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쑥 기부 쏙’ 두 얼굴의 기업들

돈 쟁여놓고 슬슬 눈치만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날씨가 추워지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소외계층이다. 기부금을 편취하고 살인까지 저지른 이영학 사건으로 기부금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재계의 분위기는 어떨까.
 

올해 벌어진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은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이영학은 희소병을 앓고 있는 그의 딸을 이용해 기부금을 모집하고 그 돈을 펑펑 썼다. 국민들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 그가 모은 확인된 돈만 12억8000만원에 달했다.

각종 구설 눈살
사회적 책무 회피

충격은 기부금 감소로 이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개인이 기부를 했다는 비중은 2011년 36%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지난해 기준 24%로 떨어졌다. 재계는 최순실 국정 농단에 기업 기부금이 활용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기부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매출액 상승에도 기부금을 줄인 기업들이 눈길을 끈다. 동서는 올 한해 기분 좋게 보내고 있지만 기부에는 인색한 모습이었다. 

동서의 올 3분기까지의 누적 매출(개별기준)은 3727억원으로 전년동기 3385억원 대비 341억원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264억원, 1052억원을 각각 24억원, 41억원 오름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사회적인 활동은 소극적이었다. 


3분기 누적 기준 2950만원으로 전년 동기간에 비해 300만원가량 낮았다. 전체 매출액 대비로도 미미한 수준이어서 사회적인 책무에는 둔감한 모습이었다.

반면 오너 일가의 곳간을 채우는 데는 부지런한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7월 동서가 성제개발 인수를 하면서 뒷말이 나왔다.

성제개발은 동서 오너 일가의 지분이 과반을 넘는 기업인데 동서를 통해 올리는 매출비중이 한때 90%를 넘길 만큼 오너 일가 이권 챙겨주는 기업이란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기업이었다. 

배당성향도 역시 90%를 넘어 오너 일가의 곳간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빙그레도 매출 증가에도 기부금 예산을 적게 잡았다. 올 3분기까지의 매출은 676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428억원보다 335억원 증가했다. 반면 기부금은 8700만원으로 전년 3억7300원 대비 2억8600만원 감소했다.

기부금 인식 부정적으로…관심이 절실
재계도 어렵다 이유로 소극적인 모습

빙그레 역시 올 한해 오너 일가 논란이 있었던 기업이라 사회적인 역할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올해 초 빙그레 정기 세무조사 과정서 차명주식 200억원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이 적발됐다. 결국 빙그레는 지난 7월 공시를 통해 차명주식 분 2.98%의 존재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관련 세금문제로 시끄러웠다.
 

사조오양도 매출 오름세와는 반대로 기부금은 낮췄다. 3분기까지 올린 매출은 229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960억원 대비 339억원 오름세를 보였지만 기부금은 1074만원으로 전년 2295만원 대비 절반 수준으로 삭감했다.

사조오양의 사조그룹은 올해 편법승계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는 기업이기도 하다. 사조산업은 연 매출 7000억원 규모로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주 회장은 사조산업의 지배권을 사조시스템즈란 회사를 통해 넘겼다.

1982년에 설립된 사조시스템즈의 지분은 주 회장의 아들 주지홍 사조해표 상무가 지분율 39.7%로 가장 많은 주식을 쥐고 있다. 2010∼2016년 사이 사조시스템의 매출의 절반 이상은 그룹계열사에서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사조시스템즈는 사조산업의 주식을 주 회장으로부터 매입했다. 2015년 8월과 2016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총 15%(75만주) 규모였다. 2015년 12월에는 사조산업 지분 6.78%를 보유한 사조인터내셔널과 합병하면서 주 상무에게로 지배력이 넘어갔다. 

‘주진우 회장→사조산업→기타 계열사들’의 구조서 ‘주지홍 상무→사조시스템즈→사조산업→기타 계열사들’의 구조가 완성됐다. 주 상무가 주 회장에게 직접적으로 75만주(480억원 추정)를 증여받았다면 해당 부분에 대한 증여세가 부과되지만 사조시스템즈를 통해 증여세를 피했다.

