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100일을 넘겨가며 이 사건에 목 맨 검찰은 애써 자위하기도 벅차 보인다. 호기롭게 시작한 수사는 별다른 반전의 계기도 마련하지 못한 채 마무리될 공산이 커졌다.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달 29일 기각됐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열심히 쫒다
눈앞서 놓쳐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지난달 20일, 신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이후 엿새 만인 2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가 경제 등 수사 외적인 부분과 영장 기각 가능성까지 포함해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름대로 수사 결과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사실 검찰 내부서도 신 회장 구속이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신 회장을 구속 수사하지 않는다면 수사팀 사기 저하 및 내부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재계 순위 5위 롯데에 대한 수사는 김수남 총장 취임 후 처음 이뤄진 대기업 수사였다. 김 총장이 구속수사 쪽으로 결단을 내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인 구속영장 신청이 기각되자 검찰은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특수4부의 조재빈 부장검사를 비롯해 수사검사 4명을 동원하는 등 검찰도 나름대로 배수진을 쳤지만 헛수고였다.
혹시나 했더니…100일 넘긴 수사 헛발질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반전 없이 마무리
신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차질을 빚는 것과 별개로 구속영장 청구 기각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오간다. 통상 기업수사는 총수의 구속여부에 따라 성패를 평가받는데 최근 검찰은 비리에 연루된 총수 대부분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근래 들어선 2013년 횡령 및 법인세 포탈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정도가 예외로 언급될 뿐이다. 즉, 신 회장도 예외적인 범주에 해당하는 셈이다. 게다가 검찰 수사서 드러난 신 회장의 횡령·배임액 1750억원은 앞서 검찰이 구속기소한 총수들의 사례와 비교해 봐도 몇 배 큰 액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2013년 7월 1600억원대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 회장은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지난해 12월 징역 2년 6월에 벌금 252억원이 확정됐지만 이후 건강문제로 형집행정지 등을 반복하다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이 회장의 경우 조세포탈이 포함되긴 했지만 배임·횡령죄만 놓고 보면 현재 신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에 비해 적은 규모였다.
최태원 SK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도 SK그룹 계열사의 자금 4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최종 확정받았고 지난 7월 가석방됐다. 혐의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최태원·재원 형제 모두 신 회장의 배임·횡령 규모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액수임에도 실형을 면치 못했다.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횡령액 557억원, 배임액 2841억원과 2조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항소심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회사자금 131억원에 대한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석채 전 KT 회장은 횡령 혐의 일부에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000억원대 배임 행위 등으로 기소된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은 2011년 14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1·2심 모두 징역 4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도 수백억원대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올해 4월 상고심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그냥 이대로
불구속 재판?
검찰은 향후 수사 마무리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검찰은 신 회장을 제외한 비리 연루자들에 대한 혐의 입증 작업을 끝내고 사건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검찰 측은 구속영장 재청구를 염두해 둔 상태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신 회장과 함께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그룹 총수 일가를 일괄 기소하는 방침도 고려해봄직하다. 탈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 총괄회장의 세번째 부인 서미경씨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 대한 자료를 일본서 넘겨받아 탈세액 등을 수정하는 작업을 병행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신 회장을 비롯한 롯데그룹 총수 일가를 전원 불구속 기소하고 수사를 종결하는 방향이 보다 현실적이다. 법원으로부터 불구속 기소의 명분을 얻은 만큼 시간을 더 끌면서 이 사건을 손에 쥐고 있을 이유가 사실상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검찰이 신 회장이 배후인 것으로 의심하는 롯데케미칼의 270억원대 소송 사기와 200억원대 통행세 비자금 의혹도 미완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롯데홈쇼핑의 9억원대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 규명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홈쇼핑 수사는 지난달 7월, 강현구 사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돼 이미 동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신 회장을 구속한 뒤 강 사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해 다시 수사에 시동을 건다는 검찰의 복안은 현 상태에선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아울러 수사의 최대 현안이었던 총수 일가 비자금 부분은 규명되지 못한 채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검찰은 애초 핵심 수사 목표로 ‘비자금 규명’을 내세웠지만 성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롯데건설서 300억원대 비자금 출처를 찾아냈으나 아직까지 미진한 부분이 많다. 총수 일가는 물론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와의 관련성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롯데그룹 2인자였던 이인원 정책본부장이 소환을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운데 신 회장의 신병 확보가 비자금 규모와 용처 파악의 필요조건으로 꼽혔지만, 답을 찾기 요원해졌다. 이는 신 회장의 구속영장 범죄사실에 비자금 부분이 빠지는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현정부 들어 기업사정 수모
손만 대고 나중에 흐지부지
오히려 검찰의 진짜 걱정거리는 따로 있다. 땅에 떨어진 검찰의 위신이다. 신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결국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가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 인력 3분의 1과 특수부 수사부서 2곳이 동원된 대규모 기획수사가 물거품이 된 것이다.
