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권’ OCI 세무조사 막전막후

세무당국 맘먹고 달려들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국세청이 OCI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역외탈세에 대한 의혹 어린 시선이 있었던 터라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오너 일가가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강력한 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요시사>에서 OCI 세무조사 전말을 확인했다.
 

국세청이 OCI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OCI에 조사요원을 투입해 역외탈세 관련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동안 OCI가 조세포탈 관련 의혹이 있었던 만큼 이번 조사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혹의 눈길
 회사 측 “…”

OCI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역외탈세와 관련된 내용은 잘 모른다. 이번 세무조사는 정기 세무조사 성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OCI는 물론 오너 일가가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사에는 서울지방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 조사요원 50여명이 투입됐다. 이들은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OCI 본사에서 세무조사에 필요한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국제거래조사국은 해외계좌 및 외국거래 과정서 탈세 혐의를 살펴보는 조사국이다.


OCI 및 계열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 소속의 그룹이다. 2018년 4월1일 기준으로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CI는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자산총액은 11조3230억원 수준이다. 매출액은 6조1100억원, 당기순이익은 2630억원으로 대기업 집단에 포함됐다. OCI는 1959년 8월5일 설립됐다. 기초화학제품서부터 태양광 산업까지 50여가지가 넘는 화학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고객에게 솔루션을 제공한다. 

총 2403명의 임직원(지난해 12월 기준)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두고 역외탈세 등 적폐 청산을 향한 신호탄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OCI 오너일가와 국세청은 역외탈세와 관련해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뉴스타파>는 지난 2013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설립자 명단을 발표했다. 당시 명단에는 고 이수영 OCI 회장 부부도 포함됐다. 

보도에 따르면 고 이 회장과 부인 김경자 전 OCI 미술관 관장은 지난 2008년 4월 버진아일랜드에 ‘리치몬드 포레스트 매니지먼트(RICHMOND FOREST MANAGEMENT LIMITED)’라는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 이 회장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수십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국외계좌를 통해 운용한 사실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속되는 공방
예측불허 결말


국세청은 관련 기사가 나간 후 7일만에 역외탈세 혐의를 파악하기 위해 직원을 파견해 조사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세금 추징 및 고발조치 없이 마무리돼 사실상 역외탈세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실패한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역외탈세에 대한 감시의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역외탈세 문제를 거론하며 조사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지난 15일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주재 회의서 “최근 사회지도층이 해외 소득과 재산을 은닉한 역외탈세 혐의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며“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도피·은닉해 세금을 면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를 해치는 대표적인 반사회행위이므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회지도층의 역외탈세는 대표적인 반사회적 행위”라며 “국세청, 관세청, 검찰 등 관련 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해외범죄수익 환수 합동조사단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이 총리도 지난 1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서 “관계부처들과 함께 합동조사단을 만들어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행하겠다”며 “결과가 나오는 대로 법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일 국세청은 역외 탈세 혐의자 39명에 대한 일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이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기 전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당시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번 조사와 관련 “주요 그룹을 포함해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인사들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특히 국세청이 인용한 자료에는 버진아일랜드와 같은 조세회피처를 통해 수익을 숨겨 소득을 탈루한 정황이 발견된 인사들이 주요 조사 대상으로 거론됐다. 이후 조사는 대기업과 대자산가에게까지 확대됐다.

국제거래조사국 투입 강도 높은 조사
해외계좌·외국거래 탈세 혐의 초점

이 같은 상황서 국세청이 OCI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OCI의 역외탈세 의혹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세청이 주의 깊게 보고 있는 부분은 역외탈세 외에도 편법승계 부분도 있다. 승계 과정에서 증여세 및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다. 국세청은 기업자금 불법유출, 차명재산 운용, 변칙 자본 거래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공교롭게도 OCI는 지난해 고 이 회장이 별세하면서 승계 작업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현재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우현 대표이사 사장이 고 이 회장이 별세하면서 받은 상속 자산에 대한 부분도 검증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고 이 회장이 별세하면서 고 이 회장이 장남인 이 사장에게 넘겨준 자산만 2200억원으로 평가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30억원이 초과하는 상속분에 적용되는 세율은 50%다. 이 사장은 1100억원가량의 상속세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승계구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세무조사 과정서 탈루 혐의가 포착돼 거액의 세금이 추징될 경우 이 사장의 승계에 불확실성이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내 지배력이 확실하지 않은 이 사장의 입장에서 향후 회사를 이끌어갈 동력이 빠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사장은 지난 2011년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로 징역 1년6개월과 집행유예 2년,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열린 주총에서 이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에 대해 좋은기업지배연구소가 이 점을 들어 재선임에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흔들리는 후계자
이번에 결정타?