문제는 사조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사조시스템즈에도 편법 증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주 사조그룹 상무는 2015년 9월 사조시스템즈의 주식 17만2300주를 국세청에 물납했다.

소비자 중심 기업
소외층은 나 몰라라

2014년 7월 사고로 숨진 동생 주제홍씨로부터 사조시스템즈 주식 53.3%를 상속받으면서 비상장주식을 상속세(30억원)로 물납한 것이다.

그런데 물납한 주식을 사조시스템즈가 매입하면서 자사주로 편입, 주 상무가 사조시스템즈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증여세를 내지 않고 사조그룹 전체의 오너로 등극한 사실이 드러나 편법 증여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인터파크도 매출 증대에도 기부금을 줄였다. 인터파크는 올 3분기 누적 기준 3132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동기 3019억원에 견줘 112억원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수익성도 개선됐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42억원, 114억원으로 전년대비 수익이 확대됐다. 

반면 기부금은 6억2000만원으로 전년 10억3589만원 대비 40%가량 삭감했다. 인터파크는 지난해 고객정보 103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로 곤혹을 치른 바 있다. 이후 방통통신위원회로부터 44억8000만원의 과징금과 과태료 2억5000만원의 처분을 받았다.


국내 1위 제약사 유한양행은 3분기 누적 기준 매출 1조 785억원으로 1조원을 넘기면서 전년 9643억원 대비 1142억원의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기부금은 3억3889만원을 기록해 전년(8억1307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유한양행은 최근 구설에 오르면서 사회적 기업 이미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영업 사원 위치 추적 논란이 회자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영업사원 600여명에게 업무용 태블릿 PC를 지급했는데 개통과정서 개인 위치정보 수집·이용 제공 동의서를 받았다. 동의서에는 정보 유출을 막는 보안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위해 태블릿PC의 고유 식별 주소와 위치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이런 정보는 회사에 제공된다고 명시됐다. 

이에 따라 지나친 사원 감시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유한양행 측은 “회사는 직원들의 위치를 추적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태블릿PC를 잃어버렸을 때 단말기를 찾으려고 위치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안다”며 “개인 위치 정보 수집 동의서도 기기를 개통해준 통신업체가 받았을 뿐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일한 전 유한양행 창업주 때부터 보여준 선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아쉽다는 평가다.

롯데하이마트도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이 모두 증가했다. 각각 3조1427억원, 1785억원, 1309억원 등을 기록해 전년대비 1829억원, 433억원, 373억원 증가했다.

특히 3분기 실적이 두드러졌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1821억원, 809억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 기준 추정치와 시장컨센서스를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기부금은 21억 2673만원으로 전년동기 21억3760만원에서 소폭 줄었다. 특히 시장의 기대치보다 높은 실적을 기록했던 3분기 3억1664만원으로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삭감했다.

롯데하이마트가 현재 사회적인 기업으로 인식돼있는지 여부에는 물음표가 찍힌다. 이른바 경영자의 갑질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대표는 지난 8월 갑질 논란으로 곤혹을 치렀다. 

이 대표가 롯데월드 대표이사 시절 롯데월드 조리사로 일하던 강동석씨에게 흰 머리로 염색하라며 폭언을 퍼부었던 내용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대표가 피해자에게 금전을 제시하고 보도를 막으려 해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되는 듯 했다. 결국 이 대표는 지난 10월 사표를 쓰는 상황까지 오게 됐지만 이사회에서 반대하며 사건은 흐지부지 됐다. 

이 대표는 현재까지도 롯데하이마트를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애경그룹의 사위 안용찬 대표가 이끄는 제주항공은 일 잘하는 기업으로 통한다. 이같은 기조는 올해에도 유효하다. 3분기 누적 기준 7347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동기 5569억원 대비 1778억원의 매출 상승을 시현했다. 

수익도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838억원, 642억원으로 모두 증가세를 보였다. 업계에선 저가항공 업계 1위를 굳히는 분위기라는 전언. 그러나 기부금은 7419만원으로 전년(8852만원)보다 감소했다.

