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 논란’ 대기업 황당 마케팅 백태

관심에 목말라…여성 성적인 도구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기업이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경쟁사보다 조금이라 더 돋보여야 시장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강한 생존본능은 종종 무리한 홍보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최근 불고 있는 여혐 논란도 이 같은 맥락서 나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고개를 숙였다.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사용한 문구가 문제가 됐다. 시계를 지난 9일로 돌려보면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영화 <레슬러> 출연배우 이성경의 사진과 “[단독] 체육관에서_타이트한의상_입은_A씨_유출사진_모음.zip”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튀는 광고물에
예측불허 논란

사진에는 이성경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엎드려 카메라를 응시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네티즌들은 ‘타이트한 의상을 입은 A씨 유출사진 모음’이 이른바 몰카 사진을 연상케 한다면서 비판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불특정 다수 여성에 대한 성희롱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홍보사의 과욕이었다.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지만 잘못한 일”이라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전했다.


마케팅 담당자 역시 “저희가 게시한 게시글의 문구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작성했던 문구인데, 깊게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무리한 마케팅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스킨라빈스는 지난달 미투로 운동과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고 조민기와 관련된 내용을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고 조민기는 청주대학교 교수 재직 당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는 미투 운동으로 발전했고, 조민기가 자살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아 충격에 휩싸였던 시기였다. 
 

그런데 배스킨라빈스가 조민기 사건이 연상되는 문구를 사용해 입길에 올랐다. 당시 배스킨라빈스는 츄파춥스 파티 미러볼 프로모션을 홍보하면서 SNS에 “내적 댄스 폭발할 때 #너무 많이 흥분 #몹시 위험”이라고 게재했다.

“돋보여야 산다” 과장·자극적 문구
툭하면 여혐 논란…홍보파트 과욕

해당 문구는 조민기가 피해여성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과 흡사해 불쾌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네티즌들은 “조민기 사건이 연상되면서 성희롱을 당하는 느낌”이라며 비판을 제기했다.

결국 배스킨라빈스는 “적절치 못한 단어가 포함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해당 콘텐츠를 문제인지 즉시 삭제했다”며 성난 여론을 잠재우는 모습이었다. 이어 “이번 일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책임을 통감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총체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미투 운동을 희화화 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기업은 또 있다. 배달의 민족은 지난달 13일 음식을 주제로 한 ‘배민신춘문예’를 개최했다. 매년 열리는 문예인데 당선된 출품작은 카피 문구로 실제 마케팅에 활용된다. 

배달의 민족 입장에서는 소비자와의 거리감도 좁혀 자사를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눈살 찌푸리는 출품작이 나왔다. 출품작 가운데 미투운동을 희화화 한 작품이 나온 것. “Meat Too” “저도 당했어요” “제 다리를 보더니 침을 삼키면서…” 등 미투 운동을 희화화한 듯한 인상이 드는 출품작이다. 

이들 출품작은 배달의민족 이벤트 웹페이지에 노출되면서 논란이 격화됐다. 

배달의민족 측은 “배민신춘문예 응모페이지를 이용해 악의적인 내용을 작성, 개인 SNS에 올려 불쾌감을 주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주거나 이벤트 취지에 맞지 않는 시는 발견 즉시 삭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과 후
또 사고

삼양식품 역시 부적절한 광고로 곤혹을 치렀다. 지난달 28일부터 SNS 홍보 계정에 ‘불닭행’이라는 제목의 불닭볶음면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 

불닭행은 ‘불닭볶음면을 사러 가는 길’ 이라는 뜻과 ‘불닭볶음면을 먹고 행복해짐’을 의미를 담고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광고는 통통한 여성이 잠에서 깨 슈퍼로 가 야식으로 불닭볶음면을 사와 먹는다.
 

이때 “예뻐지는 중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숫자가 100%까지 올라가는 모습이 나온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날씬한 여성이 스타킹을 신고 귀걸이를 착용한 뒤 외출을 하면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여성에게 예뻐져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요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양식품 측은 해당 광고를 내리고 불닭볶음면을 향한 (소비자들의) 사랑을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속설과 연관지어 표현하고자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특정 성향에 대한 비하나 희화화를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오랜만에 새로운 CM송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의욕만 앞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반성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히면서 진땀을 빼야 했다.
 


롯데푸드도 지난 1월 여성비하 광고 논란에 입길에 올랐다. 롯데푸드는 자사의 제품 돼지바를 홍보하기 위해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한 83년생 돼지바 홍보물을 만들었다. 

