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정읍시 행정보복 논란

서둘러 허겁지겁 어설픈 복구작업

[일요시사 취재 1팀] 박호민 기자 = 정읍시와 잔디로골프텔의 행정폭력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읍시가 잔디로 사업을 방해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는 대행복구 마무리 공사를 두고서다. 양측 간 입장은 첨예하다. 주요 쟁점과 과정을 살펴봤다.
 

잔디로골프텔은 지난 2007년 4월 정읍시와 민자유치사업기본협약(MOU)을 체결하고 유스호스텔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다. 해당 부지는 정읍시 부전도 1065-14 외 6필지로 정읍시가 잔디로의 사업을 적극 도와준다는 것이 골자였다.

감리기술사 
실사는 했나

그러나 사업 내용과 진척 속도에 대한 이견이 나오면서 둘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다. 급기야 정읍시는 2013년 9월 공사 지연을 이유로 투자협정 파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잔디로는 그 과정서 정읍시가 행정절차를 무시하는 등의 행정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잔디로는 유스호스텔 사업의 수익성이 맞지 않아 2011년 온천 개발 가능성을 타진하고 정읍시에 허가를 요청했다. 정읍시는 2011년 온천공 신고에 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2013년 9월 돌연 온천개발 사업은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잔디로 측은 적절치 않은 행정절차라고 주장했다. 정읍시는 온천공 개발계획 승인신청이 지연됐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잔디로측은 반발했다. 


온천법에 따르면 시장·군수는 온천발견신고를 수리했을 때 수리한 날로부터 일정기간 이내에 온천공보호구역 지정 등을 해야하는데 정읍시는 온천공보호구역 지정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잔디로 측은 행정절차상의 문제를 내세우며 온천발견신고 수리 취소 처분 및 대집행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양측 간 갈등은 정읍시가 사업 취소 후 명령한 적지복구 명령을 내리면서 극으로 치달았다. 특히 정읍시가 적지복구 기한 내 복구를 완료하지 않았다며 적지복구비용을 잔디로로부터 강제 유치시키면서 양측 간 견해 차이는 더욱 팽팽해졌다.

이후 정읍시는 대행사를 선정해 적지복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잔디로 측은 복구작업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는데 보험공사로부터 11억3000만원을 유치시키고 복구를 허술하게 마무리 지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관련 소송은 이미 진행 중이다. 잔디로가 제기한 대행복구 무효확인 소송(본안소송)과 복구집행정지 신청이다. 지난해 7월에 나온 1심 판결은 정읍시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서는 복구집행 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지난 1월 광주고등법원은 대행복구 무효 확인 소송 판결일로부터 14일이 지난날 까지 효력, 집행 및 절차의 속행을 정지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1심과 달리 본안 소송은 잔디로 측이 유리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본안 소송에 대한 선고가 있기까지 복구작업은 멈춰졌다. 그러나 정읍시 측은 현재 준공계를 받아 서둘러 복구 작업을 마치려고 하는 모양새다.

소송 잔디로에 유리하게 흘러가자
선고 앞두고 준공계 당겨 마무리


정읍시가 행정처분의 취소나 무효확인을 구하는 행정소송서 그 변론이 종결되기 전에 행정처분 실행이 완료된 경우, 그 행위가 위법한 것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별론으로 들어간다. 이럴 경우 그 처분의 취소나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의 이익이 사라지기 때문에 정읍시가 서둘러 복구진행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잔디로 측은 봤다.

따라서 복구작업 완료 여부도 쟁점 가운데 하나다. 정읍시는 지난 1월2일 대행복구를 맡은 정읍산림조합으로부터 준공계를 받고 복구를 마무리한 것으로 봤다.

잔디로 측은 복구작업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잔디로가 이처럼 주장하는 것은 2심 결정문을 근거로 한다. 법원은 정읍시가 제시한 증거만으로 복구대행공사가 완료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잔디로 측이 전문 업체 측에 복구 실행이 제대로 됐는지 여부를 확인해 본 결과 상당부분 기준에 미달한 부분이 발견돼 복구 완료로 보기는 힘들다는 주장이다. 

잔디로 측 자료에 따르면 복구 부지에 식재된 소나무, 이팝나무, 단풍나무, 능소화 등은 규격 미달이었다. 회화나무는 수량이 부족했다. 줄떼식재(잔디)는 괴사를 하거나 시공이 돼있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전석은 부실시공이 의심됐다.

잔디로 측은 대행업체가 복구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실제 감리기술사가 실사를 하지 않고 복구가 완료됐다는 준공계를 낸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행정 시스템상 
불가능한 이론

정읍시 측은 “준공계를 낸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 법원의 결정문과는 별개로 정읍시 측은 복구가 완료된 것으로 봤다”며 “다만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잔디로 측은 복구공사를 대행업체에 넘기는 과정 역시 적절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잔디로에 따르면 정읍시는 잔디로의 적지복구 기한(2014년 4월30일∼2015년 5월31일)이 끝난 후 이틀 만인 지난 6월3일 사전 공지 없이 11억3000만원의 예치금을 유치시켰다. 

잔디로 측은 적지복구공사가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였음에도 이를 감안하지 않고 전액을 청구해 유치시켰다는 점에서 다분히 감정적이고 보복적인 조치로 판단했다. 실제로 2015년 5월 정읍시에 제출된 제7차 감리보고서에 따르면 적지복구공사는 ▲토공 85% ▲부대공 100% ▲식재 20%가 진행됐다.

