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호 칼럼> 야구판의 맹모삼천

  • 유준호 기자 www.apsk.co.kr
  • 등록 2017.12.18 11:32:22
  • 호수 1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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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500년간 성리학을 국가의 경영과 사회적 문화발전의 기본적 원리로 근간을 이뤄왔던 우리에게 공자와 맹자는 오늘날에도 아주 친숙하고 도덕적 범주의 기본이 되는 인물이다. 그들의 가르침은 아직도 우리 사회 여러 곳에 적용되는 규범과 도덕의 잣대가 되고 있다.

맹자와 관련된 고사성어 중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을 키우고 있는 모든 부모들이 실천해야 할 덕목 중 최고로 꼽히고 있는 교훈이다. 내용인즉, 맹자를 키울 당시 그의 어머니는 세 번의 이사를 통해 맹자에게 올바른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잘못된 치맛바람

첫 번째로 집 근처에 장의사가 있으니 어린 맹자가 하루 종일 곡소리 흉내만 내고, 두 번째 시장 근처로 거처를 옮기니 장사 흉내만 내기에 세 번째로 서당 근처로 이사를 가니 비로소 글을 읽었다고 하는 내용이다.

사실 이 교훈이 말해주고자 하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환경적인 면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주기 위함인데, 문제는 그 행위의 주체가 맹자가 아닌 맹자의 모친이기에, 우리에게 자식을 잘 키우려면 어머니 혹은 부모의 소위 ‘치맛바람’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것으로 왜곡 및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해 표현하자면, 맹자 어머니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식이 잘되기 위해서라면, 무슨 행동을 해도 전부 다 이해돼야 하고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전도된 가치관이다. 


조선시대 500년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 오랜 시간을 관통하며 자녀 교육의 모범적인 기준뿐만 아니라 좋은 어머니, 좋은 부모의 역할로 권장되고 있을 정도다.

야구계 뿌리박힌 내로남불
맹자의 교훈 심각한 왜곡

현재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 야구와 관련된 어느 한 온라인 카페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수많은 회원을 자랑하는 이곳은 야구와 관련된 많은 정보를 공유하며, 회원들 자신의 의견 개진도 활발하게 하는 곳이다. 

대개의 회원들은 엘리트 야구선수로 자식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들이거나 혹은 유소년서 엘리트 야구선수를 희망하는 학생의 학부모들과 리틀야구단을 비롯한 초중고 엘리트 야구부의 지도자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이다.

필자는 얼마 전 그곳에 초등학교 야구 체육특기생의 중학교 진학과 관련, 정보 전달의 의미로 글을 올렸다가 일부 소수의 회원들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비난과 함께 소위 ‘신상털기’ 수준의 인신공격을 겪은 바가 있다. 
 

내용인즉, 수도권 지역 어느 초교 야구선수의 학부모가 아들의 중학교 진학을 위해 좋은 중학교가 있는지, 있다면 아직도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체육특기생 인원의 여유가 있는지를 게시글로 올렸고, 그것에 관해 필자는 신분과 연락처를 밝히며 현행 관련 법규에 따른 정보를 전달했을 뿐이었다.

초중등교육법 등 체육특기생들의 진학과 관련된 법률과 그 시행령 등에 따르면 국내 모든 체육특기생들의 진학에 있어 지도자들 사이에서 체육특기생의 진학과 대상 학교를 미리 정하는 소위 ‘사전 스카우트’는 엄격하게 금지돼있다. 


전국 17개 시도 그리고 광역 지역의 특성과 관할 지역 내의 지역 간 균등화 발전 차원서 교육청 주관으로 ‘배정’에 의해 체육특기생을 상급 학교로 진학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법률에 따른 체육특기생의 진학 설명에 반해 필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된 반론은 다음과 같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당신 기자 맞느냐. 기자면 기자답게 써라.”

“감독이 정해 주는 학교로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불이익을 당한다. 부모들이 왜 야구단 회장과 총무를 하려 하는지 알고 있느냐. 전부 감독들에게 잘 보여서 아이들의 기용과 진학에 유리하게 작용하려 함이다.”

