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입법전쟁’ 여야 충돌 법안 리스트

‘밀리면 끝장’ 외나무 리턴매치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입법전쟁이 시작됐다. 정책대결이란 큰 틀에서 여야 간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공전국회가 거듭된 끝에 국회 내 계류 법안만 1만여건에 달한다. 최근 여야는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면서 국회 원 구성을 매듭지었다. 지각 출범한 국회이지만 이래저래 정상궤도에 안착한 모양새다. <일요시사>는 여야의 본격적인 정책 레이스에 있어서 충돌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해 분석했다.
 

여야는 지난 16일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면서 원 구성을 완료했다. 다만 18개 상임위원회 중 교육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오는 26일 본회의를 통해 선출된다. 두 위원회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서 분리됐다. 기존 상임위원회를 두 곳으로 나누려면 국회법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위원장은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이찬열 의원이, 문체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내정됐다. 이어 문희상 신임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국회의장단이 꾸려졌다. 후반기 국회의 진용이 갖춰진 것이다.

원 구성 완료
정상궤도 진입

여야의 거듭된 정쟁으로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여론의 비난과 성토가 쏟아졌지만 거대 중앙 이슈들이 정치권을 뒤덮었다. 남북 정상회담, 비핵화, 드루킹 그리고 6·13지방선거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의 시계는 선거 이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서 압승을 거뒀다. 다만 그 요인이 내부보다 외부에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었다. 자체적 성과에 비해 야당의 지리멸렬 등 외부적 요인이 승리를 견인했다는 것이다. 이후 여당은 악화된 고용 동향과 마주했다.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정부와 여당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민주당은 민생개혁입법을 통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증명하려는 모양새다.


야당은 이번 선거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야당은 지방선거 이후 당 내외적으로 존립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야당은 문재인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경제정책에 집중하고자 한다. 

경제지표 악화와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등 경제 문제가 정치권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사용자와 근로자 어느 한쪽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서 야당은 정책대결을 통해 몸값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야당이 경제 난관에 가시적 성과를 보인다면 지난 지방선거의 패배를 딛고 2020 총선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경제정책에 뛰어든 형국이다.

여야는 민생법안, 개혁법안 등에 집중하면서 본격적인 정책대결 레이스를 펼칠 예정이다. 향후 여야가 갈등을 보일만한 분야는 ‘규제혁신’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 경제의 선순환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규제혁신에 대해선 공감한다.

다만 세부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사안은 민주당의 ‘규제혁신 5법’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바미당의 ‘규제프리존법’이다.

지각 국회 계류 법안만 1만건
정책대결로 정상궤도 진입하나 

민주당은 규제혁신 5법을 추진 중이다. 규제혁신 5법은 문재인정부의 3대 경제정책 기조 중 혁신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규제혁신 5법은 혁신성장을 위한 선행과제로 통한다. 정부는 올해 초 혁신성장의 한 축으로 신산업 진흥을 꼽았다. 


또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규제샌드박스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규제샌드박스란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될 때 한시적으로 규제를 유예해주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 연장선서 규제혁신 5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규제혁신 5법은 ▲행정규제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안 ▲산업융합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을 뜻한다.
 

행정규제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신기술을 활용한 서비스와 제품에 대해 ‘우선허용·사후규제’의 원칙을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의 규제가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안은 정보통신기술 융합 산업에 대한 사후규제를 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금융서비스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장 테스트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결국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산업융합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임시허가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혁신기술로 이루어진 신제품과 새로운 서비스의 시장 출시를 위한 규제완화가 주요 내용이다.

규제혁신 공감대
법안은 내가 먼저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4차 산업혁명 등 신산업 활성화를 위해 현재의 포지티브적 규제(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를 네거티브적 규제(원칙적 허용·예외적 금지)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과감한 규제완화가 핵심이다. 이어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필요성 역시 명시돼있다.

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은 수도권 중심의 성장과 지역산업 침체 해소를 위해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법안은 시·군·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지역특화발전제도의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법에 열거된 규제특례를 한정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지역특화사업에 신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의 지역특화발전특구 대신 지역혁신성장특구제도를 도입해 지역발전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제출한 규제혁신 5법은 규제혁파를 골자로 한다. 4차 산업혁명서 비롯된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4차 산업혁명과 규제혁신을 내세우며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규제프리존법’을 내세우며 민주당의 혁신 5법 처리에 소극적이다. 한국당과 바미당은 규제혁신 자체엔 민주당과 이견이 없다. 다만 혁신 5법에 앞서 규제프리존법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규제혁신 5법이 규제프리존법보다 후퇴했다는 이유에서다.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 27개 지역별 맞춤 전략산업을 지정한 뒤 규제 특례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원칙적 허용의 예외적 금지인 네거티브 방식이다. 14개 시·도는 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세종·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다.


규제혁신 5법과 규제프리존법은 규제혁신이라는 측면서 맥락을 같이한다. 다만 두 법안은 몇 가지 조항서 차이를 보인다.

규제혁신 5법의 경우 규제특례심의위원회가 규제특례 구역과 기간, 규모 등을 심의한다. 심의 내용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 환경, 지역균형발전 저해 여부 및 개인정보 등이다. 

반면 규제프리존법은 전국 14개 시·도에 27개 전략산업을 우선적으로 지정한다. 규제혁신 5법은 수도권을 포함시켰지만 규제프리존은 수도권을 제외한 점이 다르다.

규제프리존법은 최근 발의된 법안이 아니다. 지난 2016년 5월30일 당시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 대표발의로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특정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당시 법안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관통했다. 

