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수배’에도 안 잡히는 범죄용의자 5人 전격공개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었나?"

2008년을 끝으로 공중파에서 방송되던 공개수배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폐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방범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결국 폐지되고 만 것. 그 후로 3년이 흐른 지금 과연 모방범죄는 줄었을까. 물론 아니다. 또 당시 공개수배했던 범죄자들 중 잡히지 않은 수배자도 부지기수다. 경찰청에서는 매년 2회에 걸쳐 20명의 전국 지명수배자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를 일일이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해당 포스터는 전국 경찰서와 파출소 중심으로 배포되고 있으며, 사이버경찰청에서 지명수배자 확인이 가능하지만 일부러 사이트에 접속해 지명수배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국민은 드문 이유에서다. 이에 <일요시사>는 2011년 상반기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검거된 지명수배자를 제외한 15명의 수배자 가운데 5명을 긴급 공개수배한다.

경찰, 1년에 2번 지명수배범 포스터 물갈이
강력·주요 범죄 피의자 종합수배 ‘총력’

경찰청은 매년 2회(상·하반기)에 걸쳐 전국 지방경찰청의 요청을 받아 범죄자 20명을 지명수배한다. 이는 각 경찰서에서 수배이후 6개월이 지나도 검거 되지 않은 범죄를 대상으로 구성되며 경찰청 선정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

공개수배에도 오리무중
"못 찾겠다 꾀꼬리"

범죄가 발생하면 관할 경찰서는 용의자를 확보하고 뒤를 쫓는데 주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검거되지 않으면 각급 경찰서는 용의자를 공개수배한다.

하지만 공개수배의 효과가 단 기간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 뒤로 용의자의 행방이 오랫동안 오리무중인 경우가 많아 우리사회 치안망에 대한 우려와 함께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살인 등 강력사건 범인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것. 또 이들은 공개수배라는 굴레 안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손쉽게 추가범행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 시민들은 언제라도 추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2011년 상반기 지명수배자는 총 20명, 이중 시민들의 제보로 5명이 검거됐고 하반기 지명수배자가 선정되기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검거되지 않은 지명수배자는 15명이다.

살인, 성폭행, 사기, 폭력 등 강력사건의 용의자인 그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① 독신녀 토막 살인사건
- 두 얼굴의 남자

2003년 3월, 충북 제천의 배수로 공사 현장에서 김장용 비닐봉투에 싸인 한 여자의 토막 사체가 발견됐다. 지문 복원 끝에 드러난 그녀의 신원은 4개월 전 경기도 용인에서 실종된 50대 여성 .

실종 전까지 평범한 생활을 해오던 그녀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처참한 사체로 발견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경찰은 그녀의 휴대전화에 남아있는 통화기록을 토대로 한 남자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제주, 부산, 대구, 서울, 경기 등 전국을 무대로 사기 행각을 벌여온 전과 11범의 신명호(51)가 바로 독신녀 토막 살인사건의 용의자다.

충북 제천경찰서에 따르면 신씨는 사업가를 사칭하며 돈 많은 주부들을 골프 동호회에 가입시킨 뒤 고가의 명품으로 유혹, 사랑과 결혼을 빙자해 금품을 갈취하는 등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 경찰 추산 그 피해자만 전국에 걸쳐 수 십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사기의 달인이다.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이 신씨는 사기전과 11범. 골프 동호회를 운영하며 여성 회원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내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그는 평소 피해자가 사채로 돈을 굴려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접근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신씨의 사기 행각을 눈치 챘고 "사기생각을 폭로 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신씨는 피해여성을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 2002년 12월16일 경기도 용인에서 피해자를 감금해 결박한 후 목 졸라 살해하고 공구를 이용해 토막 내 충북 제천의 배수로 공사 현장에 유기했다.

