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공시’ 한미약품 미스터리7

호재는 잽싸게 악재는 널널이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한미약품이 ‘주가 조작’ 논란에 휘말렸다. 호재성 공시 직후 인지한 악재성 공시에 늑장을 부렸다는 것이 요지다. 논란과는 별개로 악재성 공시로 피해를 본 ‘개미(개인 투자자)’의 손실 복구는 요원한 상태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총 8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매출 기준 업계 1위에 올랐다. 한미약품은 이 과정서 직원의 내부거래 정황이 드러나며 도덕성에 흠결을 남겼다. 그로부터 1년만인 2016년 한미약품은 비슷한 논란에 또 다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미스터리1]
늦은 공시시기

한미약품은 지난달 29일 미국 제네텍과 1조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공개 시각은 장마감 후인 오후 4시33분이었다. 수출 소식은 다음날 주가에 호재로 작용했다.

지난달 30일, 한미약품의 주가는 장 시작 직후 전일대비 5% 상승하며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개장 29분만에 베링거인겔하임이 바이오신약 ‘올리타’ 개발권을 한미약품에 반환한 사실이 공시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 베링거인겔하임과 8000억원 규모의 올리타 기술 수출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결국 한미약품 주가는 악재성 공시에 따른 대량 매물이 쏟아져 나와 전날보다 18.06% 빠진 채로 장을 마감했다.


공시 두 번에 주가가 출렁이자 금융권에선 한미약품이 의도적으로 악재성 공시를 늦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미공개 정보를 알고 있는 세력이 고점서 물량을 매도할 수 있도록 한미약품이 악재성 공시를 지연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한미약품이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시각은 29일 오후 7시8분이다. 한미약품이 투자에 민감한 정보로 판단, 신속히 내용을 처리했다면 30일 장 시작 전에 공시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결국 개장 29분 뒤 공시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특정 세력을 밀어줬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스터리2]
공매도와 손실

실제 악재성 공시가 나올 때까지 공매도가 집중됐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매각한 뒤 결제일인 3일안에 같은 양의 주식을 갚는 투자기법을 의미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고점에 있는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하락하면 차익을 남길 수 있다.

개장 후 29분까지의 공매도 규모는 5만471주로 전체 10만4327주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평소 한미약품의 공매도 거래는 4800여주 수준이었다. 이날 거래로 공매도 세력은 최대 20%의 차익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주체별로 기관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는 악재성 공시 전 물량을 쏟아냈고, 개인이 외국인 물량을 받은 모양새가 됐다. 기관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는 각각 35만9933주, 9896주를 매도, 개인은 36만9797주를 매수했다.

[미스터리3]
금융당국과 공방


금융당국은 논란이 거세지자 직접 조사에 착수했다. 악재성 공시 전까지인 개장 후 29분동안 주식을 집중 매도한 세력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는지 중점적으로 파악할 계획이다.

한국거래소는 공매도 세력을 확인한 뒤 증권사를 통해 계좌주를 파악하고 계좌주가 회사내부 정보수령자인지 확인할 방침이다.

개장전 해도 되는데…29분 질질
특정 세력 밀어줬나 의혹 짙어

금융위원회도 조사에 나섰다. 지난 5일 금융위의 자본시장조사단(자조단)은 한미약품의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한미약품 기술수출 및 공시담당자 등 관련자들의 휴대폰 및 메신저 대화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제출받아 분석 중이다.

자조단은 사안의 중대성과 긴급성을 감안해 검찰에 사건을 조기에 넘기는 ‘패스트트랙’도 검토 중이다.
 

금융위는 조사를 통해 미공개 정보가 공시 전 유출돼 공매도 등의 거래에 이용된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지난해 7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적용해 제재할 방침이다. 시장질서 교란행위는 개정전 5억원의 과징금 상한선이 있었지만 지난해 7월 법이 개정되면서 해당금액의 1.5배 과징금이 부과된다. 사실상 과징금 상한선이 없어 최고 수위의 처벌인 셈이다.

한미약품은 측은 공시 관련 부당거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미약품 본사에서 개최된 기자간담회서 김재식 한미약품 부사장은 “공시 내용이 지연된 점은 송구스럽지만 절대 의도하지 않았다”며 “신중하고 면밀히 검토하기 위한 절차상의 문제였다”고 해명했다.

[미스터리4]
내부거래 있나?

하지만 곳곳서 내부거래 흔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한미약품은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악성 공시전 직원이 내부정보를 외부에 유출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 이에 자조단이 한미약품의 계약해지 정보가 공시 전날 카카오톡을 통해 유출됐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 중이다.

