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구속영장 기각> 치욕의 검찰 딜레마

큰소리치더니…총수 처음 놓쳤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100일을 넘겨가며 이 사건에 목 맨 검찰은 애써 자위하기도 벅차 보인다. 호기롭게 시작한 수사는 별다른 반전의 계기도 마련하지 못한 채 마무리될 공산이 커졌다.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달 29일 기각됐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열심히 쫒다
눈앞서 놓쳐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지난달 20일, 신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이후 엿새 만인 2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가 경제 등 수사 외적인 부분과 영장 기각 가능성까지 포함해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름대로 수사 결과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사실 검찰 내부서도 신 회장 구속이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신 회장을 구속 수사하지 않는다면 수사팀 사기 저하 및 내부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재계 순위 5위 롯데에 대한 수사는 김수남 총장 취임 후 처음 이뤄진 대기업 수사였다. 김 총장이 구속수사 쪽으로 결단을 내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인 구속영장 신청이 기각되자 검찰은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특수4부의 조재빈 부장검사를 비롯해 수사검사 4명을 동원하는 등 검찰도 나름대로 배수진을 쳤지만 헛수고였다. 


혹시나 했더니…100일 넘긴 수사 헛발질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반전 없이 마무리

신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차질을 빚는 것과 별개로 구속영장 청구 기각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오간다. 통상 기업수사는 총수의 구속여부에 따라 성패를 평가받는데 최근 검찰은 비리에 연루된 총수 대부분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근래 들어선 2013년 횡령 및 법인세 포탈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정도가 예외로 언급될 뿐이다. 즉, 신 회장도 예외적인 범주에 해당하는 셈이다. 게다가 검찰 수사서 드러난 신 회장의 횡령·배임액 1750억원은 앞서 검찰이 구속기소한 총수들의 사례와 비교해 봐도 몇 배 큰 액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2013년 7월 1600억원대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 회장은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지난해 12월 징역 2년 6월에 벌금 252억원이 확정됐지만 이후 건강문제로 형집행정지 등을 반복하다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이 회장의 경우 조세포탈이 포함되긴 했지만 배임·횡령죄만 놓고 보면 현재 신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에 비해 적은 규모였다.
 

최태원 SK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도 SK그룹 계열사의 자금 4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최종 확정받았고 지난 7월 가석방됐다. 혐의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최태원·재원 형제 모두 신 회장의 배임·횡령 규모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액수임에도 실형을 면치 못했다.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횡령액 557억원, 배임액 2841억원과 2조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항소심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회사자금 131억원에 대한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석채 전 KT 회장은 횡령 혐의 일부에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000억원대 배임 행위 등으로 기소된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은 2011년 14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1·2심 모두 징역 4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도 수백억원대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올해 4월 상고심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그냥 이대로
불구속 재판?

검찰은 향후 수사 마무리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검찰은 신 회장을 제외한 비리 연루자들에 대한 혐의 입증 작업을 끝내고 사건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검찰 측은 구속영장 재청구를 염두해 둔 상태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신 회장과 함께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그룹 총수 일가를 일괄 기소하는 방침도 고려해봄직하다. 탈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 총괄회장의 세번째 부인 서미경씨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 대한 자료를 일본서 넘겨받아 탈세액 등을 수정하는 작업을 병행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신 회장을 비롯한 롯데그룹 총수 일가를 전원 불구속 기소하고 수사를 종결하는 방향이 보다 현실적이다. 법원으로부터 불구속 기소의 명분을 얻은 만큼 시간을 더 끌면서 이 사건을 손에 쥐고 있을 이유가 사실상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검찰이 신 회장이 배후인 것으로 의심하는 롯데케미칼의 270억원대 소송 사기와 200억원대 통행세 비자금 의혹도 미완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롯데홈쇼핑의 9억원대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 규명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홈쇼핑 수사는 지난달 7월, 강현구 사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돼 이미 동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신 회장을 구속한 뒤 강 사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해 다시 수사에 시동을 건다는 검찰의 복안은 현 상태에선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아울러 수사의 최대 현안이었던 총수 일가 비자금 부분은 규명되지 못한 채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검찰은 애초 핵심 수사 목표로 ‘비자금 규명’을 내세웠지만 성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롯데건설서 300억원대 비자금 출처를 찾아냈으나 아직까지 미진한 부분이 많다. 총수 일가는 물론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와의 관련성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롯데그룹 2인자였던 이인원 정책본부장이 소환을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운데 신 회장의 신병 확보가 비자금 규모와 용처 파악의 필요조건으로 꼽혔지만, 답을 찾기 요원해졌다. 이는 신 회장의 구속영장 범죄사실에 비자금 부분이 빠지는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현정부 들어 기업사정 수모
손만 대고 나중에 흐지부지