원작 구절인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를 ‘나보고 관종이래’라고 고치면서 뒷말이 나왔다. 젊은 워킹맘의 힘든 점을 지나치게 희화화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롯데푸드 역시 사과문을 올렸다. 

롯데푸드는 지난 14일 인스타그램에 SNS운영팀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하고 “콘텐츠 제목 부분은 1983년에 출시된 돼지바를 이야기하기 위해 2017년 베스트셀러였던 책의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패러디하는 과정서 적절치 못한 용어가 사용됐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콘텐츠에 대해 보내주신 염려와 비판에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며 “베스트셀러의 패러디라는 요소에 집중한 나머지 책의 내용이 담고 있는 요소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두 번은 실수!
세 번은 의도?


여성 고객층이 많은 신세계그룹은 꾸준히 여혐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2016년 이마트는 주꾸미 할인행사를 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홍보글을 올렸다. 당시 사용했던 홍보문구는 “남편이든 애인이든 그만 들들 볶고 주꾸미를 볶으세요”였다. 

여성을 사람을 귀찮게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불가피했다.

이마트는 사과의 말을 올려야했다. 이마트는 해당 논란에 대해 “잘못된 표현으로 인친분들의 마음 상하게 해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생각이 짧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올린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이마트가 지분 50%를 가지고 있고 주고객층이 여성인 스타벅스코리아도 여혐논란이 일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매장이용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면서 자사 홈페이지에 포스터를 올려 민폐고객을 표현했는데 민폐고객으로 지목된 손님은 여자였다. 고객들의 반발은 당연지사.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성차별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향후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훼손된 이미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신세계 제주소주 제품명이 성매매 용어가 연상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2월 이마트는 제주소주를 인수했다. 제주소주는 이후 16.9도의 푸른밤과 20.1도의 푸른밤 두 종류 제품을 출시하면서 ‘짧은 밤’과 ‘긴 밤’으로 별칭했다.

문제는 짧은 밤과 긴 밤이 성매매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잇달았다는 점이다. 푸른밤 광고모델로 나선 가수 소유가 “너는 어떤 밤이 좋아?”라고 묻는 광고 카피가 불쾌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급기야 여성단체까지 문제를 지적했다. 

제주여성인권연대는 7일 논평을 내고 “현실에서는 이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용어인지 확인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고의든 실수든 소비자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품 홍보 과정서 사용되는 성적 대상화로 인해 특정 성을 비하하거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바라보고 그럴 가능성이 있는 용어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하게 다듬는 등 신중한 마케팅 전략이 요구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된장녀 논란서 밥순이 비하까지
나체 연상되는 단어 사용해 눈총

신세계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성매매 은어를 연상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노래 ‘제주도 푸른밤’과 연관 지어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GS25시는 ‘된장녀(여성비하 용어)’ 논란이 일었다. 2016년 GS25시는 페이스북에 신제품 스무디를 홍보하는 영상을 올렸다.

‘왜 안먹었어요? 분노의 스무디’라는 내용으로 두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문제는 에피소드  내용 가운데 명품로고가 새겨진 쇼핑팩을 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는 여성고객이 다른 여성고객의 ‘이게 다 뭐야?’라는 질문에 “카드 받았지롱”이라고 대답하는 부분에서 ‘된장각’이라고 자막 처리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된장각’이 이른바 된장녀를 지칭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문제는 GS25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GS25 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여성 비하 의도가 없던 만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GS25시가 소비자와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치킨전문브랜드 KFC도 여성비하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때는 2015년. 당시 KFC의 ‘스모키 와일드 치킨버거’의 버스 정류장 옥외 광고 사진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됐다.

“자기야∼나 기분전환 겸 빽(가방) 하나만 사줘”라는 문구와 그 아래 “음.. 그럼 내 기분은?” 문구를 배치했다. 네티즌들은 여자친구가 남자친구한테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여성혐오 의혹을 제기했다.

KFC는 사과문을 올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광고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며 “문제 발생 직후부터 전직원이 최선을 다해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현재 해당 소재 광고는 모두 철거됐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자로서 실망을 안겨드린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더 큰 도약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겠다. 앞으로 더욱 신중한 모습으로 고객분들과 함께 소통하는 KFC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젠더 이슈로…
무리한 광고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제품의 홍보는 실적과 직결되는 만큼 톡톡 튀는 마케팅이 필요하다”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무리한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민감한 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기존의 낡은 사고의 마케팅은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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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