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MB 미소재단 vs GH 미르재단 전격 비교

정권 바뀌면 미소도 털린다?

[일요시사 취재 1팀] 박호민 기자 = 국정 농단 ‘최순실 게이트’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난 미르재단.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미르재단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미소재단의 성격이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양측은 격론으로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 <일요시사>에서 양 재단을 전격 비교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재단법인 미르(이하 미르재단)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미소금융중앙재단(이하 미소재단)이 서로 비슷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논란의 시작은 최순실 게이트서 불거진 검찰 수사 관련 박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역대 정부서도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와 출연으로 공익사업을 진행한 사례가 많았지만 지금처럼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며 이명박정부의 미소재단을 지목하면서 시작됐다.

[각 정권 추진]
[대통령 연관?]

김승유 초대 미소재단 이사장(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서 “미소재단은 미르재단 등과 출발부터 달랐다”며 미르재단과의 유사성 언급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냈다.

2009년 설립된 미소재단은 금융이용의 접근성을 높여 자활의지가 있으나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저소득·저신용층 및 영세사업자의 자활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자 설립됐다. 제도권 금융 이용이 곤란한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창업자금, 운영자금 등 자활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사업(Micro Credit)을 주사업으로 했다.

이명박정부는 2000년 이후 약 10년간 30여개의 민간단체가 재정, 지자체 예산, 소액서민금융재단자금, 민간 기부금을 재원으로 수행해 온 소규모 사업을 중앙재단을 통해 관리하기 위해 미소금융중앙재단을 만들어 운영했다.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각 200~300개의 미소금융법인을 설립해 전국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재계·금융권 등의 기부금과 휴면예금 출연금을 재원으로 향후 10년간 총 2조원 이상의 기금을 조성을 목표로 했다.

미르재단은 문화산업 지원을 목표로 2015년 10월 설립됐는데, 사업 내용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미르재단은 문화연구·콘텐츠 개발을 위해 한국문화 주제를 선정해 연구하고 문화생산자 그룹들을 연결해 주제별 사업모델을 설계하고 콘텐츠를 개발한다.

또 문화 저변 구축 및 확산을 위해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기반을 탄탄히 하고, 사업 특성에 맞는 문화 확산 플랫폼을 생성함으로써 한국문화를 세계로 확산하는 것이 목표다.

아울러 문화를 통해 문화외교까지 겸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업 논의조차 없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르재단의 신뢰성은 현재 바닥인 상황이다.

[이상한 라인]
[측근 요직에]

미소재단과 미르재단은 자신의 라인들로 이사장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양 재단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두 재단은 각각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어른거리는 재단으로 통한다. 재단을 거쳐간 인사들이 각자의 라인인 경우가 많다.
 

미소재단의 초대이사장 김승유 전 이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려대학교 동기다. 그는 이명박정부 내내 이사직을 유지하다가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사직을 현 이종휘 이사장에 넘겨줬다.


대통령 어른거리는 재단
공통점보단 차이점 부각

이명박정권 내내 이명박 라인이 미소재단을 이끈 셈이다. 미르재단도 대통령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우선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라인이 미소재단을 장악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은 최순실씨와 친분이 두터운 차은택씨와의 친분으로 이사장 직을 맡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김 전 이사장은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9월 돌연 이사직을 사퇴해 배경에 눈길이 쏠리기도 했다.

[있거나 없거나]
[설립구조 차이]

법적 근거의 유무도 두 재단 간 차이가 있다. 미소재단의 경우 2007년 노무현정부의 ‘휴면예금관리재단의 설립 등에 관한 법률’을 그 근간으로 해 저신용·저소득 계층에 대한 대출 지원을 위해 설립됐다.

반면 미르재단은 설립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 전 이사장은 또다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미르재단은 애초부터 재단 설립과 관련 법적 근거가 없어 재단 자금이 쉽게 유용될 수 있는 구조다”며 이들 재단 사이의 차이점을 제시했다.

문제는 미르재단의 이 같은 자금 운용방식이 점이 유용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재단 설립에 법적 근거가 있으면 자금 출처, 자금의 활용 등에 제한을 받지만 한정된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으면 정관이나 규약 등에 따라 언제든지 용처 등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자금 유용 가능성이 높다.

자금 운용 방식에서도 차이가 크다. 미소재단은 각 기업들이 자금을 출연해 금융권 접근이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대출해준다. 정부는 미소재단의 컨트롤 타워역할에 그친다.

즉 직접적으로 자금 운용을 하지 않아 자금과 관련되 분란의 여지가 적다. 반면 미르재단은 재단이 직접 기업으로부터 기부금 형식으로 모금을 받아 운용하기 때문에 자금 유용의 가능성이 크다.

김승유 전 미소재단 이사장도 이 점을 미르재단과의 큰 차이점으로 꼽았다. 실제 미소재단의 경우 자금을 출연했던 기업들은 해당 자금을 이용해 삼성미소금융재단, SK미소금융재단 등의 재단을 만들어서 서민 대출을 하고 있다.

반면, 미르재단의 경우 자금의 유용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김 전 이사장은 “미소재단은 기업들로부터 돈을 단 한 푼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며 “이는 재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전두환정부의)일해재단처럼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아 유용하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공익사업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자금이 사익을 위해 쓰일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 여부가 본질적 차이”라고 덧붙였다.

