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성장론 프레임

경제 말고 뭣이 중헌디?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문재인, 안철수 전 대표가 경제프레임 띄우기에 한창이다. 박근혜정부의 경제 실정을 지적하는 두 후보는 본격적으로 싱크탱크를 구성하면서 경제이슈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두 후보가 주장하는 성장론이라는 경제프레임이 말만 바꾼 언어유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 야권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성장론’ 프레임이 쏟아지고 있다. 성장론이 줄을 잇는 이유는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낙수효과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 저성장으로 인해 양극화와 격차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성장론에 국민, 공정, 동반의 키워드를 붙여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경제이슈 선점
싱크탱크 사활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 전 대표가 지난 6일, 싱크탱크를 출범하면서 ‘국민성장론’을 기치로 세몰이에 나서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창립총회 심포지엄서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권교체를 넘어선 ‘경제교체’가 필요하고, 성장의 열매가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국민 성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기조연설서 ‘국민 성장’에 대해 “국민 개개인 삶이 나아지는, 정의로운 성장”이라고 정의했다.

성장으로 생긴 소득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함을 강조하면서 부채주도 성장이 아닌 소득주도 성장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도 했다. ‘국민 성장’의 조건으로 공정·기회·미래투자·지역분권을 제시했다. 학벌, 지연, 인맥이 아닌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국민 성장의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문 전 대표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이명박·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실패”라며 “두 정권의 실패는 오로지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문 전 대표의 ‘국민 성장’이 정체 상태인 지지율을 제고하고 한계로 지적된 확장성을 보완하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특히 서민·중산층·자영업자·중소기업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는 물론 대기업까지 함께 잘 사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야권뿐만 아니라 취약 지지층까지 지지층을 확대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 전 대표 측근은 “문 전 대표가 계속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국민이 잘 사는, 국민이 돈 버는 성장”이라며 “기본 콘셉트는 대표가 제시했다”고 전했다.

다만 앞글자만 바꾼 성장론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새 경제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국민 성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제대통령’과 ‘국민성공시대’,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행복시대’라는 대선 슬로건의 아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은 약점이라는 분석이다.

문 전 대표는 대선 경선이 시작될 때까지 국민 성장에 포커스를 맞춘 경제행보를 전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안으로는 재벌개혁, 비과세감면 폐지, 누진세 완화, 난임시술 지원 등에 방점을 찍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정책대안을 내놓는다는 구상이다.

화난 김종인
친문 죽이기?

일찍이 ‘공정성장’을 경제 화두로 내세운 바 있는 국민의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안 전 대표는 지난달 28일 본인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2기를 출범시켰다. 20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 선임된 최상용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냉전의 틀을 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의 틀을 깨는 것”이라며 “‘내일’은 시대정신에 담긴 국민 요청을 정책으로 담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안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정치, 다른 정치, 바른 정치로 보답하겠다”며 “정치 주체를 바꾸고, 공정성장론을 제1의 경제기조로 삼고, 정치적으로 ‘합리적 개혁노선’을 따라 새 정치를 이뤄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공정성장론에 대해서는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에 목을 매는 경제는 이제 넘어야 한다”며 “개인도 기업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혁신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고, 좋은 일자리도 많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13총선에선 공정성장의 목표로 ▲공적·질적 성장 ▲일자리 개선 및 비정규직 대책 ▲불평등격차 해소 등과 같은 6개 정책과제를 선정했다. 아울러 공정성장 3법으로 불리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벤처기업육성 특별조치법, 조세특례제한법 및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추진해왔다.

최근 안 전 대표는 ‘창업국가론’을 추가로 경제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성장론’에 선명성을 불어 넣고 있다. 아울러 SNS를 통해 박근혜정부의 창업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청년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꽃피우고 성공으로 열매 맺을 때, 그 사회는 성장하게 되고 일자리도 저절로 창출된다”며 “청년층의 창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성공신화가 곳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전 대표가 창업에 화두를 던짐과 동시에 문 전 대표도 벤처기업과 벤처 투자업체를 방문해 안 전 대표의 ‘창업국가론’을 견제했다.

문·안 각각 국민 성장·공정 성장 띄우기
너는 틀리고 나는 맞고…서로 물고 뜯기

주목할 점은 안 전 대표와 달리 문 전 대표는 현 정부의 벤처 창업에 대해서는 다소간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는 점이다. 문 전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족한 게 희망과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결국 일자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며,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취업이나 창업밖에 없다”면서 “벤처라는 게 어차피 많은 실패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실패한 창업자들도 다시 재기 기회를 얻고 칠전팔기할 수 있는 그런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2선으로 물러난 더민주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유력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의 ‘공정성장론’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SNS서 “말장난 같은 성장변형론들이 나오고 있다”며 “이미 글로벌 경제는 양극화와 전반적 성장정체 현상을 보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언어유희로 문제의 본질을 가려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김 전 비대위원장은 문 전 대표를 향해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 안팎에선 비주류에 속하는 김 전 비대위원장이 자신의 전문분야인 경제를 앞세워 ‘문재인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의 계속되는 비판에 문 전 대표 측은 불만에 가득 찬 모양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회동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 측은 추석 전부터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국민성장론’에 관한 설명을 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 전 대표 싱크탱크 부소장인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도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서 "김종인 전 대표에게 국민 성장이라는 개념이라든지 방향이라든지 이런 것을 상세하게 말씀을 드린 바가 없다"며 "문재인 전 대표가 기조강연한 내용들과 김 전 대표가 얘기하는 것이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들한테 와서 가르쳐도 주고 우리들도 말할 기회도 있고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물고 뜯기
주도권 쟁탈


더민주 박영선 의원도 문재인, 안철수로 대변되는 ‘성장론’ 프레임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박 의원은 지난 11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유력 대선주자들의 경제 비전에 대해 “국민 성장이라는 단어는 애매모호하다”며 “무엇을 지향하는지가 불분명한 단어”라고 말해 문 전 대표를 압박했다.

