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투성이 프리드라이프 경영행태

간판 뜯어고치고 새 출발해도…일등상조 명성 흠집내는 의문점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고객의 슬픔을 이용해 장사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프리드라이프로 간판을 뜯어고치고 새 출발을 다짐했건만 여전히 주변에선 의혹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곳곳에 눈에 띈다.

2002년 설립된 프리드라이프(옛 현대종합상조)는 자타공인 상조업계 일등기업이다. 4년 연속 업계 1위라는 명예훈장은 프리드라이프의 15년 연혁을 대변한다. 폭리를 취한다고 손가락질 받던 상조업계를 정제하는 데 공헌했다는 점은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세심히 살펴보면 프리드라이프 내부에선 갖가지 의문점들이 제법 눈에 띈다. 여기서 파생된 잇단 구설은 프리드라이프의 명성을 흠집 내는 데 일조한다.

 

종잡기 힘든
[알선료 쓰임새]

프리드라이프는 ‘알선료’라는 일종의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알선료는 상주들에게 버스, 제단, 납골당 등을 소개해주는 과정서 벌어들인 부대수익 개념이다. 매달 행사팀장들은 알선료가 생기면 본사에 입금하고 회사는 일정 비율을 다시 팀장들에게 되돌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5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까지 개별 행사팀장마다 알선료 입금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다만 알선료의 쓰임새에 대해서는 회사와 행사팀장들의 입장이 엇갈린다. 일부 행사팀장들은 알선료서 자신들의 몫은 20%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6대 4 비율로 회사와 행사팀장이 알선료를 1차로 나눈 뒤 행사팀장 몫으로 배정된 40%서 절반은 복지후생 명목으로 회사가 관리한다는 주장이다.

알선료에 대한 회사 측 주장은 전혀 다르다. 알선료를 받으면 40%를 행사팀장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60%는 온전히 복지후생에 쓰인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상 모든 알선료는 행사팀장들에게 지급한다는 뜻이다.

프리드라이프 관계자는 “행사팀장들의 근로 환경 향상을 위해 노트북을 지급하거나 해외 연수 등의 비용으로 알선료를 사용해 왔다”며 “지역 행사팀장들의 원활한 업무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본 취지를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행사팀장들이 알선료를 입금한 곳은 법인계좌가 아니라 임원으로 재직 중인 문모씨의 개인계좌라는 사실이다. 행사수익은 법인계좌로, 알선료는 개인계좌로 입금하는 이원화된 체계는 2012년이 돼서야 법인계좌로 일원화됐다. 일각에선 이 시기에 문모씨의 통장으로 수십억대 금액이 흘러갔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프리드라이프 측이 밝힌 전국의 행사팀장은 총 179명.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문모씨의 통장으로 매달 행사팀장들이 20만원씩 알선료를 입금했다고 가정하면 일년에 모이는 금액만 약 4억3000만원에 이른다.

이를 6년 평균으로 환산하면 25억8000만원이다. 행사팀장들의 말대로 전체 알선료의 20%만 행사팀장들에게 되돌아왔다면 20억원을 초과하는 나머지 금액은 어디로 간 걸까? 이 과정서 부각되는 인물이 바로 박헌준 회장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박 회장은 2010년 11월부터 2012년 6월까지 회사를 떠나 있어야 했다. 배임 및 횡령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까닭이다.

공교롭게도 문씨의 통장으로 입금되던 알선료 관행은 박 회장이 출소할 즈음에 법인계좌 입금 방식으로 바뀌었다. 물론 검찰이 박 회장을 조사할 당시 문씨 역시 검찰의 수사 대상에 포함됐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알선료와 박 회장을 무작정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단순 의혹에 그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다만 박 회장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알선료가 문씨의 통장으로 계속 입금됐다는 점은 논란을 야기한다. 정확한 내용 파악을 위해 알선료가 문씨 통장으로 입금된 내역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프리드라이프 측은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개인계좌로?
[이상한 보증금]


프리드라이프는 행사팀장들과 처음 계약을 맺을 때 행사팀장들에게 입사보증금을 선납하도록 하고 있다. 보증금은 행사팀장이 개인의 영리목적으로 행사비를 유용하는 폐단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 개념이다.

회사 덩치가 커지는 사이 행사팀장이 계약 시 납부해야 할 보증금 규모는 나날이 확대됐다. 초창기에 300만원이던 보증금은 2010년 무렵 700만원으로 상향조정됐고 몇 년 후 1000만원으로 다시 인상됐다. 이를 두고 과도한 인상이라고 무작정 매도할 필요는 없다. 초창기에 100만원대에 불과했던 상조상품이 최근에는 4∼5배 급등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약이 종료되면 되돌려 받는 게 원칙이다.

문제는 보증금 입금 과정서 알선료와 비슷한 의혹이 제기된다는 데 있다. 보증금 역시 법인계좌가 아닌 개인계좌로 입금된 탓이다. 알선료가 문씨의 계좌로 입금됐다면 보증금은 김모씨 계좌를 통한다는 내용만 다를 뿐이다. 법인계좌로 입금이 이뤄진 건 보증금이 1000만원으로 인상되면서부터였다.