[규모 보니… ]
[차이 나는 몸집]

재단의 자금규모는 미소재단이 컸다. 미소재단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미소금융 지점을 통한 대출액이 1784억7000만원(총 1만5021건) 수준으로 현재까지 휴면예금 출연금은 1조89억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기업들은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등이 2018년까지 총 1조원(2016년 현재 약 5400억원 출연)의 자금을 출연했다.

반면, 미르재단은 지난해 10월 설립한 이후 30개 기업에서 480여억원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운용 규모는 미소재단이 더 크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미소재단의 경우 서민들에게 융자를 해준 뒤 상환받을 수 있고, 미르재단은 기부금 형식으로 기업에게 돈을 받아 상환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수억∼수십억씩 기부 행렬
정권 차원 강행… 성격 비슷 분석

이 차이 때문에 미르재단과 기업 간 커넥션에 대해 뒷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미르재단에 자금은 출연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삼성그룹은 125억원, 현대차그룹은 85억원, SK하이닉스는 68억원, LG그룹은 48억원, 롯데그룹은 28억원, GS그룹은 26억원 등을 기부했다.


특히 총 기부금 480억원이 모이는 데 한달밖에 걸리지 않아 대가성 의혹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각 기업들은 미르재단 측에 지원한 돈이 대가성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뭐하는 곳? ]
[사업의 영속성]

미소재단과 미르재단은 사업의 영속성에도 차이를 나타낸다. 미소재단은 2009년 이명박정부서 설립된 이후 해마다 대출규모를 늘리며 활발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2013년 박근혜정부들어 사업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미소재단은 운영 중이다.
 

2016년 9월 서민금융진흥원으로 인계됐지만 관련 사업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각 기업들이 운영중인 미소재단도 확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소재단 측이 밝힌 상반기 대출액(1784억7000만원)은 전년동기 대비 29.1% 증가했다.

특히 전국 34개의 미소금융 지역법인의 대출실적이 전년대비 73.5% 증가하면서 미소재단이 활발히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각 기업들도 미소금융 재단 관련 홍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SK그룹의 SK미소금융재단은 인천서 ‘SK미소금융 데이(DAY)’ 행사를 했다.

SK미소금융재단은 지난 9월 SK행복드림구장서 열린 SK와이번스와 기아타이거즈 야구 경기에서 미소금융을 홍보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SK미소재단은 구장 내 홍보부스를 운영하고 인천지역 미소금융 대출자가족 100여명을 초청해 싸인볼과 도시락 등을 제공했다.

실제 SK그룹은 미소재단 사업에 꾸준히 재원을 출연하고 있다. 2009년부터 10년간 대출재원을 미소금융사업에 출연한 것. 특히 미소금융 활성화를 위해 전국의 소외계층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그 결과 SK미소재단은 전국에 20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미르재단은 현재 존립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설립 2년이 채 안돼 비리의혹이 터져나오면서 존폐위기에 놓인 것이다. 의혹 가운데 가장 큰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에 압력을 행사해 재단 기부금을 모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사실상 미르재단은 유지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권력형 비리 ]
[의혹 모락모락]

양 재단 모두 비리와 관련해 논란이 됐다. 다만 미소재단은 개인비리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미르재단은 재단내 권력형 비리로 확대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소재단은 미소금융중앙재단에 대한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김주원 부장검사)는 2011년 미소금융중앙재단 간부가 돈을 받고 뉴라이트 성향의 단체에 복지사업금을 지원한 정황을 파악하고 서울 종로구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압수수색했다.

재단 간부 양모씨는 뉴라이트계열 단체 대표 김모씨에게서 1억원을 받고 김씨가 대표로 있는 단체에 복지사업금 35억원을 지원한 혐의를 받았다. 또 지난해 제주서부경찰서는 전통시장 소액대출 복지사업 지원금을 착복한 혐의(업무상횡령)로 제주시 모 전통시장 상인회장 A(49)씨를 붙잡아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10년 7월∼2011년 2월까지 미소금융재단의 전통시장 소액대출사업을 위탁받은 A씨는 시장 상인 19명이 대출했다가 갚은 총 9500만원(1인당 500만원) 중 8500만원을 재단에 반납하지 않고 빚 탕감 등에 쓴 혐의가 드러났다.

미르재단의 경우 ‘권력형 비리’ 의혹이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모양새다.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기업들에 기부금을 모집하고 임직원을 최순실과 직간접적인 친분이 있는 인물을 채용해 고액의 임금을 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인재근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재단법인 미르, 재단법인 K스포츠의 사업장적용신고서’에 따르면 미르재단 유급직원의 평균연봉이 9212만원에 달했다.

이 중 최고 연봉(2015년 12월 기준)은 1억6640만원이었으며, 두 번째로 많은 연봉은 1억3640만원으로 6명의 유급 직원 중 1억원 이상 연봉자가 2명이나 됐다. 다음으로 9110만원의 연봉자가 1명, 6341만원이 두 명, 3203만원의 연봉을 받는 직원 한 명으로 집계됐다. 평균 연봉만 9212만원에 이르는 수준이다.

[재단 이름만… ]
[“다르다”주장도]

양 재단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선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소재단과 미르재단은 재단이라는 큰 범주는 같지만 운영방식부터 차이가 있다”며 “미르재단은 전두환 정권의 일해재단(기사속기사 참조)과 오히려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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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