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말 많고 탈 많던 김종인 체제가 막을 내렸다. 위기의 당을 구했다는 호평와 함께 독선적 리더쉽이란 비판도 동시에 받은 그의 2막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 쏠리고 있다. 최근에는 김종인발 ‘대선플랫폼’이 대두되면서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야권 잠룡들이 헤쳐모일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 1월27일부터 8월27일까지 214일간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대표직을 수행해온 김종인 대표가 2선으로 물러났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난파선에 비유되던 더민주는 김종인호로 탈바꿈하면서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었다.
다음 행보는?
그러나 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셀프공천 파동으로 인해 호남 민심이 등을 돌렸다는 비난의 화살을 맞기도 했다. 게다가 총선 이후로는 문재인 전 대표와 각을 세우다가 결국 시한부 대표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더민주호를 이끌던 김 전 대표가 앞으로 어떠한 정치적 행보를 보일지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내년 대선의 가장 큰 이슈를 ‘경제민주화’로 보고 있다.
그는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반대세력은 기득권세력”이라며 “대통령 후보가 되는 사람과 더민주가 혼신을 다해야 (국민께) 진실되게 보여질 것”이라고 했다. 또 “더민주가 정권교체에 실패한다면 경제민주화의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 대선에서의 정권교체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대표는 정권이 바뀌어야만 경제민주화 기회가 올 수 있고, 대통령 후보가 되는 사람은 경제민주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김 전 대표가 대표직을 그만둔 뒤에도 당내에 경제민주화연구소를 설립해 관련 입법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 “경제민주화를 위해 그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그 어떤 책임이라도 떠맡겠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민주화는 제 평생 일관된 소신이었다. 저 김종인의 소임이 있다면 경제민주화를 완성해 시장에서 탐욕을 추구하는 소수세력과 생존을 요구하는 국민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다시 한 번 경제민주화를 강조했다.
지난 24일에는 김 전 대표가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경제민주화 법안 추진 과제’가 발표됐다. 더민주 경제민주화 TF 단장인 최운열 의원은 경제민주화 중점과제 34개를 선정해 비대위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경제민주화를 줄곧 강조해온 김 전 대표가 퇴임하기 전 경제민주화에 방점을 찍어두는 것으로 해석했다. 반면, 당내에선 김 전 대표가 2선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관련 입법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개헌에 대한 방향도 본격적으로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 고별간담회에서 김 대표는 차기 대선 승리의 관건으로 경제민주화, 책임정치, 굳건한 안보 세 가지를 꼽았다. 그러면서 “이 세 가지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필요한 게 개헌”이라며 “다시 한 번 개헌을 논의 할 것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근본부터 다시 짜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이 모든 걸 결정하고 여당은 거수기로 전락해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대통령제 70년을 이제 바꿀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책임 있는 대선후보라면 전대가 끝나자마자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월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서는 “개헌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당, 정파를 초월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고 밝힌 바 있다. 야권의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꼽히는 김 전 대표는 2선으로 물러나면서 본격적인 개헌 논의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 퇴임…경제민주화 강조
그동안 주장 안건 논의 물살
‘대선플랫폼’ 역할론도 대두
최근 정치권에선 김 전 대표의 더민주 잠룡들과의 만남을 두고 ‘김종인발 정계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나오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3일 더민주 손학규 전 고문을 만난 데 이어 박원순·안희정·김부겸 등 야권 잠룡들과 비공개 만남을 이어왔다.
문재인 전 대표를 제외한 다른 더민주 잠룡들은 지지율뿐만 아니라 당내 지지기반도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퇴임한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잠룡들이 제3지대로 나와 대결하는 그림도 예상된다.
김 전 대표가 이른바 대선 판을 만드는 ‘대선플랫폼’ 역할론도 ‘제3지대론’과 맥을 같이 한다. 실제로 지난 1일 김 전 대표는 대선후보경선과 관련해 “내가 한번 플랫폼을 만들고 대선행 티켓을 끊어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전 대표 측근은 “티켓을 끊어주겠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만 끊어주겠다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을 한 사람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면서 “누구 한 사람을 위한 킹메이커는 아니고 내년 대선을 위한 경제민주화 관련 판을 만들어놓을 것이니 생각이 있는 후보는 와서 이야기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문 전 대표의 독주 체제에 여러 차례 반기를 든 김 전 대표가 치열한 경쟁체계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최근 우상호 원내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잇따라 호평한 것도 대선 큰 그림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최근에는 주류인 친문(친 문재인) 측에 각을 세우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 주류인 친문이 당권을 잡고 대선을 치르면 유리하지 않느냐는 관측이 나온다’는 질문에 “그건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유권자가 4000만명 가까이 되는데 그렇게 똘똘 뭉치는 힘만으로 과연 될 수 있을지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말해 친문패권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대선 후보군에 대해서는 “최선이라는 건 기대할 수 없고 차선도 기대할 수 없으면 차차선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당으로?
김 대표는 퇴임을 1주여일 앞둔 지난 1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대선후보와 관련 “경제민주화와 동북아 국제 정세를 제대로 알고 헤쳐 나갈 능력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 여야에는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더민주로의 정권교체가 최선이지만 경제민주화 등 자격을 갖춘 후보가 야당에 없다면 다른 당 후보라도 지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종인의 ‘복심’은?
더민주 숨은 일꾼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체제가 막을 내렸다. 7개월여 동안 김 전 대표를 앞뒤에서 도운 이들이 있다. 먼저 김종인 전 대표의 첫 번째 대변인인 김성수 의원은 김 전 대표의 북한 궤멸론, 햇볕정책 무용론, 비례대표 공천파문등의 사건이 터질 때 적절한 백브리핑을 통해 사태를 수습했다는 평가다. 김 전 대표에게 발탁된 이재경 대변인은 지난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에 이어 당 대변인을 지냈다.
내홍 수습한 숨은 일꾼들 누군가 보니
각종 파문 터질 때마다…뒷수습 안간힘
이 대변인은 당 강령 개정안의 ‘노동자’ 삭제 문제 등으로 당이 내홍을 겪을 때 상황을 잘 수습했다는 평가다. 김 전 대표의 초대 비서실장을 맡은 박수현 전 의원은 김종인 체제 확립에 기여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밖에 당 대표 비서실에서 김 대표의 메시지와 일정기획을 각각 총괄한 허영일 부실장, 김진욱 부실장 등도 숨은 일꾼들로 꼽힌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