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짧게 답한 소정방이 무열왕의 얼굴을 주시하자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전하, 처리하시지요!”
무열왕이 유신에게 눈짓을 주었다.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하들에게 모척을 효수하라 명을 내리자 한 병사가 모척의 뒤에 자리 잡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느냐?”
사지를 찢다
순간 모척이 무열왕과 인문을 번갈아 쏘아보았다.
“내 먼저 가서 네놈들 기다리고 있으마!”
짧게 답하고 검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검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쳐라!”
짧은 소리와 함께 칼이 모척의 목에 닿았고 이내 머리가 땅바닥으로 뒹굴었다. 그를 살피던 병사가 검일의 뒤에 자리 잡았다.
“네 놈도 할 말 있으면 하거라!”
유신의 말에 검일이 그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를 살피던 유신이 병사에게 눈짓을 보내자 칼을 치켜들었다.
“잠깐!”
인문이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시오, 저하.”
“저놈은 그리 쉽게 죽일 수 없소.”
유신이 인문의 눈빛을 바라보며 물러섰다.
“저 놈을 찢어 죽여라!”
인문의 고함에 신라 병사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잠시 후 검일의 사지가 갈가리 찢겨나갔다.
연개소문이 임유관에서 온사문의 군대를 추격해 왔던 당나라 군사들을 몰살시키고 요동성에서 천리장성을 정비하며 국경을 살피는 중이었다.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에 문이 열리며 남건이 큰 아들 남생과 함께 들어왔다.
“네가 이곳엔 어인 일이냐?”
“아버지께 급하게 소식 전하고자 왔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백제가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항복했습니다.”
“뭐라!”순간 연개소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또한 백제의 의자왕과 왕족 및 신료들이 모두 당나라에 포로로 잡혔다는 보고 역시 들어왔습니다.”
“당나라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의자왕이 직접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항복을 청했다 합니다.”
연개소문이 허탈한 듯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 앉으며 두 아들에게도 앉을 것을 주문했다.
“당나라는 어찌한다 하더냐?”
“모두 당나라로 데려간다 합니다.”
“당나라로 말이지.”
잠시 침묵을 지키던 연개소문이 남건에게 모든 장수들을 소집하라 이르자 남건이 급하게 자리를 떴다.
“어떻게 하시려는지요?”
“구출해야지!”
순간 남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생아, 백제가 어떤 나라인지 아느냐?”
남생이 우물쭈물했다.
“백제는 우리 고구려와 같은 집안이란다.”
“같은 집안이라니요?”
“오래전 고구려를 건국하신 고주몽에게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이 지금의 백제 땅으로 내려가서 세운 나라가 바로 백제다.”
남생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 우리가 그를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일이구나.”
남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생아!”
“말씀하세요, 아버지.”
“네가 잘해야 하느니라.”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 아비의 큰 아들로서 그리고 우리 집안의 장손으로서 항상 집안 문제를 중히 여겨야 하느니라.”
모척과 검일, 신라 저주하며 눈을 감다
연개소문 “고구려와 백제는 같은 뿌리”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항상 여자를 경계하거라.”
“모든 경우가 같을 수는 없잖아요.”
답을 하는 남생이 은근하게 미소를 보였다.
“본분만 지키면 좋지. 그런데 백제의 의자왕처럼 너무 여자에 탐닉하다 보면 반드시 화를 불러일으키는 게야.”
“들리는 바에 의하면 여자뿐만 아니라 마약에도 손을 댔다고 하던데요.”
“여자와 함께 마약이라.”
아들 남생에게 뭔가 이야기하려는 순간 남건이 장군들과 들어오자 급하게 멈추었다.
“백제가 항복했다는데 사실입니까?”
고문이 들어서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연유로 장군들을 불렀소. 그러니 자리합시다.”
들어선 사람들이 탄식의 소리를 내뱉으며 자리 잡았다.
“방금 평양성으로부터 백제가 당나라에 항복했고 또 의자왕과 왕족 그리고 많은 신하들이 당나라로 이송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소.”
말을 마친 연개소문이 남생을 주시하자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연개소문은 백제 포로들을 구출하려 하오.”
연개소문의 단호한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능합니까, 대감.”
“가능하도록 해야지요.”
온사문이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자 연개소문 역시 담담하게 받았다.
“당군이 사람들을 이송한다면 바다로 갈 거 아닙니까?”
“하여 이리 급하게 장군들을 불렀소.”
“바다로 나가기 전에 구출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러하오.”
고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대감, 대감께서 직접 가실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연개소문이 대답 대신 고문의 얼굴을 주시했다. 순간 고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장이 급히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해주겠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장군이 뇌음신 장군과 함께 수고 좀 해 주시오.”
“장군, 그러면 곧바로 움직이시지요.”
백제 포로 구출
뇌음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문을 주시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고개 숙였다.
“대감, 가능하겠습니까?”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소. 그러나…….”
“그리도 안타깝습니까?”
온사문의 말에 연개소문이 고개를 돌렸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대감.”
“무슨 소리요?”
온사문이 답을 하기에 앞서 미소를 보였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