오히려 검찰의 진짜 걱정거리는 따로 있다. 땅에 떨어진 검찰의 위신이다. 신 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결국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가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 인력 3분의 1과 특수부 수사부서 2곳이 동원된 대규모 기획수사가 물거품이 된 것이다.

검찰은 수사착수 당시 롯데그룹 비자금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수사초반 압수수색을 통해 총수일가 급여장부 등을 확보했고, 신 회장을 포함한 그룹 주요 인사들의 개인계좌 추적에도 나서며 비자금 혐의 입증을 어느 정도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가 3달 넘게 진행되면서 비자금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검찰은 롯데건설 등 일부 롯데 계열사가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한 정황을 파악했지만 신 회장과의 연결고리는 찾지 못했다. 계열사 사장들은 일관되게 신 회장의 비자금 조성 지시가 없었다고 말했고, 검찰은 이를 뒤집을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땅에 떨어진 체면
위상 추락 어쩌나

결국 검찰은 신 회장이 총수 일가에 불법으로 급여를 지급하고, 부실 자회사에 자금을 몰아줘 다른 계열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횡령 및 배임 혐의에 초점을 맞춰 신 회장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검찰이 주장한 신 회장 범죄 혐의들은 롯데 측 반박 논리를 뒤집지 못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부-롯데’ 고개 드는 빅딜설 내막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부지가 확정된 가운데 정부와 롯데그룹 간 빅딜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룹 총수를 겨냥한 검찰의 칼날이 부담스러운 롯데그룹과 사드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바라는 정부가 윈윈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지난달 30일 국방부는 “성주군 내 3곳의 사드 배치 후보지와 기존 성산포대에 대한 한미실무단의 최종 평가 결과 롯데 스카이힐 성주골프장(성주CC)이 최적지로 결론났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성주CC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 정도다. 먼저 성주읍 북쪽 산악지대에 위치한 성주CC는 해발 680m로, 기존 배치 예정지인 미사일기지 성산포대(380m)보다 높아 안전성 논란서 좀 더 자유롭다.

전자파 유해 논란과 관련해서도 성주 시내 군청서 18km나 떨어진 산속에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도 덜어낼 수 있다. 성주CC 인근엔 성주포대보다 적은 2000여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여기에 이미 도로가 나 있어 접근성까지 좋다.

불구속-골프장 주고받고?

성주CC는 롯데상사 소유이며, 운영은 호텔롯데 리조트사업부서 맡고 있다. 다만 정부가 롯데그룹 사유지에 사드를 배치하려면 별도의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롯데로부터 해당 부지를 사들이는 방식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정부와 롯데간 ‘빅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롯데 수사와 연관 지어 보는 시각이다. 롯데그룹은 오너간 경영권 분쟁에서 파생된 검찰 수사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핵심 임원들이 검찰을 들락날락하는 상황.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이미 구속됐고, 검날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향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도 소환이 임박했다.

