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사정권’ 재계 친족기업 대해부

회장님 친인척 말로만 독자경영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말 많던 친족기업이 사정기관의 사정권에 들기 시작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가 이들 친족기업들에 ‘깜빡이’를 켠 것이다. 재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공정위 조사에 걸릴 수 있는 기업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는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요시사>서 이들 기업을 정리했다.
 

재계가 바빠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친족기업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 계열분리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룹에 기생
앉아서 떼돈

재계의 눈길이 쏠린 부분은 친족기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에 대한 부분이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르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동일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 범위서 벗어날 수 있다. 친족기업이라도 해도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면 계열분리(친족분리)가 가능한 것이다. 

친족기업이란 대기업집단 총수의 6촌 이내 친족이나 4촌 이내 인척이 운영하는 계열사를 말한다. 계열분리가 되면 친족회사는 독자경영이 가능한데 이 경우 원래 기업집단 사이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을 받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점 때문에 그동안 계열분리된 친족기업에 대한 감시가 느슨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앞으로는 계열분리 기업이 계열 제외 전후 3년간 거래에 대해 부당지원행위, 사익 편취행위로 공정위로부터 조치를 받게 된다면 제외일로부터 5년 이내에 제외 결정을 취소할 수 있게 된다. 

공정위가 친족기업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에 따라 친족회사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사실 상당수의 대기업집단은 오랜 기간 기업 활동을 영위해오면서 많은 친족기업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감독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서도 이 같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어떤 기업들이 감시 대상에 포함될까.

삼성그룹과 관련된 친족기업에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 중 한 곳은 알머스(옛영보엔지니어링)다. 

채이배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누나인 이순희씨 아들이 지배주주로 있는 알머스, 애니모드는 삼성전자 및 중국현지법인과의 거래로 매출 90%를 올리고 있다”며 “이 회사 매출은 753억원(2001년)서 1942억원(2015년)으로 14년 만에 2.5배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들간 거래는 현재 진행형이다. <더스쿠프>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하만을 9조원에 인수 이후 하만의 계열사이자 명품오디오 브랜드 AKG는 갤럭시S8 제품에 제공되는 번들 이어폰을 납품했다. 

그런데 AKG가 제조(OEM)를 맡긴 업체가 알머스의 베트남 현지 법인이다.


부영은 최근 사정기관의 사정 칼날을 받으면서 친족기업과 관련된 검증을 자연스럽게 받을 전망이다. 검찰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을 출국금지 조치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는 상황이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부영은 친족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계열분리 개선 개정안 입법 예고
고리 걸려 있는 방계회사 초긴장

공정위에 공정위는 부영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관련 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는데, 친족기업 ‘흥덕기업’에 대한 문제도 동시에 불거지는 분위기다. 흥덕기업은 이중근 회장의 친족 관계인 유상월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부영이 공급한 102개의 임대아파트 단지 가운데 23개 단지의 경비, 22개 단지의 청소 업무를 넘긴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부영은 흥덕기업 관련 의혹에 대해 “흥덕기업은 친족이 경영하는 회사는 맞지만 2016년 3월22일 공정위로부터 독립경영을 인정받아 계열분리돼 숨겨진 계열사는 아니다”라며 “적법한 경쟁입찰에 의해 선정돼 타 업체와 같이 부영이 관리하는 임대아파트 경비·청소 용역의 일부를 수행했다”고 해명했다. 

재계의 모범생 LG그룹도 오랜 기간 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서 많은 친족기업이 파생됐다.

LG그룹은 그동안 건설·에너지(GS그룹), 전산·금속(LS그룹) 등으로 계열분리를 했다. 장자 원칙에 의해 별다른 잡음없이 각자의 길을 가면서 계열분리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많은 수의 친족회사 및 그룹은 이들 간 거래에 잡음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한국에스엠티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5촌 당숙인 구자민씨가 주주로 있는 회사로, LG디스플레이와 거래하면서 조사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에스엠티는 2004년 LG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구자섭 5%, 구자민 40%, 구본근 40%, 구경혜 5%, 구은진 10% 등으로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다. 2006년 매출은 629억원 수준이었지만 11년만에 매출 3422억원으로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수혜 기업은?

LG그룹의 친족기업인 오성디스플레이 역시 거래 내역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성디스플레이는 LG디스플레이와 12년 넘게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LG디스플레이가 12년간 프레스 기구부품 분야서의 상생활동으로 올레드(OLED)용 프레스 부품 개발 및 성능향상에 기여해 동반성장 우수사례로 오성디스플레이를 선정해 ‘동반성장 어워드’를 수여했다. 


LG그룹의 유력 승계자 구광모 LG전자 상무의 장인 회사도 LG그룹 계열사로부터 일감을 받아 눈총을 받은 바 있다. 구 상무는 2009년 식품원료 기업 보락 대표인 정기련씨의 장녀 효정씨와 결혼했다. 

이후 보락이 LG생활건강으로부터 일감을 받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기도 했다.

LG생활건강은 현재도 사돈 기업에 일감을 주고 있다. 

특히 보락은 지난 4년간 사업보고서 주요 매출처 세부 항목서 LG생활건강과의 매출 내역을 제외하다 올해 반기 보고서부터 다시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눈길이 쏠리기도 했다. 올 3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이 보락의 전체 매출서 차지하는 비중은 13.03%(34억원) 수준으로 아모레퍼시픽에 이어 두 번째로 매출 비중이 높다.

GS그룹도 친족기업 관련 검증의 시선이 어른거린다. 

