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떨고 있는 지자체장 백태

겉으론 보무당당 속으론 전전긍긍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지사의 혐의는 지난 지방선거 때부터 시작됐고, 당선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이 지사가 선거과정서 불거진 의혹으로 경찰수사를 받게 되면서 몇몇 당선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이 지사처럼 선거 당시 제기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당선인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난 6·13지방선거는 여느 선거 때와 다름없이 혼탁했다. 특히 후보 간 ‘의혹 공방’이 첨예했다. 당선인들은 치열한 선거전 끝에 당선의 기쁨을 맛봤지만 후유증을 남겼다. 선거를 치르면서 고소·고발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선거 이후 수사에 착수했다. 몇몇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일부는 검·경 수사를 받는가 하면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끝나지 않은 선거
고소·고발 난무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사건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건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 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때 이름을 날렸고, 잠룡으로 불리며 대권 주자로 수직 상승했다. 

이 지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며 경쟁력을 과시했지만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났다. 이 지사는 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재기에 성공했다.

이 지사는 당선 이후 성남시장 시절 선보였던 ‘성남형 복지 정책’을 경기도에 안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 지사는 선거 과정 당시 불거진 의혹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지사는 ‘여배우 스캔들’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의혹 등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난 12일 이 지사는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는 의혹에 따른 수사였다. 경기 분당 경찰서는 이 지사의 자택과 성남시청 통신기계실 등 4개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이 이 지사의 친형 의혹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른미래당 성남적폐진상조사특별위원회의 고발에 따른 것이다. 특위는 지방선거가 열리기 3일 전인 지난 6월10일 이 지사를 허위사실 공표죄 등으로 고발했다. 이 지사가 친형 강제 입원 의혹을 부인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지사는 이날 오전 자택을 나서며 “사필귀정을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지사는 “이명박·박근혜정권 때도 문제가 되지 않은 사건인데, 6년이 지난 이 시점서 왜 이런 과도한 일이 벌어지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경찰은 이번 압수수색이 지난 7월 있었던 압수수색의 연장선이라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분당보건소와 성남시정신건강증진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성남남부지사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벌인 바 있다.
 

이 지사는 지난 16일엔 자진 ‘신체검증’에 나섰다. ‘여배우 스캔들’의 당사자인 배우 김부선씨가 제기한 신체 비밀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신체 비밀 논란은 지난 4일, SNS 트위터 등에서 퍼진 김씨와 공지영 작가의 음성파일이 단초가 됐다. 

음성파일에서 김씨는 “이 지사의 신체 한 곳에 큰 점이 있다”며 “법정서 최악의 경우 꺼내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지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진흙탕 선거, 당선 되고도 노심초사
직접 신체 검증…의혹 일축에 안간힘


이 지사는 이날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웰빙센터 진료실서 7분간 신체 검증을 받았다. 신체 검증을 위해 아주대 성형외과·피부과 전문의 각각 1명씩 참여했다. 검증에 참여한 아주대학교 의료진은 “녹취록에 언급된 부위서 점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동그란 점이나 레이저 흔적, 수술 봉합, 절제 흔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용 경기도 대변인은 “오늘 공개검증은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으로 도정이 방해받아선 안 된다는 이 지사의 확고한 결심에 따라 진행됐다”며 “자연인 이재명에게 매우 참담하고 치욕스런 일이지만 공인으로서, 도지사로서 책무를 다하고자 검증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진 만큼 소모적 논란이 모두 불식되길 바란다”며 “이 지사가 차분하게 도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이 지사는 ‘혜경궁 김씨’ ‘조폭 유착설’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지사는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강경 대응하는 모양새다. 경찰 수사에 따라 불가피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과 다소 결이 다르다. 

이 지사는 ‘의혹의 꼬리표’를 잘라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여러 의혹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으면서 도정활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지사가 지난 8일 맞이한 취임 100일에서도 그간의 성과와 함께 각종 논란들이 언급됐다.

당선 후 의혹
수사 받기도

이 지사 외에 지방선거 전후 불거졌던 의혹으로 수사를 받게 된 당선인들이 다소 존재한다. 이 지사처럼 자택 등을 압수수색 당한 경우부터 검찰에 송치되거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는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김진규 울산 남구청장은 공직선거법위반과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자택 등을 압수수색 당했다. 울산지방검찰청 공안부는 지난 13일 오전 수사관들을 김 구청장의 집무실과 남구에 있는 자택 등에 보내 2시간가량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울산시선관위가 지난 4일 김 구청장과 선거사무원 1명, 선거사무소 자원봉사자 2명을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에 따른 조치다. 김 구청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서 당선된 단체장 가운데 전국서 최초로 선관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사례가 됐다. 
 

김 구청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 과정서 선거사무원과 선거사무소 자원봉사자 등에게 선거운동의 대가로 1600여만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따르면 후보자가 자원봉사자에게 선거운동과 관련해 대가를 제공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길 수 있다.

회계책임자가 아니었던 자원봉사자 2명은 지난 3∼5월까지 선거운동 물품 제작비 등 총 140여건과 8700여만원에 이르는 선거비용을 지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구청장은 예비후보 당시 회계책임자를 겸임했는데, 이들이 이를 대신해 선거비용을 지출한 것이다. 

정치자금법(선거비용 관련 위반행위에 대한 벌칙)에 따르면 회계책임자가 아닌 자가 선거비용을 지출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김 구청장에 대한 압수수색 소식이 이어지자 지역 야당은 크게 반발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울산광역시당 김종섭 대변인은 김 구청장의 압수수색이 있던 다음날 논평을 통해 “이쯤 되면 김 구청장의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며 “스스로의 사퇴가 답”이라고 잘라 말했다.

