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깨진 3당 집권전략 키워드

“지금 판으론 죽도 밥도 안 된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협치’를 부르짖던 국회에는 ‘파행과 정쟁’만 남았다. 새누리당은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부르짖고 있다. 극심한 대립 이면에는 내년 대선 주도권을 뺏기면 안 된다는 각 당의 속셈이 깔려 있다. <일요시사>는 협치가 사라진 국회에서 여야가 내세우는 정권 쟁취 전략을 살펴봤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 창출에 있다. 대선을 1년여 남긴 현 시점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을 노리고 있고,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정권 교체를 열망하고 있다. ‘반기문 대망론’에 근거한 ‘반기문 대세론’과 ‘문재인 대세론’이 공존하는 가운데 각 당의 대선주자 들이 속속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과 거대 야권의 두 중심축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내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전략 구상에 한창이다.

대선 주도권?
뺏기면 안된다”

지난해까지 새누리당서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를 달렸던 김무성 전 대표가 ‘옥새 파동’을 겪고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대선주자로 거론 되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4·13총선서 낙마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대선주자로서의 무게감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대권도전을 시사했지만 당을 좌지우지하는 친박(친 박근혜) 세력의 지지세를 등에 업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대권주자 기근상태에 직면한 새누리당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유력 대권주자로 염두에 두고 있다. 반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 귀국하면 새누리당과 반 총장의 ‘반기문 대망론’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전망이다.

지난달 19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임기를 끝내자마자 귀국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모든 국민이 환영할 일”이라며 “그동안의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우리나라 미래 세대를 위해 써달라”고 당부했다.


다만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경선은 공정하게 할 것이라며 일각에서 주장하는 ‘반기문 추대론’에 선을 그었다.

지난달 28일 이 대표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서 “국민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하고 후보들은 이를 파악해 치열한 경쟁과 토론을 해야 한다”며 “우리는 반 총장이 멤버로 참여하면 기꺼이 환영하지만, 그분만의 카펫은 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당 대표로서 공정한 대선 경쟁을 치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경선 없이 대선을 치를 경우 표의 확장성이 떨어질 수 있음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가 공정한 경쟁을 천명했기 때문에 이 대표도 이에 보폭을 맞춘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잠룡 불모지 새누리…반 추대 없다?
반-문 있는데…공정한 경쟁 가능할까

'친문(친 문재인)'인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당대표에 오르기 전 ‘1등 후보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줄기차게 펴왔다. 1등 후보는 문재인 전 대표를 의미하는데 일단 그의 논리는 더민주 내 주류인 친문계의 마음은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다만 당 대표에 오른 뒤 추 대표는 ‘공정한 경쟁’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지난달 29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서 추 대표는 “첫 번째는 공정한 경선 관리가 생명이다. 아무리 역동적이고 싶어도 공정성이 깨지면 의미 없다”며 “그 바탕으로 후보들이 노력했는데 실력이 엇비슷해 국민 주목도가 낮아지면 결선투표를 통해 관심 끌어올릴 수 있다. 다 열려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 중심으로 흐를 것이라는 비주류의 우려를 추 대표가 사전에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라는 유력 대선 주자가 버티고 있다. 지난달 안 전 대표는 공정한 경쟁을 언급해 정가의 귀추가 주목됐다. 지난달 19일 그는 “양극단을 제외한 합리적 개혁에 동의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해야 한다”며 “그 분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어떤 조건이든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당이 집권당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면서 대권 도전 의지를 보였다. 또한 공정한 경쟁하에 어떤 조건이든 수용할 의사까지 내비치면서 안철수 사당화 논란에도 일정 부분 벗어나려는 모양새다. 안 전 대표는 “목표는 국민의당이 집권당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 수권정당 의지도 보였다.

이처럼 내년 대선서 승리해 집권을 노리는 3당은 공정경쟁에 방점을 찍었다. 3당 모두 공정한 경쟁을 통해야만 표의 확장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후보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 이견이 없는 모습이다.