또 안 전 대표가 주창하는 ‘공정 성장’과 맥을 같이하는 ‘창업국가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경제 전체를 대변해줄 수 없다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내년 대선 화두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균형성장론’을 새롭게 들고 나오면서 문 전 대표 및 안 전 대표와 색깔을 달리했다.

최근에는 ‘대동경제론’이라는 자신만의 프레임을 들고 나온 바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장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복지 확대보다 성장론을 내세우고 있는 유력 대선주자들에 대해 “그동안 서울시장으로서 채무를 7조6000억 정도 줄이고 복지는 4조를 8조로 늘렸다”며 “복지라는 것이 보통 낭비라고 생각하는데 복지는 인간에 대한 투자이고, 사회에 대한 투자”라고 말해 야권 대선주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99대 1의 불평등 구조를 바꾸고 복지를 확대하느냐”며 “정말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복지는)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비대위워장 및 박 의원 등의 ‘성장론’ 비판의 이면에는 경제프레임의 주도권 쟁탈전이 숨어 있다. 경제프레임은 대선주자와 대선캠프에 있어서는 특히나 중요하다. 양극화에 지친 일반 서민들을 비롯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생계와 관련된 경제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력 대선주자들은 본인 만의 경제프레임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경제전문가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경제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지 못한다면 대선 승리를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비주류로 통하는 김 전 위원장과 박 의원은 문 전 대표 주도의 ‘성장론’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문재인 대세론’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도 야권서 쏟아지는 ‘성장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다만 안 전 대표 측이 주장하는 경제프레임에는 호평을 내린 반면, 문 전 대표의 ‘국민 성장’에는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 안 전 대표와 연대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새누리당 유 의원은 지난 10일 SNS에 지난 9일 안 전 대표가 “대한민국은 창업국가가 돼야 한다”고 올린 글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최근 유 의원은 혁신성장론을 거론하면서 독자적 경제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그는 “안 의원이 그 동안 주장해 오셨던 공정성장에서 벗어나 창업국가를 말하기 시작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책 아류?…선명성은 어떻게 하나
유승민-안철수 연대 속셈…중원 공약 포석

하지만 문 전 대표의 국민 성장에 대해서는 “기존의 소득주도성장을 벗어나지 못한 분배론일 뿐, 성장의 해법이 아니다”라며 “그동안 야권의 성장론에서 성장의 진정한 해법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유 의원의 엇갈리는 평가에 대해 정가에선 유 의원과 안 전 대표의 연대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줄곧 합리적 보수 세력과의 연대를 주장해왔다. 이에 유 의원이 중도층 표심을 노리고 안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안철수-유승민 연대는 줄곧 정가를 떠돌던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지난 5월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의당이 중심이 되고 유 의원이 국민의당에 흡수되는 모양새의 연대였지만, 최근에는 유 의원이 안 전 대표를 띄움으로써 중도층 표심을 자극해 여권 대선주자로 나서려고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표면상으로는 안 전 대표의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본인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띄우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비문진영이 문재인 제동에 나섰다면 안철수 사당화 논란이 일기도 했던 국민의당 내부에선 안 전 대표의 경제프레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국민의당 대선주자는 안철수라는’ 암묵적 공식에 균열이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지난 9일 “국민 성장이네, 공정 성장이네, 동반성장이네, 다 한가한 소리들”이라며 “성장하지 말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지금 심각한 경제위기다. 경제를 살리는게 시급하다”며 “한국적 민주주의가 독재하자는 이야기였듯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다 가짜”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국민 성장을 강조한 문재인 전 대표, 공정성장을 강조한 안철수 전 대표 등의 성장론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선성장 후분배’를 강조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지는데, 국민, 공정, 동반을 입힌 성장론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에 안 전 대표측은 “당내 대선후보를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유 의원은 앞서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안 전 대표가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맞느냐’는 질문에 “글세, 아직 모르겠다”고 답했다. 천정배 전 공동대표도 유 의원 발언에 두둔하고 나섰다.

천 전 대표는 “아직 국민의당은 대선 룰조차 만들어 놓지 않았다”고 안철수 독주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당의 한 중진의원은 “더민주나 새누리당보다 좀 더 크고 역동적인 판을 만들려면 현재(안 전 대표 독주 체제)로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 클릭 왜?
중원 공약

특히 야권 주자들이 앞 다퉈 성장론을 제시하는 것은 눈에 띄는 변화로 여겨진다. ‘성장’은 ‘효율’ ‘경쟁’ 등과 함께 전통적으로 보수의 어젠다를 대표해 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선 주자들이 성장론을 강조하는 것은 ‘중원 공략’을 위한 포석”이라면서 “그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잠룡들의 성장론
‘혁신성장’부터 ‘더불어성장’까지

여권에선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 ‘혁신성장’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김 전 대표는 벤처 창업, 4차 산업혁명 등 혁신을 통한 성장을 주장하고 있고, 유 의원은 과학기술 혁신, 교육 개혁, 재벌 개혁 등 생산성 제고를 통한 성장을 주장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기회 균등을 통한 공존과 상생의 성장을 의미하는 ‘공생 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야권에서는 김부겸 의원이 ‘더불어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더불어성장은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공존을 통한 성장을 의미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복지성장’을 주장한다. 복지를 통한 빈곤과 불평등, 양극화 해소에 방점을 찍었다. 충청대망론의 기수로 꼽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성장복지의 상생’을 강조했다. 이는 성장과 복지의 상생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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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