세간의 시선은 신동빈 회장에 쏠린다. 법원은 지난달 29일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신 회장의 구속 여부는 이번 롯데 수사의 관전포인트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드 부지는 ‘빅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일부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검찰 수사와 맞바꿀 수도 있다는 의혹이다. <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하이브 사태’ 결정적 장면 셋

‘하이브 사태’ 결정적 장면 셋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시작은 분명 하이브였다. 하지만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 것도 하이브다. 연예기획사 최초로 대기업에 지정되는 등 업계 1위로 군림하던 상황이라 추락의 속도가 더 빠른 모양새다. 불과 6개월 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요시사>가 ‘하이브 사태’의 결정적 장면을 꼽았다. 내부서 시작된 갈등이 외부로 분출됐다. 여론이 움직이고 대중의 뭇매가 이어졌다. 정치권이 나서자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그사이 연예기획사 하이브는 이른바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오랜 시간 모래 위에 성을 쌓아온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민낯도 드러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이브가 케이팝에 독물을 풀었다’는 말이 돌았다. 업계 1위 나락 갔다 시작은 민희진 당시 어도어 대표이사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었다. 하이브는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해 시행했다. 국·내외서 큰 성공을 거둔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리스크를 낮추겠다는 의도였다. 모회사인 하이브는 산하에 레이블을 인수하거나 편입하는 식으로 체제를 완성했다. 각 레이블은 소속 아티스트의 활동을 전담하고 하이브는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멀티레이블은 ‘독립적 운영’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다. 이 같은 방식은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실제 BTS의 ‘군백기(군대+공백기)’에도 하이브의 매출은 성장세를 보였다. 어도어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 중 하나로 그룹 뉴진스가 소속돼있다. 어도어의 지분은 하이브가 80%,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20%(민 전 대표 18%)를 보유하고 있다. 민 전 대표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서 샤이니, 에프엑스 등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와 브랜드를 맡은 제작자로, 2019년 하이브에 합류했고 2021년 어도어 대표가 됐다. 지난 4월 하이브는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레이블의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내부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민 전 대표 측은 하이브의 감사는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인 빌리프랩의 소속 가수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했다고 주장했다. 아일릿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프로듀싱을 맡은 걸그룹이다. 민 전 대표 측의 주장으로 전선이 다른 레이블로까지 확대됐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산하 레이블 대표 간의 갈등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다. 폭로와 반박이 나올 때마다 여론이 휘청였고 온갖 의혹이 난무했다. 민 전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공개됐고 이 과정서 한 무속인의 존재가 드러났다. 민 전 대표가 자신의 중대사를 무속인과 논의했다는 의혹이 퍼졌다. 4월22일부터 4월25일까지 불과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때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졌다. 민 전 대표는 4월25일 법무법인 세종 소속 변호사 2명과 함께 한국컨퍼런스센터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가 자청한 회견이었다. 파란 모자에 녹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민 전 대표는 하이브의 주장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내며 반박했다. 민희진에 대한 감사 나비효과 국감에서 다뤄지며 뭇매 맞아 민 전 대표는 중간중간 욕설을 섞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을 ‘날것’ 그대로 쏟아냈다. 2시간 남짓한 기자회견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여론이 급격하게 민 전 대표 쪽으로 기울었고 그가 착용한 모자와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엄청난 화제로 기록됐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대목이다. 이후 둘의 갈등은 법정 공방으로도 비화했다. 첫판은 민 전 대표의 판정승이었다. 민 전 대표는 자신을 해임하기 위한 어도어 주주총회서 하이브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하이브가 민 대표의 해임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며 인용 결정을 내렸다. 또 하이브가 주장했던 민 전 대표의 ‘경영권 찬탈’ 의혹에 대해 “민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게 만들어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민 전 대표가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런 방법의 모색 단계를 넘어 구체적 실행 단계로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민 대표의 행위가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 전 대표는 가처분 승소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어도어 대표로서 계속 일하고 싶다. 