불붙은 개헌론
대선주자 함구

대선이 점차 다가옴에 따라 3당은 각종 연대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호남 민심과의 연대가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초 이정현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서 “영호남 지역주의 벽은 무너지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위해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 연합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호남서 새누리당은 더민주와 한 석 차이고 영남에선 야당과 무소속이 합쳐 15석이 나왔다”며 “바다가 갈라지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다. 지역주의를 넘은 것이 기적이고 국민통합을 이룬 우리가 위대한 국민”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정 의원은 “새누리당이라는 정당과 호남이라는 지역이 연대를 한다. 개념이 잘 성립되지 않는다”며 “그동안 호남을 소외시킨 것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면 그것은 인정할 수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역에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거론한 새누리당-호남 연대는 반기문-안철수 연대와 맥을 같이 한다. 반 총장은 친박계의 지지를 받고 있고, 안 대표는 호남민심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의 최대주주다. 다만 이 둘의 연대는 반 총장이 새누리당 최종 대선후보로 결정되고, 지지율상 대선 승리를 장담키 어렵다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반기문- 안철수 연합의 가능성을 처음 거론한 사람은 ‘야권 전략통’으로 꼽히는 더민주 민병두 의원이다. 민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3파전(반기문·문재인·안철수)이 전개될 경우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매개로 이른바 ‘반철수 연합’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정작 당사자인 안 전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연대설에 대해 “다들 불안하신가봐요”라며 선을 그었다. 안 전 대표는 “정치권서 각종 시나리오가 난무하는데, 양당의 공포감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정말 돌파구가 안 보이는 양당에서 이런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나는 관심이 없다”고 일축했다.

새누리당이 반철수 연합, 새누리당-호남 연대를 거론하면서 정권재창출을 시도하고 있다면 더민주는 기본적으로 ‘야권연대’와 ‘통합론’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월22일 추미애 당대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당 통합과 세력간 지지자의 통합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다만 “국민의당과 힘을 합치는 방법은 다양하다”며 “당대당 통합 프로그램을 바로 꺼내는 게 아니고, 분열과 분당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지지자부터 위로하는 게 더민주서 먼저 선행돼야 한고 강조했다.

추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집 나간 한 분 한 분 모셔오겠다”며 야권 통합을 대권 승리 방정식의 ‘핵심 변수’로 규정했다. 더민주는 지난달 18일 원외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하면서 야권 통합의 신호탄을 쐈다.

추 대표는 통합을 선언하면서 “민주세력이 더 큰 통합을 해야 한다. 내년 대선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수많은 분열의 위기를 겪었다. 모든 민주개혁세력의 단결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자”고 강조했다. 추 대표의 발언의 함의는 국민의당과의 연대에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실질적 대주주 안 전 대표는 더민주와의 연대는 거리를 두고 있다. 3자 대결까지도 불사한다는 전략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달 11일 제주도 강연서 “양 극단 세력을 기득권 세력이라고 명명하고 싶다”며 “내년 대선 때는 절대로 양 극단 세력과의 단일화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거대 여야의 연대 시나리오 속에서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락가락
안철수 행보


