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사법부 개혁, 어디로?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법은 정의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지만 최근 불거진 ‘사법 농단’ 사태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는 정도를 넘어섰고, 국회의 사법개혁 의지는 요원하다. 사법개혁이 공전을 거듭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법 농단 사태는 지난해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탄희 판사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지시를 받고 법원행정처 근무를 거부했다. 이 판사는 그 해 같은 달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발령 후 이 판사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 좋은 취지로 한 것이니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판사는 근무 거부 후 겸직해제됐다.

하자고만 하고
요란한 빈수레

이 판사에 대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법관의 동향과 성향을 파악한 문건의 존재가 조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사법 농단 사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이후 사법 농단과 관련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민사소송 개입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개입 ▲통합진보당 전원합의체 회부 검토 ▲‘정운호 게이트’ 및 법원 집행관 수사 기밀 유출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각급 법원 공보관실 예산 동원, 행정처 비자금 조성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진료 특허소송 관여 ▲상고법원 추진 위한 정치권·언론 로비 ▲부산 법조비리 사건 재판 개입 ▲헌법재판소 평의 내용 등 공무상 비밀 유출 ▲일선 법원의 위헌법률제청심판 결정 관여 등 의혹만 10여개에 이른다.

검찰은 사법 농단의 핵심 축으로 대법원과 행정처를 꼽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당시 행정처가 이행했다는 게 골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정점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에 번번이 부딪혔다. 법원은 사법 농단 의혹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영장을 줄줄이 기각했다. 법원의 판단이 ‘줄기각’이란 비판을 받게 된 까닭은 기각률이 일반 사건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로 촉발된 불씨, 사법 농단 
청구·기각 반복…법원-검찰 ‘영장 대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10일,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온전히 발부된 건수는 0건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을 박 의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7월20일부터 10월4일까지 검찰이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의 27.3%가 기각됐다. 일부 기각률은 72.7%를 기록했다.

사법 농단 사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대부분 기각된 것과 달리 일반사건은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 대부분이 발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2017년 5년간 일반사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평균 90.2%를 기록했다. 

영장이 완전히 기각된 비율은 0.8∼1.0% 사이였고, 일부 기각률은 7.4∼10.4%로 나타났다. 일반사건에 대한 영장기각률이 약 1%인 점을 감안했을 때 사법 농단 수사서 유독 영장 발부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전직 수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 횟수와 사유 때문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주요 피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그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 이후 사용 중인 차량에 한해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부장판사는 ‘주거 안정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갈피 못 잡고
우왕좌왕∼

이후 검찰은 지난 8일,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이 아닌 주거지에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수사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소재의 한 주거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마저도 기각했다.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거, 사생활의 비밀 등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 취지에 따라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한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벌써 4번째였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검찰과 법원은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수사망을 좁혀 양 전 대법원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법원은 줄기각을 통해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사법 농단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면서 여론의 비판은 거세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서 여야 의원 관계없이 사법부를 향해 거침없이 날을 세운 이유다.
 

지난 10일,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서 열린 법사위 국감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 농단 사태를 지적했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사법 농단 의혹(법관 사찰·재판 거래)과 검찰 수사에 대한 법원의 영장 줄기각, 사법부 개혁 등을 따져 물었다. 

대법원장의 용퇴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국감 질의에선 검찰 출신 의원들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검찰과 법원이 영장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검사로 일했던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제가 법조 생활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여태까지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0일, 양 전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을 정조준한 말이었다.

백 의원은 안철성 행정처장에게 “법관으로 생활하면서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를 알고 있느냐”고 질문했고, 안 처장은 “그런 사례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날 같은 자리에 있었던 행정처 김창보 차장과 이승련 기획조정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백 의원은 “이런 기각에 대해 어떤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쐐기를 박았다.

검사 출신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주광덕 의원도 송곳 질의를 이어갔다.

