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 사태> 박근혜-김정일 4시간 독대 미스터리

3박4일서 지워진 의문의 4시간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송민순 회고록’이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특히 여권은 ‘국기문란’ ‘내통’ 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야권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야권 내부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방북 당시 활동을 공개하라고 대응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일요시사>는 시계추를 2002년으로 되돌려 당시 박 대통령과 김 전 위원장의 4시간 ‘밀담’ 미스터리를 되짚어봤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회고록서 2007년 당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투표에 앞서 북한에 의견을 물어봤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송 전 장관이 유엔 채널을 통해 북한 측에 “‘찬성’이 현실적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설득하고 있다고 주장하자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고, 당시 비서실장이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남북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매 맞는 야권
대반격 카드

당시 회의록을 바탕으로 새누리당은 야권에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문 전 대표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사실상 북한의 인권 탄압에 동조하며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며 이적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야권은 새누리당의 정치공세를 ‘색깔론’으로 규정하고 강력 비판했다. 지난 18일,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새누리당이 말하는 ‘(남북외교관계)일관성’이라는 게 외교적 시각에서 보면 무지하기 짝이 없다”며 “일관성이라는 것은 통일외교와 국익 차원의 관점에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국감 파행과 불참으로 시작한 새누리당이 결국 마지막 색깔론으로 끝내고 있다”며 “이번 색깔론 공세는 결코 국민에게 지지받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고 말했다.


최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이어 미르·K스포츠재단 등 정부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국면전환용’으로 색깔론을 악용한다는 게 더민주의 입장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새누리당의 공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8일 “저는 ‘국민의 정부’에서 (2002년) 당시 박근혜 야당 대표가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4시간 동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잘 알고 있다”며 “새누리당이 이런 식으로 계속 색깔론을 제기한다고 하면 저도 다 이야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새누리당-더민주 간 ‘송민순 회고록’ 공방이 계속된 와중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김대중정부 시절 대북송금 문제까지 거론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여권과 야권의 날선 ‘색깔론’ 공방이 오고 가는 가운데, 2002년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의원, 부총재) 방북 때 숨겨진 4시간의 진실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누리당이 2007년 사건을 놓고 문 전 대표에 ‘국기 문란’ ‘반역’이라는 거친 단어를 사용했지만 만약 2002년 박 대통령이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을 만나 나눈 이야기 중 국익에 배치되는 예민한 사안이 드러날 경우 여권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밀담 내용은?
뭔가 있었나

박 대통령과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의 만남은 2002년 5월11일 전격 성사됐다. 방북에 앞서 2000년 당시 북한은 노동당 창건 행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롯, 민주노동당 등 30곳 등 35명 인사들에 초청장을 보냈다.

북한의 바램과 달리 당시 2000년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에는 사회·종교단체 회원 30명만 방북했을 뿐 박 대통령은 방북하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 관계자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주변의 반대가 있어 방북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2년 뒤인 2002년 5월11일엔 방북길에 오른다.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가 남북협력사업을 펼쳐온 ‘유럽-한국재단’ 이사진을 초청함에 따라 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하게 된 것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방북을 앞두고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이 돼 남북 간에 평화 증진을 위해 협력하고 우방과도 힘을 합치기를 바란다”고 했다.

특히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가 북측 공작원으로 알려졌던 문세광에 의해 살해됐던 것과 관련해서도 “개인적으로 불행을 겪은 사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남북 간의 평화 공존과 정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당시 박 대통령의 대북관에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1960∼1970년대 치열한 체제 경쟁상대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의 2세 간 만남이라는 점에서 당시 정가의 이목이 집중됐다.

당초 박 대통령은 고려항공을 이용해 북한에 입국할 예정이었지만, 김 전 국방위원장이 전용기를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묵었던 백화원초대소의 같은 방을 숙소로 제공했다. 또한 박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2002년 5월11일 저녁 북측이 만수대 예술극장서 환영 만찬을 열어주는 등 융숭한 대접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만찬장에는 김용순 비서와 김영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회장 등 북측 유력 인사들이 참석했다. 당시 북측 방송은 김영대 회장이 “누구든 민족을 위하고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정견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합쳐 나갈 수 있다”고 환영 인사를 건네자 박 대통령은 “남북이 힘을 합쳐 7·4남북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해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공동발전을 이룩하자”고 화답했다며 당시 만찬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다.

‘문 타깃’ 노무현정권 북과 내통 이슈몰이
야, 2002년 회담 반격 “박 방북부터 털자”

하지만 김 전 위원장과 박 대통령이 4시간 가량 밀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진 5월13일 상황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공개된 사실이 없어 정가엔 무성한 추측만 떠돌았다. 다만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 2007년 7월 펴낸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라는 자서전에는 비밀회담에 대한 대략적인 상황이 묘사돼 있다.