업계에서는 이 사장이 예상치 못한 시기에 고 이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룹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 사장을 비롯해 상속세 재원 마련이 필요한 고 이 회장의 부인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 여동생 이지현 OCI 미술관장 등이 지난달 25일 보유 지분 가운데 87만8513주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 당일 종가 기준으로 14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 매각으로 이 사장의 지분율은 5.04%로 1.08% 낮아져 최대주주 신분에서 3대주주로 내려앉았다는 점이다. 

현재 최대주주는 고 이 회장의 동생 이화영 유니드 회장(5.43%)이다. 2대주주는 5.40%를 쥐고 있는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 업계에서는 당시 지분 매각이 상속세 재원이라는 시각이 강했다. 
 

현재 OCI 기업집단에 포함돼있는 삼광글라스, 유니드, 유니온 등은 이 사장의 사촌들이 독립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지분을 끌어올릴 경우 이 사장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고 이 회장은 세 자녀를 두고 있지만 이 사장 외에는 그룹내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사장이 지분이 이화영 회장과 이복영 회장을 압도하지 못해 향후 경영권 분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이번 세무조사가 이 사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추가적인 세금 추징없이 넘어가야 하겠지만 거액의 세금 추징을 국세청으로부터 당할 경우 향후 지분 확보를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 결과에 따라 검찰 고발로 이어질 경우 이 사장이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조3192억원의 세금이 추징됐고, 이 가운데 조세포탈 혐의가 드러난 6명에 대해 검찰 고발 조치를 했다. 

사실 국세청과 OCI는 세금을 추징을 놓고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재판은 2심까지 진행됐고, 대법원의 판단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2심까지의 결과는 OCI의 판정승이었다.

세금폭탄 소송 
국세청과 악연

악연은 인천시가 인천 남구청이 지난 2008년 5월 DCRE에 지방세 524억원을 감면해준 조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DCRE는 동양제철화학 시절 인천 공장부지를 별도로 물적 분할해 만든 자회사다.

OCI는 당시 DCRE와 인천 공장을 주고받는 형태로 DCRE와 기업을 분할하면서 당시 법인세법에 따른 적격분할로 신고하고 남구청으로부터 취득세 등 지방세를 모두 감면받았다.

그러나 인천시는 OCI가 세금 감면의 전제 조건인 ‘자산·부채 100% 승계’ 원칙을 어기고 공장 부지에 쌓여있던 폐석회 처리비용 등 일부 부채를 승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산금 1188억원을 붙여 지방세를 부과했다. 

이어 국세청도 OCI를 상대로 3084억원 상당의 법인세를 부과 고시했다. 이에 따라 DCRE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지만 합동심판관 전원회의는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당시 조세심판원은 DCRE가 핵심 사안으로 청구한 ‘물적 분할의 적격성’에 대해 ▲분리하여 사업이 가능한 독립된 사업부문을 분할할 것 ▲분할하는 사업부문의 자산 및 부채가 포괄적으로 승계될 것 ▲승계 고정자산의 2분의 1 이상 승계와 직접사용 등 세금 면제에 필요한 3가지 요건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천시의 과세처분에 잘못된 점이 없다는 것이 조세심판원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OCI와 국세청 소송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2부는 2016년 5월 “OCI에 부과된 법인세 2742억여원 중 1823억여원, 가산세 총 1102억여 원 중 1056억여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OCI의 승리로 귀결된 것이다. 

OCI의 계열사 DCRE와 인천시의 세무 소송도 앞선 소송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같은해 6월 서울고등법원 행정5부(주심 성백현 부장판사)는 DCRE가 인천시를 상대로 제기한 1700억원대 조세소송 항소심에서도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016년 국세청과 인천시는 나란히 대법원에 상고장을 접수하면서 법정 공방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지배구도
관심 집중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우현 사장의 그룹내 지분율이 높지 않아 경영권을 놓고 친족간 다툼이 벌어질 개연성이 큰 가운데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다”며 “국세청의 강도 높은 조사결과에 따라 지배구도가 바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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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