주 의원은 “법원이 전·현직 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있어서 일반 국민에 대한 사건과는 천지차이의 태도를 보이지 않느냐”며 “법원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치부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조직 보호,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게 국민들의 보편적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법 농단을 밝히자는 거냐, 덮자는 거냐”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김 대법원장이 진심으로 사법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서 개혁하고 용퇴해야 한다. 사법부를 위해 순장하라”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사법부 개혁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평화당 박 의원은 “국민 73%가 특검 도입을, 77.5%가 특별재판부 설치를 지지한다”며 “국민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이상이 현재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주 의원 역시 “지금 수사로 법원에 기소하면 국민 여론과 같이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법관들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역시 긍정적이었다. 

민주당 법사위 위원들은 지난달 11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별재판부 설치도 추진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검 vs 법
힘겨루기

국회 법사위원들의 특별재판부 주장은 사법부 개혁을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실현 여부를 떠나 의원들의 사법개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법부 개혁을 위한 정당 간 협의는 매끄럽지 못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는 원 구성 합의를 쉽게 이뤄내지 못했다. 올해 연말까지 운영될 사개특위는 지난 7월26일 국회 본회의서 구성 결의안이 통과됐다. 국회법상 본회의서 특위구성결의안이 통과되면 5일 이내에 원 구성을 해야 한다. 

지난 7월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국회는 스스로 규정을 어겼다.

사개특위원 구성이 이번 달 안에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 연말까지 이번 달을 포함해 약 두 달 정도 남았다. 사개특위가 다룰 현안 역시 만만치 않다. 

사개특위는 사법 농단 규명을 비롯한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사개특위가 시간을 허비하면서 국회 스스로 사법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8일 SNS, 페이스북을 통해 “행정처 폐지 등 사법 개혁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며 입법 조치를 국회에 요청했다. 조 수석은 “(사법개혁은)사법부가 주도하되, 입법사항인 만큼 국회가 매듭지어야 한다”며 “국회 사개특위의 활동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조속한 사개특위 구성을 당부한 것이다.

사개특위 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법리 검토 문건 작성 사실 등을 봤다”며 “법원 개혁도 피할 수 없는 사법개혁의 중요한 과제임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 국감이 종료된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해도 연말까지 사법 개혁을 마무리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국회뿐 아니라 대법원서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대법원장의 자문기구를 구성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법원은 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재판 중심 사법행정’ 등 개혁과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졌던 당시 대법원이 사건의 중심축으로 작용했던 만큼 상응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활동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필요 시 6개월 이내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국회-대법원 개혁 투트랙…가능성은?
상황 진척 없어, 국민적 비판 임계점 

위원회는 ▲적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위한 재판 제도 개선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 ▲좋은 재판을 위한 법관인사제도 개편 ▲전관예우 우려 근절 및 법관 윤리와 책임성 강화를 통한 사법신뢰 회복방안 마련 등 4대 개혁과제 관련 안건을 심의한다. 위원회는 심의 결과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게 된다.

위원회는 지난 3월16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2일까지 총 9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위원회는 최근까지 행정처의 사무처 변경 권고안과 법관 인사 이원화 완성, 영상재판 등 스마트법원 4.0 사업, 검찰개혁, 판결문 공개 확대 사안 그리고 민·형사 판결서 통합 검색·열람 시스템 도입 등을 도출해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0일 대법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향후 개혁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위원회서 건의된 사항들을)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 곧 활동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법원서 법사위 국감이 열린 다음날 사회원로와 시민사회, 민중단체, 정당 등 각계 단체 인사 300여명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모여 사법 적폐 청산을 주장했다.

이날 최병모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사법 농단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구제하기엔 기존의 재심제도 조건이 너무나 까다롭다”며 “특별법 제정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다 결국
흐지부지?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전관예우 사태가 계속되면 특별 재판부와 특별영장담당 법관을 지명할 수 있는 특별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번 정기 국회서 반드시 해결돼야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리더십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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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