GS그룹의 친족기업 의혹을 받은 회사는 알토, 창조건축사무소, 피플웍스, 피플웍스 커뮤니케이션, 에이치플러스에코 등이다. 이들 회사는 주요주주로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친족이 등재돼있다. 


알토와 창조건축사무소는 LG와 GS의 계열분리 이후 허창수 회장이 2002년 GS건설 대표이사가 되면서 거래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플웍스는 LG전자, LG유플러스, LIG넥스원(방산업체)와, 피플웍스커뮤니케이션은 GS칼텍스 등 GS계열회사와 거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이치플러스에코는 정유시설, 송유관, 주유소 건설 등과 관련된 일감을 GS칼텍스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광그룹은 친족기업 및 오너 일가 기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검증이 시작되기 전, 합병을 통해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는 모양새다. 

태광그룹은 지난 26일, 계열사 3곳을 합병하는 지배구조 변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오너 일가 소유 개인회사는 7개서 1개로 축소된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압박을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도서보급이 거론됐다. 한국도서보급은 현재 이호진 전 회장 51%, 아들 현준씨가 49%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데 이번 회사 측의 지배구조 개선 방침으로 티시스의 사업부분을 흡수합병하게 되면서 논란을 사전에 차단했다.

사측도 친족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한 해소 차원서 개선안을 발표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번 지배구조 개선 작업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계열사 간 출자구조를 단순화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며 “친족 소유의 계열사를 합병하는 등 단계적으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친족그룹 관련 공정위의 조사가 미칠 가능성이 있다. 

2011년부터 친족기업으로 분류된 비엔에프통상은 지난해 말이 많았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딸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전 이사장의 아들인 장재영씨가 지분 100%(2016년 사업보고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비엔에프통상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5년, 2016년 매출액은 각각 438억원, 743억원 수준인데 매출의 상당 부분이 롯데그룹 계열사와의 거래서 발생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리감독 강화 
상당한 압박

물론 대기업서만 친족기업 논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코스맥스그룹 역시 친족회사에 대한 거래에 물음표가 찍혀 있다. 이와 관련된 석연치 않은 점은 <일요시사>(‘화장품 ODM 1위’ 코스맥스 편법승계 의혹)서 다뤘었다. 

단적인 예가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의 두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레시피의 거래 흐름이다. 레시피는 이병주씨가 80%의 지분을, 이병만씨가 2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레시피는 2007년 설립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20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26억원, 22억원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실적은 전년 대비 급증한 모습이었다.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전년대비 각각 21.1%, 165.8%, 120.4% 늘어났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레시피의 거래 흔적이었다. 레시피는 화장품 브랜드 회사다. 주로 ODM업체 제품을 받아 레시피 등의 상표를 붙여 판매한다. 그런데 코스맥스가 제조한 제품에 레시피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비중이 90%를 훌쩍 넘길 만큼 높았다. 
 

지난 8월 레시피의 판매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엔코스서 제조한 로즈 페탈 클렌징 오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코스맥스서 제조된 제품들로 구성돼있었다.

하지만 레시피와 코스맥스 간 거래는 장부상으론 확인할 수 없었다. 두 회사는 오너 일가가 같은 법인이다. 둘 간 거래가 있다면 반드시 사업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나와야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실제 둘 사이에 거래가 없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미 드러난 정황서 그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첫 타깃 누가될까 관심 집중
‘전전긍긍’ 서둘러 정리 수순

일각에서는 코스맥스와 레시피 간 거래 중간에 회사 관련 지분과 친족관계서 자유로운 인물을 통해 중간 법인을 세우고 이를 통해 제품을 유통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럴 경우 재무제표상에 거래가 잡히지 않을 수 있다.

회계사 A씨는 “레시피와 코스맥스 간 드러난 거래 정황과 사업보고서 내용이 석연치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중간에 일종의 위장 계열사를 세워 ‘쿠션형식’으로 제품을 거래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범현대가그룹의 현대그린푸드 역시 친족기업으로서 검증 대상이 될 수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현재 현대백화점 그룹 소속으로 단체급식사업으로 영위한다. 현대백화점 그룹은 1999년 현대그룹서 계열분리했다.

문제는 계열분리된 후에도 일부 사업영역서 거래가 계속됐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현대그린푸드는 범현대가 그룹의 사업장에 급식사업을 계속하면서 뒷말이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증권가서도 현대그린푸드의 매출이 범현대가서 나온다는 점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모 증권사가 지난해 3분기 현대그린푸드와 관련 리포트를 살펴보면 현대그린푸드가 범현대가의 매출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당시 리포트에 따르면 현대그린푸드는 3분기 연결기준 매출 및 영업이익 5347억원, 194억원으로 매출은 전년 대비 0.2%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16.7% 감소했다며 그 원인으로 ▲현대차 파업 장기화 ▲현대중공업 전년대비 조업량 감소를 꼽았다. 

사실상 상당부분 매출을 범현대가에 의존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현대백화점 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 현대H&S 역시 뒷말이 나오는 업체다. 

범현대가의 또다른 그룹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6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현대H&S는 현대중공업에 납품하는 작업복이나 안전화, 수건, 밥값만 올리고 질은 개선하지 않아 이런 일을 독점해 온 것이 과연 공정경쟁에 적합한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황에도 불구하고 계열분리된 회사라서 실제적인 거래 규모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검증의 목소리가 고조되는 상황이다.

중견기업도
도마 위에

재계 한 관계자는 “친족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기업 규모나 역사와는 무관하게 꾸준히 계속돼왔다”며 “그동안 관리감독이 느슨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공정위서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재계가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