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일전에도 누누이 이야기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 부국강병입니다.”
유신이 부국강병이란 말에 힘을 주고 주위를 살폈다.
마치 그에 동조라도 하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스스로 일을 도모하고 현 고구려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자생할 수 있자면 십만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지.”
“그 이야기는 나도 들은 바 있소.”
알천이 유신의 말에 힘을 실어주자 비담 역시 동조하고 나섰다.
“그런 차원에서 무엇보다 강병이 중요합니다.”
부국강병
유신이 강병에 힘을 주어 이야기하자 대신들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이야기는 지금 당장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이야기하고, 경들에게 상대등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군요.”
사안이 민감한지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차피 수품 대감이 더 이상 근속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국정을 생각해서라도 이른 시일에 임명하시어야지요.”
“당연한 일이오.”
춘추의 이야기에 염종이 맞장구 치고 나섰다.
“하오나, 전하.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누구를 지적하라 하심은 무리라 판단됩니다. 하니 저희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내일 회의에 아뢰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유신의 제안에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공조하고 나서자 회의는 자동으로 파해졌다.
“장군, 누구를 상대등으로 임명하면 좋겠습니까?”
유신이 어깨를 나란히 한 춘추의 이야기에 슬그머니 미소를 흘렸다.
“무슨 의미인지요?”
“생각하고 말 것 없는 일이야. 비담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 앉게 하자고.”
“비담을!”
의외의 답이라는 듯 춘추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이, 비담.”
“아니 어떻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일세.”
춘추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해갔다.
“첫째는 여주에 대한 경계요, 둘째는 강병의 문제일세.”
“경계와 강병이라.”
“지금 여주의 행동을 보게나. 힘겹게 전쟁을 치루는 중에도 불교에 빠져 탑이나 쌓고 있지 않은가.”
“그야 불덕으로 적의 침입에서 벗어나자는 의미지요.”
“그게 말이 되는가?”
춘추가 답을 찾겠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
“나라를 경영함에 있어 불교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네. 그런데 여주는 불교와 정치를 하나로 묶어 툭하면 이상한 일에 몰두해서 가뜩이나 약한 국력을 나 몰라라 하고. 여차하면 당나라에 구원 요청이나 하고. 그러니 우리 꼴이 뭐가 되겠는가.”
“그건 그렇다 하고 강병의 문제는.”
“비담의 경우도 강병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사람일세. 그러니 그로 하여금 상대등에 앉게 해서 일을 추진해 나가세.”
“비담이 여주를 경계하면서 강병에 힘을 쏟을 인물이라 이 이야기지요?”
“그러니 비담으로 정하라고.”
“그런데.”
“뭔가?”
“비담과 여주 사이가 워낙에 좋지 않아서.”
“그게 걱정되는가?”
“그러면?”
“그 일은 우리가 신경 쓰지 말자고. 우리야 어차피 길게 바라보기로 한 거 아닌가.”
“그 이야기인즉슨?”
“그 일은 후일 이야기하세. 그리고.”
유신이 말을 하다 말고 앞서 나가자 춘추가 급히 옆에 나란히 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이제 지소와 정식으로 혼례를 치렀으면 하네.”
“그래도 되겠습니까?”
“조만간에 아이를 출산할 듯하네.”
“하기야, 벌써 그리되었지요.”
“그 전에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고 아이를 보려하네.”
춘추가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었다.
상대등 하마평…비담과 여주
혼례 치른 춘추…삼광을 낳다
“왜 그러는 겐가?”
“혹시 느낌이 오는지요?”
“무슨 느낌.”
“아들인지 딸인지 말입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글쎄요, 매부가 워낙 딸만 나서리.”
춘추가 말을 하다 말고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아닐세. 반드시 아들일 게야. 그런 연유로 혼례를 서두르는 것이고. 또한 이미 이름도 지어 놓았네.”
“이름까지 말입니까?”
“그러이, 삼광(三光)이라고.”
“삼광이라면?”
“당연히 태양, 달 그리고 별을 의미하지.”
“그러면 제 손자의 이름이 삼광입니다.”
춘추가 손자라는 단어에 힘을 주자 유신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집무실을 서성이던 연개소문이 선도해의 갑작스런 제안에 움직임을 멈추고 선도해를 주시했다.
“뭐라 하였소?”
“금번엔 제가 사신으로 당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가당한 이야기요?”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생각하기 나름이라.”
연개소문이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제가 다녀오는 게 여러모로 이로울 겁니다.”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는 게 문제가 되니 그러지요.”
“그 부분은 걱정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패자의 입장에 처한 당태종이 사과의 사절단을 함부로 처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명색이 황제라고 거들먹거리는 입장에서.”
“그건 그렇고, 무슨 이유로 굳이 책사께서 가려 합니까?”
“두 가지 이유입니다.”
“두 가지 이유라니요?”
“먼저 당태종이 살아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설령 살아 있더라도 대감의 화살에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으니 그 부상은 심상치 않을 듯합니다. 그러니 그 상세한 전말을 직접 살피려 합니다.”
“다른 이유는?”
“제가 감으로 해서 고구려 군의 신임과 사기를 한층 높일 수 있습니다.”
“신임과 사기라.”
“이번에 사절을 보낸다 하면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그런데 대감의 수족인 제가 직접 간다면 모든 고구려 사람들이 대감께 보내는 신뢰가 한층 견고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자세를 낮추다
“수족이라니 당치않소. 오히려 내가 의지하는 입장인데.”
“과분한 말씀입니다, 대감. 저 같이 하찮은 자를 어찌 대감에 비교하시는지요.”
선도해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개소문이 급히 무릎을 꿇었다.
선도해가 기겁하고 자세를 낮추어 연개소문의 소매를 잡았다.
“대감, 이 어인 일이십니까!”
“부족한 내가 무슨 복이 그리 많다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오.”
“어서 일어서십시오, 대감.”
선도해가 잡은 손을 놓고 더욱 깊이 몸을 숙였다.
잠시 선도해를 주시하던 연개소문이 이번에는 그의 소매를 잡고 함께 일어났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