목받은 국감 스타는 누구?
다양한 소품·의상으로 눈길

김 의원은 지난 16일 개량 한복을 입고 문화재청 국감장에 나타났다. 이날 김 의원은 “종로구청이 퓨전 한복은 고궁 출입 시 무료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하고 문화재청 가이드라인을 따르겠다고 했다”며 “한복의 기준을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최근 종로구청은 고궁 출입 시 한복을 입고 올 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개량 한복은 혜택 대상서 제외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 의원은 “개량 한복의 아름다움에 많은 관람객들이 경복궁을 찾는다”며 “한복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선 감독에 대한 질의로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손 의원이 김 의원 옆 자리에 앉아있었다. 손 의원 역시 이날 개량 한복을 입고왔다. 유명 디자이너 출신인 손 의원은 패션 개량 한복을 선보였다. 공교롭게도 김 의원 역시 선 감독을 향한 부적절한 내용의 질의로 도마에 오른 적이 있었다. 

김 의원은 당시 문체위 국감서 선 감독에게 무기명으로 처리된 두 선수의 기록이 적혀있는 판넬을 보이며 “누구를 뽑겠느냐”고 질문했다. 두 선수는 오지환 그리고 김선빈 선수였다. 오지환 선수는 당시 제기됐던 선수 선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기록으로 봤을 때 김선빈 선수를 뽑는 게 상식적이지만 대표팀에는 오지환이 올랐다. 문제는 김 의원이 제시한 자료가 작년 통계였다는 것이다. 대표팀 명단 발표는 지난 6월에 있었다. 

김 의원 역시 손 의원과 함께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비판을 받은 두 의원이 나란히 개량 한복을 입고 국감장에 출석한 셈이다. ‘문화적 상상력’을 언급한 안민석 문체위원장의 제안과 한복의 대중적 확산을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야구와 관련된 비판이 꺼지지 않던 시점이라 두 의원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존재감 부각만
부작용도 있어

문체위 소속 이 의원은 지난 18일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12개 기관에 대한 국감서 태권도복을 입고 등장했다. 태권도 공인 9단인 이 의원은 “지난 3월 본회의서 의결한 ‘태권도 국기 지정법’이 오늘부터 시행된다”며 “그것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문화계 산하기관 국감임에도 도복을 착용했다”고 설명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의도 신입생 국감 성적표

지난 6·13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당선된 12명의 ‘국감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재보선에서 당선된 12명은 최재성, 김성환, 맹성규, 윤준호, 윤일규, 송갑석, 송언석, 이상헌, 이후삼, 이규희, 서삼석, 김정호 의원이다. 4선의 최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모두 초선이다. 

여의도 신입생들은 이번 국감서 결정적인 장면을 남기지 못했다. 대부분이 초선인 데다 국감을 준비할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생활 밀착형 정책을 제안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최 의원은 보충역 관리문제, 김 의원은 리콜 조치 대상 장난감의 시중 유통 문제, 맹 의원은 의료사고 등을 지적했다.

송갑석·송언석 의원은 각각 전통시장 소화 설비 문제와 광주 아파트값 문제를, 윤준호·윤일규 의원은 각각 강원도 라돈 수치 문제와 대리수술 의혹을 꺼내들었다.

이상헌·이후삼·이규희 의원은 차례로 도서정가제 점검, 서울 노후 하수관 문제, 교차로 신호등 시간 표시제 등을 제시했다. 또한 서 의원은 동해안 바다 사막화 문제를, 김 의원은 민자 고속도로 요금 문제를 제기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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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