최근에는 여권 주류인 친박계에서 개헌론이 달아오르고 있다. 헌법학자 출신으로 ‘진박(진실한 친박)’ 인사인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은 원내외 개헌론자들을 모아 ‘국가혁신을 위한 연구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전직 국회의장과 개헌에 적극적인 더민주 김종인 전 대표, 여야 대권주자 등을 초청해 라운드테이블을 열 계획”이라며 “내년 초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목표로 지속적으로 개헌을 공론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론은 기존 판도 자체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청와대 및 여야의 대권 주자들은 난색을 표명해 왔다. 하지만 현 여야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제3지대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더 이상 주류세력들이 개헌론에 함구하기 어렵게 됐다. 대선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개헌론이 대선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수권정당을 노리는 3당도 이에 발 빠르게 대응책을 준비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서 개헌론은 금기어로 통했다. 지난 2014년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란 발언을 한 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최근 친박 내부서 개헌론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이유로는 새누리당에 반 총장 이외에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점을 꼽는다. 개헌론이 정계개편 및 대선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분위기로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친박이 더 이상 좌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달 5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언급한 이른바 ‘조건부 개헌론’도 최근 정치권의 기류가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이 대표는 “특정 정권이나 정당, 정치인이 주도해서 추진하는 정치헌법, 거래헌법, 한시 헌법은 안 된다”며 “이제는 국민이 주도하고 국민의 의견이 반영된 반영구적 국민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막막한 새누리-호남
혼돈의 연대 시나리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개헌의 주체가 국민이 돼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개헌을 통해 권력분점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것에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개헌은 멀리 남북통일까지 내다보고 나라의 미래를 담아내는 개헌으로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고 말해 개헌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국민의당도 개헌 바람에 합류했다. 국민의당 문병호 전략홍보본부장은 지난달 2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정계개편과 정치혁신의 핵심고리가 개헌”이라면서 “대한민국의 판 자체가 민생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박·친문 세력을 제외한 합리적 개혁세력이 형성돼야 집권의 길이 열릴 수 있는데, 개헌을 매개로 하면 참여할 수 있는 세력이 많아진다”고 강조했다.

당초 개헌론 바람은 더민주 김종인 전 대표가 주도했다. 김 전 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버리고 내각제를 강조하고 있다. 주류와 거리를 두고 있는 김 전 대표는 유력 대선주자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유력한 대선 후보들은 강력한 통치권력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국민의 막연한 두려움을 빌미로 4년 대통령중임제를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며 “만인지상의 권력욕에 갇혀버린 정치인이 문제의 근본을 외면하고 제시하는 조삼모사의 미봉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더민주 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 전 대표는 개헌론의 의도를 불순하게 여기며 개헌론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존 판을 굳이 흔들어 권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각제 주장
김종인 주목

개헌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애매모호한 입장 표명에 야권의 한 정치인은 “권력구조 개편만이 아니라 87년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헌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분이 다음 정권에 리더가 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대 국회 파행일지
 2주에 한 번 꼴로 ‘휴업’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협치를 강조했던 여야가 정작 협치의 모습은 사라지고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첫 번째 파행은 지난 8월 임시국회서 일어났다.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열린 임시국회에서 서별관 청문회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벌인 것. 여당이 끝까지 주요인물 증인 채택을 거부하면서 파행을 맞았다. 추경안 처리는 회기기간을 넘긴 뒤에야 처리될 수 있었다.

두 번째 파행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생했다. 지난달 1일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사드 배치 재검토 관련해 여당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퇴장하고 의사일정을 거부했다. 추석을 기점으로 갈등이 봉합됐지만 지난달 24일 김재수 농림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되면서 또 한 번 파행을 맞았다.

이후 청와대는 거부권을 행사했고, 여당 대표가 단식에 돌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국감복귀 전제하 단식 중단을 선언하면서 일단락 났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백남기 문제 등과 관련해 정면충돌 가능성이 높은 사안들이 남아 있어 여야간 협치는 요원한 상황이다.

<기사 속 기사> 20대 총선 선거법 공소시효

지난 20대 총선 과정서의 공직선거법 위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일이 다가오고 있다. 검찰의 수사 및 범죄에 대한 기소가 미처 이뤄지지 않은 채 오는 13일 공소시효가 만료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검찰에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수백 건에 달하는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한 검찰이 수사의지가 미약하다”며 “혐의가 명백한 사건서조차도 공소시효 만료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아직까지 기소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은 거대 여당과 거대야당의 눈치만 살피지 말고, 국민들이 신뢰할만한 공명정대한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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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