지난 5일 자조단 관계자는 “4일 한미약품 본사에 현장 조사를 나가서 관련 직원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며 “제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지워진 데이터를 복원하는 디지털포렌식을 검찰에 의뢰했다”고 밝혔다.

자조단에 들어온 제보에 따르면 공시 전날 밤에 계약해지 정보가 카카오톡 주식투자 대화방을 통해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 퍼졌다. 자조단은 한미약품 임직원 휴대전화의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 내용과 통화 내용 분석을 통해 미공개 정보가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를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스터리5]
피해자 소송은?

한미약품 사태로 ‘시장질서 교란’ 행위에 대한 첫 처벌 사례가 나올지 눈길이 쏠린다. 기업의 내부정보를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펀드매니저 등 2차 이상 정보 수령자의 불공정 거래를 처벌하는 쪽으로 관련 법이 지난해 개정됐지만, 혐의 입증이 쉽지 않아 지금까지 처벌된 사례는 없었다.

한미약품 공시 관련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주주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피해자 모임이 생겨나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것.

법률사무소 제하의 윤제선 변호사는 네이버에 ‘한미약품 사태 집단소송’을 개설하고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연금도 주주로서 한미약품의 부정거래가 입증되면 소송을 진행할 방침이다. 한미약품의 주식 9.73%(지난 7월29일 기준)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이번 사태로 1500억원가량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직원이 내부정보 외부에 유출?
거래소에 책임 미루기도 도마

국민연금이 소송을 진행할 경우 다른 기관투자자도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돼 소송 규모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 관련 시민단체 금융소비자원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한미약품을 검찰에 고발했다.


금소원은 5일 “호재성 공시를 먼저 해놓은 상태서 악재성 공시를 시장 거래시간에 한 것은 공시 규정을 악질적으로 악용한 것”이라며 “시장의 심각한 주가 왜곡을 유발시킨 범죄 행위”라고 주장하며 한미약품을 검찰에 고발했다.

금소원은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등이 조사에 착수했지만 전면적인 조사에는 한계가 있다. 즉각 검찰과 공동으로 압수 수색 등 수사와 조사를 동시 진행해 범죄 행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스터리6]
오너는 몰랐나?

한미약품 사태에 임성기 회장 일가가 연루됐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늑장공시로 가장 큰 손해를 본 투자자가 임 회장 일가다. 투자자의 피해가 최소화되게 공시를 신속히 했다면 한미약품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오너 일가가 나서서 늑장공시를 지시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사태로 임 회장 일가가 날린 주식자산은 3조6938억원(지난 4일 종가기준)으로 계약 해지 소식이 알려지기 직전인 지난달 29일과 비교해 1조372억원 감소했다. 25% 넘게 감소세를 기록한 것.

임 회장 일가는 한미약품을 직접적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한미약품의 지분 41.37%를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34.91%)을 가지고 있다. 회장 일가를 포함한 특수관계인은 61.1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당거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재무관련 최고 책임자인 김재식 CFO가 교체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한미약품 내부거래 정황이 드러나자 한미약품은 CFO를 교체했다. 지난해 연구원과 증권사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불공정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당시 경영진이었던 김찬섭 전무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임했다.

[미스터리7]
대책이 없다

한미약품 사태는 현재의 공시시스템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기술이전 관련 공시가 의무공시가 아닌 자율공시인 점이 문제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한국거래소의 공시규정에 따르면 기술도입·이전·제휴 등과 관련된 사항은 상장기업 자율에 따라 사유발생 다음날(24시간)까지 공시토록 한다.

이 때문에 한미약품의 악재성 공시는 기술이전 관련 공시로 분류, 늑장 공시의 원인이 됐다. 금융위도 이점을 인지해 내부적으로 기술이전 관련 공시를 의무공시로 전환하는 내용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술이전 관련 공시가 의무공시로 전환되면 공시 의무가 되면 신속하고 구체적인 내용의 공시가 될 전망이다.

공매도 공시제도 역시 ‘허점’을 나타냈다. 지난 6월 도입된 공매도 공시제도는 한미약품 사태서 보여주듯 소액 투자자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공매도 공시제도는 불공정거래 및 투기세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개별 주식의 공매도 잔액비율(상장주식 중 공매도 잔액수량)이 0.5% 이상이 되면 그 내용을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공매도 공시제도는 공매도 거래 3일 후에 공시토록 돼 있어 투자자가 공시제도를 보고 대응하기엔 너무 늦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공매도 공시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소원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등 금융 관련 법규나 규정 등이 지나치게 기업관점서 적용되고 있어 투자자를 위한 법적인 정비도 시급하다”며 “한미약품은 시장혼란과 투자자 피해 책임에 대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