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여성대표 리더십 비교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8.14 11:33:09
  • 호수 11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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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트로이카 시대 열렸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여성 당 대표 전성시대다. 원내 5당 가운데 3당을 여성이 이끌면서 정당 정치가 새 국면을 맞이했다. 그들이 이끄는 당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일요시사>는 여성 당 대표의 리더십을 비교해봤다. 
 

여성 당 대표 시대를 처음 연 것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대표다. 추 대표는 지난해 8·27전당대회서 친문 진영의 절대적 지지로 당 대표에 올랐다. 추 대표는 화법이 직설적이고 목표가 생기면 좌우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스타일로 평가된다.

추다르크 리더십
연일 작심 발언

15대 대선서 김대중 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으면서 ‘추다르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당시 그는 야권의 불모지인 대구서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면서 유세활동을 벌였다. 일각에선 추 대표가 정치적 스킨십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5선 의원이지만 측근으로 불리는 의원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이에 추 대표는 “계파정치를 하지 않아 그런 오해를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27일 당 대표 수락연설서 “계파의 곁불조차 쬐어본 적이 없는 정치인생을 21년간 외롭고 외롭게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낙 강골인 탓에 화법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의 입사 특혜의혹 관련 제보조작 사건을 두고 벌인 국민의당의 자체 조사 결과를 두고 ‘머리자르기’라고 비판해 논란이 됐다. 


당시 국민의당은 추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리 사과를 하면서 일단락됐다. 이 과정서 추 대표는 정치적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리 사과를 두고 추 대표는 “청와대서 대리 사과를 하겠다면 사전에 제게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며 “더욱이 사과하러 오는 장소가 국회였다. 임 실장이 마땅히 여당 대표실부터 들렀어야 했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른바 ‘추미애 패싱’이란 지적에는 “대표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이라며 “정권을 받쳐주는 그릇이 부서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5당 중 3당 여성 당대표 선출
시작부터 강렬한 존재감 과시

추 대표가 정치적으로 승승장구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면서 정치인생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당초 추 대표는 “탄핵은 아직 익지 않았다”며 민주당 지도부서 유일하게 탄핵에 반대했지만 표결 직전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추 대표는 당시 탄핵 찬성 이유를 그의 회고록 <물러서지 않는 진심>을 통해 밝혔다. 당시 최고위원이던 추 대표가 ‘3불가론’을 들어 탄핵에 맞서자 “당내 2인자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지도부로부터 비난이 쏟아졌다고 했다.

당 지도부가 구치소에 수감됐던 의원 2명에게까지 탄핵 서명을 받겠다고 하자 추 대표는 “숯댕이(범죄자)가 검댕이(노무현 전 대통령)를 나무랄 순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를 드리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핵 역풍은 거셌고 17대 총선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은 추 대표는 민심을 돌려세우기 위해 삼보일배에 나섰다. 이후 총선서 낙선한 뒤 2년 동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추 대표는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정치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것은 18대 총선이지만 정치 일선에 나서게 된 계기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되면서부터다. 당시 당 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의원를 도와 새정치민주연합을 이끌었다.

또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사퇴를 주장하던 다른 최고위원들과 선을 그었다. 이때의 정치적 스탠스가 훗날 당 대표 선거에 도전했을 때 상당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추 대표는 연일 날선 발언을 쏟아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호남을 두고 경쟁을 펼칠 국민의당을 향해서는 물론 청와대와 당 내부에도 작심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우원식 원내대표에게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추경예산 표결 당시 외유 등으로 불출석한 당내 26명 의원을 거론하며 “원내대표가 도장을 찍어줬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또 “이런 보고를 당 대표인 내게는 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추 대표의 광폭행보의 이면에는 서울시장 출마를 염두한 행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본인은 선을 긋고 있지만 여권 내부에선 추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의지가 남다르다고 보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서 추 대표의 향후 정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엄마 리더십
당 내분 조짐

지난 6월26일에는 바른정당 당 대표 지명대회가 열렸다. 3선의 이혜훈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돼 보수정당 사상 첫 선출직 여성 당 대표가 탄생했다. 이 대표는 수락 연설서 “당이 하나 되는 일이라면 백번이라도, 아니 천번이라도 무릎 꿇는 화해의 대표가 되겠다”며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고 크고 작은 갈등을 녹여내는 용광로 대표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 선출 직후 대변인 성명으로 “이 대표가 그동안 보여준 국민상식에 부합하는 합리적 소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를 잘 알고 지낸 한 언론인도 “이혜훈은 말솜씨가 뛰어나 어떤 질문에도 간결하고 명쾌하게 대답한다”며 “훌륭한 인터뷰 대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스스로 성격을 다혈질이라고 평가하며 “바른 소리를 많이 해서 당에서 미움도 받는다. 억울하고 부당한 것은 못 참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당 대표 당선 이후에는 바른정당의 기틀을 세우고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달 7일에는 바른정당의 싱크탱크인 ‘바른정책연구소’를 열었다. 개소식서 이 대표는 “우리는 사회와 괴리된 보수를 지양하고 사회 흐름을 먼저 읽고 개혁해 사회 흐름을 선도하는 ‘변화하는 보수’가 되고자 한다”고 말해 비전을 제시했다. 


이 밖에 정치인재 양성을 위한 ‘청년정치학교’를 열어 바른정당 의원과 광역지자체장 등에 강의를 맡기고 오는 9월 정기국회 전까지 전국 17개 광역시도를 돌며 국민의 의견을 직접 듣는 ‘국민소통 캠페인’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처럼 이 대표가 바른정당의 외연확장에 힘쓰고 있지만 정작 당내에선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어 이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이 대표는 선출 직후 당이 깨질 수도 있다는 지적에 “어머니이 마음으로 감싸겠다”며 ‘어머니 리더십’을 강조했다.

