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구출작전 내막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0.16 10:37:37
  • 호수 1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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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태블릿PC가 조작이라면…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추석 연휴 기간 신혜원씨의 ‘태블릿PC 조작설’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국정 농단의 단초가 된 태블릿PC가 본인 것이란 주장이다. JTBC 측은 “어이없는 주장”이란 반응이다. <일요시사>는 1심 판결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 석방 프로젝트를 들여다봤다.    
 

지난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추가로 발부됐다. 법원은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했다. 6개월 차에 접어든 박 전 대통령 재판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5월23일 첫 재판서 자신이 받고 있는 18개 혐의와 관련한 공소 사실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지난달 29일까지 총 77번의 재판이 열렸다. 

선고 앞두고 
혐의들 부인

추석 이후 재개되는 재판에선 박 전 대통령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관련 혐의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진 삼성·SK·롯데와 관련된 뇌물 혐의가 집중적으로 다뤄졌지만 앞으로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한 심리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첫 재판서 박 전 대통령은 18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 재단 지원, 롯데·포스코·KT 등에 대가성 지원, 삼성에 최순실씨 지원 요구 등에 직접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 측은 “추론과 상상에 의해 기소됐다”고 말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조목조목 반발했다. 우선 재단 출연금 관련해선 박 전 대통령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돌아가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즉 스스로 쓰지도 못할 돈을 받기 위해 재단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1심 선고 앞둔 박 전 대통령
총 77번 심리…끝까지 부인

기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와 관련해서는 “검찰은 제3자 뇌물죄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와의 공모관계를 인정하기 위해 경제적 공동체 개념이 성립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 
최씨와 대통령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 모의해 돈을 받아냈다는 범행과정이 필요하지만 공소장에는 아무 설명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씨와 관련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서는 최씨로부터 연설문 표현과 문구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본 사실은 있지만 인사 문제를 최씨에게 전달토록 지시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 유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대통령께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어떤 지시를 보고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대통령께서 문제 단체에 대해 어떤 말 한마디를 했다고 해서 블랙리스트에 대한 일련의 과정까지 책임을 묻는다면 살인범을 낳은 어머니에 대해 살인죄를 묻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꼬집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무죄 방면을 위해 유 변호사는 검찰 측에 반격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공소장’을 문제 삼았다. 

공소장 부분에 대해서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최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공모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검사의 주장인데 공소장 어디를 봐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공모관계가 써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언론 기사를 형사사건의 증거로 제출한 점도 꼬집었다.


이재용 징역 5년
박 뇌물죄 과연?

이후 재판은 지난달 29일까지 총 77번의 심리가 진행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월 1심 재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형사27부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포괄적인 경영권 승계 현안’을 인식한 상태에서 이 부회장에게 사실상 뇌물을 제공하게 했다고 판단한 셈이다. 

박 전 대통령 재판부는 이 같은 내용의 이 부회장 사건 판결문을 증거로 채택한 상황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재판을 주 4회씩 열어 다른 뇌물사건도 함께 심리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삼성 뇌물사건, 목요일과 금요일은 SK·롯데 관련 뇌물사건을 심리하는 식이다. 

그러는 사이 최씨와 공모한 박 전 대통령이 SK그룹을 상대로 K스포츠재단 등에 89억원을 내도록 요구했다는 ‘제3자 뇌물요구’ 혐의는 심리가 마무리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그룹 임원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나와 증언했다.

재판과정에선 “SK그룹이 지원에 난색을 표하자 안 전 수석이 ‘대통령이 관심 갖고 지시하신 사안’이라고 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이 롯데그룹으로부터 70억원 상당의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금을 받은 ‘제3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심리도 상당 부분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항소심 돌입한 이재용
박근혜 재판 연관성은?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신동빈 롯데 회장으로부터 롯데그룹 면세점 추가 선정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을 받고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출연하도록 요구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 측은 면세점 추가 선정 문제는 앞서 기획재정부·관세청이 검토해 온 정책이라며 부정한 청탁이 아니었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월 이후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혐의에 초점을 맞춰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관리 혐의로 다른 재판서 실형이 선고된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에 대한 증인신문은 이미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시기와 관련해선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의 추가 구속기간 만료일인 다음달 19일 전에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받는 18개 혐의 중 삼성전자 정씨 관련 승마 훈련비용 지원 등 큰 맥락은 심리를 마친 상태기 때문이다. 