뉴진스와 함께 계획한 것들을 하고 싶다. 그게 하이브에도 이익이다. 그만 싸우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며 화해를 제안했다. 하지만 하이브는 앞서 열린 임시주총서 민 전 대표 측 이사 2명을 해임하고 3명을 새로운 이사로 선임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여기에 아일릿의 레이블 빌리프랩서 민 전 대표가 주장한 뉴진스 카피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사건이 확대됐다. 빌리프랩은 민 전 대표에 대한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레이블 간의 다툼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때부터 팬덤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소속 가수가 직접적인 공격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어도어와 또 다른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쏘스뮤직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쏘스뮤직에는 그룹 르세라핌이 소속돼있다.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어도어 측이 쏘스뮤직의 연습생을 빼앗아 뉴진스를 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레이블 간의 반박, 재반박이 거듭됐다. 또 레이블서 직접 민 전 대표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 기자회견 첫 분기점 ‘민-방(민희진-방시혁) 대전’ ‘민-합(민희진-하이브) 대전’은 8~9월 분기점을 맞았다. 역시 선공격은 하이브의 몫이었다. 지난 8월27일 어도어는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며 “김 신임 대표이사는 다양한 업계서 경험을 쌓은 인사관리 전문가로서 어도어의 조직 안정화와 내부 정비를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5월 어도어 사내이사가 교체될 때 하이브 쪽 추천으로 들어간 인사다. 민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는 해임됐지만 사내이사직은 유지했다. 어도어는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 업무도 그대로 맡게 된다고 밝혔다. 제작과 경영을 분리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제작과 경영을 모두 총괄해 왔다”고 강조했다. 민 전 대표의 권한을 제작으로만 축소하겠다는 뜻이었다. 민 전 대표는 “일방적인 해임”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또 주주 간 계약의 중대한 위반이라고도 했다.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을 맡는 문제도 일방적인 통보라고 주장했다. 어도어의 선공격과 민 전 대표의 반박으로 공은 또다시 법정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등장했다. 뉴진스가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다. 지난 4월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부터 지난 9월까지 뉴진스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시상식 등에서 민 전 대표와의 유대감을 표현하거나 뉴진스 멤버의 부모가 목소리를 낸 경우는 있었지만 직접 입장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9월11일 뉴진스는 유튜브 계정을 열고 하이브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토로했다. 이들은 “라이브를 결정한 이유는 (민희진)대표님의 해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스태프들이)부당한 요구와 압박 속에서 마음고생하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저희 다섯명의 미래가 걱정돼 용기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또 버니즈(뉴진스의 팬덤명)까지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데 우리만 숨어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방송 배경을 밝혔다. 뉴진스는 “경영과 프로듀싱이 통합된 원래 어도어를 저희는 바란다. 이것이 하이브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며 “오는 25일까지 어도어를 원래대로 복구시키는 현명한 결정을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날짜를 못 박았다. 당시 뉴진스가 민 전 대표를 복귀시키라면서 특정 날짜를 언급하는 등 ‘최후통첩’에 가까운 발언을 하면서 하이브와 법정 공방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라이브 방송 변곡점 됐다 특히 이날 방송서 뉴진스 멤버 하니가 “(하이브 사옥서)혼자 복도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다른 팀원들이랑 매니저가 지나갔다. 서로 인사했는데, 그분들이 나오셨을 때 그쪽 매니저가 ‘무시해’라고 했다. 제 앞에서. 다 들리고 보이는데 ‘무시해’라고 했다. 제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어이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이 ‘직장 내 괴롭힘’ 의혹으로 번졌다. 뉴진스가 전면에 나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의 파급력은 컸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민 전 대표+뉴진스와 하이브 간의 갈등으로 재규정된 순간이었다. 방송 자체는 3시간 만에 삭제됐지만 뉴진스의 발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정치권이 하니의 주장을 문제 삼으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하니를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하이브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에 대해 파헤치겠다는 취지였다. 