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법정관리 후폭풍

이대로 한국경제도 침몰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진해운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회생 여부를 놓고 한진그룹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듭하던 채권단이 추가지원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든 양상이다. 법정관리행이 결정된 상황에서 본격적인 청산 수순이 예고된 상태. 한진해운의 앞날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벌써부터 연쇄 후폭풍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진해운 주채권단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서 한진해운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 불가 결정을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이는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사실상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장일치 결정
자금줄 말랐다

채권단은 실사 결과를 토대로 한진해운이 내년까지 1조원 이상 자금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평가했다. 운임이 현재보다 하락할 경우 부족한 자금 규모는 최대 1조7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그간 채권단은 한진그룹 측에 부족자금 해결방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일부 자금만 자체 조달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이에 채권단은 한진그룹 측의 제시안에 대해 수용이 불가하다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간 채권단과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의 앞날을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거듭해왔다. 한진그룹은 국내 해운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채권단의 한진해운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난달 25일 최대 주주(지분률33.2%)인 대한항공이 4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부족자금이 발생시 조양호 회장 개인과 기타 한진 계열사가 1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한다는 내용의 부족자금 조달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채권단은 한진그룹의 추가적인 유동성 지원 없이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는 원칙론을 강조해왔다. 추가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조정 ▲해운동맹 가입 등을 내세워 자율협약을 추진해 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한진해운이 내놓은 5000억원 수준의 자구계획안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용석 산업은행 구조조정 본부장은 “4000억원을 지원한 뒤 유상증자가 끝나고 부족할 경우 1000억원 한도로 지원한다는 것”이라며 “600억원이라고 밝힌 미국 롱비치터미널(TTI) 지분 역시 담보 등으로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채권단 추가지원 중단 ‘초강수’
법원 기업회생개시…청산 수순

결국 한진해운은 채권단의 추가 지원 불가방침이 정해진 이튿날 서울중앙지법에 기업회생절차 개시신청서를 냈고 법원은 하루만에 법정관리를 결정했다. 만약 법원이 회생신청을 받아들이면 한진해운은 부채를 조정 받고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이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한진해운은 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 원칙대로라면 법원은 청산보다는 회생 가능성을 우선순위에 놓고 각종 현황을 파악하게 된다. 업계에선 청산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한진해운이 채권·채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청산 수순을 밟아야 하는 까닭이다.

정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단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하는 방식을 타진하고 있다. 두 회사를 합병하면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부채까지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자산 인수를 통해 한진해운의 이점만 흡수하겠다는 심산이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한진해운 회생절차 신청에 따른 금융시장 영향 점검 및 대응계획을 통해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부위원장이 밝힌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은 ▲선박 ▲영업 ▲네트워크 ▲인력 등이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이미 핵심 자신을 한진그룹 계열사 등에 처분한 상황이다. 한진해운은 평택 콘테이너 터미널 지분과 부산신항만 지분 등 국내 핵심자산은 물론 아시아 8개 항로 영업권과 베트남 틴깡가이멥 터미널 지분 등을 매각했다. 보유 선박 등은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상거래 채권 채무자 등이 회수해 갈 가능성도 존재한다. 남은 것은 항만과 항로 운영권 등에 불과하다.

사실상 부도?
공중분해 위기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해운업 전반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진해운이 1위 국적선사인 만큼 당장 수출물량 수송에 차질이 우려될 뿐만 아니라 물류비용 증가로 이어질 거란 계산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만큼 단기적으로는 수출 물량처리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한진해운 파산하면 미주 0.3∼1.0%, 구주 0.8∼1.6% 등 수출가격이 상승해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선주협회는 17조원의 피해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다. 한국 해운산업 자체가 붕괴되는 동시에 해운업과 필수불가결한 관계인 조선업, 항만업 등 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동시에 대규모 실업 사태도 우려된다. 해운선사는 화물을 연결해주는 알선업체, 육상운송업체, 급유업체, 선용품업체, 도선사, 항운노조 등 수많은 업종과 연관돼 있다. 당장 해운이나 항만, 화물차 관련 일자리만 2300개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개인투자자와 협력업체의 피해다. 개인투자자가 65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보유한 만큼 선량한 투자자의 피해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법정관리와 함께 기존의 모든 채권, 채무가 동결되기 때문에 담보가 없는 회사채 투자자들은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한진해운이 발행한 회사채(영구채 제외)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총 1조1891억원이다. 이 가운데 공모사채가 4210억원을 차지하고 사모사채가 7681억원이다.

