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대기업 살생부 막전막후

‘이랬다 저랬다’ 기준도 줏대도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알맹이 없는 대기업 살생부를 만든 금융감독원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상장폐지 위기까지 내몰린 회사에 정부가 의도적으로 호흡기를 부착한 형국이다. 형평성 및 특혜시비 등이 불거질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채권은행들이 대출금 500억원 이상 대기업 1973개사 중 602개 세부평가대상 업체를 대상으로 신용위험평가를 완료했다. 이를 토대로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2016년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를 내놨다.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으로 확정된 곳은 총 32개사로 지난해보다 3곳 줄었다.

발걸음 빨라지는
대기업 구조조정


채권은행들은 당초 34개사를 구조조정 대상 업체로 선정했지만 5개사가 주채권은행에 이의를 제기하자 재심사를 거쳤다. 지난해까지는 재심사 과정이 없었지만 올해 새로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제정되면서 기업 권익 보호 차원에서 이의제기 절차를 두게 됐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32개사를 확정해 13곳을 C등급, 19곳을 D등급으로 분류했다. A와 B등급 정상기업, C등급은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장복섭 금감원 신용감독국장은 “기업의 자구계획 여부가 등급 상향 조정의 결정적인 부분”이라며 “재무적인 문제가 있더라도 기업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등급을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장사는 7곳으로 해운·조선·전자가 각 2곳, 건설 1곳이다. 이 가운데 1곳은 상장폐지, 2곳은 거래 정지 처분을 받았다. 업종별로는 조선·건설·해운·철강·석유화학 등 5대 취약업종 기업이 17개사로 절반(53%)을 웃돌았다. 전자업종은 2년 연속 5곳 이상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됐으며 주택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건설업종은 지난해 13곳에서 6곳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들 기업이 금융권에 빌린 신용공여액은 1년 사이에 12조4000억원에서 19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중대형 조선·해운사의 비중이 80%에 달했다.

부채 500억 이상 32곳 구조조정 급물살
부실덩어리 조선 빅3는 정상기업 분류?


금감원은 금융권의 손실흡수 여력을 감안할 때 금융사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반기 중 은행권이 쌓은 충당금 규모는 3조8000억원으로 올해 추가 적립액은 은행 2300억원, 저축은행 160억원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C등급 기업에 대해서는 신속한 금융지원과 자산매각, 재무구조 개선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 여신을 중단하고 만기도래 여신을 회수할 수 있다. D등급 기업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게 된다.
 

올해 초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진행했던 대기업 9곳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들 가운데 6곳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3곳은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즉, 9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착수는 자구안 실행이 6개월만에 사실상 실패로 끝났음을 의미한다. 지난해에는 17개 기업이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대상으로 선정됐다가 3곳이 경영정상화에 실패해 지난해 말 C등급을 받은 바 있다.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으로 분류된 기업은 B등급과 C등급 사이에 속해 있다. 성공적으로 자구안을 이행하면 정상기업인 B등급으로 올라가지만 실패해서 C등급으로 떨어지면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다.

구조조정대상 업체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재무구조와 수익성이 취약한 업체 중 자산매각이나 증자 등을 통한 자체 자구계획을 수립하거나 진행 중인 업체는 26곳이다. 이들이 제출한 자구계획은 약 1조3000억원이며 부동산 등 자산매각이 1조원을 차지했다.

자구안 이행에 실패한 기업 대부분은 취약업종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업황 침체와 연결 지을 수 있다. 올해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기업으로 선정된 26곳은 전자(7곳) 철강(4곳) 건설(3곳) 화학(2곳) 조선(1곳) 기타(9곳) 등이다.