제주항공이 일 잘하는 기업이란 평가와 동시에 지역사회의 상생 의식 수준이 높은 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실제 제주항공은 기업의 기반을 닦은 제주도 측과 법적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선 운임료를 올리려는 제주항공측과 내리려는 지자체측이 대법원까지 가는 공방을 일으키고 있다. 1심은 제주항공이, 2심은 지자체가 각각 승소했다.

매출 올라도 
나눔엔 인색

소송의 발단은 지난 3월에 있었다. 당시 제주항공이 요금인상 안을 강행하자 갈등은 격화됐다. 기업의 항공편 가격 인상에 대해 행정기관이 제동을 건 모습은 시장 자유주의에 제재를 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까지 했다. 

법원은 1심서 제주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제주도에 항공료 인상 금지 청구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심에선 제주도의 손을 들어주면서 항공료 인상 결정을 철회할 것을 선고했다. 

제주항공이 이를 위반할 시 1일 1000만원을 제주도에 지급해야하기 때문에 제주항공으로서는 난처한 상황이 됐다.

일각에서는 제주항공이 무리한 요금 인상이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주항공은 대형 항공사의 높은 요금으로 관광객 유치에 애를 먹던 제주도가 민간 자본과 합작해 만든 회사다. 

합작을 위한 업체 선정에 국내 굵직한 대기업들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제주도가 선택한 그룹은 애경그룹의 지주사 애경홀딩스였다.

돈 내고 욕먹는 것보다
안 내고 욕먹는 게 낫다?

이렇게 탄생한 제주항공은 제주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제주항공의 덩치가 커진 뒤였다. 몇 차례 유상증자 가운데 제주도의 지분이 희석되면서 지자체의 발언권이 약해진 뒤 요금 인상을 두고 제주항공과 제주도가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주도를 기반으로 성장한 제주항공이 무리하게 요금인상을 강행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반면, 제주도의 제주항공에 대한 요구는 기업의 경영에 지나친 간섭이라는 주장도 제기되면서 양측의 팽팽한 긴장 관계가 계속될 전망이다.
 

애경그룹의 애경유화 역시 정유업 호조를 등에 업고 매출 성장을 이뤘지만 기부 예산을 삭감했다. 3분기까지의 매출액은 5769억원으로 전년동기 5243억원 대비 526억원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나란히 오름세였다.

각각 581억원, 458억원으로 전년대비 38억원, 75억원 늘었다. 반면 기부금은 65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억 185만원에 견줘 크게 감소했다. 이는 정유업계서 가장 큰 삭감 폭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애경유화는 전년대비 99.7%를 삭감했다. 이어 ▲KG케미칼 96.8% ▲금호피앤비화학 91% ▲금호석유화학 81.8% ▲GS칼텍스 81.5% ▲태광산업 81.4% ▲SK루브리컨츠 72.7% ▲SK이노베이션 70.6% ▲SK종합화학 64.9% ▲SK인천석유화학 62.4% ▲SKC 59.4% ▲SK케미칼 54.4% 등의 순이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일시적인 요인으로 기부금 액수가 늘어나면서 기저효과가 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제약사이지만 식음료로 더욱 이름을 알린 광동제약 역시 올해 성장세를 기록했다. 

3분기 누적기준 매출 5281억원으로 전년동기 4816억원보다 464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기부금은 7억8476만원으로 전년동기(9억8122만원)보다 감소했다.

최근 광동제약은 소비자의 기대와는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는 인상이었다. 지난해 광동제약은 비자금 조성의혹이 불거지면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됐다. 광동제약은 2013년부터 2년 6개월간 롯데시네마에 광고를 주는 대신 10억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 조작 의혹도 발생했다. 비타500 매출 조작은 이달 초 부산 동래구의 한 약국이 올 상반기 거래장과 거래원장을 대조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약국이 1∼3월 비타500 납품 물량을 살펴보니 실제 입고량보다 많고, 현금으로 결제까지 이뤄져 있었다. 

광동제약 영업사원들은 이런 방식으로 약국용 비타500을 빼돌려 전통시장 등에 싼값을 받고 유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 기대와
반대되는 행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순실 국정 농단 이후 재계서 기부금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며 “기업의 사회적인 역할이 마땅하지만 돈 내고 욕먹는 분위기 때문에 기부 자체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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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