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권’ OCI 세무조사 막전막후

세무당국 맘먹고 달려들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국세청이 OCI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역외탈세에 대한 의혹 어린 시선이 있었던 터라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오너 일가가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강력한 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요시사>에서 OCI 세무조사 전말을 확인했다.
 

국세청이 OCI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OCI에 조사요원을 투입해 역외탈세 관련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동안 OCI가 조세포탈 관련 의혹이 있었던 만큼 이번 조사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혹의 눈길
 회사 측 “…”

OCI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역외탈세와 관련된 내용은 잘 모른다. 이번 세무조사는 정기 세무조사 성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OCI는 물론 오너 일가가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사에는 서울지방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 조사요원 50여명이 투입됐다. 이들은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OCI 본사에서 세무조사에 필요한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국제거래조사국은 해외계좌 및 외국거래 과정서 탈세 혐의를 살펴보는 조사국이다.


OCI 및 계열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 소속의 그룹이다. 2018년 4월1일 기준으로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CI는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자산총액은 11조3230억원 수준이다. 매출액은 6조1100억원, 당기순이익은 2630억원으로 대기업 집단에 포함됐다. OCI는 1959년 8월5일 설립됐다. 기초화학제품서부터 태양광 산업까지 50여가지가 넘는 화학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고객에게 솔루션을 제공한다. 

총 2403명의 임직원(지난해 12월 기준)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두고 역외탈세 등 적폐 청산을 향한 신호탄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OCI 오너일가와 국세청은 역외탈세와 관련해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뉴스타파>는 지난 2013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설립자 명단을 발표했다. 당시 명단에는 고 이수영 OCI 회장 부부도 포함됐다. 

보도에 따르면 고 이 회장과 부인 김경자 전 OCI 미술관 관장은 지난 2008년 4월 버진아일랜드에 ‘리치몬드 포레스트 매니지먼트(RICHMOND FOREST MANAGEMENT LIMITED)’라는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 이 회장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수십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국외계좌를 통해 운용한 사실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되는 공방
예측불허 결말


국세청은 관련 기사가 나간 후 7일만에 역외탈세 혐의를 파악하기 위해 직원을 파견해 조사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세금 추징 및 고발조치 없이 마무리돼 사실상 역외탈세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실패한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역외탈세에 대한 감시의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역외탈세 문제를 거론하며 조사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지난 15일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주재 회의서 “최근 사회지도층이 해외 소득과 재산을 은닉한 역외탈세 혐의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며“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도피·은닉해 세금을 면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를 해치는 대표적인 반사회행위이므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회지도층의 역외탈세는 대표적인 반사회적 행위”라며 “국세청, 관세청, 검찰 등 관련 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해외범죄수익 환수 합동조사단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이 총리도 지난 1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서 “관계부처들과 함께 합동조사단을 만들어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행하겠다”며 “결과가 나오는 대로 법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일 국세청은 역외 탈세 혐의자 39명에 대한 일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이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기 전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당시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번 조사와 관련 “주요 그룹을 포함해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인사들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특히 국세청이 인용한 자료에는 버진아일랜드와 같은 조세회피처를 통해 수익을 숨겨 소득을 탈루한 정황이 발견된 인사들이 주요 조사 대상으로 거론됐다. 이후 조사는 대기업과 대자산가에게까지 확대됐다.

국제거래조사국 투입 강도 높은 조사
해외계좌·외국거래 탈세 혐의 초점

이 같은 상황서 국세청이 OCI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OCI의 역외탈세 의혹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세청이 주의 깊게 보고 있는 부분은 역외탈세 외에도 편법승계 부분도 있다. 승계 과정에서 증여세 및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다. 국세청은 기업자금 불법유출, 차명재산 운용, 변칙 자본 거래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공교롭게도 OCI는 지난해 고 이 회장이 별세하면서 승계 작업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현재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우현 대표이사 사장이 고 이 회장이 별세하면서 받은 상속 자산에 대한 부분도 검증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고 이 회장이 별세하면서 고 이 회장이 장남인 이 사장에게 넘겨준 자산만 2200억원으로 평가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30억원이 초과하는 상속분에 적용되는 세율은 50%다. 이 사장은 1100억원가량의 상속세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승계구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세무조사 과정서 탈루 혐의가 포착돼 거액의 세금이 추징될 경우 이 사장의 승계에 불확실성이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내 지배력이 확실하지 않은 이 사장의 입장에서 향후 회사를 이끌어갈 동력이 빠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사장은 지난 2011년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로 징역 1년6개월과 집행유예 2년,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열린 주총에서 이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에 대해 좋은기업지배연구소가 이 점을 들어 재선임에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흔들리는 후계자
이번에 결정타?


