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8) 진퇴양난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1.31 11:37:28
  • 호수 10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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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과 맞바꾼 여인의 몸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저런 놈은 그냥 현장에서 참형에 처해야 하건만 내 귀관들의 요청에 따라 자초지종을 파악한 연후에 처리하도록 하겠다.”

말을 마친 품석이 칼을 넣고는 휑하니 돌아섰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애랑이 모척과 함께 옥에 있는 검일을 찾았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소.”“무슨 그런 말이 있어요.”


“정말이라니까.”

검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모척이 혀를 찼다.

“정말로 사태 파악이 안 된다는 말인가?”

“이거 미치고 환장하겠네.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차근히 생각해보게. 혹시 단체로 술 마신 건 아닌가?”

“형님, 근무 중에 술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그런데 어떻게 부대 전체가 그럴 수 있나?”

“그러니 미치겠다는 거 아닙니까.”


답을 한 검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특별한 일은 없었는가?”

“특별한 일이 있을 턱이 없지요. 항상 하던 대로였는데.”

“조금이라도 걸리는 일이 없는지 차근히 생각해보게.”

검일이 지난 일을 회고하는 듯 눈을 깜박였다.

“그저 야식 먹고.”말을 하다 말고 검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그러는가?”

“야식이 다른 날보다 유난히 짰다는 생각이 들어서.”“짜다니!”

“뿐만 아니라 맵기도 했고요.”“그래서?”

“야식을 먹고 난 후 모두들 물을.”

말을 하다 말고 검일이 다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아무래도 음식과 물에 이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맵고 짰으니 당연히 물이 먹힐 터인데, 그게 무슨 이유가 되는가. 그리고 음식이며 물은 다 자네 부대서 마련한 거 아닌가?”

“당연히 그렇지요.”

저도 말을 해놓고는 아연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어떻게 됩니까?”

그 상황에도 자신의 향후 문제가 걱정되는지 검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척과 검일의 처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흡사 상대에게 답을 하라는 듯했다.

“왜요, 결국.”

“군율대로 처리할 모양이네.”

“그러면 참수형이란 말인가요?”

모척이 대답 대신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달리 방도가 없습니까, 형님!”

사색이 된 검일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주시했다.

“성주가 정황을 참작해서 살려주는 길 뿐인데.”

모척이 말을 하다 말고 검일의 처를 바라보았다.

“저는 왜 바라보시는지요?”

“혹시 제수씨가 나선다면, 성주가 제수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아서.”

“성주의 시선이 어떤데요?”

애랑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제수씨가 나선다면 성주가 배려해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거지요.”

“그저 나서면 되나요?”

“그거야.”

모척의 얼굴에 곤혹감이 들어차자 애랑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행여 꿈속에서라도 그런 말씀 마세요. 제게는 서방님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서방이 죽도록 내버려두겠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몸을 더럽혀 구걸이라도 할까요?”

“그게 어찌 구걸이오, 아우를 살리는 길이지요.”

모척이 간절한 표정으로 애랑을 주시하자 고개를 돌려 검일을 바라보았다.

검일이 슬쩍 시선을 외면했다.

“제게는 오로지 서방님뿐인데.”

애랑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제수씨가 나서는 길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듯합니다.”

죽을 위기의 검일…살기 위한 방법은?
떠날 채비 갖추고 애랑과의 마지막 밤

“그게 무슨 소리요?”

“말 그대로지요. 당신의 목숨과 저를 바꾼 거지요.”

자신의 아내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아내가 될 수 없는 애랑을 바라보는 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아내를 품석에게 내주어야 하는 한심한 형국에 대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검일의 처는 흡사 그를 즐기기라도 하듯 곁눈질로 검일을 살펴보았다.

“제 마음은 어떻겠어요.”

기어이 애랑이 침묵을 깨고 나섰다.

“다 내 죄지, 내 죄. 그냥 죽었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지요. 어쨌든 살고 봐야지요.”

“자네 없는 삶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도 다른 남자 옆에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 있는 자네 모습을 보면서 말이야.”

“그러면 제가 죽을까요?”

“그럴 수 없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죽어야지.”

“다 이년이 박복한 탓이지요.”

검일이 길게 한숨을 내쉬자 애랑이 천천히 다가섰다.