또, 갈등설을 빚은 김무성 의원을 찾으면서 당내 갈등 요소를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최근 인재영입 1호로 박종진 전 앵커를 영입하면서 당내 갈등은 결국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당위원장인 박인숙 의원은 이 대표가 박 전 앵커를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으로 임명한 데 불만을 표시하며 시당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자신과 사전 조율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당 고위관계자는 “조강특위서 공개적으로 진술할 기회를 드렸고 박 의원이 ‘당의 결정을 잘 알겠다’고 해서 결정했다”며 “또 최고위 의결 당시에도 박 의원이 자리에 있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 지난달 31일에는 오신환 수석대변인도 대변인직서 물러났다. 표면적으론 국민들과 소통을 위해 물러난다고 했지만 오 의원의 사퇴를 두고 당내에선 이 대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됐다. 


오 대변인 사퇴 이후 원내 의원 가운데 선뜻 대변인직을 맡겠다는 후보자가 나오지 않아 당직 인선 정체 현상도 불거졌다. 

최근 불거진 당내 불협화음에 대해 당 관계자는 “홍보 등 주요 업무서 이 대표의 다소 독단적인 업무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당내 갈등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외연확장 딜레마 
강한 야당 만들기

여성 당 대표 ‘3인’ 중 마지막은 정의당 이정미 대표다. 초선의 이 대표는 지난달 11일 정의당 신임 대표로 선출됐다. 이 대표는 당선 소감으로 “정의당의 더 큰 도약을 위해 사력을 다하겠다”며 “국회에선 ‘진짜 야당 정의당’, 국민 속에선 ‘민생 제1당 정의당’의 대표로 혼신을 다해 뛰겠다”고 밝혔다. 
 

문재인정부를 향해서는 “촛불혁명을 함께 만들어 이 정부의 성공에 사명이 있는 만큼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잘못된 점은 제대로 비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열린 20대 총선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이 대표는 정의당 부대표 겸 원내수석부대표로 활동했다.

지난 19대 대선에선 심상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선거를 지휘했다. 특히 심 후보가 사용할 메시지, 여론조사 분석 및 타깃 설정, 유세동선 등을 짰다.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소신과 일관성이 있는 대통령 후보라는 점을 강조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힘쓰기도 했다. 이 대표는 심 후보가 역대 진보정당 후보 가운데 최고 득표율을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들었다. 

연일 문정부에 쓴소리
좌우 보지 않고 돌진

이 대표는 소수자의 대변인으로 통한다. 여성, 청년,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줄기차게 대변해왔다. 이 대표는 지난 6월15일 당 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한국정치의 주류를 교체하겠다. 여성, 청년, 비정규직의 노동을 대변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년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는 “정당 안의 정당, ‘청년정의당’을 건설하겠다. 청년 정치에 더 이상 ‘나중에’는 없다”며 “당으로부터 준 독립된 청년정의당에 과감히 자리와 재정을 내주겠다”고도 제안했다. 

그는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몇 안되는 의원 중 한명으로 꼽힌다. 지난달 15일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자리서 그는 “아시아서 두 번째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권이 바뀌었다. 태어날 때부터 성정체성 때문에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범죄국민으로 낙인찍히는 이런 사회를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첫 발”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이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에 선거연대를 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에 “내년 지방선거는 선거 연대 없이 우리 당의 독자 역량으로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일 이 대표는 “서울시장, 경기지사뿐 아니라 호남 등 전국에 최대한 모든 후보를 내서 광역단체장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기초단체장 3석까지 꼭 얻겠다”고 했다. 

정의당이 문재인정부의 2중대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정의당이 민주당 정부를 돕는다는 프레임 자체가 잘못됐다”며 “우리 당은 나라를 바꿔 달라는 촛불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동성혼 합법
선거연대 NO

이 대표는 당 대표 재임 중 달성할 목표도 제시했다. 그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서 국회의원 300명 중 150명을 비례대표로 뽑아야 한다”며 선거제도 개편과 함께 ▲청년 열정페이 방지 ▲여성 임금 격차 해소 ▲세월호 특조위 2기 활동 개시 등을 꼽았다.

또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창당과 관련해선 “이제야 우리 당의 정체성을 찾고 다음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정당과도 통합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은?

3당 대표가 여성으로 채워졌지만 여성 정치인의 비율은 여전히 부족하다. 20대 구고히 여성 의원은 전체의 17%다. 16대 국회서 5.9%를 기록한 여성 의원 비율은 17대 13%, 18대 13.7%, 19대 15.7%로 꾸준히 상승했다. 하지만 절대적 수치로는 아직도 적은 숫자라는 것이 중론이다. 국제의원연맹 회원국 기준, 평균 여성 의원 비율은 22.7%다. UN이 권고하는 여성 의원 비율은 30%다. 

전체 의석 중 80%를 차지하는 지역구 의석을 보면 여성 의원의 비율은 더욱 적다. 20대 국회서 지역구로 선출된 여성 의원은 단 26명이다. 비례대표 후보자의 절반을 여성에게 공천토록하는 의무 조항 덕분에 여성 의원이 17%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지역구 여성 의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지난해 8월 지역구 국회의원 및 시·도의원 선거서 후보자의 30% 이상을 반드시 여성으로 추천토록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지만 계류 중이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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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