동시에 인사책임자인 김주영 어도어 대표이사의 증인 출석도 요구했다. 아이돌 따돌림,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관련해 하니에게 묻고 김 대표에게 대응에 대해 질문하겠다는 것이다. 하니가 국감에 출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화제가 일었다. 이날 국감에서는 하니와 김 대표 간의 공방이 벌어졌다. 하니는 다른 레이블 소속 매니저로부터 ‘무시해’라는 발언을 들었고 하이브가 CCTV를 삭제하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김 대표는 서로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맞섰다. 하니의 국감 출석으로 아티스트의 근로자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티스트는 현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태다.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정 의원은 “(아티스트가)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니까 대응할 수가 없다고 하면 이 문제는 영원히 도돌이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이브는 아이돌 굿즈 관련한 문제로도 국감서 지적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의혹이 쟁점이 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하이브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이브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은 거셌다. 이 과정서 하이브의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하이브에서는 ‘모니터링’ 문서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업계 동향 보고서’다. 해당 문건의 존재와 내용이 공개되면서 하이브는 바닥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다. 한때 케이팝을 선도한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연예기획사가 타사 아이돌의 외모를 품평하고 방송 출연 모습을 일일이 꼬투리 잡아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팬덤은 물론 대중도 경악하고 있다. 모니터링 문건 대중 반응 최악 뒤에 숨어있는 방시혁 나와야? 엔터 업계서 오랜 시간 일했다는 관계자들도 ‘이런 사례는 보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칠 정도다. 해당 문건에 대한 하이브의 대응은 엄청난 역풍을 불렀다. 앞서 지난달 24일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서 ‘위클리 음악산업 리포트’라는 이름의 문건을 공개했다. 민 의원이 공개한 문건 내용이 파장을 일으키자 하이브는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내고 대응에 나섰다. 문제는 입장문 내용이 ‘적반하장’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당시 하이브는 “국감서 공개된 당사의 모니터링 보고서는 팬덤 및 업계의 다양한 반응과 여론을 취합한 문서”라며 “업계 동향과 이슈를 내부 소수 인원에게 참고용으로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발췌해 작성됐으며 하이브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보고서에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들, 팬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포함돼있다”며 “보고서 중 일부 자극적인 내용들만 짜깁기해 마치 하이브가 아티스트를 비판한 자료를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외부에 유출한 세력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이브의 입장문에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만만하냐”며 불쾌감을 표했다.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발표한 것도 모자라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는 하이브의 태도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있던 김태호 하이브 최고운영책임자 겸 빌리프랩 대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회발로 시작된 문건의 파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수천장에 달하는 문건 중 극히 일부만 공개된 상황이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 케이팝 팬들까지 반응하고 있다. 문건을 만든 사람, 본 사람, 공유한 사람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고, 민 전 대표가 이미 지난 4월 첫 번째 기자회견을 했을 때 언급했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대중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하이브는 지난달 29일 이재상 최고경영자(CEO) 명의로 입장문을 게재했다. 문건이 처음 공개된 지 닷새 만에 나온 사과문이다. 이 CEO는 “당사의 모니터링 문서에 대해 아티스트분들, 업계 관계자분들, 그리고 팬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또 부적절한 내용의 문건을 작성한 점을 인정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하이브의 사과문을 두고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언론을 통해 추가 문건이 공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일부 하이브 소속 가수가 SNS를 통해 말을 얹으면서 사태가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사이 하이브의 이미지는 물론 소속 가수의 호감도 또한 수직 낙하하는 중이다. 정치권발 카운터펀치 결국 방시혁 의장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방 의장은 BJ 과즙세연과의 LA 목격담 이후 두문불출 중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계속해서 ‘위’를 향하고 있다. 결국 하이브를 총괄 지배하는 사람은 방 의장이기 때문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