살인과 토막도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신씨의 범행 이후 생활은 더 끔찍했다. 같은 동호외에서 3개월을 더 활동하는 등 침작한 모습을 보인 것. 그는 3개월의 시간 동안 그동안 사기 행각을 벌였던 여성들과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을 갖고, 자신이 살해한 여성의 아이디로 동호회에 접속해 다른 회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피해 여성이 아직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② 택시기사 살인사건
- 여성 승객 살해 후 방화


2005년 10월18일 새벽 4시40분께 전북 전주시 전미동 진기마을 부근 제방에서 불에 탄 택시 안에서 여자 변사체가 발견됐다.

최초 발견자는 "일행 4명이 차를 타고 지나는데 길 가에 세워진 택시에서 불길이 솟고 있어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경찰은 택시운전자 임대욱(44)의 시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택시 뒷좌석에 있던 사체는 신원과 성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식 결과 여성으로 판명됐고, 사체가 심하게 탄 점으로 미뤄 살해 흔적을 감출 목적으로 휘발성 물질을 뿌린 뒤 불을 질럿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어 경찰은 사건 발생 당일 운전자 임씨가 집과 연락이 두절된 채 영업이 끝난 이후에도 회사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회사 측의 말에 따라 임씨를 사건의 용의자로 추정하고 수사에 나섰다.

당시 임씨는 사건 발생 1개월 전에 택시 회사에 입사했고, 3년 전 이혼, 노모와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사건 현장에서 수집한 유류품을 확인한 결과 피해 여성(당시 35세)은 전주 모 호프집에서 일하는 종업원으로 밝혀졌다. 피해여성은 사건 발생 당일 자정 퇴근을 하면서 남편을 만나러 갔다가 연락이 두절됐다.

하지만 6년지 지난 현재까지 임씨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이에 경찰은 공개수배를 하고 임씨 검거에 총력을 다 하고 있지만 수사에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태다. 피해자마저 불에 타 숨져 임씨가 왜 피해자를 살해했는지 살해 동기조차 불분명하다. 사건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임씨는 과연 현재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검거 목적이지만 검거 이후 관리에도 ‘신경’
경찰의 검거 노력은 물론 시민 관심도 필요

③ 노원구 상계동 곗돈 사기사건
- "돈을 갖고 튀어라"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100억원대 곗돈 사기사건의 주인공 김애경(58·여) 역시 아직까지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

경기불황이 한창이던 당시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렸다. 불경기에 이어 피땀 흘려 모은 목돈까지 하루아침에 떼였기 때문이다. 상계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계모임을 이끌던 큰 손 김씨가 작정하고 자취를 감춘 것.

2008년 4월2일 김씨는 그동안 끌어 모은 곗돈 100억원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이에 피해자들은 같은 달 7일 서울 노원경찰서에 김씨를 고소해지만 아직까지 그녀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김씨가 지난 20년 동안 시장 상인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계모임을 성실히 이끌었다는 데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많은 상인들은 김씨를 믿고 계에 가입 꼬박고박 돈을 부었다.

하지만 일부 계원들이 곗톤을 탈 차례가 다가왔지만 김씨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황이 자신에게 벌어지자 계원들은 덜컥 겁을 집어먹고 김씨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피해자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김씨는 계원들에게 김정숙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김씨의 행방을 오리무중이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에 자주 드나들던 김씨가 돈을 챙겨 밀입국 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100억원대의 피해금액은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적어도 150명 이상의 계원들로부터 100억원대의 곗돈을 빼돌렸다는 것. 하지만 경찰에 공식적으로 접수된 피해액은 32억원이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④ 희대의 사기꾼
- 이종룡 그는 누구인가

주위를 둘러보면 크고 작은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경찰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사기 범죄 건수가 가장 많은 나라로 집계됐다.

그 중에서도 경찰청에서 공개수배한 이종룡(55)은 희대의 사기꾼이라 불릴만한 인물이다. 단골 택시기사, 단골 식당주인, 가족처럼 일하던 가사도우미와 자신의 모친 묘를 이장해 준 이장업자까지 인연이 닿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이유에서다.

사기 수법도 다양했다. 사찰공사 투자, 아파트 전세계약, 아파트 상가분양, 납골당 건설을 미끼로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하게 범행을 즐긴 것.