“내일이면 그 놈에게 가야 하는데 이 밤을 이대로 보내시려는지요. 마지막으로 당신의 진한 체취를 느끼고 그를 기억하며 팔자려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애절하게 말하는 애랑을 검일이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자네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네.”

“어쩌시려고요?”

순간 애랑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도망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대로는 보낼 수 없어.”

울음인지 한숨인지 분간 못할 소리가 이어졌다.

“도망가다니요?”

“백제 땅으로라도 도망가야지.”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렇게는 안 되겠네.”

“그렇게 해서 둘 다 죽으면 무슨 소용 있나요?”

애랑의 목소리가 앙칼졌다.

“그러면 자네는 이대로 가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죽자는 말인가요, 사는 길이 있는데.”

검일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애랑을 주시했다.

“저는 지금 이 길이 좋아서 이러는 줄 아세요. 지금 이 순간까지 당신만 오로지한 저에게는 이 일이 좋은 줄 아시냐고요.”

기어코 애랑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를 살피며 검일이 애랑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자네에게 몹쓸 짓 하는구려.”

애랑이 말은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미안하오, 부인. 내 죽어서도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 잊지 못할 것이오.”

애랑의 등을 휘감았던 검일의 손이 허리께로 이동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애랑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군사, 계책을 말해보시오.”

대소 신료가 자리를 정돈하자 의자왕이 곁에 있는 흥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선을 받은 흥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왕 곁에 자리했다.

“여러 대신들께서도 감을 잡고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전하께서 이참에 신라를 공격하여 심기일전의 기회, 또 백제 중흥의 기반을 닦으시려 합니다.”

흥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의자왕의 눈치를 살피고는 시선을 신료들에게 주었다.

“아울러 금번에는 전하께서 친정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친정!”

누구 한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구동성으로 친정을 되뇌었다.

“그러하오, 내 직접 전투를 진두지휘하여 우리 백제의 의지를 만 천하에 밝힐 참이오.”

“그렇다고 전하께서 친정하시다니요?”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이 역시 어느 한 사람의 입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흥수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왕을 주시했다.

의자왕이 좌중을 주시하다가 이내 헛기침했다.

