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모레퍼시픽 ‘수상한 부동산’ 추적

제주땅 알박기 의혹…큰 덩어리 노림수?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아모레퍼시픽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가 포착됐다. 제주 땅을 사는 과정에서 이른바 ‘알박기’식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만평의 임야 가운데 일부 지분만 매입한 뒤 수년째 버티고 있는 정황이 석연치 않다. 다른 토지주들이 원하는 토지분할도 거부하고 있다. 이 땅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아모레퍼시픽의 의문투성이 부동산 거래를 들춰봤다.

2005년 8만평 서광리 임야 지분 20%만 매입
6년째 더 사지도 팔지도 않고 눈치만 ‘살살’

아모레퍼시픽이 제주 땅에 이른바 ‘알박기’식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몇년 전 수만평의 임야 가운데 일부 지분만 매입한 뒤 버티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다른 토지주들은 아모레퍼시픽 때문에 땅이 묶여 재산권 행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모씨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소재 임야 25만7096㎡(약 7만7900평)의 지분 20%를 30여년 전부터 소유하고 있다. 지인들과 함께 은퇴 후 제주에서 노후생활을 보내기 위해 지분을 나눠 공동소유하게 됐다.

“늙어 보낼 곳이…”
노후 꿈 산산조각

그러나 지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모씨가 자신의 지분을 아모레퍼시픽에 매각하면서 강씨의 꿈이 꼬이기 시작했다. 신씨는 2005년 6월 소유하고 있던 지분 20%를 장원산업에 팔았다. 장원산업이 서광리 임야 5만1419㎡(약 1만5581평)의 소유권을 쥔 셈이다. 당시 매매가는 약 16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의 ‘장원(粧源)’이란 아호를 딴 장원산업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서 창업주의 차남)이 최대주주로 사실상 오너일가 소유의 개인 회사였다. 녹차를 생산하는 농장사업과 부동산임대업 등을 사업 목적으로 1974년 12월 설립됐다가 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따라 서광리 땅을 산지 6개월 만인 2005년 12월 ㈜태평양에 흡수합병됐다.

합병 당시 장원산업 지분은 서 사장이 53.63%를, 나머지는 대부분 기타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아모레퍼시픽 지주회사였던 ㈜태평양은 지난 3월 계열사간 연관성 강화 및 글로벌 기업이미지 구축 차원에서 사명을 아모레퍼시픽그룹으로 변경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서광리 땅의 지분을 매입한 뒤 그대로 뒀다. 다른 지분을 추가로 사지도, 갖고 있는 지분을 팔지도 않았다. 이 땅이 묶이면서 공동 토지주들은 재산권 행사를 전혀 하지 못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동의 없이 처분이나 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법 등 관련법에 따르면 공동소유의 물건은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공유물을 처분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한 필지의 땅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면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는 권리를 제대로 내세울 수 없다. 지분만 거래한다 해도 개별 부동산의 구체적인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아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아모레퍼시픽 외 강씨 등 나머지 지분 소유자 5명은 아모레퍼시픽의 ‘알박기’식 지분 매입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지주들 땅 묶여 재산권 행사 못해
수십차례 토지분할 제의했으나 거부

이들은 “막강한 자금과 권력을 쥔 대기업이 힘없는 소시민들의 재산을 움켜쥐고 있다”며 “지난 6년간 20% 지분을 가진 아모레퍼시픽의 합의 없이 어떤 재산권 행사도 불가능했다”고 호소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제주에서 보내고자 했던 꿈과 희망이 무너지고 오히려 피맺힌 한과 절규만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강씨와 다른 토지주들은 아모레퍼시픽 측에 토지분할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토지분할은 지적도에 등록된 1필지의 토지를 지분만큼 2필지 이상으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공유토지를 분할할 경우 공유자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1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분할이 이뤄질 수 없다.

이에 따라 토지주들은 수십회에 걸쳐 아모레퍼시픽에 토지분할을 제의했다. 그때마다 회사 측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다 나중엔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됐다. 한번은 아모레퍼시픽의 ‘OK 사인’을 받아 토지분할을 위한 지적 측량 등 용역에 착수했으나, 또 다시 뒤늦게 백지화해 토지주들이 수천만원을 날리기도 했다.

강씨는 “아모레퍼시픽에 토지분할을 요구했지만 부서간 서로 떠미는 것도 모자라 결제가 늦어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와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까지 왔다”며 “매번 토지분할을 해주겠다는 구두 약속만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1년에 세금만 수백만원씩 내는 등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아모레퍼시픽의 부지 점유도 지적했다. 그는 “지적 측량을 하면서 공동 소유의 부지 수천평을 회사 측이 주차장, 녹차밭 등으로 어떤 승인도 없이 무단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줄곧 시정을 요청해도 모른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랬다 저랬다’
말 뒤집기 반복

그렇다면 아모레퍼시픽은 왜 서광리 임야의 지분을 매입한 것일까.

