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샘표식품의 수상한 회사들 추적

착 달라붙어 일감 ‘쪽쪽’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간장명가 샘표 그룹은 몇해 전부터 오너 3세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이 경영 전반을 이끌고 있다. 샘표는 4세 경영까지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아들이 그룹 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 이 가운데 그가 대표로 있는 회사 누리팩에 샘표그룹이 일감을 몰아주기 시작했다. 샘표그룹은 누리팩에 지분이 없다. 이 때문에 누리팩 소유주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일요시사>에서 수상한 누리팩의 경영 상황을 점검했다.

샘표그룹이 오너 4세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3세 경영인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의 장남인 박용학씨가 샘표식품 연구기획팀장으로 입사한 것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박 팀장은 다른 업체서 근무하다가 그룹 내 핵심 계열사로 들어왔다.

오너 4세 경영
수익률 개선중

박씨의 샘표그룹 입성은 본격적인 4세 경영수업으로 읽히는 분위기다. 박씨의 경영 참여는 오너 4세 가운데 유일하다. 

샘표식품은 그룹내에 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발효연구중심 6개 팀과 우리맛연구중심 2개 팀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박 팀장이 맡고 있는 연구기획팀은 우리발효연구중심에 소속된다. 

박 팀장은 기술연구소서 샘표그룹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샘표식품의 원천 기술에 해당하는 발효 기술이 있는 연구소 업무를 통해 그룹 전체의 이해도를 높이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최근 샘표는 지분의 변동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 샘표그룹의 박 사장 부자는 지난해 지주사 전환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한 것. 

그 과정이 흥미롭다. 자사주를 통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승계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샘표그룹의 지주사인 샘표는 사업회사인 샘표식품 주주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1월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샘표가 샘표식품 주주들로부터 샘표식품 주식을 넘겨받고 샘표의 신주를 발행해 샘표주식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신주 발행 규모가 기존 발행 주식의 25%에 달할 만큼 커 시장의 눈길이 쏠렸다. 신주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지배구조가 바뀌기 때문이었다. 당초 시장에선 오너 일가가 신주청약에 대거 참여해 지배력을 강화할 것으로 봤다. 

이 시나리오대로 오너 일가는 신주 청약에 대거 참여했다. 이에 따라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강화됐다. 중요한 점은 이를 통해 승계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샘표 청약에 참여한 사람은 회사를 이끌고 있는 박진선 사장과 그의 아들 박용학씨 뿐이었다. 박 사장의 샘표 지분율은 16.46%서 33.67%로 올라갔고, 용학씨는 4%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2대주주로 올라섰다. 

박 사장의 1인 체제가 공고해졌고 용학씨의 승계발판이 마련됐다.


흥미로운 점은 샘표식품의 자사주 비율이 30%에 달하는데 박 사장 부자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기존 샘표식품이 보유 중인 자사주 30.38%(135만 85주)는 존속회사인 샘표의 관계회사투자주식으로 편입된다. 기존 자사주가 분할 후 샘표식품 주식으로 전환되고, 이를 샘표가 전량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 사장과 특수관계인인이 샘표식품 지분 30.01%를 갖고, 샘표가 30.38%를 가져가면서 샘표식품에 대한 장악력을 높인 셈이다. 샘표는 박 사장과 특수관계인이 30.01%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꼼수 지주사 전환이라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절차에 대해 문제삼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샘표식품은 과거에도 부당하게 자산을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어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오너 일가
대거 등장

눈길이 쏠린 회사는 명진포장이다. 명진포장은 2006년 적대적 M&A를 노리는 사모펀드 마르스 1호가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 명진포장의 부당거래에 주장하면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더벨>에 따르면 명진포장은 박 사장의 부인인 고계원씨 일가가 운영하는 회사로 알려졌다. 최대주주는 지분 70%를 보유한 김명조 대표이사다. 감사인 고혜민, 고혜연, 고병욱씨 등이 각각 1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명진포장은 경기도 용인서 골판지 및 골판지 상자를 제조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 2004년 11월 설립됐다. 자산은 2014년 말 기준 51억원 수준이다. 같은 해 매출액은 30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억원으로 집계됐다. 

명진포장은 한때 샘표식품 지분 2.15%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는 상당부분 매각해 0.67%(샘표주식 0.5%)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다.

샘표그룹은 현재에도 명진포장과의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샘표식품은 지난해 3분기 기준 21억1838만원의 일감을 줬다.

수상한 회사는 또 있다. 통도물류와 성도물류다. 이들 회사는 마르스 1호와 경영권 분쟁 당시 오너 일가의 개인 회사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뚜렷하게 결론 나지 않았다. 

현재 샘표 그룹은 이들 회사와 지분 관계가 없으나 특수관계자로 분류돼 적지 않은 금액을 거래하고 있다. 지난해 통도물류와 성도물류가 샘표로부터 벌어들인 임대료 수익은 각각 2억8967만원, 2억3636만원이다. 


성도물류의 경우 2013∼2015년까지 총 9억원의 임차료를 챙겼다. 2013년 8578만원, 2014년 3억9263만원, 2015년 4억8376만원 등이다. 통도물류는 2012∼2015년 간 22억4395만원을 샘표식품으로부터 임차료 명목으로 수익을 올렸다. 