펼쳐진 리스트
누가 살아남나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가 나오자 재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빅3’ 조선업체인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으로 모아졌다. 당초 빅3는 C등급이나 D등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수주 부진의 여파로 자금난이 현실화 될 것으로 관측됐기 때문이다. 채권단과 해당 기업들은 자구계획안을 두고 커다란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빅3 모두 B등급 이상으로 평가됐다. 특히 논란이 되는 건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3조30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냈다. 부채비율도 7308%에 달한다.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수치)은 3년 연속으로 1을 밑돈다. 과거 5조원대 회계사기 혐의에 이어 현 경영진도 올 초 1200억원대 영업손실 축소 의혹이 불거져 충격을 줬다. 검찰은 채권단 지원이 중단될 것을 우려해 회계사기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말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2년 연속 B등급으로 판정했다. 시장 판단과 달리 대우조선해양을 정상기업으로 분류한 것은 정부와 대주주의 의지를 반영한 결과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이 C이하 등급을 받으면 조선업 특성상 보증 문제가 생겨 영업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견해에 대해 장 국장은 “수주가 개선돼 기업이 살아나는 것이 최선이다. 굳이 C등급으로 해 RG(선수금환급보증) 콜 등의 문제를 유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우조선해양은 대주주의 의지와 자구계획으로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경우”라고 부연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이라는 점을 반영했고 사실상 정부주도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정상기업으로 분류된 만큼 국책은행들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여신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대신 유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제외한 대다수 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여신 등급을 ‘정상’보다 한 단계 아래인 ‘요주의’로 낮췄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다. 다만 시중 은행들이 당분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추가적인 충당금 쇼크에서 자유롭게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뒤봐주는 대우조선 ‘B등급’
선제적 부실 차단 효과는 ‘글쎄∼’

특혜에 가까운 대우조선해양의 B등급 판정은 해운업 구조조정의 주 대상이었던 현대상선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현대상선의 경우 최근 자산매각과 용선료 인하 등 자구안 이행을 통해 5000%대의 부채비율을 200%대까지 낮추는 등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이달 중으로 정부가 운용하는 선박펀드를 신청하고 약 1조4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이용해 비용절감에 나선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은 C등급을 부여받았다.

예상치 못한
대우조선 B등급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이 이미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이 자금 문제로 드릴십 2척을 인도하지 않아 인도대금 1조원을 못 받고 있다. 소난골에 자금을 대주고 있는 글로벌 채권단이 기존 여신을 연장해줄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배 인도가 차일피일 미뤄진 탓이다. 글로벌 채권단은 이달 중순 무렵에 소난골에 대한 여신 회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은 다음달에 CP(기업어음) 4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또 다른 논란거리는 대기업 신용위험 평가의 사전적 부실 차단 실효성 여부다. 금감원은 올해 평가 기준이 과거보다 한층 엄정해졌다고 밝혔다. 엄정한 기준이란 평가 기준이 강화됐다는 의미가 아닌 평가 대상 기업수의 확대를 뜻한다.

이전 신용위험평가에서는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 기업이 평가대상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모든 기업(금융회사 등 일부 예외대상 제외)으로 적용대상이 확대됐다. 하지만 선제적 부실 차단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계가 명확하다. 금감원 역시 이 같은 지적에 대해서 일정부분 인정하고 있다. 

장 국장은 “기존 구조조정은 여신이 분산돼 있는 기업들에 대해선 특정 시점에 한번 걸러주는 사후적 차원의 구조조정”이라며 “신용위험 평가를 통해 기업의 부실을 막고 기업 스스로가 자구계획을 추진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장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 정상기업으로 분류됐지만 산업은행이 수시로 자금 확보 방안을 압박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대우조선을 비롯한 빅3 조선사는 신용평가에 앞서 실시한 주채무계열 소속 대기업 평가에서 ‘심층관리대상’으로 지정돼 이미 채권은행과 재무개선 약정을 맺고 관리를 받고 있다.

커지는 특혜 의혹
평가 신뢰도 타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의 판단이 비상식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신뢰도 회복과 자력 회생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시점이기도 하다. 윤석헌 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다른 기업들을 평가한 잣대로 똑같이 적용하면 대우조선은 D등급을 받아야 한다”며 “이번 평가는 형평성과 특혜시비 등으로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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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