지난 12일부터 본격적인 항소심 재판 심리에 들어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과도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은다. 1심서 징역 5년형을 받은 이 부회장이 만일 항소심서 무죄를 받는다면 박 전 대통령 재판의 심리 결과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항소심 재판도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태블릿 조작설
신 vs 손 공방전

현재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 무죄 석방을 위해 활발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중이던 지난 8일 신혜원씨가 국회 정론관서 대한애국당 조원진 공동대표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최씨 소유로 알려진 태블릿PC가 본인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신씨는 지난 2012년 박 전 대통령의 대선캠프 SNS 본부서 일했던 인물로, 서강포럼 사무국장으로 재직했다.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란 주장에 여론은 들끓었다. 태블릿PC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문의 시작점이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기자회견서 “대선캠프에 합류한 뒤 김철균 SNS 본부장의 지시로 흰색 태블릿PC 1대를 건내받았고 이 태블릿PC로 당시 박근혜 후보의 카카오톡 계정관리를 했었다”며 “대선캠프 SNS팀 내에서 다른 태블릿PC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2년 12월 말 대선 캠프를 떠나면서 해당 태블릿PC를 김휘종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반납했고 김 전 행정관은 자신과의 통화서 문제의 태블릿PC를 폐기했다고 주장하면서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국정 농단 파문의 발단이 된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최씨 소유의 태블릿PC라는 것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친박 성향의 단체들이 주장해온 JTBC 태블릿PC 조작설에 부합하는 내용인 셈이다. 이번 신씨의 주장은 태블릿PC 조작설에 힘을 싣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뿔난 친박 단체들
무죄 석방 될까?

신씨의 주장에 대해 JTBC <뉴스룸>은 정면 반박했다. 지난 9일 손석희 앵커는 “신씨의 주장을 짚어보겠다”며 “아무리 반론을 펼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짜 뉴스가 계속해서 양산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 사례로 ‘호주 총리 대통령 축전’ ‘이명박 회담 참고 자료’ ‘북과의 비밀 내용’ 등을 언급하면서 “태블릿PC가 신씨의 것이라면 대선 캠프 활동을 했던 신씨가 대선 이후에도 국방 기밀을 받아봤다는 것”이라며 “이밖에 최씨와 관련된 문건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1980년대 육영재단 유치원 문제, 최씨의 딸로 작성된 문서 등은 왜 신씨가 갖고 있는 것인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 신씨 측이 이미지 파일 1900여개 중 최씨 사진은 단 3장뿐이라며 태블릿PC가 최씨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선 “컴퓨터에 무지하거나 일부러 상식을 무시하는 발언”이라며 “자동 저장되는 이미지 파일 때문에 1900여 개의 이미지 파일이 생성됐고, 메일 제목이나 내용에 일부러 연예나 스포츠 기사를 넣으면서 생긴 이미지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태블릿PC가 직접 촬영한 사진 폴더엔 최씨와 박 전 대통령 사진, 최씨 조카 가족사진 등 아무나 받을 수 없는 박 전 대통령 저도 휴가 사진 등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JTBC 반박에 신동욱 신동욱 총재는 손 앵커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남겨 '신혜원 ‘JTBC 태블릿PC 양심선언’ 기자회견, 충격·경악·조작·거짓·절도 손석희 완전범죄 실패한 꼴이고 구속수사 정답 꼴'이라고 전했다.

이어 '누가 의도적으로 조작한 꼴이고 그림 파일 글자 수정 말도 안되는 꼴이다. 사실이면 내란죄 꼴이고 관련자 여적죄로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들끓는 친박단체 
박근혜 운명은?

정치권은 이번 신씨의 주장이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신씨 주장과 별개로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친박 단체들의 목소리는 추석 연휴기간에도 계속됐다.

지난 7일 친박 인사들이 주축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 석방 서명운동본부’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2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를 열고 ‘탄핵 무효’ ‘무죄 석방’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섬과 동시에 현 정부의 외교·안보 실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문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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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