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방금 자네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신상필벌이 되지 않는다고.”
“그랬지요.”
다음 말을 잇지 않고 앉아 있던 비담이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염종 역시 자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디 가시게요?”
“여주를 만나야겠어.”
“여주를요!”
“당장 만나서 김춘추 그놈을 처벌하라 요구해야지.”
그제야 비담의 마음을 읽었는지 염종이 빙그레 웃었다.
비담의 계략
비담과 염종이 여주를 알현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그들이 온 사유를, 김유신의 압량주 군주 임명문제, 감지한 선덕여왕이 피곤하다는 이유를 들어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정하고 들어간 마당에 쉽사리 물러설 비담이 아니었다.
결국 자신들이 찾아온 용건을 돌려 이야기했다.
그러자 한참 동안 소식이 없던 선덕여왕이 마지못해 접견을 허용했다.
“전하,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알현하자마자 비담이 먼저 치고 나섰다.
느닷없는 상심이란 말에 선덕여왕이 경계심을 품었다.
“무슨 일인지 상세하게 말씀하세요.”
“다른 일이 아니옵고.”
“제가 말씀드릴까요?”
노련한 비담이 뜸을 들이자 슬그머니 염종이 나서려했다.
“아닐세. 자네는 위계질서도 모르는가. 내가 아뢰겠네.”
비담이 위계질서라는 단어에 슬쩍 힘을 주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보세요!”
짜증나는지 선덕여왕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그러면 바로 말씀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세요.”
“자고로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이 잘 지켜져야만 합니다. 아울러 모든 백성은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에 대해 목숨을 바쳐 일을 이루어야 하지요. 그래야 한 국가가 원만하게 운영되지요.”
말을 하다 말고 비담이 뜸을 들였다.
“계속하세요.”
“그런 연유로 전쟁에 나가 패한 장군은 목숨으로 그 책임을 물어 왔습니다.”
다시 말을 하다 말고 슬그머니 선덕여왕의 얼굴을 주시했다.
서서히 당혹감이 비치기 시작했다.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다가 망신만 시키고 돌아온 김춘추를 일벌백계로 다스리심이 온당한 줄 아뢰옵니다.”
“뭐라고요!”
“당연한 일이옵니다.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일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신라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엄히 다스려 전하께서 신라의 번영을 위해 사심 없이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염종이 참을 수 없었는지 목소리를 높이며 끼어들었다.
“공과 사를 엄히 구분하셔야 하옵니다.”
비담이 다시 뒤를 이었다.
“그게 어찌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일입니까?”
선덕여왕이 끓어오르는 노기를 간신히 참으며 힘들게 말을 끝맺었다.
“처음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처음부터라니요?”
“신라라는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지 않고 김춘추 개인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옵니다.”
“신라가 아닌 자신의 딸과 사위의 복수가 앞섰으니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없었고 고구려에게 망신만 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결국 신라의 위신을 실추시킨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비담에 이어 염종이 침을 튀기며 목소리를 높이자 선덕여왕이 고개를 돌렸다.
“엄히 벌하시어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시옵소서.”
말을 마친 비담이 염종에게 눈짓을 보냈다.
“전하, 지난 시절을 회고해 보십시오.”
“지난 시절이라니요?”
선덕여왕과 만난 비담과 염종
위기의 춘추…김유신 운명은?
“진흥왕께서 보위에 앉아계실 때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산천초목도 신라를 두려워하였었습니다. 그렇게 된 근저에는 기강이 확고히 서 있었고 또 그를 바탕으로 신라는 당당하게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차원에서 본을 보임으로써 기강을 확립하소서.”
다시 비담이 치고 나서자 선덕여왕이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자, 말 돌리지 말고 본론을 말해 보세요.”
더 이상 수세에 몰릴 수 없다 판단했는지 선덕여왕이 은근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이유는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소신들은 단지 우국충정 어린 노파심에서 말씀드린 것뿐이옵니다.”
노련한 비담이 확대해석에 대한 여지를 잘라버렸다.
“정령 다른 뜻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러면 두 분은 김유신 장군이 압량주 군주로 취임하는 부분에는 이의가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선덕여왕의 일격에 순간 두 사람의 얼굴색이 변해갔다.
“김유신 장군의 압량주 군주 임명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가 없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선덕여왕이 사색이 된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힘주어 쐐기를 박았다.
고구려를 다녀온 성충과 흥수가 의자왕을 알현했다.
“먼 길에 고생들 많으셨소.”
“고생이라니요. 신하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그쪽 사정은 어떠하오?”
흥수가 성충을 주시하자 성충이 대신 말하라는 듯 눈짓을 주었다.
“고구려는 지금 당나라를 상대로 일전을 불사하겠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 상태에서 모험을 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기야, 연개소문 정권이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여하튼 그들의 의지는 어떠하오?”
“당나라와는 결코 교류가 이뤄지지 않을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전 불사
“허면 결국 당나라와 일전을 불사하겠다 이 말이오?”
“방식의 문제입니다.”
“방식이라!”
“당나라 이전 수나라와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습니다.”
“수나라와의 전쟁!”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전쟁을 일삼아 결국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고구려가 침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나라의 심기를 자극하여 고구려로 끌어들인 연후에 일전을 벌이겠다는 듯 보였습니다.”
“거참, 대단한 꼼수일세.”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