이에 대해 정 부위원장은 “해운 대리점과 선박용품 공급업 등 협력업체에 대한 매입이 채무(637억원) 중 상당 부분 피해가 예상된다”며 “특별 대응반과 지역 현장반을 통해 밀착 지원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실로 다가온
연쇄 피해 우려

회사채 투자자 가운데 개인 비중이 적고 기관 투자가도 분산돼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1조2000억원의 회사채 중 개인 투자자의 보유액은 800억원 규모로 추산됐다. 은행권에 번질 파장도 크지는 않을 것으로 진단된다. 신용공여액이 1조원에 달하지만 채권단 대다수는 충당금을 충분히 쌓아 둔 상태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선 예상외로 충격파가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상당수다. 현재 해운업이 공급 과잉에 따른 업황 불황인 데다, 새롭게 출범할 해운 동맹에서 한진해운 퇴출 후 노선을 재정비할 것이기에 해운업이 입을 타격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의 물량은 대부분 해외 물량이라 이는 다른 머스크 등 해외 선사들이 가져가게 될 것”이라며 “국내 물량 역시 현대상선에서 흡수가 가능해 중장기적으로는 큰 타격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손실·조선업 피폐·실업 ‘3중고’
‘모럴헤저드’ 오너 일가에 비난 봇물

이런 상황에서 한진해운을 위기로 몰아 넣은 총수 일가와 채권단, 감독기관인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에게는 원색적인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최 전 회장은 남편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사망한 이듬해인 2006년에 한진해운 최고경영자로 취임했다. 그러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권을 승계받아 급박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해운업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의 1차 유동성 위기 때 제대로 된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채권단을 설득할 기회를 잃었다. 2014년 조 회장에게 회사 지분은 물론 경영권까지 넘긴 이후 현재는 한진해운 경영서 완전히 손을 뗀 상태다. 한진해운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에서 빠져나간 셈이다.
 

최 전 회장의 일가가 소유한 재산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약 1900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그는 자구책 마련 과정에서 유동성 확보가 절실했던 한진해운에 단 한 번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오히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을 발표하기 전 한진해운의 잔여 보유 주식을 전부 처분해 미공개 정보로 주식 거래를 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최 전 회장이 매도한 한진해운 주식은 소액 주주들이 매수했으며 오너가의 손실은 순수한 개미들이 대신 떠안았다.


어쩌다 이지경
누구의 책임?

채권단과 정부를 향한 비판도 거세다. 한진해운의 주채권단은 지난 5월부터 조건부 자율협약을 신청해 용선료 조정과 선박금융 상환유예 등을 진행한 한진해운의 노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선업에 10조원이 넘는 유동성 자금을 투입하면서 해운업에만 자체적인 해결을 요구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즉, 경영진과 채권단, 정부의 ‘등 떠밀기’식 대응이 이뤄지는 사이에 한진해운이 걷잡을 수 없이 표류했다는 주장이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진해운의 굴곡진 40년

1977년 5월 국내 최초로 컨테이너 선사로 설립된 한진해운은 국내 해운업의 산 증인이다. 1978년 중동항로에 이어 이듬해 북미서안 항로와 1983년 북미동안항로 등을 연달아 개척하며 한국 컨테이너 선사의 역사를 썼다. 1988년 대한해운과의 합병을 통해 종합해운사로 변모했고 1994년에는 컨테이너 100만TEU 수송실적을 기록했다. 현재 200여척 1000여만톤 선박으로 전세계 60여개 항로를 운영하며 연간 1억톤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2002년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별세와 동시에 형제 간 계열분리 작업 과정에서 3남 조수호 전 회장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2006년 한진해운의 계열분리 작업이 완벽히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조수호 회장이 돌연 사망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당시 조 회장 부인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한진해운 대표이사에 취임했지만 이 과정에서 한진해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해운업계 침체로 수천억원대 적자를 냈다.

2009년 한진해운홀딩스를 지주사로 새 출발했지만, 최 회장 휘하의 한진해운은 금융위기로 인한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2013년 한진그룹으로부터 2500억원을 지원받기에 이르렀다. 최 회장은 결국 이듬해인 2014년 한진해운 경영권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겼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조양호 회장은 해운업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한항공에서 1조원을 끌어다 투입하는 등 한진해운 살리기에 전력을 다했다.

이 때 일시적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업황이 날로 악화되며 또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잠깐의 호황이 찾아왔을 당시 비싼 값에 장기계약 했던 용선료를 체납했고, 글로벌 경쟁 업체들의 성장에 따른 운임료 하락,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인한 물동량 감소 등이 발목을 잡으며 누적 적자가 수조원대로 불어났다.

결국 이를 버티지 못했던 조양호 회장은 올 1월 경영권을 포기했다.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에 돌입한 지 8개월 만인 지난달 30일 채권단은 추가 자금 지원을 포기하며 사실상 청산 수순에 돌입하게 됐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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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