반면 정읍시는 충분히 기회를 줬다는 입장이다. 예치금 유치를 위한 공문을 수차례 보냈고 1년1개월의 공사기간을 줬는데도 공사가 지연됐다는 것. 수차례에 걸쳐 복구를 촉구하면서 ‘기일까지 완료하지 못할 경우 대행복구를 할 계획’임을 고지했다고 반박했다. 

정읍시 측은 “잔디로가 고지한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별다른 차도가 없는 데다 기간 내에 공사를 끝내지 못해 예치된 복구비로 충당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잔디로는 정읍시의 일방적 산지 대행복구를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하기도 했다. 권익위는 잔디로의 손을 들어줬다. 정읍시에 시정 권고한 이유에 대해 산지관리법, 행정절차법 등을 들었다. 

산지관리법 제41조 제1조에 따르면 기간 내에 복구를 완료하지 않으면 대행하게 하고 비용을 예치된 복구비로 충당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권익위는 이 규정이 일반적 원칙만 정하고 구체적인 절차는 정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했다.

행정목적을 위해 국민의 신체·재산 등에 실력을 가해 행정상 필요한 상태를 실현하고자 하는 침해적 행정처분에 해당한다는 게 권익위의 판단이다. 따라서 행정절차법에 따른 처분 절차가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잔디로가 복구공사를 50% 정도 진행했고, 복구공사를 수행할 의사를 내비친 점도 권고 이유로 꼽혔다. 권익위는 “허가지의 대행복구 중지를 구하는 잔디로의 주장은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이 같은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허가지의 대행복구를 실시한 정읍시의 처분은 위법·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역경제 개발 
발목잡는 행정

또한 복구에 들어간 비용을 두고도 양측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미 50% 이상 진행된 복구작업에 예치금 11억원을 전부 유치시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 공사비용이 많이들어갔다는 주장도 있다. 50%가량의 복구공사가 진행되는 데 드는 공사 비용은 대략 3억원 정도였는데 정읍시가 나머지 복구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6억7300만원이다. 


잔디로 측은 이 같이 복구 비용이 많이 들어간 것 역시 잔디로를 괴롭히는 ‘하나의 방법’으로 판단했다. 

정읍시는 예치금을 유치한 것은 당연한 절차라는 설명이다. 정읍시청 관계자는 “내장산 유스호스텔 건에 들어간 복구 비용 11억원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며 “관련 비용이 늘어난 것은 복구 대행 업체가 진행한 공사 과정서 비용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잔디로와 정읍시의 관계가 나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잔디로는 김생기 시장이 원인이 됐다고 봤다. 잔디로에 따르면 정읍시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현 김생기 시장 당선후 시장이 이 토지를 헐값에 넘기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이를 거부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정읍시가 공문을 통해 해당 토지 매각과 기부채납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잔디로에 따르면 이후 정읍시가 행정적으로 어깃장을 놓기 시작했다. 잔디로 측은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사업을 하는데 정읍시가 행정적으로 보복을 가하는 것 같다”며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관련 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곳이 있었는데 정읍시 측은 행정적 조치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치열한 소송전 계속될 전망
상생의 길 도모의 목소리도

잔디로 측은 자신들이 유스호스텔 사업서 손을 뗄 경우 전북지역에 거점을 둔 다른 건설업체가 이 사업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즉, 정읍시가 잔디로를 의도적으로 몰아내고 사업권을 친 정읍시 성향의 제3자에게 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것.

잔디로는 “정읍시가 제대로 된 행정지원만 해줬어도 사업이 지금처럼 좌초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잔디로가 손을 떼면 다른 건설사가 이 사업을 넘겨받기로 돼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돈다”고 지적했다.

정읍시는 공문을 보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잔디로 측에 토지매각과 기부채납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낸 것은 잔디로 측이 땅 사용과 관련해 향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문의해와 일종의 제안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행정폭력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며 “잔디로 측이 사업 진행 의지가 안 보여 절차를 밟아갔던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정읍시는 대행복구 지연의 실질적 이유로 잔디로 측이 해당부지를 청소년수련시설(야영장) 건립을 위한 의도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내막 속에 현재 2심 본안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다. 잔디로는 복구공사의 재판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 등의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양측간 법정 다툼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양측 간 소모적인 법정보단 절충안을 마련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로에게 필요한 중재안은 없는 것일까. 

“적법 절차”
말만 되풀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정읍시는 적극적으로 법인 유치를 나서는 것이 일반적인데 법인과 각을 세우는 모습은 정읍시에 사업을 벌이려는 다른 사업자에게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며 “원만한 해결책 모색이 이제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간당간당’ 김생기 시장, 왜?

김생기(70) 전북 정읍시장이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시장직을 잃을 수도 있다. 

앞서 총선 과정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발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시장에게 직위상실형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정읍지원 제2형사부(재판장 박노수 부장판사)이 지난달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 시장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이 형이 확정되면 김 시장은 시장직을 잃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거운동에 개입할 때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훨씬 크다”며 “피고인이 공직선거법의 입법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는 취지의 발언을 계속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시장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김 시장은 1심 선고 사흘만에 변호인을 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변호인 측은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법리오해 및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며 항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김 시장은 고법으로의 항소를 통해 시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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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