울산시 남구의회 한국당 소속 의원들도 김 구청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안대룡 부의장 등 7명은 지난 16일 남구청 프레스센터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구청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직접 해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부의장은 “이 사태가 길어지면 남구민들은 행정에 불신을 느낄 것”이라며 “김 구청장 혐의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달라”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울산시당은 일단 수사를 지켜보자며 조심스러운 모양새다.

김 구청장은 이 외에도 지난 7월 허위학력 게재 혐의를 받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바 있다. 김 구청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행한 선고 공보와 벽보, 명함 등과 SNS에 허위학력을 공표한 혐의를 받았다.

주택 16채를 소유해 화제가 된 백군기 용인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다가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백 시장을 지난 15일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백 시장에게 유사기관 설치 금지 및 사전 선거운동 혐의를 적용했다. 백 시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지지자 10여명이 참여한 유사 선거사무실을 활용해 유권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등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백 시장은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고 있다. 백 시장은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홍보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백 시장은 올해 5월 ‘세종고속도로에 용인 모현·원삼 나들목을 설치하겠다’고 언론에 알리거나, 선거 공보물에 ‘흥덕역 설치 국비확보’라고 홍보하는 등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공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송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취임 100일
검 들락날락

백 시장은 두 혐의에 따라 경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백 시장은 경찰 조사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유사기관 설치 금지와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적용한 까닭은 전 용인시 간부급 공무원 A씨의 조사를 통해서다. 

A씨는 유사 선거사무실서 활동하면서 용인시민의 개인정보 등을 확보해 백 시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

백 시장은 지난 10일 ‘100일 취임 기자간담회’서 각종 의혹들에 대해 해명했다. 백 시장은 이날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했다. 백 시장은 “흔들림 없이 시정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 사회 일각에선 백 시장을 ‘신(新) 적폐’로 규정하며 비판하고 있다. 지난 2일 출범한 ‘용인시민모임’은 이날 시청 브리핑실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백 시장에 대한 공정수사를 촉구했다. 백 시장에 대한 선거법 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제보자로 알려진 김현욱 전 경기도의원은 이 모임의 상임대표를 맡았다.

시민모임은 이날 유인물을 통해 “백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경찰 조사에서 누락된 부분과 추가 위반 내용에 대한 공정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백 시장의 구속수사 촉구와 법적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 등에 대한 계획도 설명했다. 
 

시민모임은 “민주시민세력, 합리적 진보세력, 야당 등과 연대해 신 적폐세력 퇴진 운동을 펴겠다”며 향후 백 시장에 대한 적극적 비판 활동을 예고했다.

조인묵 양구군수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검찰에 송치됐다. 강원 양구경찰서는 조 군수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조 군수는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직접 쓰지 않은 책을 편저자인 것처럼 출간해 선거에 당선될 목적으로 출판기념회를 연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를 받고 있다.

책 출간을 공모한 B씨 역시 같은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조 군수는 이 같은 혐의로 지난달 6일 경찰에 출석해 3시간30분가량 조사 받은 바 있다. 조 군수와 B씨는 지난 8월부터 9월초까지 양구경찰서에 출석해 조사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 군수는 “단순히 원고를 구입해 출판기념회를 연 것이 아니다”라며 “당초 원고 내용과 개인적 기획 의도(고전 분야)에 맞게 출판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쳤고, 내용도 대폭 수정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 군수는 “검찰에 가서도 있는 사실 그대로 진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조 군수는 지난해 12월 양구군수 출마를 선언하며 지난 2월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당시 조 군수는 <육도삼략-6가지 지혜로 3가지 전략을 얻어라>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출마예정자였던 조 군수는 “공직은퇴를 전후해 고향 양구서의 삶을 계획하고 양구의 미래를 꿈꾸며 평소 즐기던 고전들을 읽게 됐다”며 “그 과정서 만난 지혜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출판배경을 밝혔다. 

이윤행 전남 함평군수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았다. 이 군수는 지난 2016년 지인들에게 신문사 창간을 제안하고, 창간 비용으로 500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지난 3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 신문사는 당시 현직이었던 안병호 전 군수를 비판하는 글을 다수 게재했다.

검경 수사부터 당선 무효형까지
공소시효 끝나는 12월까지 주목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합의부 김희중 판사는 지난달 17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군수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언론매체를 선거에 이용해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공론화의 장에서 민의를 침해한 범죄로 매우 불량하다”면서도 “다만 금품제공 시점이 6월 지방선거 2년6개월 전이고, 안 전 군수가 선거에 불출마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직 군수로 군정을 수행해야 하고 형이 확정되지 않은 점, 방어권 보장 등을 감안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이 군수는 1심 선고 이후 입장문을 통해 “저는 분명히 법을 범하지 않았고, 재판부서도 제 유죄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군수직을 그대로 수행토록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군과 군민만을 바라보며, 제 소임을 다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군수의 항소심은 내달 1일 열린다.

선거 공소시효
얼마 남지 않아

6·13지방선거와 관련된 선거 사범의 공소시효 만료일은 오는 12월13일까지다. 공직선거법 제 268조에 따르면 선거 사범의 공소시효는 선거일 후 6개월이다. 곳곳에선 지방선거 관련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정당국은 공소시효 만료일까지 수사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면서 그 결과에 따라 지역 사회는 한 차례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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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