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탈권위’ 기업 총수들 비화

대통령보다 더 털털한 회장님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탈권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문 대통령이 식판을 직접 들고 배식 받는 사진은 불합리한 권위를 벗어던진 ‘유연한 권력’의 상징처럼 회자된다. 재계도 탈권위 바람이 덩달아 불면서 소탈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총수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일요시사>서 이들을 조명했다.
 

현대가는 소탈한 가풍으로 유명하다. 현대의 창립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이어져 온 집안 분위기이도 하다. 정 명예회장은 30년 동안 구두 3켤레로 생활했다는 일화는 재계에선 이미 유명한 일화다.

소탈이 가풍
수평적 문화

정 명예회장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칭하며 권위를 내려놓고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의 소박함을 물려받았다. 

현장을 시찰할 때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허름한 차림에 크게 닳은 구두를 신고 현장을 확인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소탈 행보는 정 회장의 장남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권위를 내려놓고 현장으로 파고드는 모습에서 정 명예회장과 닮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정 부회장이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하고 현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소통하는 모습은 자주 목격된다. 


정 부회장의 모습은 재계서도 정평이 나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가 ‘소탈하고 겸손한 경영자’라고 호평한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그는 로열패밀리 3세에게 있을 법한 ‘허세’가 없다. 그는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소주와 막걸리 등의 술을 즐겨 마신다. 체력관리를 위해 골프장을 즐겨 찾는 정 부회장은 수행비서 없이 운동에 몰입하기도 한다.

소박한 음식을 즐기고
허례허식은 생략하고

정몽구 회장의 둘째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역시 탈권위를 외치는 로열패밀리로 구분된다. 그는 지난해 사내제도를 유연하게 바꾸는 시도를 했다. 점심시간 제도를 폐지하고 복장을 자율화한 것이다. 

권위주의 의식이 남아있는 사내문화에선 쉽게 결행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기존의 권위적인 문화를 타파하고 효율을 중시하는 사내문화의 정착을 위한 시도라는 해석이 잇따랐다. 반응도 괜찮았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소통하며 유연한 사내문화 정착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도 평소 ‘무허세 경영’으로 유명하다. 그는 해외출장을 다녀올 때 의전이나 허례허식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국외 출장 배웅을 위해 공항에 나갔던 한 직원에게 ‘일 안 하고 뭐하러 여기까지 나왔느냐’고 야단친 일화는 그룹 내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세아그룹도 탈권위적인 회사로 평가된다. 철강회사서 느껴지는 딱딱한 기업 문화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평가다. 그 배경에는 총수 일가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총수 일가의 3무 경영은 업계에 잘 알려져 있다. 

3무 경영은 의전과 격식, 수행이 없는 경영을 의미한다. 세아그룹 3세 경영인인 이태성 전무와 이주성 전무에 대한 평가도 이같은 영향을 받아 우호적이다. 

겸손함과 듬직함을 두루 갖췄다는 것이 중론. 그들은 선대 회장으로부터 겸손한 자세에 대해 꾸준히 교육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두 전무는 서울 합정동에 있는 세아타워 인근 식당서 직원들과 같이 식사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 

소탈서 나오는 
원할한 소통

이주성 전무는 재벌가 후계자로서는 드물게 연애결혼을 했다. 이 전무는 시카고대 유학 시절 만난 초등학교 동창 민규선씨와 결혼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역시 소탈한 행보로 유명한 기업 총수다. 자수성가형 총수로서 자연스레 몸에 밴 정서이기도 한다. 임직원들과의 격의 없이 대화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때론 시장서 임직원들과 권위를 내려놓고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공장 시찰 때 부회장만 대동하고 현장에 등장하는 일도 있다. 해외 출장 때는 비서없이 혼자서 업무를 수행한 일화는 꽤 알려져 있다. 재계에선 그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무형 기업가라고 평가한다.
 

최고 기업 두산가에도 소탈한 행보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로열패밀리가 있다. 두산가 3세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4세인 박정원 두산 회장이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가의 탈권위주의 노선을 걷는 인사로 유명하다.

“야근, 상명하복 등 낡은 경영 문화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과 사회적 지위를 좀먹는 고질적 병폐다. 기업 구성원들이 좀 더 생산적으로 일하고, 국민들도 기업에 대한 시선을 바꿔갈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업무방식과 구태문화를 바꿔나가겠다.”

