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18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라 있는 글을 인용한다.
『작년 8월 철원서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이찬호 병장은 전신 화상을 입고 10년을 키워온 배우의 꿈을 접었습니다. 여태까지 9개월 동안 고통스러운 치료의 과정을 견뎠지만, 책임을 지겠다던 정부는 전역 후 치료를 해줄지 불분명해 이 병장은 아직도 전역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이와 관련 육군과 보훈처의 변을 들어본다. 먼저 육군 관계자의 말이다.
“전역 후(6개월)에 국방부서 치료비는 전액 동일하게 지원되는데 그 이후에는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고, 그리고 유공자 선정 이후에 보훈처서 관련된 내용의 사무를 맡게 됩니다. 유공자 신청 시에 관련된 절차라든가 모든 것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유공자가)될 수 있도록 육군이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다음은 보훈처 관계자의 말이다.
“이 병장이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면 가급적 빨리 6개월 이내에 심사할 것이며 국가유공자로 등록되면 현재 받는 화상 전문병원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필자 세대가 군 생활하던 시절 즉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로 돌아가보자. 당시 현역 군인들 사이에 우스갯소리가 자주 회자되고는 했다. 군인은 소모품으로 전투 장비의 한 종류에 불과하고 군에서 전사하면 개 값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게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당시에 군인이 근무 중 여러 형태로 사망하게 되면 당사자에게 전해지는 보상금 내지 위로금은 실제로 개 값 정도 수준에 불과했다.
이게 근 40여년 전 일이다. 그런데 작금에 발생한 이 병장의 경우를 살피면 필자가 군 생활 하던 당시와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이 나라가 정말 제대로 된 나라인지 의심이 일어난다.
먼저 이 병장이 동 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주포는 대한민국 육군과 해병대의 주력무기로 명중률 90%를 자랑하는 속칭 ‘명품 무기’라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러한 무기가 폭발했는데 사고가 발생된 지 10개월여가 지난 이 시점에도 그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혹시 우리 군의 고질병, 쉬쉬하며 만병통치약인 세월의 흐름에 맡기겠다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 역시 일어난다.
다음은 이 병장에 대한 보상 방식에 대해서다. 이 대목에서 왜 이 나라가 미개한 나라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군에서 근무 중 사망에 이르거나 부상당한 경우라면 모든 책임은 군, 즉 국가가 져야 한다.
그런데 그 문제는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군이 아닌 보훈처의 역할이란다. 정말 이 나라 국민인 게 창피하다. 국가의 대처방식을 살피면 이 미개한 나라가 지니고 있는 까다로운 절차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말 한심한 일은 무엇일까. 혹시라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글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없었다면 이 병장의 앞날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는 점이다.
군인은 유사 시 최전선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불사할 각오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라면 어느 군인과 어느 부모가 동조하겠는가. 나라를 위해 희생할 명분을 주지 않는 나라, 이게 정말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