“우리나라 야구계에서는 감독이 곧 법이다.”

심지어 현직 감독으로 추측되는 어느 한 회원은 현행 관련 법규가 현실에 맞지 않아 중학교 진학을 위해 그 부모가 진학 대상 학교 근처로 위장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니 법률을 고쳐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리고는 말미에 선동적인 문구까지 이렇게 덧붙여졌다.

“법이 잘못돼 우리 아이들을 (위장전입하는)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당시 위와 같은 댓글이 난무하며 필자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발전하던 게시글은 해당 카페의 운영진에 의해 삭제 처리됐다. 삭제 이유는 필자가 신분을 밝히며 언급한 <한국스포츠통신> 신문이 광고성 게시글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당시 필자를 비난한 댓글을 달았던 회원들은 물론 해당 카페의 많은 운영진조차 자신들의 아들을 야구선수로 키우는 학부모들이었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거주지와 거리가 먼 학교로 진학시킨 위장전입에 의한 진학으로 의심되는 중학교 1, 2학년 야구선수의 학부모, 혹은 고등학교 1학년 선수들의 학부모들이었다. 

이들이 바로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온라인의 특성을 살려 이른바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이었다.

키보드 위리어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졸렬한 행동

‘인터넷상에서는 거침없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도 막상 실제생활, 오프라인상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을 가진 이들을 지칭하는 표현.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는 악성 리플, 욕설, 타인 사칭 등 무모하고 예의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막상 실생활에서는 파리 한 마리도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이들을 풍자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해당 카페를 만든 학부모와의 직접 통화서도 그 학부모는 필자에게 이렇게 직접 말하기도 했다.

“어차피 진학을 위한 위장전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위장전입 하는) 학부모들을 이해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 또한 자신의 아들을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로 위장전입에 의해 진학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학부모 중 한 명이었다. 이쯤 되면 야구계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말 자기 스스로에게는 너무나도 너그럽고 관대한 세상서 아이들을 교육 시키며 살고 있는 것이다. 체육특기생들이 위장전입을 통해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범법자’라고 칭할만한 사안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탈법인 동시에 그야말로 매우 ‘졸렬한’ 행동이다.

내 아이만 잘되면
뭔 짓인들 못하랴?

졸렬한 행동을 통하여서라도 내 아이만 원하는 학교로 진학을 시킨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도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위장전입 같은 탈법도 불사하고, 그것을 제한하는 법률이 현실과 맞지 않으니 법을 고치라고 주장하는 당사자들이 우리 사회서 정치인 혹은 공직자들이 검증 차원서 위장전입이 드러났을 때도 그렇게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야구를 떠나 나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타인에게는 참으로 엄격하기만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식을 교육하면서도 법을 준수하고 보편적 상식과 규범, 그리고 도덕에 맞게끔 살아가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어린 맹자가 성장할 당시의 장의사라는 직업과 시장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나쁜 직업’이고, 글을 읽는 학자만이 권장 받을 수 있는 ‘좋은 직업’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약 100여년 전까지의 조선시대 사회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귀천과 엄격한 신분사회의 계급적 질서가 존재하던 시대를 지배하던 그 시대의 ‘과거형’ 인식일 뿐이다.

오늘날에는 글 읽는 학자뿐만 아니라 장례를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장의사도, 시장서 장사하는 상인들도, 모두 좋은 직업이다. 법을 준수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모든 직업은 신성하고 소중하다. 

아무리 맹자의 어머니라도 직업의 귀천과 경중,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권리는 2500년 전에도 지금도 갖고 있지 못하다.

어린 자식을 키우는 데 있어 교육적 환경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는 맹모삼천의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 자식이 잘 되기만 한다면 부모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는 공동체 삶에서의 심각한 왜곡을 가져왔다. 

그런 예가 야구판서도 비일비재로 일어나 대다수 학부모들과 지도자들에게 많은 부작용과 폐해로 작용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적어도 국내 야구계와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보편적인 상식과 규범, 도덕적인 잣대의 교육적 환경 아래서 성장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맹자를 죽여야만 한다. 맹모삼천의 교훈이야말로 이 시대에 사라져야 할 악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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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