지난해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서 박 회장이 한 말이다. 말뿐이 아니다. 그는 깜짝 만남을 통해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하기도 하고, 치맥(치킨+맥주)을 먹으며 야구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생활을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동대문 두산타워의 인근 식당서 편하게 식사할 때가 많은 박 회장이 깜빡하고 지갑을 놓고 와 외상했다는 일화가 그의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년 대학서 열리는 기업설명회와 해외서 개최되는 신입사원 채용설명회에도 참석한다. 박태준 전 총리의 빈소에 수행원 없이 홀로 조문을 가 기자들도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었다. 오너일가로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모두가 공감하는 일상
다함께 어울리는 취미

지난해 말 두산그룹의 총수가 된 박정원 회장 역시 탈권위적 행보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과묵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지만 운동을 좋아한다. 특히 야구광으로 전해진다. 그는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야구동아리서 2루수를 맡았다. 

현재는 프로야구 시즌 중에 꾸준히 야구장을 방문해 경기 관람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권위주의적 행보는 기업을 이끄는 총수에게 기본적인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 승계작업이 한창인 예비 총수들은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몸을 낮춰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는 추세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두 딸인 임세령·임상민 전무 역시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격의없이 직원들과 소통하고 구내식당서 식사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임 전무 자매는 회식 자리도 꾸준히 참가해 직원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있다.


K뷰티를 이끌고 있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도 탈권위를 지향하는 리더다. 서 회장은 조용한 경영을 추구하지만 모든 회사 구성원간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다. 손수 직원들에게 차를 타서 내주기도 한다. 말단 직원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자세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형성하는데 기반이 됐다. 

덕분에 아모레퍼시픽은 수평적 조직문화를 기반으로 K뷰티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도 최근 소탈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권위보다 소통에 방점을 찍고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직원들과 번개 저녁식사를 즐기며, 일찍 출근한 직원과의 티타임을 갖는다. 추운 겨울에는 목도리를 선물하는 등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덕분에 동국제강은 업황 불황에도 준수한 실적을 기록하며 견실한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격의 없이 대화
문자 주고 받아

한국타이어의 3세 경영인인 조현식·조현범 사장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직원들과 소통을 중시한다. 조 사장 형제가 직원들과 소통하는 매개는 운동이다.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족구, 축구 등을 즐긴다. 직원들과 함께 팀을 이뤄 협동심을 키우고 이따금 가벼운 내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여느 2세 경영인 같지 않게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스스로 운전해 취임식에 나타난 일화는 유명하다. 해외 출장에 수행비서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일도 잦다. 그는 소탈한 리더십을 갖춘 경영인으로 재계에 소문이 나있다.
 

김영진 한독 회장도 소탈한 경영인으로 평가된다. 직원들과 어울려 편하게 술자리를 갖는다. 점심때는 구내식당을 찾아 직접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아 점심을 해결할 때도 있다. 전직원과 간담회도 진행했고, 직원들과 트레킹을 즐기기도 한다.

김치찌개에 소주
치맥에 야구관람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역시 젊은 경영인답게 친근하고 소탈한 이미지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정 회장은 SNS를 활용해 임직원들뿐 아니라 고객과의 소통도 시도한다. 직원들과는 직접 소통을 통해 현장의 애로사항을 듣기도 한다. 직원들도 정 부회장의 탈권위적 행동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정 부회장은 스타필드 하남 개장 이후 현장을 도는 일이 많은데 정 부회장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내방객들도 있다. 권위적인 경영인에게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정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서 나온다는 분석이다. 정 회장은 최근 전기자동차를 구입했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차량 구입에 대한 배경이다. 젊었을 때는 오토바이를 통해 유럽일주를 했다.

한진그룹의 3세 경영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도 젊은 경영인답게 격식에 얽매이기보단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현장 직원들과의 번개 미팅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때로는 직원들과 식사를 하기도 하는데 잔치국수, 칼국수, 만두 등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직장인들은 최근 조성되고 있는 수평적 사내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수평적 사내문화 정착의 보편적인 제도인 수평적 호칭제도에 대해 높은 만족감을 표하고 있는 것.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3월 직장인 915명을 대상으로 수평적 ‘호칭제도’에 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77.3%의 직장인들이 ‘만족한다’고 답했다.

지하철 타고
약속 장소로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새 기업에는 수평적인 사내 문화 바람이 불고 있다”며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하려는 경영인들이 많아지면서 수평적 사내 문화가 정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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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