문제의 땅 바로 인근엔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하고 있는 녹차밭 ‘서광다원’이 있다. 따라서 업계에선 아모레퍼시픽이 사업부지 확보 차원에서 땅의 지분을 사들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 최초의 차 전문박물관인 ‘오설록 티 뮤지엄’이 있는 서광다원은 국내 최대 규모이자 최대 차 생산지로, 면적이 66만1160㎡(약 20만350평)에 이른다. 아모레퍼시픽의 녹차사업은 서 창업주의 필생의 의지로 이뤄진 산물이다. 이 창업주는 국내에서 사라진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1970년대 버려졌던 황무지를 직접 일궈 차나무 재배단지를 조성했고, 1980년대부터 설록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서 사장의 차 사업에 대한 의지도 남다르다. 선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차 사업 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울 방침을 내비치기도 했다. 녹차는 전통음료로서의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미래 유망사업으로 손색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2015년까지 주사업인 화장품에 이어 핵심사업으로 성장시킨다는 구상이다.

서 사장은 평소 “녹차는 맥이 끊긴 우리나라 차 문화를 잇기 위해 부친이 필생을 바친 일”이라며 “그 유지를 받들어 우리나라를 녹차 강국으로 만들겠다” 고 임직원에게 강조해 왔다.

만약 아모레퍼시픽이 사업부지용으로 서광리 임야의 지분을 사들였다면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된다. 무슨 이유로 부지 전체를 매입하지 않고 일부 지분만 취득했느냐다.

"땅 문제 법적분쟁으로 끌고 가
싼값에 통째로 거머쥐려 한다"

이에 대해 강씨는 아모레퍼시픽의 야욕을 의심했다. 한마디로 땅 전체를 노린 포석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의도라는 게 강씨의 주장. 강씨는 또 땅 문제를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가 결국 싼값에 다른 지분까지 통째로 거머쥐려 한다고 의심했다.

실제 부동산 공유자간 합의가 되지 않아 토지분할이 불가능할 경우 법원에 공유물분할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통상 서로 좋은 위치의 땅을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실상 협의 분필이 어렵다. 이때 법원은 직권으로 경매를 명령하고, 경매 처분 후 매각 대금을 공유지분별로 배당받게 된다. 경매는 토지 공유자도 참여해 낙찰 받을 수 있다. 낙찰가는 대부분 일반 시세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강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른 토지주들의 부담이 커져 아모레퍼시픽이 협상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며 “소송을 하려고 해도 실거래 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땅 시세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논란이 되고 있는 서광리 산XX번지의 공시지가는 지난 1월 기준으로 단위면적(㎡)당 8480원으로 나타났다. 총면적이 25만7096㎡란 점을 감안하면 이 임야의 땅값이 22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분을 매입한 2005년 1월 공시지가는 9770원. 6년 전에 비해 땅값이 내려갔지만, 실거래가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에 호재가 많아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보다 수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았다.

서광리 일대는 ▲첨단과학기술단지 ▲휴양형 주거단지 ▲신화·역사공원 ▲서귀포관광미항 ▲헬스케어타운 ▲영어교육도시 등 건설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서 추진하는 6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신화·역사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신화·역사공원은 오는 2015년까지 404만㎡(약 122만4000평)에 1조6000억원을 투입해 세계적 수준의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JDC는 2007년 12월 우선 510억원을 투입해 부지 조성공사에 착수했다.

일체 함구…의혹만 키워
확인취재도 응하지 않아

한국산업은행은 “신화·역사공원의 개발 효과가 고용 파급효과는 3만1497명, 생산 파급효과는 2조3553억원, 소득파급효과는 5015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제주 땅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어 의혹을 키우고 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사실 확인을 위한 본지의 취재에도 응하지 않아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

이희복 아모레퍼시픽 홍보팀장은 지난 10일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회사 땅 문제는 잘 모른다. 담당 부서에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19일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11일 아모레퍼시픽 측에 지분 매입 배경, 토지분할 거부 이유, 부지 활용 계획 등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으나 이 역시 어떠한 회신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반론이나 해명을 듣기 위해 십여 차례에 걸쳐 연락을 취했지만, 회사 측은 “팀장이 자리에 없다.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여러 번 메모를 남겨도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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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