이와 관련 그의 수법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그가 전형적인 거물 사기꾼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까운 사람을 시작으로 대상을 넓혀 목표물을 넓힌 뒤 문어발식으로 사기를 친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집계된 피해자만 100여명, 피해액은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사기로 갈취한 돈을 단 한푼도 자신의 명의로 해놓지 않아 그를 검거하더라도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씨 역시 이종상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건실한 사업가인 냥 피해자들에게 접근했고, 피해자 중에는 길게는 7년 동안 그와 친분을 쌓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씨의 파렴치한 범죄 행각 때문에 경찰도 공개수배로 전환해 이씨 검거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의 생업까지 뒤로 한 채 그를 쫓고 있다. 경찰의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사기 범죄는 입증이 어려운데다 수사 인력의 한계로 인해 강도나 절도 등의 강력범죄에 비해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마냥 경찰 수사만 믿고 기다릴 수 없는 피해자들이 직접 이씨를 붙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

지난해 연초 <SBS 뉴스추적>에서 다룰 만큼 탁월한 사기 능력을 가진 이씨의 검거 소식이 기다려진다.

⑤ 춘천수렵장 접수
- "짝퉁조폭 게 섰거라"

2009년 한 30대 남성이 강원도가 운영하는 춘천시 서면 오월리 강원도립춘천수렵장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7~8명을 협박해 2007년 말부터 1년 5개월여 동안 3억여원을 갈취한 사실이 밝혀졌다.

강원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수렵장에서 공익근무를 했던 이상진(32)이 2007년 12월 중순께 수렵장에 침입해 자신을 조직폭력배의 일원이라고 소개한 뒤 사냥용 엽총에 실탄을 장전에 공무원들의 입 속에 넣고 협박하는 당 2009년 4월 중순까지 갖가지 폭력을 행사해 돈을 뜯고 입장료 일부도 챙겼다.

당시 이씨는 수렵장 측으로부터 잠자는 방은 물론 사무실 내에 자신이 쓸 수 있는 책상과 컴퓨터까지 제공받고 무전취식하며 기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4월부터 1년간 총 3200만원을 갈취당한 한 피해자는 "밤중에 휴양림 내 계곡으로 끌고가 흉기를 목에 들이대며 돈을 안주면 가족까지 죽여버린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1200만원까지 4차례에 걸쳐 모두 3200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총 피해자는 수렵장 근무 직원 7명 가운데 6명, 인근 자연휴양림과 관할사업소인 산림개발연구원 내 직원 일부 등 7~8명에 이른다. 이씨는 이들을 대상으로 흉기와 둔기 등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며 돈을 뜯었고, 이들 중 일부 피해자는 이씨에게 맞아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008년 상반기 피해를 당한 한 직원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돼 벌금형을 받고도 다시 수렵장 내에서 계속 범행을 저질렀다는 데 있다. 1년 5개월 동안 범행을 계속하던 이씨는 도산림개발연구원 내 한 중간간부를 대상으로 갈취를 시도하다 거세게 반발하자 2009년 4월 중순께 수렵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당시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들은 이씨가  "수렵장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나머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피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강원도는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관련 공무원 3명을 직위해제하고 직원을 새로 바꾸는 인사를 단행했으나, 춘천수렵장은 이미지 실추를 이유로 지난해 간판을 내렸다.

적게는 2년에서 많게는 10년 동안이나 도주생활을 하고 있는 공개수배자들은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경찰은 수배 뒤 잠적하다 검거된 범인들을 보면 대부분 신원공개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선을 타거나 축사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일반 사회와는 어느 정도 격리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애꿎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
하지만 일부 범죄자들은 뻔뻔하게도 신원을 감춘 채 위장취업하거나 막노동 생활을 하며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추가 범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경찰이 치안력을 더욱 강화하고 신속하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인권문제로 인해 물심 검문이 제한되는 등 경찰력만으로는 잠적한 범인을 붙잡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경찰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어야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