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대기업 살생부 막전막후

‘이랬다 저랬다’ 기준도 줏대도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알맹이 없는 대기업 살생부를 만든 금융감독원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상장폐지 위기까지 내몰린 회사에 정부가 의도적으로 호흡기를 부착한 형국이다. 형평성 및 특혜시비 등이 불거질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채권은행들이 대출금 500억원 이상 대기업 1973개사 중 602개 세부평가대상 업체를 대상으로 신용위험평가를 완료했다. 이를 토대로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2016년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를 내놨다.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으로 확정된 곳은 총 32개사로 지난해보다 3곳 줄었다.

발걸음 빨라지는
대기업 구조조정


채권은행들은 당초 34개사를 구조조정 대상 업체로 선정했지만 5개사가 주채권은행에 이의를 제기하자 재심사를 거쳤다. 지난해까지는 재심사 과정이 없었지만 올해 새로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제정되면서 기업 권익 보호 차원에서 이의제기 절차를 두게 됐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32개사를 확정해 13곳을 C등급, 19곳을 D등급으로 분류했다. A와 B등급 정상기업, C등급은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장복섭 금감원 신용감독국장은 “기업의 자구계획 여부가 등급 상향 조정의 결정적인 부분”이라며 “재무적인 문제가 있더라도 기업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등급을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장사는 7곳으로 해운·조선·전자가 각 2곳, 건설 1곳이다. 이 가운데 1곳은 상장폐지, 2곳은 거래 정지 처분을 받았다. 업종별로는 조선·건설·해운·철강·석유화학 등 5대 취약업종 기업이 17개사로 절반(53%)을 웃돌았다. 전자업종은 2년 연속 5곳 이상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됐으며 주택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건설업종은 지난해 13곳에서 6곳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들 기업이 금융권에 빌린 신용공여액은 1년 사이에 12조4000억원에서 19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중대형 조선·해운사의 비중이 80%에 달했다.

부채 500억 이상 32곳 구조조정 급물살
부실덩어리 조선 빅3는 정상기업 분류?


금감원은 금융권의 손실흡수 여력을 감안할 때 금융사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반기 중 은행권이 쌓은 충당금 규모는 3조8000억원으로 올해 추가 적립액은 은행 2300억원, 저축은행 160억원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C등급 기업에 대해서는 신속한 금융지원과 자산매각, 재무구조 개선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 여신을 중단하고 만기도래 여신을 회수할 수 있다. D등급 기업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게 된다.
 

올해 초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진행했던 대기업 9곳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들 가운데 6곳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3곳은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즉, 9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착수는 자구안 실행이 6개월만에 사실상 실패로 끝났음을 의미한다. 지난해에는 17개 기업이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대상으로 선정됐다가 3곳이 경영정상화에 실패해 지난해 말 C등급을 받은 바 있다.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으로 분류된 기업은 B등급과 C등급 사이에 속해 있다. 성공적으로 자구안을 이행하면 정상기업인 B등급으로 올라가지만 실패해서 C등급으로 떨어지면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다.

구조조정대상 업체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재무구조와 수익성이 취약한 업체 중 자산매각이나 증자 등을 통한 자체 자구계획을 수립하거나 진행 중인 업체는 26곳이다. 이들이 제출한 자구계획은 약 1조3000억원이며 부동산 등 자산매각이 1조원을 차지했다.

자구안 이행에 실패한 기업 대부분은 취약업종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업황 침체와 연결 지을 수 있다. 올해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기업으로 선정된 26곳은 전자(7곳) 철강(4곳) 건설(3곳) 화학(2곳) 조선(1곳) 기타(9곳) 등이다.