샘표 그룹이 이들 회사에 상당한 물량을 수년전부터 몰아주고 있는 셈이다.

소유주 의심 업체만 3개
주고받고 내부거래 의혹

성도물류의 경우 본점 소재지가 박진선 사장의 소유의 땅으로 돼있었는데 이 땅을 담보로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융통한 정황까지 발견됐다. 2012년 성도물류가 은행서 대출을 받는데 채권최고액 24억원의 근저당권 설정을 해줬다. 

박 사장이 땅을 담보물로 내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오너 일가 소유가 아니냐는 시각이 나왔다. 

최근에는 누리팩이라는 회사를 특수관계자로 올려놓고 일감을 몰아주기 시작하면서 해당 회사에 대한 의문의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승계 후보자인 박용학씨가 누리팩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 회사 정체에 관심이 쏠린다.


누리팩은 포장 및 원자재 제조 및 판매, 식의약품용 용기 제조 및 판매 등을 사업목적으로 2008년 설립됐다. 샘표식품 팀장 출신으로 알려진 김모씨가 이사를 맡고 박진선 사장이 감사를 맡았다. 당시 본점 주소지는 현재 통도물류 소유지인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 1○○-○였다. 

이후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열미길로 본점 주소지를 옮긴 뒤 현재 누리팩의 소유지인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장자터로 1○○-○○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 경영은 2013년까지 박 사장과 김씨가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3년 둘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박용학씨가 경영 전면에 등장한다. 박씨는 2013년 3월28일 사내이사로 단독 취임하며 회사 경영을 혼자서 책임졌다.

일각에서는 누리팩의 소유가 오너 일가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박씨가 단독 이사로 경영 전면에 나서기 전후 수차례 증자를 한 점을 바탕으로 박씨의 자금이 상당부분 투입됐을 것이란 시각이 나왔다.

누리팩은 설립 당시 2억원(발행 주식수 4만주)의 자본금 규모였는데 박씨가 사내이사에 등기하기 2년 전인 2011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5억원(10만주), 8억원(16만주) 등으로 총 자본금 규모를 늘렸다. 

이후 2013년 12월 8억8400만원(17만6800주), 2014년 5월 9억5155만원(19만310주) 등으로 자본을 또다시 늘렸다.

일각에서는 박씨가 경영 전면에 나타난 후 수익성이 좋아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요시사>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박씨가 회사 이사로 등기했을 당시인 2013년은 13억8928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5694만원 수준이다. 당기순이익은 2147만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박씨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2014년 매출액은 16억원255만원으로 전년대비 20%이상 상승했다. 영업이익은 2억3440만원으로 전년 5694만원에 비해 4배 넘는 상승세를 기록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2억3399만원을 기록해 전년 2147만원 대비 10배 넘는 성장세를 나타냈다. 이듬해 역시 성장세가 이어졌다. 18억4840만원으로 전년보다 2억4585만원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역시 5억1723만원, 5억2817만원 등으로 전년대비 두 배넘는 성장률을 나타냈다.

합법이냐?
편법이냐?

일각에서는 누리팩의 수익률이 유사 업체 대비 상당히 높은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누리팩은 주로 플라스틱 성형 용기를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는데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 A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10% 수준이다. 

그런데 누리팩은 2013년 4.1%에 불과하던 영업이익률이 박씨의 경영참여 이듬해 14.6%, 2015년 28%로 비약적으로 개선되는 모습이었다.

샘표 측은 <일요시사>의 높은 영업이익률에 대한 질의에 대해 “이 같은 영업이익률은 날 수가 없다”고 일축했으나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자 “(제시된) 수치가 맞다”며 “누리팩의 실적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동안 샘표그룹 측과 누리팩이 직접적으로 거래를 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2016년부터 특수관계자로 지정이 되면서 거래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거래 규모는 15억4913만원(샘표 7억6225만원, 샘표식품 7억8688만원) 수준이었다. 

지원 규모는 더욱 늘릴 것을 보인다. 샘표그룹이 누리팩에 지원한 일감은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16억3088만원으로 이미 전년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누리팩의 매출 비중이 높은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거래가 적절한지 여부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수관계사의 수상한 흐름
직접적 지분없어 확인 불가

샘표 측 관계자가 확인해준 지난해 누리팩의 매출은 26억원(당기순이익 9300만원) 수준이다. 샘표가 지난해 3분기까지 누리팩에 준 일감이 16억원을 넘어선 점을 생각하면 매출의 60% 이상이 샘표에 기댄 물량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샘표와 누리팩과의 거래간 적절성 여부를 검토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관한 법률 제 23조의2에 따르면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는 특수관계인이나 특수관계인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회사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해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샘표 측 관계자는 누리팩과의 거래를 확대하는 것과 관련 “누리팩과만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품질개선과 기술개발 등의 효율성 증대, 제품 기술력이나 보안 등을 위해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누리팩의 소유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오너 일가 외에도 주주가 더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확한 지분구조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단순거래?
부당거래?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샘표그룹 오너 일가 소유라는 말이 나오는 회사가 불법적인 요소가 있는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한다”며 “다만 그동안 기업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조그만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승계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의혹 무성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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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