“경들이 걱정하는 바는 충분히 알겠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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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기세를 앞세워 쟁점 법안들을 한순간에 처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과제를 풀어야 하는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주요 후보 4명이 출마할 예정이다. 약점도 4인 4색이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일 충북 청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주목받았던 유력 당권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등 4명이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과 장성민 경기 안산갑 당협위원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4파전 예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들이 수북하게 쌓여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의 기세와 압도적인 의석수를 토대로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서둘러 처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완전히 폐지한 후 기존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옮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의 의석수는 107석에 불과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법안을 막을 힘이 없다. 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유력 후보 중 1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힘을 겨냥해 “내란범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직도 반성 없이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내란을 옹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란 종식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및 인용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도록 위협하면서 자금줄을 끊는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건희 특검팀은 같은 날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엔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의 수사 상황에 따라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승부수로 제시했다가 좌초된 5대 개혁안에 담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 문제도 새 당 대표의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친윤(친 윤석열)계는 5대 개혁안을 좌초시키면서 친윤계 일원인 송언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등 여전한 힘을 드러냈다. 5대 개혁안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안건이었다. 신임 당 대표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숙제는 내년 6월 진행될 지방선거다.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벌써 낮게 진단되고 있다. 실제로 패배하면, 다음 달 선출되는 당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숙제와 뻔한 죽음이 예상되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은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정치인들로 이들 모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어려운 숙제를 잔뜩 안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대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대 다가오는데 또 같은 얼굴들 대표 유력 주자 약점 들춰보니… 하지만 후보 4명은 각자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새 지도부가 구성됐다고 해서 저 많은 과제가 술술 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서울희망포럼 강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 내가 싸우겠다”며 “국민이나 당이 위축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김 전 비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시도했던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김 전 장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인 국민의힘 김재원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지난달 13일 YTN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국정 전횡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당무감사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인지 회의적”이란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이 몰두하는 것은 ‘빅텐트’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비전은 ▲권력의 잘못에 맞설 수 있도록 107명이 제대로 뭉친 국민의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낙연 전 총리·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과의 빅텐트 및 연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당 체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김 전 장관의 ‘빅텐트’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빅텐트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지지 선언은 이끌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는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도 스스로 제안했다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태도를 바꿔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후보와 친윤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대선에서 41%를 득표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이 ‘비교적 선전’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상황에 비해 선전했다는 것일 뿐, 진짜로 선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빅텐트에 집착하고 있다. 빅텐트 정당은 다양한 세력을 묶고 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 당내 화합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을 탈당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단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다시 빅텐트 김문수 집착 심지어 김 전 장관이 대선후보 시절 구상했던 빅 텐트엔 전 목사 등 광장 세력도 포함됐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관악산에서 열심히 턱걸이를 해도 고령에 따른 판단력 문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전 장관이 윤석열정부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연이어 발탁됐던 이유로는 “고령의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예우”란 평가가 계속 나왔다. 이 평가엔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발탁했다”는 의미가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는 등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선택은 일부 돋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적 선택도 정확한 판단력과 맞물려야 그 빛을 발한다. 대권·당권주자가 없단 약점이 있는 친윤계가 그나마 지향점이 비슷한 김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도를 공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면 당 체질은 필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빅텐트에 집착하는 옛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여당과 제대로 맞설 제1야당 대표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선 “어려운 상황에서 정면 승부하는 결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한 전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규정한 ‘이조 심판론’이란 구호를 내걸었다가 ‘108석 당선’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로 제시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정치 인생에서 제일 빛났던 순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를 막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친한계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후 민주당과 협조해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원로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극찬했다. 조 대표는 지난 2월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당 대표가 계엄을 좌절시키긴 어렵다”며 “보통 이런 걸 ‘별의 순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합의해 지난해 12월7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1차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이어 다음날엔 한 전 총리와 함께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당정 협의를 강화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전 총리 탄핵 심판 결정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각계각층에선 한 전 대표를 일컬어 “권력 찬탈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격렬하게 비판했다. 한동훈 급부상 당시 한 전 대표는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소추 표결 불참 ▲탄핵 찬성 등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반발과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대선 유세에 참여했고, 친한계를 움직여 대선후보 강제 교체 반대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친윤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전하고,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등 ‘결기 부족’이란 일각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김민석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농성이 되고 말았다. 나 의원은 냉방이 잘 되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김밥과 유명 메이커 커피를 곁들이고 탁상용 선풍기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을 알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촬영해 스스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나 의원 자신이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핑이나 바캉스 같다”고 비웃었다. 지난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 농성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도 지난 1일 MBC <뉴스외전>에서 “로텐더홀에서 출판기념회 하듯이 농성한다”고 비판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피서 농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주말엔 로텐더홀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달 30일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작 농성의 대상인 김 총리는 같은 날 나 의원을 방문해 “식사는 했느냐”면서 “단식은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김 총리의 기세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대선 경선 그대로 옮겨지나 수많은 난제…독이 든 성배? 그러자 나 의원은 다음날 농성을 해제했다. 나 의원이 6일 동안 진행한 농성은 나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진행될 대정부 투쟁의 회의적 가능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당 대표 당선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지 의문이 커진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오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후 겨우 8분 만에 사퇴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국민의힘은 악성 종양이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라면서 “메스를 들어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 의원은 송 비대위원장에게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와 관련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도·수도권·청년 중심으로 혁신위를 구성하려던 안 의원의 구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 혁신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 내정 이전부터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따라서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친윤계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일찌감치 “친윤계가 이전처럼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왜 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돌아다녔다. 안 의원은 “‘쌍권(권영세·권성동)’ 숙청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따라서 “혁신하는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은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나 홀로 버티고 있다. 친윤계와의 연대설이 돌아다녔던 이유도 안 의원에게 세가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안 의원도 김 전 장관처럼 친윤계와 치명적으로 갈등한 이력이 생겼다. 김 전 장관과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실리는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메스를 들어 고름과 종기를 적출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남는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 계보를 거느린 한 전 대표도 친윤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조 의원과 장 당협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주요 후보 4명에 비하면 비중 있게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조 의원에 대해선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하고, 좌장인 조 의원이 대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수장과 좌장이 동시에 출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숙제 뻔한 결말? 여러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가능성이 더 큰 당 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출혈은 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쟁점 법안들을 연이어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는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자중지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내부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