일각에선 최순실과 규제프리존법을 연결 지어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역시 규제프리존법을 ‘최순실법’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과거 충돌 법안
이번에도 계속?

민주당과 한국당·바미당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두고도 충돌할 예정이다.

한국당과 바미당은 서비스발전기본법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서비스발전기본법 역시 규제프리존법과 마찬가지로 박근혜정부 당시 추진됐던 법안이다. 여야는 당시 서비스발전기본법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겪었다. 계류기간만 7년에 다다른다.

서비스발전기본법은 산업·교육·의료·관광 등 서비스 산업의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대부분의 사항에 대해선 합의했다. 그러나 양당은 보건과 의료부문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의료 민영화를 우려하며 법안 통과를 반대했다. 민주당은 대기업의 의료부문 진출로 인해 의료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의료 공공성 강화와 의료 영리화 방지를 위해 보건과 의료 분야를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는 7월 임시국회서 혁신5법과 규제프리존법 그리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두고 정면으로 맞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혁신 5법과 규제프리존법은 극명한 차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규제혁신이란 큰 틀 안에서 맥을 같이 한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역시 당시 여야가 보건·의료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선 접점을 찾았다. 7월 임시국회서 두 사안이 어떻게 풀이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외에도 여야가 충돌할 만한 법안으로 방송법이 꼽힌다.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의 임기가 내달 종료되기 때문이다.

규제, 방송…7월 관전포인트
접점 찾기 ‘글쎄’ 공전 전망도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은 방송통신위원회서 추천·임명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여당과 야당이 각각의 비율대로 이사를 선임한다. KBS의 경우 여야 7:4, 방송문화진흥위원회의 경우 6:3 비율로 이사 추천과 선임이 이뤄진다. 

이같이 선임된 KBS와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들은 KBS와 MBC 사장을 선임한다. 결국 공영방송이 정권의 입김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해석이다.

방송법 개정안은 지난 2016년 당시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국회서 2년째 발이 묶여있다.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를 13인으로 구성하고 여야가 각각 7명, 6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또 특별다수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특별다수제란 이사회가 사장을 임명·제청할 경우 재적이사 3분의 2 찬성으로 의결하는 것을 뜻한다. 결국 야당의 동의 없이 공영방송 사장 선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개정안을 발의했던 민주당은 당시 야당이었다.
 

방송법을 두고 여야는 이미 한 번 맞붙었다. 지난 4월 임시국회 당시 여야는 방송법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4월 국회가 공전국회가 된 결정적 원인이었다.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당시 발의한 내용인 만큼 법안 내용은 야당에게 유리한 편이다. 

오늘날 민주당이 집권 여당이 되면서 입장이 바뀐 상황이다. 한국당과 바미당은 원안의 통과를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새로운 법안을 내놓으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방송법까지
난제 수두룩

방송법을 두고 갈등을 겪을 당시 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낙하산 사장을 통해 방송을 장악하려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 제출한 차악의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은 “방송장악을 위한 꼼수”라며 대치했다. 지난 4월 임시국회 당시 방송법 처리 문제로 국회는 정상가동되지 못했다. 이는 7월 국회 역시 주목받는 대목이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막 오른 7월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누구?

여야는 18개 상임위원장 중 16개 상임위원장 선출에 합의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분리된 교육위원장과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오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출된다. 

운영위원장은 3선의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맡는다. 운영위원장은 관례적으로 집권당이 자리한다. 민주당은 운영위원장과 안민석 의원으로 내정된 문체위원장을 포함해 총 8개의 상임위를 맡게 됐다. ▲정무위원장 3선 민병두 의원 ▲기획재정위원장 3선 정성호 의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3선 노웅래 의원 ▲국방위원장 3선 안규백 의원 ▲행정안전위원장 재선 인재근 의원 ▲여성가족부위원장 재선 전혜숙 의원.

대부분 여야 합의
26일 본회의 선출

한국당은 총 7개의 상임위를 맡았다. ▲법제사법위원장 4선 여상규 의원 ▲환경노동위원장 3선 김학용 의원 ▲외교통일위원장 3선 강석호 의원 ▲예산결산특별위원장 3선 안상수 의원 ▲국토교통위원장 3선 박순자 의원 ▲보건복지위원장 3선 이명수 의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3선 홍일표 의원.

바른미래당은 2개의 상임위를 맡게 됐다. ▲정보위원장은 3선 이학재 의원이 선출됐고, ▲교육위원장에는 3선 이찬열 의원이 내정됐다.

민주평화당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에 재선 황주홍 의원이 선출됐다.


<기사 속 시사> 인사청문회, 또 다른 관전포인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17일 국회 후반기 첫 회의를 열었다. 행안위는 이날 민갑룡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오는 23일 오전 10시 국회서 실시하기로 의결했다.

행안위는 당일 청문회를 실시하고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곧바로 합의·의결할 계획이다.

국회가 청문회 일자를 23일로 결정한 까닭은 인사청문회법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임명동의안 등이 제출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임명 심사 또는 인사 청문 절차를 마쳐야 한다. 부득이할 경우 대통령 등의 요청에 따라 1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민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서는 지난달 20일에 도착했다. 이미 심사 기한을 20일 넘긴 상황이지만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오는 23일이 유예기간의 마지막 날이다.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등 대법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오는 23∼25일에 예정돼있다.

정치권에선 민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무난하게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의 신상보단 수사 구조 개혁 등 현안에 치중할 전망이다. 다만 대법관 후보자들의 경우 ‘좌편향 인사’와 ‘균형 인사’ 사이에서 험난한 청문회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대치 역시 첨예할 것으로 예측된다.

7월 임시국회의 개원과 동시에 시작될 인사청문회가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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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