업계에서는 이 사장이 예상치 못한 시기에 고 이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룹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 사장을 비롯해 상속세 재원 마련이 필요한 고 이 회장의 부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 여동생 이지현 OCI 미술관장 등이 지난달 25일 보유 지분 가운데 87만8513주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 당일 종가 기준으로 14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 매각으로 이 사장의 지분율은 5.04%로 1.08% 낮아져 최대주주 신분에서 3대주주로 내려앉았다는 점이다. 

현재 최대주주는 고 이 회장의 동생 이화영 유니드 회장(5.43%)이다. 2대주주는 5.40%를 쥐고 있는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 업계에서는 당시 지분 매각이 상속세 재원이라는 시각이 강했다. 
 

현재 OCI 기업집단에 포함돼있는 삼광글라스, 유니드, 유니온 등은 이 사장의 사촌들이 독립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지분을 끌어올릴 경우 이 사장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고 이 회장은 세 자녀를 두고 있지만 이 사장 외에는 그룹내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사장이 지분이 이화영 회장과 이복영 회장을 압도하지 못해 향후 경영권 분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이번 세무조사가 이 사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추가적인 세금 추징없이 넘어가야 하겠지만 거액의 세금 추징을 국세청으로부터 당할 경우 향후 지분 확보를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 결과에 따라 검찰 고발로 이어질 경우 이 사장이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조3192억원의 세금이 추징됐고, 이 가운데 조세포탈 혐의가 드러난 6명에 대해 검찰 고발 조치를 했다. 

사실 국세청과 OCI는 세금을 추징을 놓고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재판은 2심까지 진행됐고, 대법원의 판단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2심까지의 결과는 OCI의 판정승이었다.

세금폭탄 소송 
국세청과 악연

악연은 인천시가 인천 남구청이 지난 2008년 5월 DCRE에 지방세 524억원을 감면해준 조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DCRE는 동양제철화학 시절 인천 공장부지를 별도로 물적 분할해 만든 자회사다.

OCI는 당시 DCRE와 인천 공장을 주고받는 형태로 DCRE와 기업을 분할하면서 당시 법인세법에 따른 적격분할로 신고하고 남구청으로부터 취득세 등 지방세를 모두 감면받았다.

그러나 인천시는 OCI가 세금 감면의 전제 조건인 ‘자산·부채 100% 승계’ 원칙을 어기고 공장 부지에 쌓여있던 폐석회 처리비용 등 일부 부채를 승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산금 1188억원을 붙여 지방세를 부과했다. 

이어 국세청도 OCI를 상대로 3084억원 상당의 법인세를 부과 고시했다. 이에 따라 DCRE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지만 합동심판관 전원회의는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당시 조세심판원은 DCRE가 핵심 사안으로 청구한 ‘물적 분할의 적격성’에 대해 ▲분리하여 사업이 가능한 독립된 사업부문을 분할할 것 ▲분할하는 사업부문의 자산 및 부채가 포괄적으로 승계될 것 ▲승계 고정자산의 2분의 1 이상 승계와 직접사용 등 세금 면제에 필요한 3가지 요건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천시의 과세처분에 잘못된 점이 없다는 것이 조세심판원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OCI와 국세청 소송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2부는 2016년 5월 “OCI에 부과된 법인세 2742억여원 중 1823억여원, 가산세 총 1102억여 원 중 1056억여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OCI의 승리로 귀결된 것이다. 

OCI의 계열사 DCRE와 인천시의 세무 소송도 앞선 소송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같은해 6월 서울고등법원 행정5부(주심 성백현 부장판사)는 DCRE가 인천시를 상대로 제기한 1700억원대 조세소송 항소심에서도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016년 국세청과 인천시는 나란히 대법원에 상고장을 접수하면서 법정 공방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지배구도
관심 집중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우현 사장의 그룹내 지분율이 높지 않아 경영권을 놓고 친족간 다툼이 벌어질 개연성이 큰 가운데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다”며 “국세청의 강도 높은 조사결과에 따라 지배구도가 바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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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