펼쳐진 리스트
누가 살아남나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가 나오자 재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빅3’ 조선업체인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으로 모아졌다. 당초 빅3는 C등급이나 D등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수주 부진의 여파로 자금난이 현실화 될 것으로 관측됐기 때문이다. 채권단과 해당 기업들은 자구계획안을 두고 커다란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빅3 모두 B등급 이상으로 평가됐다. 특히 논란이 되는 건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3조30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냈다. 부채비율도 7308%에 달한다.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수치)은 3년 연속으로 1을 밑돈다. 과거 5조원대 회계사기 혐의에 이어 현 경영진도 올 초 1200억원대 영업손실 축소 의혹이 불거져 충격을 줬다. 검찰은 채권단 지원이 중단될 것을 우려해 회계사기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말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2년 연속 B등급으로 판정했다. 시장 판단과 달리 대우조선해양을 정상기업으로 분류한 것은 정부와 대주주의 의지를 반영한 결과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이 C이하 등급을 받으면 조선업 특성상 보증 문제가 생겨 영업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견해에 대해 장 국장은 “수주가 개선돼 기업이 살아나는 것이 최선이다. 굳이 C등급으로 해 RG(선수금환급보증) 콜 등의 문제를 유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우조선해양은 대주주의 의지와 자구계획으로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경우”라고 부연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이라는 점을 반영했고 사실상 정부주도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정상기업으로 분류된 만큼 국책은행들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여신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대신 유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제외한 대다수 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여신 등급을 ‘정상’보다 한 단계 아래인 ‘요주의’로 낮췄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다. 다만 시중 은행들이 당분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추가적인 충당금 쇼크에서 자유롭게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뒤봐주는 대우조선 ‘B등급’
선제적 부실 차단 효과는 ‘글쎄∼’

특혜에 가까운 대우조선해양의 B등급 판정은 해운업 구조조정의 주 대상이었던 현대상선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현대상선의 경우 최근 자산매각과 용선료 인하 등 자구안 이행을 통해 5000%대의 부채비율을 200%대까지 낮추는 등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이달 중으로 정부가 운용하는 선박펀드를 신청하고 약 1조4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이용해 비용절감에 나선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은 C등급을 부여받았다.

예상치 못한
대우조선 B등급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이 이미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이 자금 문제로 드릴십 2척을 인도하지 않아 인도대금 1조원을 못 받고 있다. 소난골에 자금을 대주고 있는 글로벌 채권단이 기존 여신을 연장해줄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배 인도가 차일피일 미뤄진 탓이다. 글로벌 채권단은 이달 중순 무렵에 소난골에 대한 여신 회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은 다음달에 CP(기업어음) 4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또 다른 논란거리는 대기업 신용위험 평가의 사전적 부실 차단 실효성 여부다. 금감원은 올해 평가 기준이 과거보다 한층 엄정해졌다고 밝혔다. 엄정한 기준이란 평가 기준이 강화됐다는 의미가 아닌 평가 대상 기업수의 확대를 뜻한다.

이전 신용위험평가에서는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 기업이 평가대상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모든 기업(금융회사 등 일부 예외대상 제외)으로 적용대상이 확대됐다. 하지만 선제적 부실 차단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계가 명확하다. 금감원 역시 이 같은 지적에 대해서 일정부분 인정하고 있다. 

장 국장은 “기존 구조조정은 여신이 분산돼 있는 기업들에 대해선 특정 시점에 한번 걸러주는 사후적 차원의 구조조정”이라며 “신용위험 평가를 통해 기업의 부실을 막고 기업 스스로가 자구계획을 추진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장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 정상기업으로 분류됐지만 산업은행이 수시로 자금 확보 방안을 압박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대우조선을 비롯한 빅3 조선사는 신용평가에 앞서 실시한 주채무계열 소속 대기업 평가에서 ‘심층관리대상’으로 지정돼 이미 채권은행과 재무개선 약정을 맺고 관리를 받고 있다.

커지는 특혜 의혹
평가 신뢰도 타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의 판단이 비상식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신뢰도 회복과 자력 회생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시점이기도 하다. 윤석헌 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다른 기업들을 평가한 잣대로 똑같이 적용하면 대우조선은 D등급을 받아야 한다”며 “이번 평가는 형평성과 특혜시비 등으로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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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