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미스터리 대해부

미궁 속 사건들…"사라진 악마를 찾아라!"

[일요시사=이보배 기자]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리는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고(故) 이형호군 유괴사건. 그리고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의 범인들은 이제 잡히더라도 어떤 법적 처벌도 받지 않는다. 세 가지 사건 모두 공소시효가 지난 2006년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세 가지 사건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용의자에 대한 윤곽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미제사건이라는 오명을 썼다. 2000년대 들어 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속속 개봉했고,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방송소재로 다룬다. 우리 사회가 세 가지 미제사건에 대해 그만큼 관심 있어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에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미스터리를 파헤쳐 봤다.

화성연쇄살인사건, 강간으로 시작해 살인 ‘쾌감’
개구리소년 범인, 살해 당시 아이들 고통 즐긴 듯

1986년부터 1991년까지 4년 7개월에 걸쳐 여성 10명이 잔혹하게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 8번째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의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4월 마지막 열 번째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범인은 법 앞에서 자유로워졌다.

연쇄살인의 교과서
화성연쇄살인사건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2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지금까지 많은 연쇄살인의 교과서로 치부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화성사건은 지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계속됐다. 1986년 9월15일부터 화성군 태안읍을 중심으로 반경 3km내 4개 읍·면에서 부녀자 10명이 잇따라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됐다.

특히 1990년 11월15일 오후 630분께 태안읍 병점5리 소나무 숲에서 발견된 9차사건 피해자 김모(당시 13세·여)양은 최연소 희생자였던 데다, 범행수법도 가장 잔인해 온 나라를 충격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화성사건의 피해자들은 여중생에서 70대 노파까지 연령대가 다양했으며,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 옷가지 등으로 목이 졸렸고, 흉기 등을 사용한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범인은 피해여성의 몸에 엽기적인 흔적을 남겨 주민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인 만큼 경찰사에 남을 수사 진기록도 이어졌다. 수사에 동원된 경찰은 연인원 205만여 명으로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다. 또 수사 대상자는 2만1280명, 지문 대조 4만116명, 모발 감정은 180명이었고 화성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를 받다 다른 범죄가 드러나 붙잡힌 사람도 1495명에 이른다.

4, 5, 9, 10차 사건에서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확인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7차사건 이후 목격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몽타주가 그려졌고, 9차와 10차사건 범인의 유전자는 확인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1년 4월3일 발생한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2일로 만료되는 바람에 범인의 처벌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 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중 화성사건에 대해 집중보도하고 범인의 현재 모습을 그려낸 몽타주를 공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끝내 범인이 잡히지 않은 화성사건의 모든 자료를 미국의 범죄수사 전문가들에게 보냈다. 그 결과 미국 전문가들은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전문가들은 "이 연쇄살인사건의 1차 사건이 가장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처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1차사건처럼 시체를 기괴한 모습으로 유기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제작진이 1차살인이 있기 전 화성지역의 유사한 사건을 취재한 결과 사건 발생 7개월 전부터 유사한 수법으로 강간당한 피해자가 7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강간당했던 피해자들이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가 모두 7차 사건의 목격자가 진술한 인상착의와 일치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여성을 강간하고 나아가 살인의 즐거움을 느꼈을 악마는 지금도 우리와 섞여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풀리지 않는 의문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초등학생 5명이 무참히 살해돼 유골로 돌아온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역시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지난 2006년 4월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됐다.

1991년 3월26일 당시 대구성서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우철원(당시 13세)군을 비롯해 조호연(당시 12세), 김영규(당시 11세), 박찬인(당시 10세), 김종식(당시 9세)군은 집 뒤편인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아이들은 와룡산에 오르기 전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친구와 마을주민들에게 모습을 보인 것을 끝으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돌며 아이들을 찾아 나섰고, 개구리소년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가 제작되는가 하면 전국 초등학생들은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 운동’을 펼치는 등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경찰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구성, 와룡산 일대는 물론 전국을 이 잡듯이 뒤졌다.

전국 새마을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 역시 700여만 장의 전단을 전국에 뿌렸고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기업체들도 담뱃갑과 상품에 실종 어린이들의 사진을 인쇄, 수색 작업에 동참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수년간 행적은 묘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부모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실종 11년6개월 만인 2002년 9월26일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500미터 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됐다. 수사결과 타살로 판명됐으나 현재까지 범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피 말리는 그 놈 목소리 이형호 군 유괴사건 
세 사건 모두 공소시효 만료…여전히 남은 의혹

그런가 하면 이 사건은 경찰의 미흡한 수사 때문에 영구 미제가 된 사건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1992년 8월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를 유괴해서 죽였다는 뜬소문을 믿고 한센병 환자 정착촌을 강압적으로 수사하여 항의를 받았으며, 1996년 1월에는 김종식군의 아버지가 아이들을 죽여 집에 묻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김군의 집 마당과 화장실을 임의로 발굴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개구리소년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아이들>이 개봉되면서 다시 한 번 사회적 관심을 끌었지만 용의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한편,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지난 14일 방송에서 당시 아이들을 살해한 살인무기와 매장 방법, 유골의 손상 등을 근거로 ‘프로파일링’ 해 범인의 윤곽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추정했다.

목격자도 생존자도 없어 화성사건처럼 몽타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범인의 심리와 범죄 행위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사건 당시인 1991년에는 프로파일링이라는 기법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기시였기 때문에 범인에 대한 윤곽조차 나올 수 없었다.

프로파일러들을 찾아 그날의 범행을 분석한 결과, 범인은 살인을 즐기는 계획적인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로파일러들은 "개구리소년사건의 경우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크고, 아이들 두개골에 난 흔적으로 미뤄봤을 때 범인은 죽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고통을 즐기는 타입"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어 "범인은 그 후에도 살인을 멈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해 충격을 줬다.

잊을 수 없는 그놈 목소리
이형호 군 유괴사건

2007년 영화 <그놈 목소리>의 소재로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하고 많은 실종가족의 공감을 얻어냈던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 이 사건 역시 지난 2006년 1월 공소시효가 만료됐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1991년 1월29일 오후 5시20분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형호(당시 9세)군은 유괴 후 44일이 지난 3월13일 잠실대교 부근 한강고수부지 일명 토끼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형호군은 스카프와 나일론 끈으로 손이 뒤로 묶여 있었으며 입과 눈은 테이프로 막혀 있는 등 잔혹하게 살해된 모습이었다. 부검 결과 위에서 나온 현미, 오곡밥, 숙주나물 등이 유괴 당일 친구 집에서 먹은 점심으로 판명 나 형호군은 유괴 직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형호군의 유괴범이 더욱 비난을 받는 이유는 유괴 직후 형호군을 살해해놓고 44일 동안 형호군의 부모에게 60여 차례의 전화와 10차례의 메모를 남겨 끊임없이 협박한 데 있다.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44일을 버텨온 부모에게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아들의 사망 사실을 전한 것.

또 범인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듯 경찰의 통화추적을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이용해 전화를 걸었고, 이조차 4분 이상 통화시간을 길게 끌지 않았다. 또 형호군 부모에게 차 안에 카폰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후, 약속 장소를 수시로 바꿔가며 경찰의 미행을 따돌렸다.
철두철미한 범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딱 한 차례. 유괴·살해 후 약 한 달 뒤인 2월20일 상업은행 상계동 지점에서 700만원을 인출하려던 범인은, 담당 여직원이 범행과 관련된 계좌임을 알고 당황한 표정을 짓자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곧바로 달아난 뒤 연락을 끊었다.

명확한 단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5년간 범인은 오리무중인 상태로 지나갔고,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범인은 이제 어딘가에서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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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