검찰은 수사착수 당시 롯데그룹 비자금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수사초반 압수수색을 통해 총수일가 급여장부 등을 확보했고, 신 회장을 포함한 그룹 주요 인사들의 개인계좌 추적에도 나서며 비자금 혐의 입증을 어느 정도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가 3달 넘게 진행되면서 비자금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검찰은 롯데건설 등 일부 롯데 계열사가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한 정황을 파악했지만 신 회장과의 연결고리는 찾지 못했다. 계열사 사장들은 일관되게 신 회장의 비자금 조성 지시가 없었다고 말했고, 검찰은 이를 뒤집을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땅에 떨어진 체면
위상 추락 어쩌나
결국 검찰은 신 회장이 총수 일가에 불법으로 급여를 지급하고, 부실 자회사에 자금을 몰아줘 다른 계열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횡령 및 배임 혐의에 초점을 맞춰 신 회장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검찰이 주장한 신 회장 범죄 혐의들은 롯데 측 반박 논리를 뒤집지 못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부-롯데’ 고개 드는 빅딜설 내막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부지가 확정된 가운데 정부와 롯데그룹 간 빅딜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룹 총수를 겨냥한 검찰의 칼날이 부담스러운 롯데그룹과 사드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바라는 정부가 윈윈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지난달 30일 국방부는 “성주군 내 3곳의 사드 배치 후보지와 기존 성산포대에 대한 한미실무단의 최종 평가 결과 롯데 스카이힐 성주골프장(성주CC)이 최적지로 결론났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성주CC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 정도다. 먼저 성주읍 북쪽 산악지대에 위치한 성주CC는 해발 680m로, 기존 배치 예정지인 미사일기지 성산포대(380m)보다 높아 안전성 논란서 좀 더 자유롭다.
전자파 유해 논란과 관련해서도 성주 시내 군청서 18km나 떨어진 산속에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도 덜어낼 수 있다. 성주CC 인근엔 성주포대보다 적은 2000여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여기에 이미 도로가 나 있어 접근성까지 좋다.
불구속-골프장 주고받고?
성주CC는 롯데상사 소유이며, 운영은 호텔롯데 리조트사업부서 맡고 있다. 다만 정부가 롯데그룹 사유지에 사드를 배치하려면 별도의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롯데로부터 해당 부지를 사들이는 방식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정부와 롯데간 ‘빅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롯데 수사와 연관 지어 보는 시각이다. 롯데그룹은 오너간 경영권 분쟁에서 파생된 검찰 수사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핵심 임원들이 검찰을 들락날락하는 상황.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이미 구속됐고, 검날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향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도 소환이 임박했다.
세간의 시선은 신동빈 회장에 쏠린다. 법원은 지난달 29일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신 회장의 구속 여부는 이번 롯데 수사의 관전포인트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드 부지는 ‘빅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일부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검찰 수사와 맞바꿀 수도 있다는 의혹이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