자서전에서 박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었다”며 일명 ‘김신조 사건’이라 불리는 1968년 북한의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태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의 언급을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시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질렀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다 응분의 벌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박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의 언행을 두고 “김정일 위원장의 화법과 태도는 인상적이었다”고 말해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당시 밀담 과정서 박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에게 ▲이산가족 문제 ▲6·25전쟁 때 행방불명된 국군과 민간인 생사확인 문제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등을 제안했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흔쾌히 동의했고, 금강산댐 공동조사 및 남북한 철도연결에 대해서도 긍정적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밀담을 두고 박 대통령은 “한 시간가량의 대화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과 많은 약속을 했다”며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 축구대회 등 스포츠교류를 통해 서로 화합의 장을 열자는 약속도 얻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답방 요구에 김 위원장은 적당한 기회에 가겠다고 말하면서 방문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에도 참배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과의 모든 대화 내용을 언론에 투명하게 밝히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알아서 하세요’라며 신뢰감을 나타냈다”고도 평했다.

박 대통령은 방북 일정을 마치고 판문점을 통해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의 제안으로 박 대통령은 “생각지도 못한 제의였다. ‘남과 북이 이렇게 가까운데 먼 길을 에둘러서 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더욱 간절해졌다”고도 회고했다.

북한 왜 갔나
이용당했다?

박 대통령의 방북활동 내용이 담긴 공식적인 문서는 2002년 5월21일 정부에 제출됐다. 당시 동행했던 지동훈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장이 ‘방북결과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정부 당국자는 “지 이사장이 제출한 방북결과 보고서는 A4 용지 3쪽 분량으로 3박4일간 일정이 시간대별로 정리돼 있다”며 “박 의원이 지난 14일 귀환 직후 밝혔던 것 외에 특별히 다른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귀환 직후 10일 이내에 통일부장관에게 제출토록 규정돼 있는 박 의원의 방북결과는 이 보고서로 갈음한다”며 “박 의원의 경우 방북에 따른 행정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절차를 통해 박 대통령의 방북은 마무리됐고, 당시 김 전 위원장과의 구체적인 면담내용은 현재까지 비밀로 부쳐진 상태다.
 


당시 박 대통령의 방북 성사를 두고 정가에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다. 우선 김 전 위원장이 각종 남북현안들에 대한 북측의 메시지를 남측에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박 대통령과 만났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내용은 자서전을 통해 일정부분 드러났지만 김 전 위원장이 박 대통령에 의사를 표명한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의구심은 증폭됐다.

방북 당시 융숭한 대접
만찬·밀담 뒷얘기 무성

또한 남북경협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란 추측도 나왔다. 두 인사의 면담과 만찬 행사에 참여한 당시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고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 임동욱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등이 대남사업의 실세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선 김 위원장이 남측의 보수세력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 보수 정치인인 박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보수층이라도 남북협력 문제에 있어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 내부에서 김 전 위원장을 상징하는 북한 정치 용어인 광폭정치(대담하고 통이 큰 정치)의 선전용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대통령을 북한으로 불러들임으로써 북측 주민들에게 광폭정치의 결실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권의 평가도 판이하게 엇갈렸다. 2002년 5월15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박 대통령 방북에 대해 “우리와의 서면 약속도 지키지 않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뿐인 공약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말해 평가절하했다.

반면 더민주의 전신인 민주당은 대변인을 통해 “김 위원장이 박 위원장과 만나 금강산댐 남북공동조사단 구성,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동해안 철도 연결 등 남북 관계 진전에 매우 의미 있는 약속을 했다”며 “남북관계 진전에 매우 의미 있는 성공적 방북”이라고 평가했다.

“방북 수수께끼
다 털고 가자”

국정원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지난 19일 정보위 국감에서 “역대 정권에서 벌어진 용공·종북 의혹을 다 털고 가자”면서 “2002년 박 대통령의 방북 미스터리가 그 첫째”라고 말해 박 대통령의 과거 방북 문제를 거론했다.

이어 박 대통령 귀환 당시 북한이 보낸 통지문 및 관련 기록 및 협의내용 일체 등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국정원서 근무하며 새누리당 (집권 후) 정부의 이적 행태도 생생하게 목격했다”며 “박 대통령 방북 당시에도 김 전 위원장과의 독대, 만찬 과정에 미스터리가 상당히 많다”고 말해 의구심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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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