프리드라이프 측도 보증금을 둘러싼 논란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박 회장이 수감될 당시 김씨 계좌로 보증금을 입금했던 사실이 부각된 바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달리 말하자면 박 회장이 법적 책임을 이미 충실히 이행한 만큼 더 이상 보증금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프리드라이프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일전에 보증금을 개인계좌로 입금했던 전례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며 “개선의 필요성은 회장님께서도 충분히 통감했고 책임을 명확히 했던 만큼 지금은 더 이상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의문이 온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검찰은 1심 당시 박 회장과 고석봉 대표가 회사 자금을 횡령 및 배임하고자 김씨 명의의 차명계좌로 보증금을 송금 받아 관리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검찰이 주목했던 기간은 2006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2년6개월이었다. 그러나 보증금이 법인계좌로 귀속된 건 박 회장이 출소할 즈음의 일이고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보증금은 지속적으로 개인계좌를 통해 입금됐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 놀라운 건 보증금을 관리하던 김씨는 박 회장과 친분이 있는 사이로만 알려질 뿐 프리드라이프와 무관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즉, 회사에 귀속돼야 할 수억원대 자금을 회장의 판단만으로 외부인에게 맡겼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제식구 배불리기
[뻔뻔한 결합상품]

지난 5월 프리드라이프는 본격적으로 결합상품 마케팅을 도입했다. 프리드라이프가 포문을 열자 나머지 상조업체들도 경쟁적으로 결합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비자를 현혹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법 들렸다. 

실제로 지난 11일 열린 정무위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도 이 사안이 불거졌다.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은 상조업체들의 기만적인 결합상품 광고가 급증하고 있지만 공정위는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프리드라이프는 결합상품을 왜 선보인 걸까. 새로운 마케팅 방식이라는 점을 떠나 프리드라이프와 연계해 결합상품을 내놓은 회사의 특성을 살펴봐야 한다. 박 회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장녀인 은혜씨, 차녀 은정씨, 장남 현배씨는 직간접적으로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현배씨다. 프리드라이프 계열사인 하이프리드서 감사에 이름을 올렸던 현배씨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직책이 있다. 일오공라이프코리아라는 회사의 대표직이다.

지난 4월 설립한 이 회사의 주력상품은 안마의자. 프리드라이프서 결합상품으로 선보인 안마의자는 이 회사 제품이다. 아들 회사 제품을 아버지 회사서 끼워 팔았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안마의자가 결합된 프리드라이프 상품은 39개월간 월 9만원대를 납입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여기에 325만원에 달하는 안마의자의 가격을 그대로 적용하면 실제 상조서비스 명목으로 빠져 나가는 금액은 매달 3000원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 금액은 안마의자 할부금이다.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사은품의 할부금은 계속 갚아야 하는 조건이다. 

 

은근슬쩍 갑질
[할부·할당 전가]

프리드라이프는 갑질 논란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회사서 구입한 운구용 차량의 할부 값을 행사팀장들에게 전가한다는 주장은 수년 전부터 거론되는 사안이다. 차량은 회사명의로 뽑고 할부금은 행사팀장들이 갚는 것에 대한 견해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행사팀장과 회사간 계약이 해지되면 차량 노후, 흠집 여부를 점검해 팀장들께 금전적인 부담까지 안긴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외에도 차량할부금을 둘러싼 다양한 소문이 넘쳐나고 있으며 다수의 행사팀장들 사이에서 일방적인 회사 방침에 반발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협력사에 밀어내기를 종용한다는 소문도 섣불리 지나치기 힘든 내용이다. 상조업은 차량, 꽃, 수의, 유골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파생상품을 아우르는 분야다. 그만큼 여러 분야가 긴밀한 협조관계에 놓여 있다. 물론 최상단에 위치한 건 상조회사다. 그만큼 파급력이 엄청나다.

문제는 상조업체의 파워가 협력업체들에게는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부 협력업체들이 프리드라이프와 연계해 일하는 조건으로 상당량의 상조 가입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괴소문마저 퍼지고 있다. 프리드라이프의 강압적인 분위기 조성 여부를 떠나 수평적이 구조를 만드는 데 소홀한 회사 방침을 질타하는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헌준 회장 구속부터 복귀까지 

2011년 11월부터 프리드라이프는 장기간에 걸친 총수 공백기를 겪었다. 박헌준 회장이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옥살이를 한 탓이다. 박 회장은 2006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부당계약, 허위 수당·급여 지급, 공사대금 과다계상, 보증금 유용 등을 통해 회사 자금 총 13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2010년 10월말 구속기소 됐다.

1심 재판부는 엄중한 처벌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박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고석봉 대표에게는 징역 2년이 내려졌다. 이어진 항소심에서는 일부 혐의가 무죄로 판단되면서 박 회장의 고 대표의 형량은 1년6개월로 낮춰졌고 고 대표에게는 3년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그러나 항소심 결과에 불복한 박 회장은 상고를 결정했고 상고심서 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하이프리드서비스서 지급 받은 주식배당 부분 공소사실이 불분명함에도 원심서 이를 명확히 하지 않고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결국 파기환송심서 서울고등법원은 박 회장과 고 대표에게 이전 판결을 그대로 유지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기에 이른다. 횡령금액 일부에 대해 추가로 유죄가 인정되지만 전체 액수에 비해 큰 비중이 아님을 고려한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자유의 몸이 된 박 회장은 곧바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파기환송심 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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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